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에 의해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디아스포라를 겪으며 전 세계를 떠돌게 된 유태인과 팔레스타인 지방에 남은 토종 유태인들로 나뉘게 된다. 토종 유태인들은 팔레스타인 토종으로 살았지만 1,0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슬람의 지배를 받으며 점차 동화되었다. 특히 혈통보다는 종교와 언어가 정체성을 규정하는 아랍인의 특성상 동화된 유태인들 대부분 자신의 고유 종교인 유태교를 버리고 무슬림이 되었다. 이처럼 이교도에 대한 직간접적 꾸준한 개종 시도로 인해 토종 유태인들은 아랍인이 되었다. 이는 온갖 디아스포라를 겪으며 세계를 떠돌아 다니는 유태인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에서 자신들의 정체상을 지키며 살아갔던 유태인들은 극히 소수가 되었다. 1920년대, 영국의 팔레스타인 위임 통치 시절에 팔레스타인 인구조사에서 지역의 유태인의 수는 불과 2~3%였으며 이들도 언어는 아랍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로마 제국 이후, 상당한 시간이 지난 중근세 시기의 팔레스타인은 오스만 제국이 지배하고 있었다. 17세기에 일개 호족이었던 자히르 알 우마르는 스스로 수장이 되어 오스만에 반기를 들었다. 자히르 알 우마르에 대해서는 이전에 내가 포스팅한 바 있다. 그는 종교를 초월하여 신민들의 민생과 복지를 챙겼으며, 따라서 민중 역시 일심으로 그를 지원하였다. 다만 1775년 자히르는 근대화를 발동한 오스만 군의 우월한 군사력 앞에 토벌되어 전사한다. 다만 그가 꿈꿨던 팔레스타인의 오스만으로부터의 분리 독립은 북부 갈릴리 지방과 해안 지방에 그쳤고 서안 지구인 예루살렘과 나블루스 일대는 여전히 오스만 제국에 충성하는 다른 아랍 및 투르크 호족들이 다스렸다는 점에서 완전하진 않았었다. 따라서 팔레스타인은 당시 오스만 제국의 일부였고 지배자는 당연히 오스만 제국의 술탄이었다. 이 시기에 오스만 제국과 항쟁하면서 태동한 팔레스타인의 민족주의는 다른 민족과 뚜렷이 구별된 '팔레스타인 민족'이라는 배타적 정체성보다는 지중해 역내에 거주하는 아랍 주민들의 지역 공동체 형성과 그에 대한 충성심이 증가하는 것에 기인한 부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당시 오스만 제국의 역사가 알 사파비 볼네에 따르면 오스만 제국이 지배했던 1785년 당시 팔레스타인의 인구는 20만 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프린스턴 대학 교수 버나드 루이스에 의하면 오스만 제국이 이 지역을 정복했던 초기에는 대략 30만 명의 인구가 존재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오스만 제국이 아무리 이교도에 대해 관대한 정책을 했다 할지라도 이교도들이 갖고 있는 부담은 따로 있었다. 바로 지즈야(Jizya)라고 불리는 비(非) 무슬림에 대한 세금 정책이었다. 이 지즈야를 부과하는 이교도인들을 딤미(Dhimmi)라고 불렀다. Dhimmi라는 단어는 원래 “보호, 관심, 보호자” 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에 대해 경제적인 의무, 재산권, 안전한 생활을 누릴 권리, 불가침 권리 등을 포괄적으로 포함하는 개념으로 인식하면 된다. 이 단어는 “자유로운 이교도 국민(Free pagan people)” 이라는 뜻으로 인두세를 비롯한 세금을 부담하기 때문에 그 대가로 상대적인 보호와 안전을 누리는 사람들을 주로 지칭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후일 이러한 딤미는 일정 정도의 “개인의 종교적 관행을 지키는 것(To keep the personal religious practices)” 으로 변경하여 허용되었으며 비(非) 무슬림의 재산권, 안전권 등의 권리를 누려 비 무슬림만의 별도의 독자적인 자치구가 설정될 수도 있었다. 이슬람 왕조의 지배한 딤미 신분의 국민은 이슬람 율법에 따라 “지속적으로 세금을 부과(Constantly levy taxes)” 받는 대상이었다. 이슬람 지배자의 입장에서는 딤미의 충성이 물질적으로 바치는 것이 증명되는 것이기 때문에 세금을 반드시 내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여러 신분적 제약이 이어지면서 딤미는 무슬림과 관련된 재판에서는 증인으로 설 수 없었으며 무기 소지도 금지되었다. 이런 제약은 상징적이라기보다는 실제 생활에 적용될 법 한 것에 해당했으며 대부분의 제약은 궁극적으로 이교의 흔적을 지워내는 것이었다. 그 대신 폭력적이거나 극단적인 대처법은 흔하게 나타나지 않았지만 딤미 신분의 사람들에게 신분상의 제약은 이슬람 통치자의 권력에 대적할 수 없게 하여 그들의 불만과 반란을 막았다.
