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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잽이 출신이 쓴 시나리오-2]모스크바

이대영 작가 | 기사입력 2024/06/11 [11:52]

취사장에 위치한 굴뚝에 오르고 있는 쫑구. 떡대, 쉽게 오르지 못 하고 있다. 큰 몸짓 때문이기도 하고, 배에서 피가 계속 나오고 상처를 틀어막고 있는 상황이다. 지도들, 올가미를 던져 씌웠지만, 떡대, 끌려오지 않고 오히려 잡아끌어 지도를 패대기친다.  

 

그러다가 갈고리가 발목을 잡아채져서 중심을 잃고 맥없이 나동그라지는 떡대. 지도들, 우르르 달려들어 너나 할 것 없이 짓밟으며 제압한다. 쫑구, 결국 혼자 굴뚝 위로 올라간다.  그런 상황을 낙담해서 지켜보고 있는 김주임.

 

17. 보안 과장실.

 

거푸 담배를 빨아대는 보안과장. 표정에 조급함과 불만이 가득이다. 지도반장인 대뽀가 쇼파 긑에 앉아 있다.

김주임, 힐끔힐끔 눈치를 보다가 담배를 한 개피를 꺼내들고서 보안과장을 쳐다보니까 보안 과장이 못마땅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자리를 털고 일어서면서,

 

보안과장   (부드럽게) 난 소장님께 상황보고를 드려야 하니까 

              김주임이 지도반장과...(난감한) 계속 저러고 있으면 

              보안상 문제가 많잖아!! 

      

보안 과장, 입짓을 하며 나간다. 김주임, 잽싸게 담뱃불을 붙여 대뽀에게 건넨다. 대뽀, 시큰둥하게 

담배를 받아 입에 물지만 상황이 마뜩찮은 것 같다. 김주임이 담뱃불을 붙여 물면서, 

 

김주임 :   대뽀, 봐라. 우리가 남이가? 이런 상황에선 무조건 도와야 하는 거 아이가? 지도반장이면, 감옥에선 왓따로 잘나가는 10급 공무원 아이가?!  암! 별정직이제, 별정직!!

 

대  뽀 :   ...

 

김주임 :  이기 첨부터 대뽀가 나와 있으믄 벌어지지 않았을 낀데... 엄밀히 따지자카멘 이거 (진지) 직무유기데이! 글카고 글마가 공범이라카면... 

 

대  뽀 :  (퉁명스럽게) 공범은 무신 공범입니까! 

 

김주임   (화색을 띠며) 그기 바로 공범이지 뭐꼬? 탈주공범 아이가?! 그게 진정한 공범이데이... (탄복하며) 암! 그렇구말구... 목심 건 사이 아이가?! 

             

대뽀, 담배를 비벼 끄며 투덜투덜 댄다. 난감한 표정이다.

김주임, 그런 대뽀의 심경을 읽은 듯,

 

김주임 :  (애원조) 대뽀! 그래 우리 이제부터 친구 하재이. 뭐 나이도 같고, 내도 반 징역살이 하는 처지 아이가?! 딱 맞네! (애원조로) 대뽀가 이번에 내 체면 좀 살리도! 내 이 은혜는 죽어서도 잊지않을 끼다. 내 맹세하꾸마! (새끼손가락) 자! 

 

대  뽀    ......

 

김주임   (애원조) 대뽀, 내 계장 진급이 코 앞이데이. 사정 좀 봐도...

 

18. 교도소. 굴뚝. 낮 

 

쫑구, 굴뚝에 박힌 디귿자 모양의 디딤쇠을 한 팔로 감은 채 한 손을 활짝 펼치고 희희락낙이다. ‘이 개돼지 같은 새끼들아’나 ‘소장 나와라‘ 같은 거지만 악을 쓰기 때문에 명확히 전달 안 된다. 지도들, 분주하게 굴뚝 밑에 두꺼운 솜이불을 갖다 겹쳐 놓는다. 여기저기 사동에서는 죄수들이 창틀에 매달려 휫바람을 불기도하고, 동조하는 고함을 치기도 한다. 여기저기서 고함으로 호응하는 바람에 몹시 소란스럽다. 쫑구가 거기에 신이나 일일이 호응하다가, 갑자기 지도들이 일제히 차렷 자세로 목청껏 ‘쭝’, ‘쭝’ 하면서 경례를 붙여 대자 멈칫거리며 주목하는데,

 

대  뽀   (한참을 올려다 보고) 쫑구야! 내리온나...

 

쫑  구   언놈이고? 왕피대 차고 이자슥이, 또라이 아이가? 내가 와 내려가노? 이 좋은 데를 두고... (화들짝) 누꼬? 이 어른 이름을 우찌 알고...? 가만있자! 대뽀 행님입니꺼? 맞지예? 대뽀 행님인기요? 

   

대  뽀   그래, 맞다. 퍼득 내려 온나 (목덜미 잡고) 힘들다...

 

쫑  구   (반갑기는 하지만) 행님! 그냥 내려갔다간 전번에 토낏을 때처럼 마 또 좆 됩니더... 

 

대  뽀   (뻘쭘해져서) ......

 

저 만치 서 있는 김주임이 울상을 하고 지켜보고 있는데,

 

대  뽀   인마야, 그럴 일 없다. 얘기 다 됐다. 내리온나, 내 목 꺽이겠다! 

 

쫑  구   헹님! 이기... 제대로 한칼 멕여야 징역살이 대번에 풀리는 깁니데이... 이놈아들은 무릎을  단번에 팍 꿀려삐야지, 안 그러면 바로 수씁니다...

 

쫑구, 내키지 않다는 투로 투덜대면서 천천히 내려온다.

