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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주기, 박 대통령·국회 “세월호 인양해야”..진상 규명 속도 붙나

임국정 기자 | 기사입력 2015/04/16 [15:11]

 

▲ 세월호 참사   ©김상문 기자

 

 

브레이크뉴스 임국정 기자= 온 국민의 가슴에 아픔을 남겼던 세월호 참사가 16일로 1주기를 맞았다. 각계 각층의 추모 물결은 끊이지 않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날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을 방문해 “필요한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해 가능한 빠른 시일 내 선체 인양에 나서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또한 박 대통령은 “우리는 지난 1년간 겪었던 슬픔에 좌절하며 그냥 주저 앉아 있을 수 없다. 이제 모두 함께 일어나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일에 힘을 모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이 있기까지 우여곡절은 깊었다. 처음은 세월호 피해자들과 유가족에 대한 동정 여론이 월등히 우세했다. 사건 당시 책임 기관의 적절치 못한 대응, 허술한 기준으로 오래된 선박을 일본으로부터 들여와 운영하면서도 제대로된 점검조차 하지 않았던 사실들이 속속들이 밝혀졌다.

 

관피아, 안전불감증 등 안에서부터 곪아들어갔던 문제들이 연이어 터져나오면서 국민과 세월호 유가족들은 한 마음, 한 뜻으로 철저한 진상규명과 안전 개혁을 외쳤다.

 

하지만 어느 순간 상황은 역전됐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희생된 아이들을 이용해 더 많은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들이 됐고, 세월호 인양은 혈세 낭비라는 여론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우선 세월호 진상조사를 담당할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유족들의 주장을 두고 수많은 정쟁이 벌어졌다.

 

이 때, 고 김유민 양의 아버지인 김영오 씨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요구하며 46일 간 단식을 하기도 했으나, 김유민 양의 삼촌이 김영오 씨가 그동안 김유민 양의 양육에 제대로 신경쓰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그 단식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 받기도 했다. 김영오 씨의 둘째 딸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삼촌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유가족들을 위한 피해보상대책 중 하나로 대학입학특례 및 세월호 희상자와 피해자를 전원 의사자로 지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정치권에서 흘러나오자 “유가족이 벼슬이냐”라는 말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일부 유가족은 폭행 사건에 연루되며 여론은 더욱 악화됐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결코 이러한 특혜를 유가족들이 바란 적도 없으며, 오직 진상규명만을 원한다고 외쳤으나 공허한 외침에 그쳤다. 결국 진상조사위원회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지는 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 등 일부 정치권으로부터 세월호 인양 반대 여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세월호를 인양할 때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과 추가 인명 피해 등을 우려해 반대를 표한 것이다. 이로 인해 진상 규명과 나머지 실종자들을 찾기 위해 그동안 당연한 일로 여겨져 왔던 세월호 인양조차 불투명해졌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국민적 관심이 줄어들자 결국 유가족들은 홀로 거리에 나섰다. 일부 세월호 유가족들은 지난 3월 4일부터 18일까지 보름 간 로스앤젤레스(LA)·뉴욕 등 약 10개 도시를 방문하며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간담회와 북 콘서트 등을 열기도 했다.

 

같은 시기 ‘세월호 특별법’에 따라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지난 3월 6일 안산 합동분향소와 진도 팽목항을 찾는 것으로 첫 공식일정을 시작했다. 하지만 세월호 특별조사위와 유가족들이 정부의 시행령 입법예고 과정에서 갈등을 빚으면서 현재 활동은 중단된 상태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세월호 참사 1주기인 16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세월호 선체의 온전한 인양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재석 165명 가운데 찬성 161명, 반대 2명, 기권 2명으로 가결시켰다. 이와 함께 박근혜 대통령도 조속한 인양을 공언했다.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던 세월호 인양 결정이 돌고 돌아 1년이 걸려 이뤄진 것이다.

 

이번 세월호 인양 결의를 계기로 돌아오지 못한 희생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고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 작업에도 속도가 붙게 될 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을 출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는 지난해 4월 16일 전남 진도군 병풍도 앞 인근 해상에서 침몰했다. 사고 당시 총 탑승객 476명 가운데 172명만 구조됐고, 295명이 사망했다. 9명의 실종자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특히 세월호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 324명이 탑승, 어린 학생들의 희생이 많아 전 국민에게 충격과 침통을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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