이러한 지즈야와 딤미 제도로 인해 유태인들이 팔레스타인에서의 토지 소유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게다가 오스만 제국이 전국에서 실시하는 토지 제도, 매매에 관한 부분은 토지를 매매했다는 오스만 총독의 싸인과 직인이 있어야 토지 소유가 합법으로 보장된다. 즉, 이것이 매매계약서라는 것인데 지즈야의 책임을 져야 하는 이교도 딤미들의 토지 소유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는 그들이 비무슬림이기에 부담해야 하는 세금 자체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대가 이교도라면 코스탄티니예의 술탄에게 이 보고가 올라가 술탄의 승인도 거쳐야 한다. 그리고 아크레를 기반으로 맘루크 정권이 자치적으로 통치하였기 때문에 자치정권이 이를 인증하는 인증서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1839~1876년까지 이루어진 탄지마트 개혁의 토지법 안이 전 근대식으로 바뀌기 전까지 그랬다는 것이다. 탄지마트 개혁은 실패했지만 토지법과 매매에 관해서는 훨씬 더 유연해진 모습을 보였다.
즉, 1880년 이후부터는 이교도들에게도 토지 매매가 가능했다는 것이 된다. 그런데 탄지마트 토지 개혁이 훗날 팔레스타인 땅에서는 분쟁의 씨앗이 된다. 아크레 기반 맘루크 정권이 자치적으로 통치하였고 오스만 총독과 연계했기에 팔레스타인 지방에도 일종의 공동체 의식이 생겨나게 된다. 결론적으로 오스만 제국이 통치하는 시기, 탄지마트 개혁으로 인해 법안이 바뀌기 전까지는 이교도들이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오스만 제국 내 토지를 소유하는 것은 불가능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을 옹호하여 하마스,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유태인들이 당시 정상적으로 토지를 소유했었다고 전혀 근거가 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들 한국인들의 주장에 의하면 영국이 들어오기 전, 오스만 제국 시기에 합법적으로 유태인들이 팔레스타인 땅을 매입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태인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의 민족주의가 형성되기 전에 유태인들이 토지를 매입해 이미 알 박기를 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는 오스만 제국의 토지 제도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 본다.
그런데 그런식으로 우길꺼면 첫번째 사진처럼 1) 토지를 매매했다는 오스만 총독의 사인 및 직인과 토지 목록이 있어야 하고 2) 코스탄티니예의 술탄이 이를 승인했다는 증서가 있어야 하며 3) 맘루크 자치정권이 허가하고 보증한 증서가 있어야 한다. 나는 역사학자이자 고고학자이며 인류학자로써 원본을 가지고 논하는 사람이라, 이 세 가지의 원본 근거를 갖추면 오스만 제국 시기에 합법적으로 유태인들이 팔레스타인 땅을 매입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지만 여태까지 그런 근거를 갖추고 유태인들이 오스만 제국 시기에 땅을 매입했다는 사람을 본적이 없다. 그것도 전혀 불가능한 시대적 배경과 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이스라엘을 옹호하여 우기기만 하는 것이다. 어떠한 파격적인 주장을 할려면 확실한 출처와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근거를 제대로 제시한 적이 손에 꼽는다. lukybaby7@gmail.com
*필자/ 정길선.
노바토포스 회원, 역사학자, 고고인류학자, 칼럼니스트,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유라시아 고고인류학연구소 연구교수.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입니다. '구글번역'은 이해도 높이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문 번역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The following is [the full text] of the English article translated by 'Google Translate'. 'Google Translate' is working hard to improve understanding. It is assumed that there may be errors in the English translation.>
During the Ottoman Empire, did Jews really purchase land in Palestine in a normal way?
-Columnist Gil-seon Jeong
After the destruction of Jerusalem by the Roman Empire and the diaspora, Jews wandered around the world and were divided into native Jews who remained in Palestine. Native Jews lived as native Palestinians, but were gradually assimilated under Islamic rule for over 1,000 years. In particular, due to the characteristics of Arabs, whose identity is determined by religion and language rather than bloodline, most of the assimilated Jews abandoned their own religion, Judaism, and became Muslims. Due to these direct and indirect attempts to consistently convert pagans, native Jews became Arabs. This is in contrast to the Jews who wandered around the world while experiencing various diasporas, who emphasized their own identity. However, despite this, only a very small number of Jews lived in Palestine while maintaining their own identity. In the 1920s, during the British Mandate of Palestine, the number of Jews in the area was only 2-3% in the Palestinian census, and it is said that they also spoke Arabic.
