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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실천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채병률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5/04/24 [15:12]

요즘 누구나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라고 한쪽에서 말하면 상대는 반드시 호응하면서 나라걱정을 많이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국가가 흥하고 경기가 살아날 때에는 서로 아는 사이에도 목례로 지나치지만, 국가 내에 혼란이 생기고 경기가 지지부진할 때에는 자연히 주위의 가까운 사람들 사이보다는 낯도 잘 모르는 사람들과도 쉽게 한탄 섞인 말을 나누게 된다.

 

지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사건 때부터 대규모시위가 서울 한 복판에서 벌어져 민주사회 대낮에 폭력화, 거대집단화, 장기화로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치고 시청과 광화문 일대 도심의 기능을 마비시켰고, 급기야 지난 1주기 때에는 이것이 폭동으로 변질되었다.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국가사회에 막대한 손실을 주고 국민들에게 실망과 좌절감을 안겨 주는 심각하고 고질적인 병폐가 끊임없이 반복된다. ​이것이 민주화 및 인권 개선을 위한 투쟁일까? 아니면 무엇 때문에 이러한 병폐가 지속적으로 남아있게 되고 있는가? 이러한 병폐를 해소할 만한 국가 및 자치 행정기구는 자기 역할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의식적으로 회피하고 있는가?

 

▲ 채병률     ©브레이크뉴스

 

자연에서 개개인의 모든 동물들과 식물이든, 미생물이든 자기 종들이나 아종들에 속해 거대한 자연계에서 일종의 규칙이 존재한다. 혹여 일부 시각에서는 무지막지한 약육강식의 법칙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자연계의 지속적인 존재는 약육강식의 서로 잡아먹고 먹히는 갈등먹이사슬관계뿐만 아니라 자연계의 존재를 위해 서로 협력하는 관계도 분명히 존재한다. 오히려 서로 협력하는 관계가 더 근본적인 자연계의 존재 관계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연계와 필연적으로 연결된 인류사회에서도 개인이든 모든 계층이든 조직이든, 국가든 인류사회 모든 일에는 정도와 한계가 있고 경우가 있는 것이다. 리미트적인 정도를 지나치거나 임계 한계를 벗어나다 보면 반드시 생각지도 않던 재난과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특히 자연계의 한 구성성원으로서 인간은 영험한 뇌를 가지고 있어 그러한 재난과 극적인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 인과응보에 처하게 된다.

 

지난 4월 18일에는 소위 ‘세월호 국민대책회의’는 유가족들을 앞세워 서울 광화문 일대를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과격 시위를 주도하다 못해, 한 청년이 태극기를 불태워버렸다. 이 사건은 우리 국내 언론 및 방송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외신들에도 주요 기사로 다뤄졌다. 1만 여명의 시위대는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하라', '세월호를 인양하라' '박근혜 정권 끝장내자' '과도정부 구성하자'라는 과격한 플래카드를 펼쳐들었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그 x, 비행기에서 내리면 내가 찢어 죽이겠다, 비행기나 터져버려라”는 대통령 모독까지도 일삼았다. 시위대는 또 광화문 누각 앞 차도를 점거하다 못해 경찰버스 유리창을 부수고 차 안의 분말 소화기를 꺼내 뿌리거나 경찰 보호 장구나 경찰버스 등 공무용 수단들을 부셔버렸다. 한 야권 국회의원실에 근무하는 9급 공무원은 그 경찰버스에 성기까지 그리는 망동을 버젓이 자기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런 일들로 경찰버스 71대 등 경찰 장비가 파손됐고 시위대가 침입했던 차량에서는 의경들의 지갑 등 소지품 130여점이 사라지기도 했다고 한다. 시위대가 세워놓은 경찰차들을 뒤흔들고 부수는 등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거세게 밀어 붙이자, 경찰은 캡싸이신 최루액과 물대포를 쏘고 격렬 시위자 100명을 연행했다.​

 

이들이 저지르고 있는 반정부적이고 체제 전복적인 폭동이 과연 우리 사회의 정의를 위해 들고 나온 자연적인 민주 및 인권 침해를 해소하기 위한 활동일까? 이들은 세월호 사건이후 1년 여 의 기간 동안 어떻게 먹고 살았고, 이들의 가족들은 과연 어떻게 우리 사회에서 생명을 유지할까? 또 우리 치안 및 행정 자치기관들은 이들을 어디까지 관용할 것이고, 한계를 넘어서는 무지막지한 폭력 활동에 공권력은 언제까지 저들에게 얻어터지고만 있을 것인가?