 

19. 특사. 복도.  낮

 

일반 사동과는 다른 분위기. 낡은 시설이지만 엄중한 느낌이다. 크지 않은 통용문을 지도가 확인 후에야 열어주자 취사부들, 배식운반수레에서 밥 판과 국통, 반찬통이 내려준다. 소지들, 사동 안으로 옮기며 배식에 들어가는데, 고참 소지, 밥 판을 놓고 능숙하게 칼질한다. 가다 밥의 모형 간  경계를 교묘하게 헐어내는 작업이다. 급기야 가다 밥의 형태가 빈약해진다. 

 

소지, 배-식- 하고 큰소리로 외치자 긴 복도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문에 나있는 배식구가 일제히 열린다. 고참 소지, 배식구로 밥덩이를 퍼 던지고 이내 밥 판을 끌고 다음 방으로 이동해 가는데 동작이 기민하다.

 

20. 미전향수 방.

 

벽에 고무줄을 늘어뜨리는 형태의 볼품없이 제작된 저울. 깡총해진 밥의 무게를 달아 보는 미전향수. 그어진 선에 한참 못 미친다. 초췌한 몰골의 미전향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법자식기에 밥을 담아 냅다 배식구 밖으로 내던지고, 법자식기를 배식구 밖으로 내 밀어 몇 번 두들기는데, 약속된 신호 같다.    

 

21. 특사. 복도.

 

긴 복도 양편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거실 문 에 나있는 배식구가 일시에 ‘타다다닥’ 열린다. 그리고 밥이 복도로 내던져진다. 순식간에 복도는 엉망이 된다. 소지들, 난감해하면서도 예상이라도 했다는 것처럼 여유를 보인다. 

 

22. 특사 전경. 복도- 방.

 

마치 거대한 성채 같이 보이는 구조. 일반 사동들과 엄격히 구분되어 있다. 출입문도 이중 삼중이어서 외부와 단절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갑자기, ‘철커덕’ 하는 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리며 다닥다닥하게 붙어 있는 문이 키가 해제되는 모습이 상징적으로 보여 진다.  사동 복도는 도수 낮은 백열등이 켜 있지만 어둡고 침침하다. 덜컥, 현관문이 열리며 떡대와 덩치가 좋은 지도들이 들어선다. 뒤따라 온 지도들은 방 앞에 배치된다. 쫑구, 들어서는데 손에는 따가리와 죽통이 들려있다. 그 뒤에 대뽀와 김주임이 느긋하게 들어선다. 담당, 경례를 하고 방문을 연다. 미전향수가 좌선을 하듯 눈을 지그시 감고 가부좌를 틀고 있다. 

 

떡대, 쫑구가 눈짓하자 거칠게 미전향수를 밀어뜨려 타고 앉아 입을 벌리고 쫑구는 거침없이 따가리를 입에 쑤셔 박는다. 퍼 넣어지는 죽. 미전향수가 캑캑거리며 괴로워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죽을 퍼 넣는 쫑구. 미전향수는 의지와는 달리 죽을 넘길 수밖에 없다.  복도에는 지도들이 엄중한 경계를 서는 가운데 대뽀가 일일이 방 안을 들여다본다. 미정향수들은 하나 같이 정좌를 한 채 미동도 없이 앉아 있다. 

 

대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노기를 참지 못하고, 

 

대  뽀   이런 빨갱이 새끼들!! 지지밟아삐라!

 

지도들, 대뽀의 명령이 떨어지자 일제히 문을 열고 미전향수들을 무자비하게 짓밟는다. 미전향수들, 지도들에게 짓밟히면서도 비명을 내지 않으려 한다. 넘어졌다가도 끝끝내 자세를 곧추세워 정좌를 틀고 앉는데, 항거를 의미하는 것 같다. 무자비한 폭행의 상황이 계속된다.     

 

23. 밀실.

 

탁자 위에 먹다 남은 보쌈, 족발이 잔뜩 널려있다. 소주병도 여러 개 보이는데 벌써 많이 비워져 있다. 대뽀, 거나해져 지그시 눈을 감고 있다. 그 옆에서 쫑구와 떡대, 아직 멀었다는 듯 소주를 연거푸 마시고 안주를 씹어댄다. 그러면서 한쪽을 의식하는데, 그 한쪽에 긴장한 채 움크리고 앉아 있는 미전향수. 조잡하게 수선한 안경을 걸치고 긴장한 느낌이지만 흐트러짐 없이 결연한 눈빛이다.  

 

24. 밀실. 시간경과

 

드럼통에 나무판으로 된 덮개 위에 앉아 막대로 드럼통을 두들겨대는 떡대. 이런저런 장단을 맞추기도 하다가, 신경질적으로 두들겨댄다. 시찰구가 열리고 동정을 살피는 듯한 눈의 움직임. 이내 닫힌다. 대뽀는 계속 눈을 감은 채 있는데, 쫑구가 한참을 떡대가 하는 양을 응시하다가 벌떡 일어나며, 

 

쫑  구   (떡대에게) 나온나... 

떡  대   아따! 이 인간 지독스럽네요. 엔간치 해서는 안 되겠 ...

 

쫑구, 거칠게 덮개를 밀쳐내내자 미전향수, 양손으로 귀를 막고 잔뜩 움츠리고 있다. 미전향수, 쫑구와 눈이 마주치자 순간적으로 긴장하지만 굴복하는 기색은 아니다. 

 

쫑  구   끌내라!

 

떡대, 미전향수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잡아챈다. 드럼통 밖으로 내동댕이쳐지는 미전향수가 정신이 혼미해 비척대는데, 이내 자세를 바로 잡으려 애쓴다. 

   

쫑  구   가와 봐라.

 

떡대, 전향서와 인주를 가져와 미전향수 앞에 들이민다. 미전향수, 고개를 약간 들고 가로 젓는데 도도하기까지 하다.

