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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전서 사료로보는 한사군의 낙랑” 출간

역사학자 심백강 박사 편저 “사고전서에서 낙랑자료 대거 발굴-소개”

정리/박정대 기자 | 기사입력 2014/07/24 [11:51]

퇴계전서, 율곡전서, 조선왕조실록 등 한국의 주요 고전들을 번역한 학자인 심백강 박사가 편저한 “사고전서 사료로 보는 한사군의 낙랑”이 출간(도서출판 바른역사) 됐다. 사고전서에서 삼국사기, 삼국유사 기록보다 앞선 새로운 낙랑자료를 대거 발굴, 소개하고 있다. 출판사 측은 이 책의 시대적 가치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낙랑은 한국사의 척추다

 

▲ 심백강     ©브레이크뉴스

낙랑군은 서기전 108년 서한 무제가 위만조선을 침략하여 설치한 한사군의 하나이다. 그런데 낙랑군에 조선현이 있었고 고구려의 발상지 또한 한사군의 낙랑군이었다. 낙랑군이 어디에 있었는가에 의해서 고조선과 고구려의 발상지와 위치 등 우리 고대사의 무대 범위가 결정 된다. 따라서 한사군의 낙랑군은 한국사의 척추에 해당한다.
 
▲현재 대동강 낙랑설 바탕으로 국사교과서 기술

 

낙랑군에 대한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를 집약해보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로 정리 된다. 하나는 낙랑군이 한반도의 평안남도 일대와 황해도 북단의 대동강유역에 있었다고 보는 것으로 이러한 주장은 이병도 등으로 대표된다. 


 다른 하나의 주장은 낙랑군이 중국의 요동 또는 요서지역에 있었다고 보는 것으로 신채호, 정인보, 리지린, 윤내현 등의 관점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현재 이병도 등이 주장한 대동강낙랑설이 학계의 정설로 인정되어 이를 바탕으로 국사교과서가 서술되어 있다. 따라서 고조선과 고구려의 발상지와 활동무대가 모두 대륙과는 무관한 대동강, 압록강유역으로 한정된 반도사로 규정된 상태다.  


▲낙랑군은 대동강 유역이 아니라 중국의 하북성 동쪽에서 서남쪽 방향으로 발해를 끼고 있었다.

 

사고전서 사료에 의거하면 서한 무제가 “동쪽으로 갈석산을 지나 현도, 낙랑을 설치했다”라고 했는데 그 갈석산은 하북성 남쪽 오늘의 호타하유역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현재 진황도시 창려현에 있는 갈석산은 후대에 붙여진 명칭이고 한무제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낙랑군 25개현 중의 하나였던 수성현은 현재 하북성 보정시 서수현 수성진이다. 만리장성의 동단 또한 산해관 장성이 아니라 현재 하북성 수성진에 문물로 보존되어 있는 燕장성이 그것이다.


그러니까 사고전서 기록에 따르면 낙랑군은 이병도 등이 주장한 것처럼 대동강 유역에 있지 않았던 것은 물론, 난하하류 창려현 갈석산에서 동쪽으로 요하서쪽에 걸쳐있었다고 한 민족사학자들의 주장과도 달리, 현재의 진황도시 노룡현, 산해관 일대에서 서쪽으로 당산시, 천진시를 지나 보정시 서수현 수성진에 이르는 지역에 발해를 끼고 동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는 지난날 우리민족의 고조선과 고구려의 활동무대가 대륙의 동쪽 변방이 아니라 바로 중원의 심장부였음을 말해주는 것으로서 지금까지 대동강낙랑설을 중심으로 서술된 우리 국사교과서는 그 내용의 전면적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잘 증명한다고 하겠다. 

 

▲역사학의 혁명이 요구 된다.

 

▲ 심백강  박사  ©브레이크뉴스

우리는 광복이후 산업을 혁명하여 경제의 고도성장을 이루어냈고 정치를 혁명하여 민주화를 달성하였다. 물질적 경제성장과 정치적 민주화를 동시에 실현한 오늘의 우리민족에게 당면한 과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전도된 가치관을 바로잡고 민족정체성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세월호 참사는 경제적으로 선진이고 정신적으로 후진인 한국사회의 단면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그러면 오늘 우리사회의 정신적 낙후와 가치관의 전도를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그것은 일제가 망가뜨린 우리민족의 혼과 얼이 담긴 역사의 진실을 회복하는데 있다. 


바른역사는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한국사는 그 척추인 낙랑을 바로 세우면 전체 한국사가 바로 서게 된다.  불행히도 우리는 광복이후 일제식민사관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채 식민사관의 핵심인 대동강 낙랑설이 교과서에 그대로 기술되어 국민의 정신을 오도해온지가 어언 반세기가 훨씬 지났다. 지금 바른역사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역사학의 혁명이 필요하다. 대동강낙랑설로 인해 역사가 근본부터 잘못된 한국사는 처음부터 새로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산업혁명, 정치혁명을 넘어 역사학의 혁명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때 이 책은 역사학 혁명의 기폭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심백강은 누구?

 

여기 인용된 한문으로 기록된 원전자료들은 거의가 국내학계는 물론 현대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인용되거나 번역된 적이 없는 초역(初譯)에 해당하는 자료들이다. 한국사와 관련하여 국내외에서 한 번도 인용된 적이 없는 이런 새로운 사료를 발굴하여 정확한 번역과 상세한 주석을 하고 또 거기에 일반인 누구나 알기 쉬운 해설을 덧붙이는 이런 작업은 어느 개인의 혼자 힘만으로는 쉽사리 가능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는 한문학, 역사학, 문학 등 여러 분야의 다양한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책연구기관에서 전문 인력을 선발, 공동작업을 필요로 하는, 이러한 개인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작업이, 심백강 선생에 의해 독자적으로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이 책의 저자 심백강 박사는 퇴계전서, 율곡전서, 조선왕조실록 등 한국의 주요 고전들을 번역한 국내 굴지의 한학자이다. 또 한중고대사를 전공하여 중국에서 역사학박사 학위를 받은 역사학자이다. 한편 그는 월간 현대문학 출신의 문학평론가이기도 하다. 심백강 박사는 문, 사, 철에 모두 조예가 깊은 이 시대에 보기드믄 인물인 것. 그래서 이런 어려운 작업이 그의 개인 혼자의 힘으로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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