After the Roman Empire, during the Middle Ages, Palestine was ruled by the Ottoman Empire. In the 17th century, Zahir al-Umar, a single-minded nobleman, became the leader himself and rebelled against the Ottomans. I have posted about Zahir al-Umar before. He transcended religion and cared for the livelihood and welfare of his subjects, and as a result, the people wholeheartedly supported him. However, in 1775, Zahir was defeated and killed by the superior military power of the Ottoman army, which had launched modernization. However, the independence of Palestine from the Ottoman Empire that he dreamed of was not complete, as it was limited to the northern Galilee and coastal areas, and the West Bank, Jerusalem and Nablus, were still ruled by other Arab and Turkic noblemen loyal to the Ottoman Empire. Therefore, Palestine was part of the Ottoman Empire at the time, and the ruler was naturally the Sultan of the Ottoman Empire. It is reasonable to view the Palestinian nationalism that emerged during the struggle against the Ottoman Empire during this period as a result of the formation of a local community and the increasing loyalty to it among Arab residents living in the Mediterranean region, rather than an exclusive identity as a ‘Palestinian people’ that was clearly distinct from other ethnic groups. According to Al-Safavi Bolnet, an Ottoman historian at the time, the population of Palestine in 1785, when the Ottoman Empire ruled, was about 200,000. According to Bernard Lewis, a professor at Princeton University, the population was estimated to have been around 300,000 when the Ottoman Empire first conquered the region. In such a situation, no matter how lenient the Ottoman Empire’s policy toward pagans was, there was a separate burden on pagans. This was the tax policy on non-Muslims called Jizya. The pagans who imposed this Jizya were called Dhimmi. The word Dhimmi originally meant “protection, care, guardian.” It can be understood as a concept that comprehensively includes economic obligations, property rights, the right to a safe life, and inviolability. This word is known to refer mainly to “free pagan people” and those who pay taxes including poll taxes and thus enjoy relative protection and safety in return. Later, these dhimmis were allowed to “keep the personal religious practices” to a certain extent, and they could enjoy the property rights, safety rights, etc. of non-Muslims, and separate autonomous regions could be established for non-Muslims. Dhimmis who ruled over Islamic dynasties were subject to “constantly levy taxes” according to Islamic law. From the perspective of Islamic rulers, it was stipulated that taxes must be paid because the loyalty of dhimmis was proven through material contributions. However, as various status restrictions continued, dhimmis were not allowed to stand as witnesses in trials involving Muslims and were prohibited from carrying weapons. These restrictions were more applicable to real life than symbolic, and most of them were ultimately intended to erase traces of paganism. Instead, violent or extreme methods of dealing with the situation were not common, but the status restrictions prevented dhimmis from opposing the power of the Islamic rulers, preventing their discontent and rebellion.
Due to these jizya and dhimmi systems, it was virtually impossible for Jews to own land in Palestine. Furthermore, the land system implemented by the Ottoman Empire throughout the country required the signature and seal of the Ottoman governor who had sold the land to guarantee legal ownership of the land. In other words, this was a sales contract, and it was virtually impossible for pagan dhimmis who had to take responsibility for the jizya to own land. This was because the taxes they had to pay as non-Muslims were enormous. Furthermore, if the other party was a pagan, this report had to be sent to the Sultan of Kostantinye and had to be approved by the Sultan. And since the Mamluk regime based in Acre ruled autonomously, there must be a certificate certifying this autonomous regime. However, this was the case until the land law of the Tanzimat reforms that took place from 1839 to 1876 was changed to a pre-modern one. Although the Tanzimat reforms failed, they showed a much more flexible approach in terms of land law and sales.
In other words, from 1880 onwards, land sales were possible for pagans as well. However, the Tanzimat land reforms later became the seed of conflict in Palestine. Since the Mamluk regime based in Acre ruled autonomously and was linked to the Ottoman governor, a kind of sense of community emerged in the Palestinian region. In conclusion, it is said that during the Ottoman Empire’s rule, before the Tanzimat reforms changed the law, pagans could not own land in Palestine or the Ottoman Empire. However, they are defending Israel and making completely unfounded claims to Hamas and Palestinians that Jews normally owned land at the time. According to these Koreans, Jews legally purchased land in Palestine during the Ottoman Empire before the British came in. That is why they claim that Jews purchased land and already had a stake before Palestinian nationalism was formed. I think this is because they are ignorant of the land system of the Ottoman Empire.
However, if they are going to insist like that, they need 1) the signature and seal of the Ottoman governor and the land list that the land was sold, as in the first picture, 2) a certificate that the Sultan of Kostantinye approved it, and 3) a certificate that the Mamluk Autonomous Government approved and guaranteed it. As a historian, archaeologist, and anthropologist who argues with originals, I can acknowledge that Jews legally purchased land in Palestine during the Ottoman Empire if I have these three originals, but I have never seen anyone who has such evidence and claims that Jews purchased land during the Ottoman Empire. Despite the completely impossible historical background and system, they just unconditionally support Israel and insist on it. Any groundbreaking claim requires solid sources and evidence. However, Koreans rarely present evidence properly. lukybaby7@gmail.com
*Author/ Jeong Gil-seon.
Novatopos member, historian, paleoanthropologist, columnist, research professor at the Institute of Eurasian Paleoanthropology, Russian Academy of Sci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