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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새벽’을 열어준 프로메테우스...그리스 신화 이야기-3.

이채윤 작가 | 기사입력 2014/09/17 [13:41]

인간의 탄생

 

올림포스 산에 신들이 자신들의 나라를 펼치고 있을 때, 땅에는 인간이 살고 있지 않았다.
제우스가 혁명에 성공하고 세상을 굽어보니 세상에는 다스릴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늘과 땅이 갈라져서 ‘카오스’라고 부르는 상태는 벗어나 있었지만, 이렇다 할 생명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뭐야, 세상이 이렇게 썰렁한 거였어. 이런 줄 알았으면 나는 혁명군의 지도자가 될 필요가 없었던 것 아니야? 제길, 무얼 다스리겠다고 혁명을 한 거야?”
제우스는 실망해서 스스로에게 묻고 답해야 했다.
“일단 백성이 있어야 폼이 나던가 뭘 해도 하는 거 아니겠어? ‘백성 만들기 비상대책위원회’ 그걸 발족시켜야겠어. 어때?”

▲ 이채윤     ©브레이크뉴스

제우스는 카오스 속에 여러 사물들의 씨앗이 잠자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제우스는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새로운 나라의 기본 컨셉을 짜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이제부터 국토개발 5개년 계획을 실시한다. 알간? 제정경제부는 당장 계획안을 내놓고, 건설교통부를 비롯한 각 시도는 업체 선정을 잘해서 시행에 차질이 없도록 할 것. 알아 들었제?"
제우스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각종 건설 중장비가 동원되고 담당 신들은 작업복을 착용하고 신바람이 나서 공사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역시 노는 것보다는 일하는 것이 즐거워. 일을 하니까 어깨가 뻐근한 것이 다 사라졌어.”
“암, 암. 골프 치는 것보다도 일을 하는 게 건강에 좋은 것 같은데....”


신들은 산을 일으켜 세우고, 골짜기를 파고, 강과 바다의 경계를 정하고 숲과 샘물, 기름진 들판과 돌투성이 황야를 배치했다. 모든 것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공기가 맑아지자 오랫동안 혼돈의 덩어리 안에 갇혀 있던 별들이 하늘에서 찬연히 빛나기 시작했다.


바다는 아름다운 비늘을 번쩍거리는 물고기들의 거처가 되었고, 새는 하늘을 날기 시작했으며, 대지는 짐승들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우와. 내가 만들었지만 아무리 봐도 멋지다. 그렇지 않아?”
제우스는 저 혼자 일한 것처럼 으스대며 물었다.
“You Win! Wonderful!”


다른 신들이 제우스를 칭송했다. 이렇게 세상이 질서를 찾아가자 제우스는 짐승들보다는 신들의 형상을 한, 다른 생물을 지배할 만한 존재를 창조하기로 결심했다.


인간을 창조하기로 마음먹은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불러들였다. 프로메테우스는 티탄족으로 그러니까 제우스의 삼촌뻘 되지만 혁명을 할 때 티탄족을 배신 때리고 제우스 밑으로 기어들어온 혁명 동지다. 프로메테우스는 ‘먼저 생각하는 자’란 뜻의 이름대로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탓에 제우스가 혁명에 성공할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는 제우스 편에 가담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독자들은 프로메테우스를 미래를 보는 자. 예언가, 혹은 샤먼, 용한 무당 정도로 생각하시면 좋을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처음부터 티탄을 배신 때린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의리의 사나이였기 때문에 티탄들을 불러놓고 패가 제우스에게 유리하므로 제우스에게 대적하지 말고 순순히 대세를 따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귀뜸을 해주었다.


“야! 제우스가 지금 쓰리고패를 쥐고 있다고. 잘못 고하다가는 쓰리고에 쌍피박 당한다고. 알간?”
그러나 멍청한 티탄들은 그의 경고를 무시했다. 프로메테우스는 하는 수 없이 자신의 뜻을 따르는 몇몇 티탄들만 데리고 제우스 진영으로 투항했던 것이다. 앞날을 뻔히 알면서 지는 쪽에 가담할 바보가 어디 있는가?
“저기 말이죠. 우리가 지상을 제대로 다스리려면 인간을 만들어야 할 것 같은데 귀하께서 솜씨를 발휘해 봄이 어떠실지?”
제우스는 손아래, 위 없이 콩가루 날려가며 싸운 맹장답게, 천상의 신 제우스답게 삼촌에게도 삼촌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
‘어차피 내 아랫것인데 존대하기가 영 쑥스럽구먼...계급장대로 가야지 뭐. 쩝쩝.’
프로메테우스는 티탄족이기는 하지만 아주 지혜롭고 손재주가 비상했다. 제우스는 그의 솜씨를 높이 사고 있었던 탓에 그를 아군으로 삼았고, 가장 신임하는 측근으로 여겨서 이번에는 신들의 형상을 한 인간을 만들 것을 지시한 것이다.
“제우스의 명을 받들어 실행하겠나이다.”


