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 상철씨는 내 팬클럽 회원이자 xx신문 편집차장이다. 나는 김 차장에게 빚이 있다. 돈을 빌려 빚이 아니라 자기들 모임에 강연을 한번 해주겠다고 약속한 빚이다. 자기들 모임이란 유명다단계회사에서 머지 않아 다이아몬드를 달 사람들의 커뮤니티를 말한다. 더 이상 도저히 미룰 수가 없어 지난 달 주말 저녁 시간에 강연을 하러 갔다.
초행이라 길이라 염려가 되어 좀 빨리 출발을 했더니, 약속 시간보다 약 20분 정도 빨리 도착했다. 머지않아 다이아몬드를 달 남녀프로 스무명 정도가 모여 있었다. 내 강연은 저녁 8시로 잡혀 있는데, 그들은 오후 6시부터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김 차장이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나는 현관 입구 구석 자리에 살그머니 앉았다. 김 차장 또래의 삼십대 후반의 젊은이가 “내가 다이아몬드가 되면”이란 주제로 야심찬 인생 설계를 발표하는 중이었다. 알고보니 그이가 발표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이의 인생 설계를 다 들을 수 있었다. 내가 듣기에는 인생 설계라기보다 꿈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의 꿈은 크게 여섯 가지였다. 첫째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과 아내와 셋이서 취미 생활을 같이 하고 싶다. 그가 하고자 하는 취미 생활은 석궁이었다. 둘째 지금 스물 몇평 아파트에 사는데 다이아몬드가 되면 오십 몇평 짜리 아파트에 살고 싶다. 셋째 지금 쏘나타 투를 타고 다니는데 비엠더블류 뭘로 바꾸고 싶다. 넷째 서울 근교에 텃밭이 약 삼백평 정도 딸린 전원주택을 갖고 싶다. 다섯째 여름 방학이면 밴쿠버 해안 도로를 온 가족이 드라이브를 하고 싶다. 여섯째 겨울이면 알프스로 여행을 가고 싶다.
그는 조리있게 자기 꿈을 말했다. 그의 발표가 끝나자 청중들은 환호하면서 박수를 보냈다. 나는 예의로 손뼉을 몇 번 치는 둥 마는 둥 했다. 화장실 다녀 올 사람은 얼른 다녀오라면서 잠시 휴식 시간을 마련했다.
2.
내가 강연을 할 차례가 되었다. 아까 꿈을 발표했던 젊은이가 섰던 자리에 내가 섰다. 김 차창이 자기 딴에는 나를 최대한 대단한 사람처럼 보이게 하려고 소개를 하였다. 그런데 더러 더러 과장된 표현을 하는 바람에 나는 듣고 가만히 있기다 좀 민망하였다. 내 소개가 끝난 뒤 내가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지동파입니다. 김 차장이 저를 과장스럽게 소개를 하는 바람에 옆에서 모른체 하고 듣고 있기가 쑥스러웠습니다....오늘 제가 강연을 하기 전에 미리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 말은 조금 전에 젊은 분께서 자신의 꿈을 발표하는 것을 듣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야말로 즉흥적으로 생각한 것을 먼저 말씀 드리겠습니다.
미리 말쓸 드리지만 저는 저분과 아무런 감정도 없는 초면입니다. 그리고 저분 개인을 비난할 아무런 이유도 없습니다. 다만 예를 들기 위해서 저분의 꿈에 대해서 제 의견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저분의 꿈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 마누라와 내 새끼하고 잘 먹고 잘 살겠다.입니다.“
갑자기 분위기가 바싹 긴장하는듯 했다. 나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저런 꿈을 초등학교 밖에 안 나온 사람이 꾸고 있다면 용서해 주겠습니다.”
분위기가 긴장의 도를 넘어 냉냉해졌다. 나는 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저런 꿈을 중학교 밖에 안 나온 사람이 꾸고 있다면 용서해 주겠습니다.”
분위기가 냉냉한 살벌해졌다. 나는 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저런 꿈을 고등학교 밖에 안 나온 사람이 꾸고 있다면 용서해 주겠습니다. 왜냐면 배운게 부족하여 무식하니까 하고 용서해 주겠습니다.”
분위기가 살벌의 도를 넘어 뭐가 한 개 날라 올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 저런 꿈을 꾼다면 절대로 용서할 수 없습니다!”
뭐가 한 개가 아니라 여러 개 날라올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 겨우 내 마누라와 내 새끼하고 잘 먹고 잘 살겠다면, 우리 사회가 어찌 발전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이 편리한 과학 문명만 해도 겨우 자기 마누라와 제 새끼 하고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사람들 때문이 아닙니다. 내 나라 내 민족을 뛰어 넘어 인류와 세계 평화를 위한 원대한 꿈을 가진 사람들 피와 땀과 눈물의 결실이 오늘 우리가 누리는 과학문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신통하게도 그때까지 하나도 날아오지 않았다. 나는 뭐가 날아오기 전에 결론을 맺기로 했다.
3.
한 옥타브 쯤 낮추어서 결론을 말했다.
“오늘 제가 한 수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저분이 발표한 여섯까지 꿈은 지극히 이기적인 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 여섯가지 꿈이 이기적인 꿈이 되지 않는 방법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여섯 가지 꿈에다 한 가지 꿈을 더 보태는 것입니다. 일곱 번째 꿈을 말하는 것입니다. 일곱 번째 꿈을 말하면 여섯 가지 꿈과 하나의 꾸러미가 되어 꿈의 성격이 변하고 말 것입니다.”
이제 아무 것도 날아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정상적인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저라면 일곱 번째 꿈을 다음과 같이 말하겠습니다. 제가 만약 다이아몬드가 되면 제 소득의 십분의 일, 아니, 이십분의 일, 아니 그것도 많습니다. 삼십분의 일을 떼어서 소녀 가장을 돕는데 보태거나, 치매 노인을 돕는데 보태거나, 버림 받은 강아지를 키우는 아주머니를 돕는데 보태겠습니다.”
내가 약간 신파조로 읊어서 그런지 난데없이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그 뒤에 서둘러서 준비해간 원고대로 무사히 강연을 마쳤다.
4.
강연을 마치자 제일 좋아하는 것은 김 차장이었다.
“선생님, 오늘 강연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이 나랑 사진을 찍겠다고 했다. 못 이긴 척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러자 뒤에 있던 사람들도 앞으로 나와서 사진을 찍었다. 어떤 사람은 싸인을 해달라고 했다. 그 모임의 대표가 내게 다가와서 정중하게 말했다.
“그 동안 유명 강사들의 강연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처럼 감동을 뛰어 넘어 감격적인 강연은 처음입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
나는 좀 멋쩍어서 옆에 있는 김차장에게 물었다.
“김 차창님, 방금 대표님께서 하신 맨트가 나 듣기 좋아라고 날린 접대용 맨트지요?”
김차장은 눈을 휘둥그레 하면서 손을 저으면서 말했다.
“아닙니다. 선생님. 접대용 맨트라뇨. 무슨 그리 섭섭한 말씀을 다 하십니까!”
나는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들도 따라 웃었다.(www.songhy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