 

쫑  구   (예상했다는 듯) 오래 버티네. 글다 안 죽겄나! 

 

떡대, 안쓰러운 심정이 발동해 안절부절 하는 게 역력해 보이는데,  쫑구, 슬핏 떡대의 기색을 살펴보고는 슬그머니 물러나 담배를 피워 문다. 그 틈에 떡대, 미전향수에게 물을 한 컵 따라준다. 긴장한 채 물을 마시는 미전향수. 

 

떡  대   우리라고 이라고 싶겄소... 그냥 눈 딱 감고 수월하게 찍어뿔면 서로가 좋아뿔 텐디...그 무슨 쓰잘데기 없는 신념이구 뭐구 참 징하요! 

 

미전향수  몇 번을 얘기해야 알갔소? 무신 신념이구 그따우 거창한 거 없수다. 내레 그걸 찍는 순간에 북에 있는 에미나이와 아새끼들이레 반동이 되어시리 아오지 탄광으로 끌려가지 안 캈소? 내레 비루먹은  목숨 부지하자고 아새끼들 에미나이 내팽개칠 수는 없잖은가 말이오?    

   

떡  대   (버럭) 그럼, 찍은 놈들은 도대체 뭐랑가?

   

미전향수   ...나는 아이오... 차라리 내레 혀를 깨물고 죽는 한이 있어도 그건 앙이되오...

 

떡  대    (쫑구 눈치보며)...아! 가족, 여편네하고 새끼들 땜시 전향을 할 수 없다는 말이지라?! 그라도 사람이 천 날 만 날 사는 것도 아니고, 선상의 나이도 솔찮이 되아부린 상황에서는 일단 나의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맞고만이라. 나가 생각해 봐도 시방 선상의 건강이 상당히 안 좋아 보이는디...   

미전향수   ......

 

미전향수, 한참을 허공을 바라보더니 눈물을 주르륵 흘리더니 작심한 듯 웃옷에서 한쪽 팔을 빼낸다. 팔뚝에 점처럼 무수한 상흔이 있다. 내친김에 런닝을 들춰 허리께도 보이는데 흉측해 보일 정도로 상흔이 있다. 

 

떡대가 안쓰러운 표정을 잔뜩 미간을 찌푸리고 살펴보는데,

 

 

미전향수  (상흔을 가리키며) 이게 다 바늘로 쑤신 자립니다.  이거뿐이 아니외다. 한겨울을 이불홑청만으로  살아내기를 몇 해 째인지 모릅네다... 내레 와! 고통스럽지 않았갔슴네까? 그거이 하면 안 되기 때문이었슴네다.

 

떡  대    사정이 딱허기는 헌디, 우덜 입장도 있고하니...일단은 찍고나서 난중에 다시... 오리발을...

   

미전향수   (단호하게) 그 숱한 날을 모질게 목숨줄 놓지 않은 것은... 죽기 전에 아새끼들, 쌍판떼기라도 한 번  보게 될까 하는  희망을 갖고 있는 건데, 조국해방은 요원한 것 같고,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는 게 나을지도...      

 

미전향수의 결기에 찬 어조에 떡대가 고개를 주억거리는 상황에까지 이르자, 팔짱을 낀 채 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 쫑구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린다. 쫑구, 번쩍 눈을 뜨면서 남은 소주를 병째 벌컥벌컥 들이키더니 벌떡 일어선다. 

 

25. 밀실. 시간 경과.

 

드럼통에 반쯤 채워진 물에 머리를 박은 채 거꾸로 처 박혀 있는 미전향수. 오금사이에 끼워진 막대가 드럼통 테두리에 걸쳐 있다. 숨이 차지만 끝까지 참는 듯하다.  쫑구와 떡대, 막대를 잡고 들어 올리자 미전향수의 머리가 겨우 나오는데 굴복하는 기색이 아니다. 순간 쫑구, 미전향수를 밀어 넣고 막대를 빼버린다. 그리고 덮개를 덮고 올라타고 앉는다. 느긋하게 담배를 붙여 무는 쫑구. 떡대, 안절부절 불안하다. 드럼통 속 요동은 점차 잦아든다. 그때 갑자기 밀쳐져 바닥에 나동그라지는 쫑구.

 

대  뽀   이 자슥이 돌았나!

 

대뽀, 황급히 덮개를 열고 미전향수를 끌어올리는데 혼절된 상태다. 떡대, 달려들어 미전향수의 결박을 풀기위해 허둥지둥 대다가 급한대로 엎어 놓고 등짝을 눌러댄다. 

 

쫑  구   (발악) 지금 뭐합니까?

 

대뽀, 눈을 부라리며 포악을 떠는 쫑구의 턱주가리를 손으로 가격한다. 저만치 벌렁 나자빠지는 쫑구. 떡대, 미전향수의 코에 귀를 대보더니, 포승을 풀고 가슴을 눌러대다가 코를 막고 입으로 숨을 불어넣기도 한다. 가까스로 물을 토해내는 미전향수. 떡대, 안도의 숨을 몰아쉰다. 

 

26. 자치사동. 거실. 밤

 

일반 사동보다 훨씬 나아 보이는 환경이다. 조악하지만 치장을 했고, 백열등에는 꼬깔이 씌워져 있어 차광 효과를 내고 있다. 담배 연기가 자욱한 상태인데도 계속 피어오르고 있다. 쫑구, 담배를 피워 물고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대포와 떡대, 눈을 감고 있지만 잠든 것 같지는 않다. 대뽀, 부스스 일어나 앉는다. 기척에 벌떡 일어나 앉는 떡대. 대뽀, 담배를 피워 물자 쫑구가 담배를 끄고 일어나 앉는데, 마뜩찮다. 대뽀, 깊게 연기를 들이마시더니 천천히 내뿜는다.   