현명한 프로메테우스는 납작 엎드려서 명령을 받았고 즉각 작업에 들어갔다.
“이건 진작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야. 아주 영특한 놈들을 만들어야겠어.”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만든다는 일이 아주 가슴 설레는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에게는 에피메테우스(Epimetheus)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그는 동생을 조수로 데리고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에피메테우스는 ‘뒤에 깨닫는 자’, 즉 뒷북치는 놈이란 뜻으로 그가 이 일에 참여하게 됨으로서 나중에 많은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여기서 영어공부 한마디 하자면 왈, “책이나 논문에서 머리말을 뜻하는 프롤로그(prologue)는 pro-에서, 끝말, 후기 등을 뜻하는 에필로그(epilogue)는 epi-에서 나온 말. 영어가 참 쉽다고? 그럼. 쉽고말고. 참고로 한마디 더하면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영어 단어를 어느 정도 공부하면 그것이 영어의 뿌리이기 때문에 영어공부는 거의 끝난다고 볼 수 있지.”
각설하고, 현명한 프로메테우스였지만 형제간의 우애를 생각해서 그는 늘 동생을 보살피는 입장이었다.


“동생이 좀 미안 미안하지만 어쩌겠어. 그래도 동생인데 데리고 다녀야지.”
프로메테우스는 신이면서도 매우 인간적인 면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어쨌거나 지상으로 내려온 프로메테우스는 우선 질 좋은 흙을 구해서 물을 붓고 진흙을 열심히 빚어서 최대한 신과 비슷하게 사람을 만들어냈다. 그는 인간에게 신들의 형상을 본 따 직립할 능력을 부여했다. 그래서 다른 동물은 모두 고개를 숙여 땅을 내려다보는데 인간만은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의 형상을 만들어서 이레 동안 볕에 말린 뒤 생명을 불어넣으려는 찰나, 지나가던 지혜의 여신 아테나가 나비 한 마리를 날려 보냈다. 나비가 인간의 콧구멍으로 들어가자 인간에게는 비로소 마음이 깃들었다. 그리스어 프시케(PSYCHE)는 나비라는 뜻과 마음, 영혼이라는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프로메테우스가 사람을 만드는 동안 에피메테우스는 다른 동물들을 만들었다. 그런데 에피메테우스는 형과 의논도 하지 않고 자기가 만든 동물에게 제우스가 준 선물을 마구 뿌려댔다. 어떤 동물에게는 날개를, 어떤 동물에게는 발톱을, 또 어떤 동물에게는 딱딱한 껍질을 주는 식으로 용기, 힘, 속도, 지혜 같은 것들을 선물로 준 것이다. 가령 짐승들에게는 먹이를 공격할 수 있는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새들에게는 하늘을 날 수 있는 날개를, 물고기들에게는 물 속에서 헤엄칠 수 있는 지느러미를 주는 등 모든 동물들에게 온갖 능력을 자루 속에서 꺼내 마구 선물했다.


가령 사자에게는 힘과 용기를, 여우에게는 영리함을, 뱀에게는 신중함을, 낙타에게는 절제를, 얼룩말과 산양과 산토끼에게는 빨리 달릴 수 있는 능력을 주었고, 코뿔소와 악어에게는 튼튼한 가죽을, 곰에게는 두툼한 털을, 시라소니에게는 날카로운 시력을, 카멜레온에게는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에피메테우스는 가지고 있던 선물을 모두 나눠주고 나서야 형이 만들고 있는 마지막 종족인 인간에게는 아무것도 줄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잔뜩 공을 들여 인간을 만든 프로메테우스가 드디어 인간에게 무엇인가를 주려고 했을 때 에피메테우스의 수중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말하자면 선물을 다 써버린 것이었다.
“형, 어쩌지. 나는 형이 인간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깜빡했어.”


