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깡촌에서 뛰어놀던 13살 소년이 김천교도소 소년교도소에 갇혔다. 소년원은 죄가 가벼운 미성년들을 교화하는 곳인데 반하여, 죄명이 심상치 않는 소년들은 소년교도소에 가두었다.
1982년 경 삼중스님은 김천에 있는 절의 주지를 지냈다. 그러니 자연히 잡아끌어 당기는 김천 소년교도소에 발걸음을 했다. 그런 연유로 착한 모범 소년수와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그의 이름은 김용덕, 대대장이라는 직책이 잘 어울리는 의젓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인물이 훤칠한 김용덕은 7년째 소년교도소에서 꼬맹이가 청년으로 변했다. 교무과장의 칭찬은 대단했다.
“13살 꼬마가 어쩌다 사람을 죽였어요. 그 사연이 참으로 슬픕니다. 15년을 구형받아 7년째 저희랑 같이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7년 동안 한 번도 면회 오는 사람이 없으니 저희들 눈에도 참으로 딱해 보입니다.”
부친 약값 구하러 갔다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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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고향은 전라남도 목포에서 더 아래인 함평군 청계면 아주 촌구석이었습니다. 그 녀석은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날마다 편지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소년교도소에는 한 번도 그 녀석에게 면회를 신청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얼마나 끔찍한 일을 저질렀기에 면회도 오지 않는지....... 아무리 그렇다 치더라도 한국의 어머니라면 자기 자식을 끌어안았을 텐데.......”
삼중스님은 김용덕의 가정사에 궁금증이 많았다. 13살 꼬마 녀석이 어떤 사건을 저질렀기에 7년 동안 식구들에게도 외면을 당하고 있는지 이상했다. 김용덕을 좋아하는 교무과장의 설명으로는 어딘지 부족함을 느꼈다. ‘아마도 하도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오지 못할 겁니다.’ 여전히 삼중스님은 궁금했다. ‘아무리 촌이라고 하더라도 김천까지 올 형편이 안 되는 가정이라면 얼마나 못살기에. 우리네 모성이라면 딸라 빚을 지더라도 자식을 보러 올라올 만한데........’
삼중스님은 그의 고향 면사무소에 연락을 해봤다. 그의 가정은 ‘극빈자’로 등록되어 있었다. 면사무소의 직원들에게 얻은 정보는 ‘일자무식’ 어머니에 대한 내용이었다. 자식이 보고 싶어 환장을 하면서도 아들이 있는 방향을 쳐다볼 뿐, 고향 밖을 한 번도 나오지 못한다는 딱한 사연이었다.
“그의 고향으로 당장 내려갔습니다. 그 시절의 내 몸은 그냥 움직이는 제트기였습니다. ‘가자’하는 생각이 들기만 하면 장삼바람을 타고 곧장 실행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의 집을 보니 폭탄 맞아서 폭삭 내려앉은 집 같았습니다. 그 표현이 아마 적당할 것입니다. 세상에 이런 집도 있나 할 정도로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런 초라한 집을 보았습니다. 집이라는 표현은 적당하지 않고 그냥 움막집보다도 못하더군요. 그 집에 들어서니 어머니가 나오더군요. ‘누구세요’하는 말에 ‘나는 용덕이가 있는 곳에서 온 스님입니다.’하는 말을 듣자마자 바닥에 꼬꾸라지더군요. 설움에 복받쳐서 쓰러지고 또 울면서 쓰러졌습니다. 나이는 56살 정도였지만 80살 정도로 보이는 용덕 어머니의 울음은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자식은 매일 봐도 싫증이 나지 않지요. 그런데 그 보고 싶은 자식을 7년 동안 보지 못했지요.”
“죽지못해 송장처럼 살고 있지요”
어머니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삼중스님에게 매달렸다.
“어머님! 지금 저랑 같이 가시지요”
“내가 글을 몰라요. 나를 내 자식이 있는 곳까지 데려다 줄 사람이 없습니다. 돈도 없어요. 그 불쌍한 자식을 7년을 못 보았지만 죽지도 못하고 송장처럼 살고 있지요. 그 쪽 산을 바라다만 보면서 아들 건강하기만을 기도하고 또 기도해요.”
“그래서 제가 왔습니다. 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택시도 대절해 놓았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마시고 그만 우십시오!”