 

대  뽀   니 뭐꼬?

쫑  구   ......  

대  뽀   (떡대에게) 저거 치라.

 

떡대, 고깔을 반쯤 벗겨낸다. 드러나는 주위. 

 

대  뽀   (쫑구에게) 니가 그카는 이유가 있으니까 

             그라는 거 아이겄나? 

쫑  구   ... 헹님, 아무리 생각 해봐도 이건 아인갑소.  지가 마 헹님따라 나섰다가 15년 되바꾸 했지만서두, 내 그래도 이날까지 후회는 한 번도 해본 적 없심더... 그란데예,  이리 나선 건 참 많이 후회됩니더. 정말 이 짓은 하면 안 되지 싶습니더...  

 

대  뽀   그래, 이 자슥아 뭐가 안 된단 말이고?

쫑  구  (자세를 잡고) 내사 마 무식은 하지만도 저 사람들에게 강제로 전향서 받아내는 거는 아인 기라는  생각이 듭니더... 저 사람들이 우리처럼 도둑놈도 아니고예...뭐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사람들도 아닌데...

 

대  뽀  (버럭) 이 자슥아! 저것들은 빨갱이다. 빨갱이 아이가?

 

쫑  구   (차분하게) 헹님, 빨갱이라 칩시다. 그래 실지로 그 사람들이 우리를 뭐 해꼬지 했심니꺼? 헹님, 그 사람들은 확신범이라카데예! 그카고 사람들이 우리들을 뭐라카는 줄 아십니꺼?  

 

대  뽀   ...?  

쫑  구   헹님, 떡봉이라 캄니더! 떡봉이예!! 사람을 떡치댔기 쳐댄다 해서 붙여진 거라예. 관에 빌붙어 인간백정질 하는 거라 하대예. 맞다 아임니꺼? 헹님, 그렇다꼬 우리가 뭐 패랭이 되겠슴니꺼? 우리는 죽었다  깨도 패랭이 안 됩니다. 저것들이 우리를 패랭이 시키주겠습니꺼?그냥 패랭이들 꼭두각시인기라예! 그라고 종국에는 이거(손날로 목치는) 될 끼라예! 그라고 헹님, 솔직히 패랭이면 어떻고 빨갱이면 어떻슴니꺼? 감옥에 들어앉은 인간들은예, 전부 도둑놈인 기라예, 니 따로 내 따로가 아인기라예... 

 

대  뽀   이 자슥이야... 이기 도데체 뭐라카는 기고?

 

27. 자치사동. 방. 시간경과

 

백열등에 씌워있던 고깔이 완전히 벗겨져 있다. 대뽀, 소주를 벌컥 벌컥 병째 들이킨 다음 남은 걸 쫑구에게 건넨다. 쫑구, 받아 한 모금 들이킨다. 떡대, 마른 오징어의 껍데기를 벗긴다.

 

대  뽀   (떡대에게) 니는 어떻노?    

떡  대   ......

 

대  뽀   (너그럽게) 괘않다. 편하게 말해보거라...

떡  대   ... 성님, 그것이 참말로... 그 머시랄까 까갑하다고나 할까요... 어째 지가 왜정 때 독립군들 족쳐대는 일본놈 순사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 같고만요... 어째 사람들이라고 착하디 착해빠져뿔고 약하디 약한 걸 족쳐댈려니까 요기(명치 끝을 엄지로 찌르며)가 찌릿찌릿 헐 때도 있어라우... 그라고 큰형님, 쫑구성님이 같은 죄수들 것은 콩알 한 개라고 건들지 못하게 하시...     

 

쫑  구  헹님, 그 사람들이라꼬 빨리 나가고 싶지 않겠심니꺼? 그렇게 당해카면서까지 버티는 걸 보면, 그 사람들에게는 목숨보다도 더 소중하게 여기는 기 있다는 기 분명한 기라예! 지는 단지 그걸 꺾어보고 싶었던 거라예... 참말로 안 꺾이는 긴지... 그라고 행님, 그 사람들은예 우리들이 가지지 못한 뭐가 있는 게 분명한 마당에, 백지 그 사람들에게서 그걸 뺏으려다가는... 천벌을 안 받겠심니꺼?! 

 

대  뽀   ... 도둑놈들이 별 씰데 없는 생각하는 거 아이가?

쫑 구    헹님! 도둑놈들은 사람 아임니꺼? 우리들도예, 도둑놈들도 죄짓고 벌을 살고는 있지만은 인간인거는 맞지 않습니꺼?

 

대  뽀   (뜨악)...... 

             

28. 교도소 전경. 밤

 

망루에서 비춰지는 서치라이트... 칠흑 같은 어둠. 사동은 무수한 창문에 희미한 불빛만 보이고 적막에 싸여 있다. 서서히 어둠이 바래지면서 시간이 흐르는 암시를 준다.

 

29. 교도소. 사동. 복도.  밤

 

깊은 밤. 촉수 낮은 백열등 불빛이라서 선명하진 않지만, 저만치 어느 방 식구통으로 삐죽이 튀어나온 띵채(거울쪼가리). 가까이 다가가 보면 잡힌 물체가 식별되지만 분명치 않다. 뒤돌아 찾아보면 담당이 벽에 기댄 채 졸고 있는데, 그 폼새가 특이한 형태다. 허리띠에 부착시킨 갈고리를 통문 쇠창살에 걸어 고정시킨 탓에 허리를 꺾고 졸아도 엎어지지 않게 유지되고 있다.    

