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가-시인인 이오덕(李五德, 1925-2003) 선생은 전 생애에 걸쳐 삶의 교육을 실천했다. 특히 아이들 글과 글쓰기 교육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 후학들에게 가르쳤다. 이오덕 선생은 2025년(11월14일)이 탄생 100주년이다. 그의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이오덕 선생의 생애를 뒤돌아보는 특집을 마련했다. 한길사 김언호 대표가 쓴 “그해 봄날-출판인 김언호가 만난 우리 시대의 현인들(2020, 도서출판 한길사)“라는 제목의 저서 가운데 ”이오덕 선생의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그해 봄날』 409~431p)“이라는 글에 게재돼 있다. 이 글은 한길사의 허락을 얻어, 본지(브레이크뉴스)에 3회 걸쳐 연재하는 글이다. (출처: 김언호, 『그해 봄날-출판인 김언호가 만난 우리 시대의 현인들』(2020), 도서출판 한길사. 자료 제공: 도서출판 한길사).<편집자 주>
《겨레의 혼을 지키는 말과 글》
1988년 제3회 단재상이 이오덕 선생에게 주어졌다. 종로구 사간동 출판협회 강당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선생은 자신의 교육철학과 문학사상, 글쓰기의 정신과 방법을 다시 천명하는 수상연설을 했다. 문익환 목사 등 200여 명의 하객들은 선생의 신념에 찬 연설을 숙연하게 경청했다. 선생의 수상연설은 녹음되어 전국의 참교육자들에게 배포되었다.
“우리가 하고 있는 글쓰기 교육은 아이들에게 자기의 삶을 바로 보고 정직하게 쓰는 가운데서 사람다운 마음을 가지게 하고, 생각을 깊게 하고, 바르게 살아가도록 하는 교육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삶을 가꾸는 교육’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는 교육의 목표는 아이들을 바르게, 건강하게 키워가는 데 있습니다. 아이들을 참된 인간으로 길러가는 데에 글쓰기가 가장 훌륭한 방법이 된다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모범적인 글, 완전한 글을 얻으려고 아이들을 지도하지 않습니다. 글을 쓰기 이전에 살아가는 길부터 찾게 합니다. 그래서 쓸거리를 찾고, 구상을 하고, 글을 다듬고 고치고, 감상 비평하는 가운데 세상 보는 눈을 넓히고, 남을 이해하고, 참과 거짓을 구별하고, 진실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무엇이 가치가 있는지를 알고, 살아 있는 말을 쓰는 태도를 익히게 합니다. 이것이 삶을 가꾸는 글쓰기입니다.
삶을 가꾸는 방법의 기본을 말하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본 대로, 들은 대로, 한 대로 쓰도록 합니다. 이렇게 해서 사실을 바로 보아야 삶을 가꾸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붙잡는 것, 모든 교육이 여기서 시작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미 만들어놓은 어떠한 어른들의 생각의 체계도 아이들이 덮어놓고 따르지 않도록 합니다.
어른들의 관념·주의·사상·종교, 끊임없이 아이들에게 덮어씌우려고 하는 어른들의 이 모든 눈에 보이지 않는 그물 속에 아이들이 걸려들지 않도록 애씁니다. 이것이 글쓰기로 하는 생명 지키는 교육, 자유의 교육, 해방의 교육입니다.”
《말과 글의 관계, 말이 근본이다》
이오덕 선생의 생각과 실천은 탁월한 이론이었다. 관념을 넘어
서는 삶의 현장에서 구현되는 이론은 감동이었다. 선생의 연설은 쉬운 말이었지만, 우리의 가슴을 깊게 울리는 이론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아이들의 글을 어른들의 글보다 더 많이 읽어오는 가운데 많은 것을 깨치고 배웠습니다. 역시 교육이란 이렇게 아이들과 어른이 서로 주고받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아주 중대한 문제를 한 가지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우리 어른들이 쓰고 있는 글이 전반적으로 크게 병들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남의 글, 어른들의 글을 흉내 내지 말고 자기의 이야기를 자기의 말로, 쉬운 말로 쓰라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어른들의 글이 왜 그렇게 어렵고 재미가 없을까요?