에피메테우스가 뒷북치는 놈답게 머리를 긁적거리며 변명했다. 프로메테우스는 무척 난감했다.
‘신을 닮은 존재인 인간에게 아무것도 줄 것이 없다니 큰일이구나. 내가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었건만.’
지느러미나 날개도 없이, 갈고리나 날카로운 발톱도 없이, 또한 가죽이나 털도 없이 어찌 이 불쌍한 종족이 자연과 다른 동물들의 공격에 맞서 생존해갈 수 있겠는가?
프로메테우스는 동생에게 일을 맡긴 것을 후회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제우스를 속인 프로메테우스

 

프로메테우스는 고민 끝에 지혜의 여신 아테나를 찾아가서 고민을 털어 놓았다.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고귀하신 아테나 여신이여. 내가 제우스의 명을 받들어 신과 똑 같은 형상의 인간을 만들었는데 그들에게 줄 것이 없어서 고민이온데 나를 좀 도와주소서.”
“오, 프로메테우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그들에게 불을 좀 주고 싶습니다. 도와주소서.”


아테나는 평상시 재주 많은 프로메테우스를 좋게 보아온 탓에 선선이 응락했다.


아테나는 그렇지 않아도 프로메테우스가 만드는 인간들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은근히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앞으로 인간들에게 자신이 가진 지혜를 나누어 줄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예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아테나의 도움을 받아 태양의 이륜차에서 불을 미리 준비해간 회향나무 횃대에 옮겨 붙여 가지고 내려와 인간에게 주었다. 이 선물 덕택에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 훨씬 뛰어난 존재가 되었다. 이제 인간은 비바람과 추위에 시달리는 삶을 면하게 된 것이었다.
“히야, 불이란 것이 너무 좋다. 이렇게 따뜻하고 고기도 구워 먹을 수 있으니까 정말 인간답게 사는 것 같다.”


인간은 불을 사용해서 무기를 만들어 다른 동물을 정복할 수 있었고, 연장을 만들어서 땅을 경작하기 시작했다. 또 추운 겨울에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등 의식주 문제를 해결했다. 나아가서는 인간은 여러 가지 기술을 터득하고 화폐를 만들어서 상거래를 시작하게 되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그 외에도 날씨를 미리 아는 법, 농사하고, 가축 기르고, 집짓고, 글 쓰고, 셈하고, 배를 만들어 바다를 향해하는 법까지 가르쳐 주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자기가 만들 영특한 인간 종족에게 많은 애정을 느꼈다.


“너희들은 나의 작품이자 내 새끼나 다름없어. 난 무조건 너희들에게 잘해주고 싶어.”
프로메테우스는 자다가 꿈에서도 인간들 걱정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인간을 위해서 많은 궁리를 했고 많은 것을 베풀었다. 그는 우선 인간을 괴롭힐 수 있는 질병, 슬픔, 질투, 원한, 복수심 미움, 분노, 거짓말 따위의 온갖 해악들을 한데 모아 상자 안에 가두어놓았다.
“너,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상자는 열지 말거라. 그땐 이 형을 다시 볼 생각을 하지마라. 알겠느냐?”
“예. 형님. 명심하겠습니다.”
“만약 잘못된 일이 생기면 너는 이 세상에서 나를 볼 생각을 말아야 할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는 동생에게 눈알을 부라리며 당부를 하고 다락방에 그 상자를 숨겨놓았다.
그런데 문제는 프로메테우스가 하늘에서 불씨를 훔쳐간 사실을 나중에 안 제우스가 노발대발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저런 방자스러운 자가 있나. 하늘의 불씨를 인간에게 내주다니. 내 이 자의 주리를 틀리라."
제우스가 프로메테우스를 손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을 때, 인간들이 소를 한 마리 잡아 제우스에게 바치는 제사가 열렸다. 이 제사는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신들의 은총을 얻어내는 방법을 가르쳐 준 때문에 시작된 것이었다.
잔뜩 심사가 뒤틀렸던 제우스는 그래도 인간들이 자신을 대접하느라고 제사를 올리며 초청해 준 것에 조금 기분이 누그러져서 그 제사에 참석했다.


그런데 프로메테우스는 맛있는 고기와 기름을 제우스에게 바치면 먹을 수도 없는 뼈와 가죽만 인간의 몫으로 남게 될 것을 생각하고 꾀를 냈다. 그는 고기는 볼품  없는 가죽으로 싸고 뼈는 먹음직스런 기름덩어리로 감싼 뒤, 제우스에게 하나를 선택하게 했다.
“신중의 왕 제우스신이시. 인간들이 바치는 제물을 받으소서.”
제우스는 물론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기름으로 싼 것을 선택했다. 우리 현대인들도 물건을 고를 때 종종 겉포장에 현혹되어 실수를 하는데 제우스도 보기 좋게 속아 넘어간 것이다.
아니, 소가 넘어가다니? 제우스가 또 소로 변신을 했나?
“응. 미아리 고개에서 자동차하고 소하고 부딪치면 누가 넘어갈까요?”
“그야. 소가 넘어가 것지. 뭐.”
“맞아. 제우스도 보기 좋게 소 뼈다구에 걸려 자빠진 거여.”