 

30. 쫑구 방. 밤 

 

떡대, 땡초 영감을 시켜 마루 밑에서 쥐를 잡고 있다. 대나무 젓가락에 줄을 매어 미끼를 단 줄을 마루 밑에 늘어뜨리고 있는데 쥐가 까불거리는 미끼를 물려고 한다. 숨죽이고 집중하는 사이 능란하게 낚아채는 땡초 영감. 쥐가 낚시에 걸려 찍찍대며 요동친다. 잔망스럽게 쥐를 제압하는 땡초영감.

떡대가 참았던 숨을 뱉어내며 감탄하며,

 

떡  대  (감탄하며) 참으로 탁월한 재능을 지녀부렀네.!

영  감  왕년엔 이걸로 한끝발했당게!   

 

마루바닥에 끌어 올려진 쥐. 도망치려 하지만 입에 걸려있는 갈고리 때문에 허탕이다. 떡대, 낄낄대다가 쫑구가 자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입에 손가락을 대고 주의시키다가 자기 흥에 

겨워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입을 틀어막고 낄낄댄다. 땡초영감이 잔망스럽게 따라한다.  

 

 31. 사동 복도. 밤

 

갑자기, 딸그랑 딸그랑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고, 담당, 깜짝 놀라 자세를 바로하며 통용문 쪽으로 바로 서는데 아무 기척이 없어 소리 나는 쪽을 살피면 쥐가 꼬리에 깡통을 매달고 움직이는 상황이다. 담당, 후다닥 고리를 풀고 쥐를 향해 뛰는데... 쥐는 쉽게 잡히지 않는다.

 

32. 쫑구 방

 

딸깍,  시찰구가 열리고 담당의 눈이 떡대와 눈이 마주치자 ‘좀 살려주라‘ 같은 애원의 빛이 담겨있다. 시찰구가 닫히자마자 벌컥 식구통이 열리고 불쑥 드밀어진 손에 불 붙은 담배가 쥐어져 있다. 

땡초 영감, 재빠르게 담배를 낚아챈다. 짓궂은 표정의 떡대, 담배 받아들고 쫑구를 흔들어 깨운다, 쫑구는 일 없다는 듯 돌아눕는다. 

 

33. 교도소. 사동복도. 장애자 방. 아침  

 

철거덕, 거실 문을 여는 담당. 문이 채 열리기도 전에 검정고무신을 창문으로 내놓고는 문이 열리자마자 죄수 둘이 튀어 나온다. 손에는 물동이를 든 채다. 앞서 나왔던 거실의 죄수들이 물동이에 잡수를 담아 들고 오는데, 물이 넘실거려 바닥에 쏟아진다. 그것을 타박하는 지도와 소지들. 

 

매일 순차적으로 실시되는 '잡수타임'이다. 몹시 분잡스럽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질서 있게 진행되고 있고 생동감 있다. 거실마다 죄수들이 잡수 뜰 태세를 갖추고 있다. '장애자' 푯말이 붙은 거실에 이르러 담당, 심드렁한 표정이 짓는다. 문이 열리자 험상궂은 인상의 방장인 듯 보이는 외팔이, 뻥구와 찐다를 독려해 내보내는데,

 

담  당   (혀 차며) 찌기미, 그나마 멀쩡한 게 찐다냐!

 

담당, 투덜대며 방 안을 들여다보는데 장님과 곰배팔이가 앉아 있을 뿐이다. 담당, 머쓱해져 외팔이를 쳐다보고 싱겁게 웃는다. 멀찍이서 오고 있는 뻥구의 걸음새가 유별나다. 유난히 튀어나온 엉덩이를 씰룩거리는 게 여자의 걸음새 같다. 

 

뻥구, 각 거실에서  야유를 하는데도 들리지 않아 그런 건지 이골이 난 탓인지 애교 섞인 응수를 한다. 죄수들은 안달이 나서 진저리를 치며 자지러지는 죄수도 있다. 뻥구, 일순 자세를 바로 하는데 철창을 잡고 운동하던 떡대와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뻥구의 인사에 떡대, 사람좋은 표정이다. 뻥구, 가지 않고 책을 읽고 있는 쫑구와 눈을 맞추려 애쓴다.

 

떡  대   성님, 뻥구놈이 아침 문안 인사 드리는갑소.

 

쫑구, 일별하자 뻥구가 허벌죽 웃는다. 찐다, 물을 반쯤 밖에 담지 않았는데도 출렁거리는 탓에 슬로우모션 같은 동작으로 움직이고, 거기에 속도를 맞추다 보니 뻥구는 각 거실의 죄수들의 시선을 맞추는 식이어서 진행 속도가 늦다. 담당, 마냥 지켜 볼 수만은 없는 듯 다음 거실의 문을 여는데, 열자마자 튀어나오는 죄수들. 죄수들, 뻥구와 지나치면서 엉덩이를 툭 치기도 하고 노골적으로 희롱을 하는데 뻥구, 그걸 즐기듯 엉덩이를 튕기는 식으로 응수한다. 외팔이가 문에 붙어 담당의 동태를 살피고 있고, 곰배팔이, 알약을 으깨어 우유에 타 빨대로 빨아 도로 우유팩에 넣는 작업을 하고 있다. 담당, 거실 문을 주자 뻥구, 자기 물통을 넣어두고는 재빨리 찐다의 물통을 받아 들여 놓는다.

 

외팔이   참말이제, 니가 우리 방 살림꾼이데이 뻥구야! 니는 진정한 우리 방 안방 마님이데이! 이 곰빼새끼 니 뭐하노? 퍼득 우리 뻥구 영양 보충 안 시키나?

 

곰배팔이, 짐짓 놀라는 시늉을 하며 선반에서 우유를 집어 들어 빨대를 꽂아 뻥구에게 건네주는데 외팔이, 다가와 뻥구의 엉덩이를 만지면서,

  

외팔이   뻥구야, 쭉 빨아삐라. 우유가 피부에도 최고라카데!  니는 어쩌믄 피부가 이리도 곱노...