말과 글의 관계는 말이 근본입니다. 글은 말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그런데 지식인들의 글은 말에서 너무 멀리 떠나 있습니다. 글이, 살아 있는 말이 아니고, 삶에서 우러난 겨레의 말법으로 쓰는 글이 아니고, 글에서만 쓰는 말, 밖에서 들어온 말, 남들이 쓰는 말을 따라서 쓰는 글이 되었습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살아 있는 말을 피해서 안 쓰려고 합니다.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던 것은 무식하고, 생각이 얕고, 시골스런 느낌을 주는 말이라 여기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렇게 말을 떠난 글이 이제는 어마어마한 힘으로 횡포를 부려 순수한 우리말을 쫓아내고 주인 노릇을 하면서 겨레의 마음을, 생각을 지배하려 하고 있습니다. 말이 으뜸이던 역사가 글이 으뜸이 되어 말이 글의 지배를 받는 잘못된 역사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렇게 된 데는 지식인뿐 아니라 백성들을 언제나 지배하고 명령하기만 해온 정치와 행정 관리들도 큰 노릇을 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의 말이었던 ‘동무’를 안 쓰고 어른들이나 쓰는 ‘친구’를 쓰게 된 것은 교과서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체신부에서도 ‘×× 친구에게’란 제목으로 편지글을 쓰도록 전국의 학교에 공문을 보낸 일이 있습니다. 공문 한 장이면 전국의 아이들이 쓰는 말을 하루아침에 바꿔놓을 수 있는 것이 행정이요, 정치의 폭력입니다.
나는 우리말을 가장 순수한 상태로 배워서 쓰고 있는 사람이, 학교의 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사람, 그래서 책을 별로 읽지 않은 사람이라고 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이런 사람들의 말을 배우고, 이런 사람들의 말을 글에서 살려 쓰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말을 지키는 것은 마음을 지키는 것이요, 혼을 지키는 것입니다. 겨레의 혼을 지키고 이어가는 데 글쓰기만큼 중요한 수단이 없는 까닭이 이러합니다. 민주사회를 이룩하는 데 언론이 맡고 있는 일의 무거움도 이와 같습니다.
여러분의 체험적인 느낌은 어떤지 모르지만, 나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면 어렸을 때 부모한테서 배운 말을 학교에서 철저하게 짓밟아 없애는 것을 공부라고 하였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가 수십년 동안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노릇을 돌이켜봐도 그런 교육이었다고 반성합니다.
어른이 된 다음에 내가 자유로 선택해서 읽은 책의 대부분이 남의 나라 말글이요, 그 남의 말글을 흉내 내어 쓴 글이었음을 이제와서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이제라도 죽을 때까지 어머니가 가르쳐준, 조국이 가르쳐준 말, 내 말을 도로 찾아 배워야겠다고 잔뜩 벼르고 있습니다.”
《『농사꾼 아이들의 노래: 권태응 동요 이야기』》
이오덕 선생은 2000년에 들어서면서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한동안 건강이 회복되는 듯할 때 선생은 여러 구상을 나에게 말씀하기도 했다.
나는 선생에게 회고록 집필을 권유했다. 선생도 ‘삶의 문학’으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써보겠다고 했다. 나는 70년대 80년대의 일기도 정리하자고 했다. ‘함석헌의 말과 글’도 다시 말씀드렸다.
선생은 2001년 『농사꾼 아이들의 노래 : 권태응 동요 이야기』를 펴냈다. 1918년 충주에서 태어나 1951년 33세로 요절한 권태응, 1945년부터 1950년까지 여섯 해 동안, 온 마음과 힘을 다해, 목숨을 앗아가려는 병마와 싸우면서 동요만을 써낸 권태응의 문학세계를 432쪽이나 되는 큰 책으로 써냈다.