포장을 풀고서 프로메테우스가 자신을 또다시 속여 넘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제우스의 분노는 마침내 폭발하고 말았다.
“내가 인간을 만들라고 했던 것은 신을 공손히 받들 존재가 필요해서였는데 사사건건 인간의 편만 들고 감히 나를 농락하다니! 신에게는 항상 좋은 고기를 바쳐야 하는데도 먹지 못할 뼈와 가죽만 바치게 하디니! 게다가 천상의 보물인 불까지 훔쳐다 가져다 준 것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제우스는 인간들이 불을 가지고 바비큐 요리를 해먹고, 또 농사를 지어서 빵을 만들어 먹는 꼴을 보자니 눈꼴이 시고 속이 다 뒤틀려왔다.
하지만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가 가지고 있는 예언 능력을 알고 은근히 그를 두려워했다.
자, 그런데 말이다. 프로메테우스는 그러한 자신의 능력을 무기로 제우스와 맞장을 뜨기로 했다면 독자제위들은 믿으시려나? 그의 몸에 흐르는 뜨거운 피는 불의를 보면 못 참는 것일까?
원래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정의파인 그는 크로노스의 폭정에 반기를 들고 개혁파로서 제우스의 편에 가담하지 않았던가.


좌우지간 제우스는 당장 프로메테우스를 불렀다. 제우스는 말했다.
“나는 인간들이 찧고 까부는 꼴을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놈들에게 퍼뜨려야 하는 악과 고통을 어디에 숨겼는지 말해준다면 널 당장 풀어주고 두둑한 상과 벼슬을 내려주겠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일신의 안락을 위해 대의를 저버리는 그런 행위를 경멸했다.
“그건 내가 창조한 인간들에게 도움이 안 되는 일이니 가르쳐줄 수 없소. 딴 데 가서 알아 보슈.”
“크아아!! 방금 너 내 성질 건드렸어!!”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가 의외로 세게 나오자 사지를 부들부들 떨며 분노했다.
“그러는 당신은 어떻고!! 크아아!!”


“어쭈, 너 눈 안 깔어? 이게 누구한테 눈을 야리는 거야!”
“이봐. 계급은 자네가 윈지 모르지만 촌수는 내가 위야. 넌 가문의 족보도 모르냐?”
프로메테우스는 왜 그런지 막 가고 있었다. 이제 길은 하나 밖에 남지 않은 듯이 보였다.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와 인간들에게 복수할 결심을 굳혔다.

 

사랑의 형벌

 

분노에 휩싸인 제우스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는 혁명동지이자 티탄과의 전쟁, 그리고 기간테스를 제압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개국 일등공신 프로메테우스를 처벌하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토끼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잡아먹는 법이야. 창업이 끝나면 그 잘난척하는 개국공신부터 다 쳐 죽여야 해. 토사구팽(兎死狗烹)이 장땡이라고. 한나라 고조 유방을 보라고. 한신, 팽월, 영포, 장오...모든 공신 제후들을 주살했잖아. 그래서 한나라가 400년 이상이나 영속하며 중국문명을 꽃피울 수 있었지....”
“맞아요. 아버지. 조선 왕조의 태종 이방원이도 일등공신인 자기 처남들도 다 때려죽였어요. 그래서 세종이 태평성대를 이룩한 거지요.”


비서실장 헤르메스가 거들고 나섰다.
“그래, 과거는 과거고. 지금은 지금이다. 왕실과 정권의 안정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어. 인간에게 불을 갖다 바치는 어처구니를 물 말아 먹는 짓을 한 자를 용서하면 또 어떤 불상사가 일어날지 모른다. 저 놈이 이번에는 내 번개도 훔쳐다 인간들에게 줄런지 누가 알아.”
제우스는 이참에 제대로 시범 케이스를 보여야 한다고 결심했다.
제우스는 당장 권력의 신이자 검찰총장인 크라토스와 폭력의 신이자 조폭계의 대부(代父)인 비아를 불러들였다.