 

외팔이, 침을 삼키면서 뻥구의 엉덩이와 볼따구를 연신 쓰다듬으며 뻥구가 우유룰 마시는 걸 의미 있게 바라본다.

 

34. 교도소. 사동. 복도. 장애자 방. 저녁

 

변소 문을 열고 나오는 뻥구가 아랫배를 문지르는데, 

 

외팔이   뻥구야, 니 하루 종일 뼁끼 탈 끼가? 도데체 몇 번째고? 야 이 자슥아, 우유가 안 받을 것   같으면 먹지를 말아야지. 몸에 좋다고...

 

뻥구, 수화랑 몸짓을 섞어 ‘그게 아닌데 설사가 계속해서 나온다’는 표현을 한다.

 

외팔이   인마야, 글카면 설사 멈추는 약을 먹어야지 삘삘이  계속 타면 똥구멍 거덜 안 나겄나?! 

 

뻥구, 항문 쪽을 손으로 문지르며 아프다는 시늉을 하는데,

 

외팔이   곰빼야, 니 설사하는 데 특효약 짱박아 논 거  있제? 그거 빨랑 가 온나... 퍼득! 이 자슥아, 뻥구 똥구멍 다 거덜낼라카나? 이길 누가 책임 질 끼고!

 

곰배팔이, 짐짓 투덜거리는 체 하며 징역보따리에서 약을 꺼내주는데 뻥구, 급반색하면서 가루약을 입에 털어 넣고 물로 넘긴다. 

 

35. 교도소. 사동 복도. 뻥구 방.  밤

 

사동 복도에 백열등이 켜져 있지만 어두컴컴하고 음산한 느낌이다. 담당이 복도 중간쯤 책상에서 졸고 있고, 비닐 창으로 보이는 죄수들은 곤히 잠들어 있다. 장애자 방에는 다른 방보다 적게 수용되어 잠자리가 널찍하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쪽에 깔려 있는 침구에서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움직이는 낌새가 심상치 않다. 신음소리가 나는데 뻥구가 내는 것 같기도 하고, 괴로운 듯 몸을 뒤척이는 게 역력하다. 게다가 곰배팔이가 띵채로 망을 보고 있는 걸로 보면 뻥구를 상대로 외팔이가 계간을 시도하고 있다.     

 

한참 실랑이를 벌이고 난 외팔이의 머리통이 이불 속에서 불쑥 나와 곰배팔이를 쳐다본다. 곰배팔이가 ‘양호’라는 눈짓을 하자 외팔이, 성기를 움켜쥐고 일어나며,

 

외팔이   니 곰빼 이 씹새야, 안에다 싸면 뒤진데이! 대침 이빠이 발라야 똥구멍에 기스 안 난다. 알긋제? 쪼매  맛만 보고 싸기 전에 빼라. 알긋나!

 

외팔이,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헐떡이는 말투로 당부를 하면서도 연신 성기를 손으로 애무하면서 변소로 들어간다. 문을 닫자마자 신음소리는 내며 딸딸이를 쳐대는 외팔이. 본능적으로 잘린 팔이 쳐지는데 연신 어깨 짓으로 치켜 올린다. 곰배팔이, 자는 체 누워 있는 절름발이에게 눈짓하자 잽싸게 와 띵채를 넘겨받아 자세를 갖춘다. 장님도 달아오르는지 성기를 주무르고 있다. 곰배팔이, 한껏 달아서 이불로 파고들면서 동시에 손에다 침을 잔뜩 뱉어 성기에 바른다. 그리고 이불을 덮어쓴다. 이어지는 뒤척거림과 뻥구의 신음소리...이윽고 장님, 더듬거리며 다가와 이불을 들치고 들어간다.

  

36. 교도소. 관구실.  오전

 

난로 위에 주전자가 끓고 있다. 관구 계장(김계장)이 일상적인 업무를 보고 있는 중이다.난로 옆에 쭈그리고 앉은 상태에서 뻥구가 수화와 몸짓을 섞어 설명하고 있다. 관구 부장은 잘 알아듣지 못 하는 건지 못 알아듣는 척 하는 건지 연신 관구 계장을 흘끔거리며 난감해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손에는 뻥구가 쓴 자술서가 들려 있다.  

 

부  장   그카니까, 니가 자는데 누가 니를, (엉덩이를 툭) 했다는 기 아이가?

뻥  구   (고개 끄덕끄덕)   

부  장   그래! 누가 했다는 말이고?

뻥  구   (도리질만) ...

부  장   (버럭)이 자슥이야!  

 

관구 부장, 어이가 없어 들고 있는 교도봉으로 뻥구의 머리를 제법 세게 두들기면서,

 

부  장   니 말대로 카면 누가 간밤에 니 '후장을 여러 놈이 땄는데 누군지는 모르겠다' 이 말 아이가?! 

뻥  구   (급화색)!

부  장   글카면, 그긴 계간이 아인 기 아이가? 언놈들이 니 궁딩이나 성기 주변을 쪼매 주물탕 논 기를 가지고  니가 ‘후장을 딴 기다‘라는 주장을 하는 기 틀림없다는 기 합리적인 추론인데...

 

뻥구, 항문 주변을 손으로 짚어 보이며 ‘틀림없이 계간을 당한 게 맞다’는 표현을 애가 타서 한다. 관구 부장, 고개를 갸우뚱 거리다가 ‘옳다’ 하는 느낌으로 뻥구의 시선을 주목시키더니 왼손 바닥을 펴 검지와 중지사이를 오른손 검지로 문질러 보이는데 뻥구가 이내 고개를 크게 젓자, 검지를 쑥 밀어 넣는다. 그러자 뻥구, 고개를 크게 주억거린다.     