“반세기 전 이 땅에 한 시인이 있어 겨우 6년 동안 병상에서 동요를 쓰다가 33세로 이승을 떠났습니다. 권태응입니다. 동요란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요, 아이들이 읽는 시지요. 그런 글을 죽음을 앞둔 병상에서 마치 자기가 동요를 쓰기 위해 세상에 잠깐 왔다는 듯이, 밤중에도 쓰고 새벽에도 썼습니다. 그 작품들이, 오늘날 우리 아동문학을 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아마도 별것 아닌 것으로 비칠 것입니다. 무슨 별난 내용도 없고 말재주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우리 농사꾼들의 삶과 마음, 농사꾼 아이들의 세계를 이런 정도라도 보여주고 노래해 보인 사람이 지금까지 우리 문학사에서 아무도 없습니다.
권태응 시인의 동요를 살피면서 새삼 애달프게 생각한 것이, 왜 문학에는 자연과 농사꾼 아이들을 노래한 이런 동요시인이 겨우 한 사람밖에 없나 하는 것이고, 또 이런 동요나마 어째서 반백 년이 지나도록 묻혀 있기만 했나 하는 것입니다.
너무 늦었습니다만, 이제라도 이 시인의 동요를 좀 알려서 우리 역사와 문학을 살피고 교육과 그밖에 모든 문화를 그 뿌리부터 반성하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 것을 심어주고 싶었습니다.”
2002년 7월에는 『문학의 길 교육의 길』과 『어린이책 이야기』를 동시에 소년한길에서 펴냈다. 정신력으로 써낸 선생의 마지막 작업이었다. 선생의 변함없는 강건한 정신을 우리는 읽을 수 있다. 나는 우리 출판사가 선생의 마지막 문제작들을 펴내게 된 것을 보람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선생과 의논한 여러 기획들이 이뤄지지 못한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선생의 여러 구상들을 생각하면 슬픔을 억누를 수가 없다.
《이 땅의 풀·꽃·나무·흙·바람, 어린이를 사랑했다》
1925년 경북 청송에서 농사짓는 집안에서 태어난 이오덕 선생은 2003년 8월 25일 새벽, 향년 78세로 충주시 신내면 무너미마을 고든박골에서 돌아가셨다. 선생은 돌아가시기 전에 마을 뒷산을 오르곤 했다. 양지 바른 잔디밭에서 설핏 잠이 들었는데, 그때 선생은 손수건에 토끼똥 몇 알을 소담스럽게 싸서 손에 쥐고 있었다. 선생은 “토끼똥이 요렇게 아름답지” 했다.
이오덕 선생은 풀·꽃·나무·흙·바람, 무엇보다 어린이를 사랑했다. 그런 문학과 교육을 위해, 그런 문학과 교육을 하는 참문학인·참교육자들과 함께 생각하고 연구하고 글을 쓰고 교육으로 실천했다.
선생은 형식을 꾸미고, 일부러 하는 것을 한사코 마다했다. 장례를 조촐하게 치르라는 유언을 남겼다. 번다하고 화려하게 칭송할까봐 비명碑銘까지 미리 정해준 선생이야말로 자연스러움과 소박함의 철학을 몸으로 구현한 우리 시대의 참스승이었다.
돌아가시기 직전에 아들 이정우 씨에게 유언처럼 한 말씀을 남겼다고 한다. 젊은 시절 한 권의 책을 빌렸는데, 나중에 그 책을 사기로 하고 책값의 절반을 치렀지만, 나머지는 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는 것이었다.
2005년 선생의 서거 2주기를 맞아 나는 선생의 시집 『무너미마을 느티나무 아래서』를 펴냈다.
“나는 올해가 일흔이 꽉 찬 나이인데도
아직도 어린애 같은 꿈을 꾸며 살아간다.
산속에 가서 한 포기 풀같이 살아가는 꿈,
산속에 가서 한 마리 새같이 살아가는 꿈.
간밤에도 자리에 누워
가슴 두근거리며 잠을 못 잤다.
아침 햇빛을 받아 온몸을 떠는 풀이 되어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나뭇가지에 눈 감고 앉아 있는
한 마리 새가 되어.