 

시위 참가자들에게 묻고 싶다. 자기들이 불태우거나 태극기 앞에서 정당한 예우를 갖추지 않고 있는 통진당이나 야권의 일부 정의롭지 못한 이들까지도 이 땅에서 탯줄을 묻게 한 자랑스러운 내 조국이 있기에 오늘의 과격한 폭력적 행위까지도 할 수 있었다는 역사를 과연 잊고 있는가를... 당신들은 당신들이 무엇을 요구하기 전에 이 자유로운 세상을 있게 한, 태극기를 광화문 앞에서 자유롭게 치켜세울 오늘을 있게 한 선조들의 선혈이 얼마나 묻혀서야 민주와 인권이나마 마음대로 부르짖을 자유를 찾게 되었는가를 돌이켜 생각해보아야 한다.

 

인류사회 발전의 정의와 원리는커녕 참으로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고 날뛰는 일부 반정부·반체제 핵심세력들(종북주의자들), 그리고 그들과 결탁한 정치무뢰배들의 조종에 의해 세월호 유가족들은 저들의 달콤한 사탕발림에 넘어가 이 나라를 뒤엎으려는 병폐에 자기들 스스로 함정을 파면서 이용당하고 있다.

 

특히 야권의 양심적인 정치인들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여기에 성완종사건으로 여권의 현 정권 핵심방 8인 뇌물청탁사건이 터졌다. 이러한 사회정치적 혼란 속에서 폭도로 변해가는 "폭력시위대"의 한계를 넘는 폭력은 이 국가의 지속적인 발전과 미래 선진통일한국의 비전 그리고 이들이 주장하고 있는 사회의 정의와 민주와는 거리가 너무 멀다. 국가와 민주 사회가 이처럼 어려움에 처해 있는 현 상황에서 '어설픈 공정보도'나 내세우고 '설익은 인권잣대'나 들이대는 언론도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법무부(일부 판사들의 협소한 비공의로운 재판)가 올바른 정의와 자유민주주의 기준을 벗어난 멋대로 판결을 내린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

 

35년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이겨내고 70여년동안 자유민주주의 반공국가를 만들어 온 우리는 수백 년이 걸려도 불가능해 보였던 선진국화를 달성해 가고 있다. 그러나 오늘의 이 부강한 국가가 적의 수중으로 넘어가거나 군이 목숨을 걸고 나서기도 전에 언론과 일부 기형적인 재판관들로부터 찢겨지고 훼손당하고 있다.

 

이제라도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사회에 공의한 정의의 기치를 세워야 하고, 동시에 사회가 혼란에 빠지고 국가가 흔들리지 않기 위해 공의와 정의의 잣대, 인권과 부의 기준을 올바로 세워야 한다. 우리 국가가 태초에 만들어 놓은 헌법과 정의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공무원이든 기업인이든 사회의 약자든 함께 궐기해야 한다.

이제는 더 이상 무질서한 한계를 넘어서는 부정의 폭력시위와 사회의 혼란과 국가의 붕괴를 자처하는 온갖 행태를 우리는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진정한 국가와 사회의 모든 성원들에게 진정한 삶의 질이 향상되는 정의와 공의가 바로 서게 하고 이를 실천할 실질적인 규제와 조례들이 바로 세워지도록 적극 협력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보다 적극적으로 그 어떤 정치인의 야욕과 이권을 틈탄 일부 언론 및 방송들의 후안무치다운 시청률 위주의 비공정한 보도가 우리 사회에 절대로 존재하지 못하도록 서로 엄정한 잣대를 세우고 감찰해야 한다. 이제 내부에서 우리끼리 갑론을박할 시간이 없다. shm365@hanmail.net


*필자/채병률. 실향민중앙협의회장.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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