 

부  장   (버럭) 이 자슥아, 글카면 ‘참을 수 없는 고통, 통증이 따랐을 낀데. 뭐 기왕 뚤린 기니까, 실컷 해뿌소! 했다는 기 아이가? 그기 아이라카멘 아이구 아파라! 하면서 (손을 뒤로 돌려 쥐는) 좆대가리를 움켜쥐던지 했을 기 아이가? 

 

뻥구, 울상이 돼 도리질을 하고, 김계장도 피식피식 웃는데,

 

부  장   (조근 조근) 인마야, 그러니까네.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범죄의 구성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강간,  아니제?! 계간의 피해자가 육하원칙에 의한, 그러니까네.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등의 소상한 진술이 있을 시 비로서 범죄를 인지하고 조사를 할 게 아인가베... 니 진술에 의하면 어젯밤에, 누군지는 모르지만 니 후장을 딴 거 같다는 막연한 주장을 하는 거다.라는 그 말이제? 

               

뻥구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면서도 '애매한 부분이 있다'는 표정을 짓다가, 여러 번 당하는 것 같았는데 아무리 정신을 차리려 해도 잘 안 되더라’고 애써 표현을 해보이는데,    

 

부  장   (손가락 튕기며) 그 봐라! 일마 숫처녀가 아인 기 분명한 기라?!  

 

뻥구, 의미를 모르고 있다가 깨닫고 나서 알고 애가 타 죽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부  장   인마야, 글카면 니가 질이 나서 ‘허벌창’이기나, 

             니가 ‘홍콩 갔다’는 증거 아이몬?! 상식적으로 

             니 동의 없이 똥구멍에 쌩짜로 빳빳한 성기를 

             이놈 저놈이 밀어 널 때 을매나 극심한 통증이 

             수반 될 낀지 충분히 유추되는 상황에서, 

             (검지와 중지사이에 엄지를 찔러 보이며) 뻥구야, 

             상식적으로 니 후장에 이놈 저놈이 ‘생짜’로 밀어 

             넣으면 마이 아플 거 아이가? 근데 니가 크게 

             반항하지 않은 상태로 견딘 기면? 결론적으로 니가 

             필사적으로 저항하지 않고 놔 둔 기라 그 말이제?

    뻥  구   (뭔가 이상해서)...?          

    부  장   (정색하며) 이 자슥 이 거 ‘화간’이네? 니 계간도 화               간은 '공동처벌'을 받는 기야. 묶여서 징벌 먹는 기               란 말이다!

    뻥  구   (황당해서)...?

    부  장   그러니까네 이 시간 부로 니는 계간을 당한 피해자               가 아니고 화간을 한 '공동범칙자'라 이 말이다. 알               긋나? 니 그라고 ‘집단 계간’을 당했다는 취지로 진               술하고 있는 기 맞제? 일나서 빤스 내리 봐라. 니                빤스 안 갈아 입었제?! 

         

뻥구, 팬티를 내리고 엉거주춤 서 있는데, 부장, 목을 눌러 허리를 숙이게 하고, 양손으로 엉덩이를 까 보이도록 유도한다.

 

    부  장  이 자슥아, 쫙 벌리고 까봐라!

           

부장, 뻥구의 항문 주위를 세밀하게 살펴보더니,

 

    부  장   뻥구, 이 자슥이야, 똥구멍이 어데 찢어진 데도 없고               말짱하네 하기사 니가 뭐 처녀막 같은 기 있는 것               도 아이고... 가만 있자, 여러 명이 쭈셨으면 정액량               도 상당했을 끼고, 빤스에 국물이 잔뜩 묻어 있을                낀데?! 니 빤스 안 갈아입은 게 맞제? 글카면 답은               나왔네! 누가 쑤신 지도 모르제, 집단계간을 당한                증거는 좆 맨큼도 없제?! 결론은 화간 내지는 허위               신고 아이가?! 일단 니를 독방에 조사수용하고 철저               한 조사를 할 수밖에 도리가 없제...   

    

뻥구, 오만상을 써가며 항변을 해보지만, 관구 부장, 아랑곳없이 관구 계장을 흘끔거리며 자기 논리가 합리적이라는 생각에 우쭐대는 기색이 역력하다. 

김계장, ‘잘 한다’라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거려 준다. 

뻥구, 잔뜩 낙담한 기색을 보이자.

 

    부  장   (넌지시) 이 자슥아, 한강에 배 지나간다고 표가 나는 

             것도 아이고, 뭘 추찹스러운 걸 떠벌리노? 

             뭐 지금이라도 (또박또박) ‘사실오인’, 그러니까네. 

             ‘잘 못 안 것 같다’라고 자술서 다시 쓰면 사건은 

             ‘없던 기’ 되는 기고...   

 

관구 부장, 짐짓 생각해주는 척 던져보는데, 그 의미를 알아먹은 뻥구, 

거칠게 도리질하면서 울부짖는다.  

 

 

      37. 독방. 복도. 쫑구 방. 

 

철커덕 독방 문이 열린다. 복도에는 지도 몇 명이 배치되어 있다. 뻥구, 

독방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괴성을 지르며 버티는데, 담당까지 합세하여 기어이 밀어 넣고 문을 잠근다. 

뻥구, 특유의 울부짖는 투의 괴성을 지르면서 발로 문을 찬다. 

사동에 문 차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떡대, 사각인 탓에 제대로 볼 수 없어 연신 띵채를 보며 주절주절 

상황을 중계하는데, 쫑구, 책을 보고 있지만 신경이 쓰이는 듯하다.

 

    떡  대   오매오매 저 어린 것을... 저것들이 시방 저러다 

             뻥구를 잡을라는 갑소!