내가 바라는 것은 그저 하늘과 구름
해와 달
별과 바람
이른 봄 담 밑에 돋아나는 조그만 풀싹
초가을 도랑가에 핀 하늘빛 달개비 꽃
풀숲에 울어대는 벌레 소리.
지금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
그 많은 형제들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
나는 뜬눈으로
이 밤에도 꿈을 꾼다.”
선생이 1995년 4월 30일 밤에 쓴 「나의 꿈」 전문이다. 선생의 사상과 정신을 헤아리게 한다. 슬픔 또는 해방 같은 것이다.
선생이 돌아가시기 전에 나는 KBS의 유동종 PD와 의논했다.
선생의 말씀을 담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이오덕 선생을 존경하는 유 PD가 그 작업을 시작했는데, 결국 선생을 추모하는 특별 프로그램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한 출판인으로서 나는 이오덕 선생과 30년을 만났다. 여러 주제의 이야기를 했다. 수많은 책을 기획하고 만들었다. 아니 지금도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한 권의 책을 만들어 세상에 존재시키는 일이란 아름답고도 존엄하다는 체험을 늘 하게 되지만, 선생과 더불어 교육과 어린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날은 늘 밤이 깊었다.<끝>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입니다. '구글번역'은 이해도 높이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문 번역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The following is [the full text] of the English article translated by 'Google Translate'. 'Google Translate' is working hard to improve understanding. It is assumed that there may be errors in the English translation.>
Celebrating the 100th anniversary of the birth of children's literature writer Lee O-deok... Lee O-deok's life and literature <Part 3>
-Kim Eon-ho, CEO of Hangilsa Publishing
Lee O-deok (李五德, 1925-2003), a children's literature writer and poet, practiced life education throughout his life. In particular, he rediscovered the value of children's writing and writing education and taught it to his students. Lee O-deok's 100th birthday will be in 2025 (November 14). Ahead of the 100th anniversary of his birth, we have prepared a special feature looking back on Lee O-deok's life. It is included in the article “Lee O-deok’s Life-Cultivating Writing Education (That Spring Day, pp. 409-431)” in the book titled “That Spring Day - The Wise Men of Our Time Met by Publisher Kim Eon-ho (2020, Hangilsa Publishing)” written by Hangilsa CEO Kim Eon-ho. This article is a series of articles published in three installments in this magazine (Break News) with Hangilsa’s permission. (Source: Kim Eon-ho, “That Spring Day - The Wise Men of Our Time Met by Publisher Kim Eon-ho (2020), Hangilsa Publishing. Data provided by Hangilsa Publishing).
“Words and Writings That Protect the Soul of the Nation”
In 1988, the 3rd Danjae Award was given to Lee O-deok. At the awards ceremony held at the Sagandong Publishing Association auditorium in Jongno-gu, the teacher gave an acceptance speech in which he reaffirmed his educational philosophy, literary thought, and the spirit and method of writing. Pastor Moon Ik-hwan and some 200 guests listened attentively to the teacher’s speech full of conviction. The teacher’s acceptance speech was recorded and distributed to true educators across the country.
“The writing education we are providing is an education that allows children to see their own lives correctly and write honestly, while developing a humane mind, thinking deeply, and living correctly. This is what we call ‘life-cultivating education.’
The goal of our education is to raise children correctly and healthily. We believe that writing is the best way to raise children as true human beings.
We do not guide children to obtain exemplary or perfect writing. Before writing, we help them find a way to live. Therefore, as they search for things to write about, come up with ideas, refine and revise their writing, and critique their writing, they broaden their perspective on the world, understand others, distinguish between truth and falsehood, realize what is true, know what is valuable, and learn to use living words. This is life-cultivating writing. The basics of how to cultivate life are, first of all, we write as we see, hear, and do. This is because we can cultivate life only by seeing the facts as they are. Seeing and holding on to facts as they are, all education begins here. Therefore, we do not let children blindly follow any system of thought that adults have already created.