“내 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정말로 불쌍하게 컸지요.(울음) 아비는 당뇨병으로 병원비 한 푼이 없어서 약 한 번, 병원 한 번 가지 못했지요. 할딱거리면서 죽어가는 아버지 모습을 가장 불쌍하게 지켜본 녀석이 용덕이었어요. 돈만 있으면 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는 생각에 돈을 구하러 뛰어나가더라고요. 미처 말릴 사이도 없이 어린 나이에 거리를 돌아 다녔나 봐요. 그런데 마침 동네 쌀가게에서 주인 아줌마가 돈을 세는 게 눈에 들어왔던 거예요. ‘저 돈만 있으면 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는 생각에 몰두하여 그만 주인 아줌마의 돈을 낚아챘나봐요. ‘도둑이야!’하는 고함소리와 함께 다리를 붙잡고는 놓치는 않았나 봐요. 어린 녀석이 탁자 위에 놓여 있는 둔탁한 물건으로 아줌마를 내리쳤어요. 어린 나이에 내리쳐 봤자 얼마나 세게 쳤겠습니까? 그래도 살이 끼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옛말이 맞았나봐요. 그때, 불쌍한 용덕이가 살인자가 되었습니다.(울음)”
어린 아들이 살인자로 소년교도소에 갇히자 아버지는 충격으로 돌아가셨다. 가난이 죄였다. 삼중스님은 영업용 택시에 어머니를 태웠다. 그 불쌍한 아들만 생각하면 상처기에 난 가슴에 소금을 뿌리 듯 쓰리고 또 쓰렸단다. 어머니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택시를 탄지라 차멀미로 엄청나게 시달렸다. 그런데다 목포 아래쪽 촌에서 김천까지 먼 거리의 여행은 어머니를 심하게 상하게 했다. 용덕이를 좋아하는 교무과장은 모자의 상봉을 위해서 특별 면회실을 마련해 주었다. 서로 부둥켜 앉은 채 얼굴을 부비는 모자의 모습은 심금을 울렸다.
“아니! 엄마! 왜 이리 늙었어? 왜 이리 할머니처럼 됐어? 왜요? 아팠어?”
“아이고~ 내 아들아~ 아이고~ 불쌍한 내 아들아~”
모자는 부여 앉은 채 양손으로는 서로의 얼굴을 만지고 또 만졌다.
“엄마~ 내 걱정 때문에 이리 늙어버렸어? 엄마, 그 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기에 이리 늙었어?”
아들은 어머니의 늙은 모습을 보자 통곡을 했다. 소년교도소에 있는 아들은 어머니 손에 돈을 쥐어 주었다. 삼중스님은 아들의 효심에 감동했다. 7년 동안 교도소 담 안에서 작업수당을 해서 모은 돈이란 정말로 귀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교도소 내에서도 생필품을 사야한다. 작업수당으로 번 돈을 아껴서 써도 모자랄 판에 김용덕은 어머니에게 돈을 준 것이다.
“모자의 눈물겨운 상봉은 보는 사람들마다 눈물을 쏟게 했습니다. 서로 뒹굴면서 우는 모자의 피눈물은 지켜보는 이들의 가슴을 적셨습니다. 용덕이가 7년 동안 저금한 돈을 어머니께 드리는, 그 효심에 그만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 아이를 가석방 시켜야 되겠다!’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15년 형을 7년 만에 가석방시키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비상수단을 강구했습니다. 그 어머니의 참담한 생활을 직접 내 눈으로 보았기에 더욱 용감해졌습니다. 어머니를 더 이상 굶어 죽지 않도록 모자가 행복한 한 지붕 밑에서 살게 하고 싶었습니다.”
삼중스님은 법무부 장관에게 감형이라는 선처를 호소하기 위해 탄원서를 작성했다. 이런 탄원서 작성에 대한 소문이 김천 교도소의 소장의 귀에 들어갔다. 소장은 스님과 절친한 사이였다. 의식 있는 사람으로 전말이 밝은 사람이라서 서로는 잘 통했다. 그런데 소문의 원천자인 스님을 만나자마자 대뜸 탄원서를 중단하라고 강요했다.
“아니 스님! 누구 옷을 벗기려고 하십니까? 제게 무슨 감정이라도 있으신가요?”
소장은 삼중스님 면전에서 예전과는 사뭇 다른 태도로 말했다.
“네? 무슨 말씀입니까?”
박정수 당시 국회의원이 탄원
영문을 모른 삼중스님은 소장의 냉랭한 모습이 이상했다.
“진정서를 법무부 장관에게 제출하신다면서요. 그러면 제가 직무상 추궁을 당합니다. 까닥 잘못하면 옷을 벗게 되요.”
삼중스님은 그제야 앞뒤 말의 짝을 찾을 수 있었다.
“외부 사람이 탄원하면 제가 직무를 소홀히 한다는 생각을 상부에서 할 수 있습니다. 교도 행정을 어떻게 했기에 외부에서 탄원까지 하느냐는 질책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아니 스님! 내가 더 중요하지 그 소년수가 더 중요합니까? 그 아이는 교도소 안에 더 있다 나가도 되지 않습니까? 첫 부임지로 발령받은 저에서 이리 하셔도 되나요?”
소장은 이말 저말 횡설수설했다.
“아니 소장님! 듣다 보니 심한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탄원하면 소장님이 불이익이 난다고 탄원을 못하게 하시는 경우가 어디 있습니다. 불쌍한 어린 생명과 그 어머니의 생각을 해 보셨나요. 내가 소장님과 절친하게 지냈지만 저는 공과 사는 가려서 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소년을 택했습니다. 작성된 탄원서는 반드시 법무부 장관에게 제출할 것입니다.”
단호하게 거절하는 삼중스님을 향해서 소장은 못마땅한 심기를 내비쳤다.