             아따 성님, 저 어린 것을 어째야 쓸 것이오? 

             그라고 행형법에 장애자는 독거수용을 못 시키게 

             되얐다고 들었는디...     

    쫑  구   ...

 

관구 부장, 조금 떨어져 상황을 주시하다가 소란이 그치지 않자 다가가,

   

    부  장  이 자슥아!  벌주는 거 아이다. 니 쭈신 거 조사하                기 위해 격리 조치하는 기다. 

    뻥  구   (수화로) 무서워서 혼자 있는 거 싫어. 내보내 줘...

 

뻥구, 연신 뭔가를 표현하지만 부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획 돌아서는데, 뻥구의 괴성이 더욱 요란해진다.  

떡대, 지나치는 관구 부장을 보고 있다.  

 

  

     38. 교도소. 사동. 복도.  밤

 

적막을 깨는 문 차는 소리. 간헐적으로 이어지는데... 

복도에 놓인 책상 앞의 담당, 곤혹스러워 한다. 주저하던 담당, 자리에서 일어나 뻥구의 독방으로 가보는데, 

뻥구, 주저앉아 발을 버둥거리며 문을 차대며 칭얼대고 있다. 담당, 몹시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가다가 다시 다가선다.  

 

    담  당   뻥구야, 니 그러다 묶인다. 그만 하고 좀 자라...

 

뻥구, 발버둥치는 걸로 대답을 대신하고 있다.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차면서 물러서는 담당.

  

     39. 교도소. 사동. 복도. 쫑구 방 (시간경과)

 

밤이 깊은데도 뻥구 방에서 소란이 멈추지 않고 있다.

 

    쫑  구   저 놈아, 뭐꼬?

    떡  대   성님, 저 놈 방에서 병신들이 후장을 돌림빵 논 거 

             같은데... 상황을 보니께, 그 병신들이 아티반 잔뜩 

             갈아 먹인 모양입니다... 그래 갖고 뻥구가 헤롱 헤               롱 대는 상황에서 허벌나게 쭈셔대니까... 저놈이 허               벌창 나고서 누굴 찍지도 못하고...

    쫑  구   (심드렁하게) 자자...

 

떡대가 뻘쭘해져서 자리에 누우면서도 뻥구가 신경 쓰인다.

 

     40. 교도소. 사동. 복도. 쫑구 방 (시간경과)

 

갑자기 소란스럽게 들리는 발자국 소리. 뻥구가 축 늘어진 채 담요에 실려 오고 있다. 모꼬대 부장이 걸음을 재촉하고 하고 있다.

열리는 문. 방에 던져지는 뻥구가 땀에 절은 채 축 늘어졌다. 꽝 닫히는 문. 

발자국 소리 멀어진다.

떡대, 부스스한 몰골로 내다보고 있다.

 

    떡  대   (혼잣말로) 아이고, 저 피도 눈물도 없는 모꼬대 한               티 어린 것이 겁나게 달린 모양일씨...

    

     41. 교도소. 사동. 복도. 쫑구 방 (시간경과)

 

소란스런 기척에 눈을 뜨는 쫑구. 창에 붙어 서서 내다보고 있던 떡대, 타격대의 지적을 받고는 자리에

눕는 척하다가 잠이 깬 쫑구를 발견하고 깍듯하게 인사하고,

 

    떡  대   형님, 뻥구가 아까 바싹 달리고 오더니 진짜로 

 

             달아번졌으라우. 앉아서 땡긴 모양인디...

          

떡대, 벽에 부착되어 있는 옷걸이에 줄을 매서 목에 건 다음 앉은 채로 당기는 동작을 순서대로 해 보인다.       

 

    떡  대  (안타까움에) 그놈이, 그리 야리야리 보여도 지독스                런 데가 있었네요... 허기사 후장 허벌나게 뜯기고,                피도 눈물도 없는 것들이 사정없이 묶었은 거이니,               살고 잡픈 맴이 없었겄지... 근디 성님, 검사가 나와               번짔는 것 같으라우!

    쫑  구   ......

 

검사가 뻥구 방 앞에 서서 ‘현장검증’하고 있다. 

김계장, 상황을 설명 하는데, 목을 매 죽은 상황에 의문이 있다는 검사의 의심을 풀기 바쁘다.벽에 부착된 옷걸이에 런닝구를 찢어 꼰 엉성한 줄이 묶여있고, 줄 끝에는 올가미가 있다.

검사, 어느 정도 납득이 되었는지 돌아서서 몇 걸음 떼어 놓은데,

떡대가 소리친다.  

 

    떡  대   검사님!  

    검  사   뭡니까?

    떡  대   자살사건에 대해 진술 할 게 있어라우... 

    검  사   (다가서서) 해보세요. 

 

김 계장과 모꼬대 부장, 긴장한 표정으로 떡대에게 시선을 쏟는다.  

 

    쫑  구   저... 여기서 말씀드리기가 곤란한디 검찰청으로 불                러주시면...

    검  사   (탐탁치 않은 듯) 뭐 자살이 아니란 말인가요?

    쫑  구   그건, 아니고... 자살동기가...

 

▲필자/이대영 작가.     ©브레이크뉴스

검사, 알았다는 투로 고개를 주억거리며 돌아선다.

김계장, 검사에게 바짝 붙어 쫒아가면서 뭐라고 설명을 하다가 손을 머리 쪽에 대고 원을 두어 번 그려 보인다. 검사가 뒤를 돌아

 

보는데,

 

    떡  대   검사님! 싸게 불러주쇼잉! <계속>

 

 *필자/이대영

'빵잽이출신 작가원주-창원-안양-대전-청주 교도소 등에서 13년을 복역한 빵잽이 출신의 작가이다선데이 서울에 '암흑가의 무도회등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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