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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는 한국인 마음 가지고 사는 일본인

손정의 멘토 노다 가즈오 이사장의 손정은 관련 발언 내용

줄리 작가 | 기사입력 2011/10/04 [15:42]
아래의 글은 미국 포천지가 선정한 조사에서 2011년 일본 1위, 세계 16위를 기록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멘토인 노다 가즈오 일본종합연구소 이사장이 <손정의-세계를 로그인하다>(저자 수리) 추천사에서 했던 말이다. 노다 이사장은 “손 회장이 30년 전에 내가 한 말을 마음속에 새기고 있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지만 내가 그의 성공을 확신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으쓱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내가 손정의 회장을 처음 만난 것은 벌써 30년 전의 일이다. 당시 나는 일본종합연구소에서 기업경영 연수를 맡고 있었는데, 손 회장이 연구소 소장의 소개로 나를 찾아왔다. 그는 나에게 명함을 건네주면서 ‘재일 한국인이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더니 ‘작년에 버클리를 졸업하고 일본에 와서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내가 ‘왜 실리콘밸리에서 사업을 하지 않았느냐’고 질문하자 ‘일본을 좋아하기 때문’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 당시 미구이 일본보다 3년이나 4년 앞서가는 분야가 많았다, 그때 나는 ‘이 사람이 나중에 틀림없이 일본의 컴퓨터 업계를 선도할 큰 인물이 되겠구나’라고 직감하고 칭찬과 격려의 말을 건넸다. 손 회장은 최근 진행된 나와의 대담에서 ‘장래 큰일을 할 것 같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는 펄쩍 뛰어오를 만큼 기뻤다’고 당시의 감회를 술회했다.”
 
▲ 손정의     ©브레이크뉴스
저자 수리는 “처음에는 손 회장의 오랜 친구인 오쿠보 히데오와 손정의 회장의  인터뷰만으로 이 책을 쓸 계획이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행운이 찾아와 손 회장이 은사라고 부르는 노다 가즈오 선생과 만날 수 있었고, 그 분과의 만남 덕분에 이 책의 집필 방향은 크게 바뀌었다. 노다 선생은  저명한 경영학자이지만 실제 만나보니 정열과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었다. 나는 선생의 적극적 조언과 도움에 힘입어 손 회장이 만성간염으로 생명의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치료해준 의사 구마다 히로미쓰 박사, 손 회장을 사업가로 키웠다고 할 수 있는 샤프 사의 사사키 다다시 고문까지 인터뷰해 이 책에 포함시킬 수 있었다. 4명은 모두 손 회장이 웅지를 품고 있었지만 아직 무명에 불과했던 시절에 만난 사람들이다.”고 말했다.
 
강연과 통역을 동시 수행한 저자 수리의 말에 의하면  그의 저서에 ‘일본의 거인 4인에게 듣는 IT황제 손정의 진짜 매력’이라는 부제가 붙은 배경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 책에는 손 회장의 은인, 멘토, 친구, 은사인  사사키 다다시 고문, 노다 가즈오 이사장, 오쿠보 히데오(일본도쿄상공회의소 특별고문), 구마다 히로미쓰(도라노몬병원 분원장)의 생생한 증언이 담겨 있다. 무명이던 시절 그들과 어떤  행보로 오늘에까지 이르렀는가를 재추명하는 것이다.
 
19세에 세운 ‘인생 50년 계획’
 
“1957년생인 손 회장은 16세가 되던 해에 미국 유학을 위해 ‘출국(出國)’을 감행했다. 그것은 손 회장이 ‘내 거대한 꿈과 무모한 도전은 모두 그에게서 배운 것’이라는 고백을 바쳤던 사카모토 료마의 ‘탈번(脫藩)’을 연상케 하는 행위였다. 손 회장은 2주 만에 고교 3년 과정을 떼어버리고  1년 6개월에 당당히 고교졸업 검정시험에 도전했다. 무모하고 당돌해 보이는 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영어로 된 시험 문제를 제한된 시간에 해독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되자 감독관에게 이렇게 요구한 것이다. ‘이 시험은 영어 실력이 아니라 학업 수준을 평가하는 것이다. 영어가 서툰 나에게 일영사전을 볼 수 있도록 허용하고 시간도 2배로 늘려 달라. 그것이 공정하다.’ 마침내 교육청의 허락을 받아낸 손 회장은 도미 1년도 안돼 고교를 졸업했다.”
 
1977년 UC버클리대 경제학과에 진학한 손 회장은 웅대한 ‘인생 50년 계획’을 세우고 이런 비전을 선포했다. ‘20대에는 이름을 알리고 회사를 일으킨다. 30대에는 사업자금을 모은다. 40대에는 필생의 승부를 건다. 50대에는 사업을 완성시킨다. 60대에는 다음 세대에게 경영권을 넘겨준다.’ 평범한 사람이 보기에 엉뚱해 보이는 비전 선포는 창업으로도 이어졌다.
 
