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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로잡으려던 다산 정신

박성무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4/09/22 [14:06]

다산은 8대에 걸쳐 옥당(玉堂)의 벼슬을 역임한 명문가의 후손으로 태어났습니다. 12대조에서 5대조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들이 문과에 급제하여 옥당에 들어간 드물게 나오던 집안이었습니다. 다산의 어머니 해남 윤씨는 고산 윤선도의 후손이자 유명한 학자·화가였던 공재 윤두서의 손녀였으니, 다산의 외가 또한, 내노라던 명문의 집안이었습니다. 다산의 부인 풍산 홍씨는 서울의 회현동에서 살았던 명문 출신입니다. 아버지 홍화보는 승지를 역임하고 몇 곳의 병마절도사를 지낸 장군이었고 큰아버지 홍수보는 판서를 지낸 당대의 명사이자 사촌 오빠들인 홍인호·홍의호 등도 모두 판서를 지낸 대단한 집안이었습니다.

  

 

▲ 박석무     ©브레이크뉴스

 
그렇다면 다산은 친가·외가·처가가 모두 대단한 집안이었으니 말하자면 생래적으로 기득권층이자 부러울 것 없는 양반 가문으로 재주까지 뛰어나 과거에 합격하여 적당히 지내기만 했으면 대접받으며 편안하게 살아갈 모든 조건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산은 기득권에 안주하여 대접받으며 편안하게 살아갈 생각을 애초부터 지니지 않았던 관인·학자였습니다. 자나 깨나 어떻게 해야 잘못된 세상을 올바르게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인가에만 평생의 정력을 기울였던 사람이었다고 평할 수 있습니다.

   
고대 동양의 대표적인 시집인 『시경(詩經)』을 읽고 읊은 다산의 시를 읽어보면 금방 다산의 뜻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옛사람들 온갖 방도로 임금 마음 바로잡으려 했지
장님들 입으로 외고 악관들 거문고 타며 읊었다네
국풍·소아·대아까지 모조리 가져다가
곧장 임금 간(諫)하는 글로 여겼다네      
古人百計格君心 矇誦工歌被素琴 全把國風兼二雅 直須看作諫書林 「詩五首」 

  
『시경』에 대하여 읊은 다섯 편의 시 한 수입니다. 문학이자 예술로만 여기는 시는 근본 목적이 임금의 잘못을 꾸짖고 비판하는 내용으로, 그런 시를 장님들이 입으로 읊고 악기로 연주하여 임금들이 잘못을 뉘우칠 기회를 주기 위해서 저작된 것이 바로 시경의 근본 취지라고 다산은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자서전인 「자찬묘지명」의 글에서도 “시는 간림(諫林)이다”라고 말하며 통치자의 잘못을 간(諫)하고 비판할 내용이 없는 시라면 그것은 시가 아니라는 극단적인 주장을 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춘추필법으로 임금을 비판하는 역사책보다 더 무서운 것이 시라고까지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다산의 500여 권이 넘는 방대한 저술의 근본적인 목표는 나라가 제대로 바로 서고 임금이 잘못을 뉘우칠 자료를 정리한 것들이 아닐까라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임금의 잘못에 항의하고 꾸짖는 백성들이 없거나 임금에게 목이 쉬도록 간해주는 신하들이 없다면 결코 나라는 바르게 갈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지금의 대한민국 정부에서 함께 일하는 고위 관료, 어느 누구도 간하는 사람은 없이 통치자 혼자서 지시와 명령만으로 독주하고 있으니 어쩌란 말인가요. 안타까울 뿐입니다. 요순시대에도 간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는데 항차 요즘 세상에서야 말이나 되는 일인가요.

 

*글쓴이/박석무

· (사)다산연구소 이사장 · 고산서원 원장 · 성균관대 석좌교수, 칼럼니스트
· 저서
『다산 정약용 평전』, 민음사.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역주), 창비. 『다산 산문선』(역주), 창비.『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한길사. 『조선의 의인들』, 한길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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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애인먼저 댓글봉사단 2014/11/26 [11:35] 수정 | 삭제
  • 장님은 시각장애인을 비하하는 용어입니다. 시각장애인을 비하하는 단어 사용을 자제해 주세요. 장애인먼저 댓글봉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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