We try to prevent children from being caught in the invisible net of adults’ ideas, ideologies, ideologies, and religions that adults constantly try to impose on children. This is life-saving education through writing, education of freedom, and education of liberation.”
《The Relationship between Words and Writing, Words Are the Foundation》
Lee O-deok’s thoughts and practices were excellent theories. Beyond ideas,
the theories implemented in the field of life were moving. The teacher’s speech was easy, but it was a theory that deeply resonated in our hearts.
“I have been reading children’s writing more than adults’ writing for a long time, and I have realized and learned a lot. I think that education is really about giving and receiving between children and adults.
I recently discovered one very important problem. That is, the writing that our adults are writing is becoming seriously ill overall. We teach children not to imitate others’ writing, adults’ writing, but to write their own stories in their own words, in simple language. But why are adults’ writings so difficult and uninteresting? The relationship between words and writing is rooted in words. Writing is born from words. However, the writing of intellectuals is too far removed from words. Writing is not living words, not writing that is written in the language of the people that comes from life, but writing that is written only in writing, words that come from outside, and words that others use. They try to avoid living words as much as possible. It is clear that we originally thought that words were ignorant, shallow, and rustic. Writing that has left words like this is now exercising its tyranny with tremendous power, chasing out pure Korean language and acting as the master, trying to dominate the hearts and thoughts of the people. The history where words were the most important has become a wrong history where writing has become the most important and words are dominated by writing. It is true that not only intellectuals but also politicians and administrative officials who have always dominated and commanded the people have played a big role in this.
The same goes for education. The reason why we stopped using the word ‘comrade’, which was used by children, and started using the word ‘friend’, which is used by adults, is because the textbooks are like that. The Ministry of Post and Telecommunications once sent an official document to all schools nationwide asking them to write letters with the title ‘To XX Friend’. With just one official document, the language used by children all over the country can be changed overnight. This is the violence of administration and politics.
I believe that the people who have learned and used our language in its purest form are those who have not received any education in school and therefore have not read many books. Writers should learn from these people and strive to use their words in their writing. Protecting words means protecting the heart and the soul. This is why there is no other means as important as writing in protecting and continuing the soul of the people. The weight of the work that the media is responsible for in establishing a democratic society is similar to this. I don’t know what your feelings are, but when I look back on my own past, I think that studying meant thoroughly trampling on and eradicating the words I learned from my parents when I was young. When I look back on the decades of teaching children in the classroom, I reflect that it was that kind of education.
I have now painfully realized that most of the books I freely chose to read after becoming an adult were written in other countries’ languages and imitations of those languages. I am determined to find and learn the words my mother taught me, my country taught me, and my own language until I die.”
《『Farmer Children’s Songs: Kwon Tae-eung’s Children’s Song Stories』》
Lee Oh-deok’s health rapidly deteriorated in 2000. When his health seemed to be recovering for a while, he told me various ideas.
I suggested that he write a memoir. He also said that he would write his own story as ‘literature of life.’ I also suggested that we organize his diary from the 70s and 80s. I also mentioned ‘Ham Seok-heon’s Words and Writings’ again.
In 2001, the teacher published ‘Farmer’s Children’s Songs: Kwon Tae-eung’s Children’s Song Stories’. Kwon Tae-eung, who was born in Chungju in 1918 and died at the age of 33 in 1951, devoted his whole heart and strength to fighting against the disease that threatened to take his life for six years from 1945 to 1950, and wrote only children’s songs. This book is a large 432-page book about the literary world of Kwon Tae-eung.
“Half a century ago, there was a poet in this land who wrote children’s songs for only six years while in bed and passed away at the age of 33. This is Kwon Tae-eung. Children’s songs are songs that children sing and poems that children read. He wrote such songs on his sickbed as if he had come to this world for a moment to write children’s songs, even at night and in the early morning. Those works may seem like nothing special to those who write children’s literature today. It is because there is no special content and no talent for speaking. However, in my opinion, no one in our literary history has shown and sung the lives and minds of our farmers and the world of farm children to this extent.