“너희들은 당장 프로메테우스를 잡아들여라. 프로메테우스에게는 불을 훔쳐간 절도죄를 묻고, 인간들에게는 장물취득죄를 물을 것이다. 크라토스는 체포영장을 가지고 가라. 만약 녀석이 반항을 한다면 비아가 허벌나게 패도 좋다.”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잡아들이기 위해서 검찰과 조폭을 동시에 동원한 것이었다. 제우스는 그들에게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청동 쇠사슬을 건네주었다.
“야, 조폭. 너랑 가려니까 쪽 팔린다. 멀리 덜어져서 와라.”
검찰총장 크라토스께서 조폭 두목인 비아에게 말했다.
“검찰 형님. 왜 그러쇼? 우린 한 배를 탄 식구 아니요. 프로메테우스가 을마나 힘이 쎈 줄 아쇼? 형님 혼자 가시면 되레 쌍코피 나도록 얻어터질 텐데.”
하면서 비아가 뒤를 돌아보고 휙! 휘파람을 날렸다. 그러자 골목에서 손에 각목과 쇠파이프를 든 덩치, 깍두기들이 줄줄이 나타났다. 그렇게 해서 검찰과 조폭은 힘을 합해서 프로메테우스를 잡아다 코카서스 산의 꼭대기 바위에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묶어버렸다.
며칠 후, 제우스는 조금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서 직접 프로메테우스를 찾아가 말했다.
“너는 불사신이므로 형벌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인류에게 퍼뜨려야 하는 악과 고통을 어디에 숨겼는지 말하라. 그러면 당장 널 사면해 줄 수 있다.”
“절대로 말할 수 없소.”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회유를 단호히 거부했다.
“야…너, 너무 오바하는 것 아니냐? 그깟 인간이 뭐라고…. 그리고 내게 말 못할 사연이 어디 있다고...혁명동지의 옛정을 생각해서라도... ”
“내게 죄가 있다면 인간을 사랑한 죄 밖에 ㅤㅇㅡㅄ소. 난 할 말이 ㅤㅇㅡㅄ으니 딴 데 가서 알아 보슈.”


그러자 제우스는 정말 분이 안 풀려서 독수리를 시켜 하루에 두 번씩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파먹도록 했다. 프로메테우스의 간은 누더기처럼 너덜거렸지만 다음날이면 새로이 돋아났다. 그 모양을 본 여러 신들이 너무 끔찍하다고 프로메테우스를 동정하고 나섰지만 제우스는 이번만큼은 절대로 굽히지 않았다.
그 후에도 제우스는 몇 차례나 전령신 헤르메스를 보내 프로메테우스를 회유했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일신의 안락을 위해 대의를 저버리는 그런 행위를 경멸했다.
“어리석은 프로메테우스여, 난 당신이 아주 똑똑한 줄 알았는데 아주 순 멍청이로군. 한 마디면 당장 이 고통에서 벗어날 텐데 어찌 이리 고집을 피우시나?”
헤르메스의 말에 프로메테우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헤르메스여, 나는 이 정도 고생으로 의리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진정한 행복으로 여긴다네. 그런데 그대는 폭군에게 빌붙어서 어찌 그리도 비굴하게 살고 있단 말인가?”
프로메테우스는 그렇게 함으로써 불의와 폭정에 대한 저항을 인류에게 보여준 최초의 모범이 되었다.

 

제우스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다.

 

그로부터 장장 3천년의 장구한 세월이 흘렀다.
<질투의 화신이 된 헤라>편에서 살펴보게 될 제우스의 새로운 연인 이오가 소로 변한 채 헤라에게 쫓겨 달아나다가 잠시 코카서스 산에 머문 적이 있었다. 그때 프로메테우스는 이오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후손이 나를 풀어 줄 것이오. 그리고 머지않아 제우스는 권좌에서 쫓겨나고 말 것이오. 그것을 피하는 방법을 아는 것도 나뿐이라오.”
도청 장치를 하거나 따라다니는 파파라치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 소리는 곧바로 제우스의 귀에 들어갔다. 제우스는 겁이 잔뜩 나서 몸을 도사리며 외쳤다.
“헤르메스, 당장 가서 그 자가 무슨 생각에서 그런 소리를 했는지 진상을 파악하고 오라.”
헤르메스는 전령의 신답게 재빠르게 하늘을 날아서 프로메테우스에게로 갔다.
“프로메테우스, 참 어지간하오. 제우스께서 당신이 알고 있는 비밀을 털어놓으면 당장 풀어 주겠다고 하셨소. 또 올림포스 신전에 당신 자리를 만들어 준다고도 하셨소.”
“이제 와서 무슨 소리냐? 불의와 폭정은 오래가지 못한다. 제우스처럼 탱크를 몰고 한강을 건넜던 박정희는 친구의 총에 맞아 죽었다. 이제부터라도 제우스는 뉘우치고 세상을 사랑으로 다스려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앞날을 장담하지 못하지.”