“손 회장은 1981년 후쿠오카의 구석지고 허름한 건물 안 작은 사무실에서 소프트뱅크를 창업했다. 직원은 2명에 불과했지만 첫날 사과 상자 위에 올라가 그들을 앞에 놓고 일장 연설을 했다. ‘우리 회사는 세계 디지털 혁명을 선도할 것이다. 앞으로 5년 뒤 매출은 백억엔에 이르고 30년 후에는 1조엔, 2조엔으로 늘어날 것이다.’ 손 회장의 선언에 기겁한  한 명의  직원은  다음 날 회사를 그만두었다. 하지만 그는 결단력과 추진력, 전략적 사고와 리더십을 발휘해 성공신화를 창조했다. 그의 성공비결은 일에 대한 자세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손 회장은 ‘일은 나에게 인생 그 자체이다. 길을 걸을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지, 무엇을 이뤄야 하는지 줄곧 생각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손정의에 관한 책은 이미 수없이 나왔다. 그런데 손 회장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지만 전혀 다루지 않은 시절(1981~1984년)이 있었다는 점에 저자는 주목했다고 한다. 이 시기는 소프트뱅크 사업이 본격적 궤도에 진입했을 무렵인데 정작 손 회장은 만성간염에 걸리는 바람에 투병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손 회장은 위기와 절망의 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1982년 만성 B형 간염에 걸린 손 회장은 최고의 병원을 찾아다니며 2년 동안 온갖 치료를 받았지만 호전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극한의 절망적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찾아간 사람이 구마다 히로미쓰 원장이었다. 당시에는 다른 백신이 없었고, 구마다 원장이 개발 중인 백신도 임상 사례가 너무 적어 학회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부작용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손 회장은 자신의 운명을 걸었고, 기적적으로 완치되는 곡절을 겪었다. 손 회장은 병실에서 평소에는 만화책을 읽으며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다가 문득문득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기는 양극단의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병마와 싸우는 910일동안   4000권의 책을 읽었다’는 일방적 미화로 일관된 기존의 책들은 사실과 다르다.”
 
전문 서적을 하루에 44권 읽어야 하는 910일간의 병원 생활이라면  한 번 생각해 보자. 환자인 손 회장이 아픔을 이기면서 과연 전문 서적을 하루에 몇 권을 읽을 수 있을까?
 
진실이란  만화책을 읽었다- 교양서가 아니라 만화책을 읽었다고 손 회장의 권위가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노다 이사장은 “보통 사람은 죽을병에 걸렸을 때 만화책을 보지 않는다”면서 “90%의 절망과 10%의 희망이 교차하는 상황에서 손 회장이 만화책을 읽었다는 사실은 그가 삶에 대한 의지와 여유를 잃지 않았다는 반증이다”라고 해석했다. 구마다 원장도 “그는 사람을 매료시키는 미약과 같은 향기를 풍기며 늘 어제와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고 말했다.
 
 한국인 마음 가지고 사는 일본인
 
“재일교포 3세인 손정의는 사업을 위해 5년 전에 일본에 귀화했지만 자신의 이름만은 버리지 않았다. 결혼식을 할 때도 일본인 아내에게 한복을 입도록 했고, 손 씨로 성을 바꿔달라고 재판까지 하여 이긴다. 아마도 그의 정체성은 ‘한국인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일본인’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 할머니에게 한국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할머니와 둘이서 2주 동안 조부모의 고향을 돌아보았다. 할머니는 소년 손정의에게 늘 말했다. ‘남들 덕분이다. 아무리 괴로운 일이 있어도,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누군가가 도와주어 살아올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남들 덕분이다. 절대 사람을 원망하지 마라. 남들 덕에 사는 것이니까.’ 그래서 인생 목표도 돈과 명예가 아닌 행복으로 정했다.”
 
손 회장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나는 가족의 행복을 위하여 돈을 벌었다. 이제 인류의 행복을 위하여 돈을 쓰겠다고 한 점을 높이 보아야 한다. 특히  컴퓨터 산업은 사람들의 지혜와 지식을 보다 넉넉하게 만든다. 그런 일을 진정 하고 싶다.’ 아마도 그런 철학을 가졌기에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사키 다다시 고문은 샤프 전무로 재직하던 당시 손 회장이 개발한 다중어 번역기에 100만 달러를 과감하게 투자함으로써 오늘의 손정의가 있게 하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손 회장이 은행에서 창업자금 융자를 받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자신의 퇴직금을 당겨 받고 자택까지 담보로 내주기도 했다. 사사키 고문은 열아홉의 천재와 첫 대면을 하던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는 기술적으로 얼마나 뛰어나냐가 아니라 사용하기에 얼마나 편리하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사람은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그의 빛나는 눈빛은 다른 사람과 달랐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도 돕지만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은 사람도 돕는 모양이다.”
 
손정의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이다. 특히 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에게는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저자 수리와 노다 가즈오 선생이 한국을 방문하여  강의를 하게 된 동기이며 특히 인간 개발 연구원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다.
julietcouns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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