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척을 찾아볼 수 없는 오전 3시30분. 영하 11도로 매서운 한파가 불어 닥친 12일 양천구 신정동 신정네거리역 주변은 썰렁함마저 감돌았다. 곧 트럭이 한 대 도착하고 50대 아저씨 두 사람이 내렸다. 익숙한 몸놀림으로 트럭에서 기둥을 내리더니 금세 뚝딱하고 천막이 만들어졌다. 1970년대부터 40년 가까이 자생적으로 형성된 신정네거리 인력시장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40년 역사의 인력시장
천막을 다 완성하고 나니 4시 반이 지나 있었다. 기둥도 세우고 난로도 설치하고 하다 보니 빨리 움직였는데도 1시간이 넘게 걸렸다. 재빠른 몸놀림으로 천막을 세우던 두 아저씨는 땀이 나는지 팔을 걷어붙이고 외투도 벗어던졌다. 전구를 끼우고 전기난로가 작동되자 열기가 돌아 천막 벽에 뿌옇게 김이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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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가 지나자 인부들이 춥다고 너스레를 떨며 하나 둘씩 천막 안으로 들어섰다. 이른 시간에 추운 길을 걸어온 인부들은 몸을 녹이기 위해 난롯가에 모였다. 서로에게 인사를 하며 “어디 갔다 왔냐? 요즘 안 보이더라”고 안부를 묻기도 했다. 천막 안에 모인 인부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눴다.
신정네거리 인력시장은 지난 1970년대 신정동 일대에 소규모 단독 주거시설인 신정단지가 조성되면서 철근ㆍ콘크리트ㆍ목공 등 전문 건설 인력이 집결하는 곳이 됐다. 이곳은 인력사무소가 일을 중계하는 곳이 아니라 주로 현장업자와 사전 선약된 일용직 근로자들이 만남의 장소로 활용하는 공간이지만, 일부는 막연히 일거리를 구하기 위해 나오기도 한다.
예전에는 새벽이면 150~200명 정도가 모여 일자리를 찾아갔지만 요새는 많아야 100명, 적으면 40명 정도 이곳을 찾으며 그나마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허탕 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도 그전까지는 몸 녹일 데가 없어 직접 모닥불을 피우거나 아니면 추위에 떨며 기다렸지만, 지난해부터 양천구청에서 오전 4시부터 7시까지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천막을 설치해 근로자들이 대기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매서운 한파에 일자리 '꽁꽁'
“요새 날씨가 추워도 너무 추워. 저번 주에 비하면 오늘은 오히려 시원한 거지. 그래도 어지간해야 일이 있는데”
요새 일거리가 자주 있냐는 물음에 홍모(57) 씨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지난 4일에 쏟아진 폭설로 인해 안 그래도 없던 일이 더 줄었다고 한다. 홍씨는 “원래 겨울에 일이 없다”며 “여름에 벌어놓은 걸로 겨울까지 먹고 살아야 하는데 벌이가 시원찮은 나 같은 사람은 이렇게 추워도 일을 찾아야지 별 수 있겠냐”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는 “tv나 신문에서는 경제가 좋아졌다고 떠들어 대지만 이곳에서 그것을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가족들 눈치가 보여 매일 새벽에 나오지만 차비도 감당하기 힘들다”고 한숨을 쉬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매일 일자리를 찾아 이곳에 나온다는 박모(55) 씨도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그는 “겨울에도 많이 올 때는 100명도 넘어 천막이 북적거리지만 요새 같이 날씨가 추운 때는 사람이 많지 않다”며 “폭설까지 겹치는 통에 아주 죽을 맛”이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오늘은 그래도 좀 나은 편이라고 다시 입을 열었다. 박씨는 “폭설이 내렸던 저번 주는 오늘의 반도 안 왔는데 그나마도 일 나간 사람은 손가락에 꼽았다”고 전했다. 또 그는 “사람마다 일하는 날은 다 다르다”며 “한 달에 20일쯤 일하는 사람도 있고 5일도 못 나가는 사람도 있다”며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입에 물었다.
인력 시장 수요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건설 산업이 침체의 늪에 빠진데다 최근의 폭설과 매서운 한파로 그나마 있던 인력 수요마저 뚝 끊겨버려 인부들의 체감경제온도는 최저였다.
돈 못 받기도 하지만
현장에 나가기로 사전 선약이 돼 있다던 정모(49) 씨는 6시가 다 돼 오도록 천막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연락을 한다던 시간이 지났는데 업자의 전화가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정씨는 “미리 약속을 잡긴 하지만 사정에 따라서 취소되기도 한다”며 초조하게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는 “사실 일을 나가도 일당을 못 받는 경우도 있다”며 “돈을 그날 지급해야 하는데 경기가 어려워서 두세 달 뒤에 주는 데도 있지만 뭐라고 할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곧 전화가 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일을 못 나가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일을 나가기만 하면 일단 다행이다. 그래도 눈이 이제야 좀 녹아 어제‧오늘은 일이 좀 있다”며 “1월 달이 제일 추우니까 좀 지나면 나아지지 않겠냐”고 말하고는 장비를 챙겨야 한다며 총총히 사라졌다.
오전 6시가 넘어서자 천막 안은 한산해졌다. 그래도 이날은 50명 정도 모였다가 반 정도는 일자리를 찾아 나갔다. 그러나 일자리를 얻지 못한 인부들은 천막을 거둘 시간이 다 됐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리를 뜨지 못했다.
난롯가에 모여 천막이 해체되는 걸 지켜보던 몇 사람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남아 있던 인부들은 “나가는 사람만 나가고 못 나가는 사람들은 그냥 죽치고 앉아 있다. 이 시간에는 허탕 친 사람들만 남는다”며 “능력이 없어서 그런가 보다”고 울음 섞인 농담을 던졌다.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던 인부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길거리로 나섰다. “추운데 소주나 한 잔 하자. 내일도 춥다는데 겨울은 언제 지나가는지”
아직 해가 뜨지 않았다. 길거리에 눈은 없어졌지만 바닥에 갈라진 틈에는 얼음이 꽁꽁 얼어 녹지 않고 있었다. 천막 안에서 새어나오는 불빛도 인부들이 하는 세상에 대한 탄식도 지나가는 사람들은 익숙한 듯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2010년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지만 인력시장의 체감온도는 몇 년 만에 찾아왔다던 추위보다도 더 뼈에 사무치게 추웠다.
문지혜 기자 dndn1010@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