“허, 그러지 말고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을 말해주소. 내가 제우스께 상신해서 국무총리 자리를 드리도록 하리다.”
“일 없으니 꺼지는 것이 좋겠어. 나는 그런 더러운 자리는 싫다고.”
프로메테우스는 헤르메스의 얼굴에 침을 퉤 하고 뱉었다. 결국 말재간이 뛰어난 헤르메스였지만 프로메테우스 고집을 꺾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다. 제우스는 자신의 미래를 미리 알고 있는 프로메테우스와 화해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 때문에 조바심이 났다. 생각하다 못한 제우스는 다음과 같은 친서를 헤르메스 편에 보냈다. 


“어이 프로메테우스! 이쯤해서 우리 화해하자. 좋다. 내가 졌다. 앞으로 인간을 사랑하마. 내 아들 가운데 누가 나를 해칠 것인가만 가르쳐 주라. 항복문서를 쓰라면 쓸게. 하지만 나도 신중의 왕으로서 가오가 있으니까, 우리끼리만 알고 조용히 사태를 수습하자. 내가 졌다. 알았지? -제우스 백(친필사인)”
그제야 프로메테우스는 빙긋이 웃으면서 제우스의 제안을 수락했다. 다음 날 프로메테우스의 예언대로 이오의 자손인 헤라클레스가 와서 사슬을 끊어주어서 프로메테우스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올림포스 신궁에 불려 올라간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에게 아주 짧게 말했다.


“바다의 여신 테티스를 사랑해서는 안 되오. 만약 그녀가 아들을 낳게 된다면 당신을 몰아내고 말 것이오.”
그 말을 들은 제우스는 가슴이 뜨끔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는 테티스에게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던 중이었다. 제우스는 등줄기에서 오싹한 한기를 느꼈다. 하마터면 큰 일 날 뻔했던 것이다.
“고맙다. 프로메테우스. 그 동안 있었던 일은 다 잊어버리자. 짐이 그대에게 큰 상을 내리겠다.”
“상 같은 것은 필요 없소. 데신 꼭 인간들을 사랑해 주시오. 내가 지켜볼 것이오.”
그 말을 남기고 프로메테우스는 표표히 올림포스를 떠났다.


무려 3천년 동안을 프로메테우스는 독수리에게 간을 쪼였다. 참혹한 고통 앞에서도 무릎 끓지 않았던 이 불굴의 정신이야말로 인간이 그에게서 받은 가장 위대한 선물이 아닐까?
영국의 시인 바이런은 <프로메테우스>라는 시에서 프로메테우스를 이렇게 찬양했다.

 

고통이 아무리 크더라도
신들이 인간을 능멸하지 못하게 했던
불멸의 눈을 가진 이여! 프로메테우스여!
인간에 대한 그대의 연민으로 어떤 보상받았던가?
견디기 어려운 침묵과 고통, 간을 쪼아 먹는 독수리,
그리고 바위와 사슬,
하지만 잘난 체하는 자만이 맛볼 수 있는 고통,
바보들은 느끼지 못할 어림없는 고독을 느꼈으니.

그대의 죄는 인간에 대한 사랑.
그대가 보여준 교훈으로, 인간은 비참을 줄이고
정신의 세계로 나갈 수 있었다.
때로 하늘의 이름으로 좌절당했지만,
그대는 끈질긴 인내로 이겼으니
이제 신들도 감히 어찌할 수 없구나
그대 불굴의 정신이 보여 준 끈기와 저항에서
인간은 신성한 큰 가르침을 받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신과 영웅 중에서 후세 사람들에게 가장 칭송받는 이는 아마도 프로메테우스일 것이다. 그는 그리스인들이 가장 소중히 여겼던 가치인 인간과 자유의 다른 이름이었고 부당한 고통을 견디는 고결한 정신, 억압에 항거하는 투쟁의 상징이었다.
<계속>

 

*필자/이채윤, 시인 겸 작가. '삼성을 경영하라' '안철수의 서재' '록펠러, 십일조의 비민을 안 최고의 부자' 100여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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