“그래도 그렇지 이래도 되는 겁니까? 저하고는 한 마디 상의도 없이 기어이 탄원서를 다 작성해 놓으셨다고요?”
“탄원서를 제출했다고 해서 소장님을 탓하는 질책은 잘못된 행정이죠. 탄원서와 소장님과는 전혀 연관을 짓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뜻을 굽힐 수 없습니다.”
삼중스님은 소장의 완곡한 요청을 비정하게 거절했다. 삼중스님은 불쌍한 모자가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고자 열심히 뛰었다. 그 지역의 국회의원을 만났다. 김천은 공화당 지역구인지라 박정수 국회의원의 힘은 대단했다. 삼중스님은 박정수라는 실명을 꼭 밝혀달라고 했다. 그 시절 집권당의 실세인 박정수 의원과 삼중스님은 서로 좋아하는 사이였다.
“박정수 의원의 아내도 국회의원을 지냈습니다. 부부는 대학교수 출신들이예요. 우리 정치 풍토에는 잘 맞지 않는 분들이었어요. 내가 김용덕 소년수의 탄원서를 들고 박 의원을 찾아 갔어요. 사정에 대한 전후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가 박 의원을 찾아 온 이유는 ‘법무부장관을 만나려 함께 가자.’고 요청이었습니다. 박 의원은 법무부장관과는 자주 어울리는 친한 친구였습니다. 그런 제안에 박 의원은 따뜻한 답변을 했습니다. 박 의원이야말로 올바른 정치인이었어요. ‘우리는 이런 일들을 해야 한다.’면서 쾌히 승낙을 했습니다.”
삼중스님과 박정수 의원은 의기투합했다. 법무부 장관에게 소년수의 전후사정에 대한 설명은 박 의원이 하기로 했다. 박 의원이야말로 흔히 말하는 정치인들과는 사뭇 달랐다. 두 사람은 약속날짜를 잡았다. 그런데 약속 날 하필이면 박 의원에게 긴급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김영삼 야당대표를 국회에서 제명하는 투표일이 갑작스레 발표가 되었다. 우연히 약속시간인 10시가 겹친 것이다.
“박 의원은 집권당으로서 당연히 국회에 들어가서 투표를 해야 했지요. 그런데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도 박 의원은 소년을 위한 약속을 지켰습니다. 참 대단한 분입니다. 나야 당연히 나오시지 못한다는 생각에 법무부 장관실을 들어가려고 하는데, 헐레벌떡 뛰어오는 박 의원을 보았습니다. 오지 않는 게 당연하고, 또 못 온다고 해도 누가 욕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박 의원은 약속을 지켰습니다. 세상에 이런 국회의원도 있습니다.”
박정수 국회의원은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는 초대 외무부장관을 할 정도 덕망 있는 사람이다. 헐떡거리면서 뛰어오는 박 의원을 보니 삼중스님은 깜짝 놀랐다. 그리고 감동했다.
“아니 스님! 왜 그리 놀래십니까? 제가 못 올 때라도 왔습니까?” 눈이 휘둥그레져서 놀래는 삼중스님을 보면서 박 의원은 웃었다.
“아니! 어떻게 빠져나왔습니까? 저는 당연히 못 오시는 줄 알고 있었는데요. 그러다간 징계먹지 않겠습니까?”
삼중스님은 오히려 박 의원을 대신해서 걱정이 되었다.
“스님! 가장 좋은 순간을 스님 혼자 가게해서 되겠습니까? 제가 옆에서 좋은 소식을 들어야지요.”
“박 의원이야말로 이 시간에 국회에서 투표를 해야 할 시간이지 않아요. 결의하는 시간에 이리 나와도 되겠습니까? 그러다 의원직에서 제명되시기라도 하시면 어쩌시려고요.”
“스님! 저는 국회의원이기 전에 인간입니다. 인간 박정수는 스님과의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어린 소년수의 미래가 달려있지 않습니까? 그 좋은 일을 스님 혼자서 한다면 제가 섭섭합니다. 자~ 늦었으니 빨리 들어가시죠.”
법무부 장관실에서의 대화는 잘 풀렸다. 불쌍한 소년수의 아픔에 함께 동참했다. 김용덕은 드디어 그해 12월에 가석방되었다. 양복재단사의 1급 기능사로 대구의 한 양복점에 취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잘 산다는 소식은 어떤 다른 보답보다 값진 포상이었다.
“그 해는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낸 기억이 납니다. 박 의원과는 그 전부터 친했지만 더욱 친하게 지냈습니다. 박 의원은 ‘스님! 우리 같이 좋은 일을 해야 합니다.’는 말을 했습니다. 빈말이 아니었습니다. 진실 된 마음에서 나온 말입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외무부장관을 지내는 그 시절에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국민을 사랑하는 정치인입니다. 그와 같은 정치인들이 많아야 합니다.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비난을 전혀 받지 않을 때도 그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사람들 대부분은 비난을 받을 소지가 있을 때 그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그의 신사적인 모습을 잊지 못합니다. 정치인이라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sungae.kim@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