While examining the children’s songs of poet Kwon Tae-eung, I felt anew that why is there only one poet of children’s songs who sings about nature and farm children in literature, and why have children’s songs like this been buried for half a century?
It is too late, but I wanted to make this poet’s children’s songs known so that we can examine our history and literature and reflect on education and all other cultures from their roots. I wanted to instill our own in our children.”
In July 2002, 『The Path of Literature, the Path of Education』 and 『Children’s Book Stories』 were simultaneously published by Boy’s Road. It was the teacher’s last work written with mental strength. We can read the teacher’s unchanging, strong spirit. I am proud that our publishing company has published the teacher’s last problematic works. However, it is truly regrettable that many of the plans discussed with the teacher have not come to fruition. When I think of the teacher’s various ideas, I cannot suppress my sadness.
《He loved the grass, flowers, trees, soil, wind, and children of this land》
Lee O-deok, born in 1925 in Cheongsong, Gyeongsangbuk-do, to a farming family, passed away on the morning of August 25, 2003, at the age of 78, in Gordonbakgol, Munemi Village, Shinae-myeon, Chungju-si. Before he passed away, the teacher used to climb the mountain behind the village. He fell asleep on the sunny lawn, and at that time, he was holding a few rabbit droppings in a handkerchief that he had wrapped up in his hand. He said, “Rabbit droppings are so beautiful.”
Lee O-deok loved grass, flowers, trees, soil, wind, and, above all, children. For such literature and education, I thought, studied, wrote, and practiced education with true writers and true educators who practiced such literature and education.
The teacher stubbornly refused to decorate or do anything on purpose. He left a will to hold a simple funeral. The teacher, who even decided on an epitaph in advance to avoid being praised too extravagantly, was a true teacher of our time who embodied the philosophy of naturalness and simplicity.
It is said that he left a will-like message to his son, Lee Jeong-woo, just before he passed away. He said that he borrowed a book when he was young, and later decided to buy it and paid half of the price, but he was worried that he could not give the rest.
In 2005, on the second anniversary of the teacher’s death, I published the teacher’s poetry collection, Under the Zelkova Tree in Munemi Village.
“Even though I am in my seventies this year, I still dream of childish dreams.
A dream of going to the mountains and living like a blade of grass,
A dream of going to the mountains and living like a bird.
Last night, I couldn’t sleep, lying in bed,
My heart pounding.
To become grass that floats its whole body in the morning sunlight,
To become a bird that sits on a tree branch with its eyes closed,
Looking at the sunset in the evening.
All I wish for is the sky and clouds,
The sun and the moon,
The stars and the wind,
The tiny grass sprouting under the fence in early spring,
The sky-blue dandelion flowers blooming by the ditch in early autumn,
The sound of insects chirping in the grass.
When I think of all those brothers
Waiting for me even now,
I can’t sleep.
I dream even tonight
With my eyes wide open.”
This is the full text of “My Dream,” written by the teacher on the night of April 30, 1995. It makes me fathom the teacher’s thoughts and spirit. It’s like sadness or liberation. Before the teacher passed away, I discussed with KBS PD Yoo Dong-jong.
Shouldn't we create a program that contains the teacher's words? PD Yoo, who respects teacher Lee O-deok, started the project, and it eventually became a special program to commemorate the teacher.
Looking back, as a publisher, I met teacher Lee O-deok for 30 years. We talked about various topics. We planned and created countless books. No, we still meet and talk. I always have the experience of creating a book and making it exist in the world as a beautiful and noble thing, but the days when I talked about education, children, and books with the teacher were always late at night.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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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6)
Note: "I think that people who learned and use our language in its purest form are people who have not received any education in school,
and therefore do not read many books.
Writers should strive to bring the words of these people to life in their writing." (Image 7)
Note: Mr. Iodeok Lee loved grass, flowers, trees, soil, wind, and, above all, children.
For such literature and education, he thought, studied, wrote, and practiced education with true writers and true educators who practiced such literature and educ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