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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지도층인사란 무슨 얼어죽을 지도층인사인가?

송현 시인이 본 아름다운 세상

송현(시인. 한글문화원장) | 기사입력 2010/06/28 [06:10]
 1.
특히 언론에서 「사회지도층」 혹은 「사회지도층인사」라는 말을 많이 한다. 나는 이런 표현 하는 것을 볼 때마다 엄청 기분이 나쁘다. 지금 때가 어느 땐데 이런 시대착오적인 얼빠진 말을 한단 말인가! 국민을 군대 졸병쯤으로 착각하고 이런 넋빠진 소리를 하는지, 아니면 국민의 수준을 얼마나 얕보고 이 따위 소리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는 마치 독재자 박정희가 제 부하의 총에 맞아 죽었을 때 「시해弑害」라는 표현을 마구 쓰는 것을 보고 기분 나빴던 것과 비슷하다. 시해는 무슨 얼어죽을 시해냐! 

「남 영신 국어사전」 「김민수. 홍웅선 국어사전」에 「시해」를 찾아보면, 「시살弑殺」로 가라고 하고, 「시살」에 가보면 「부모나 임금을 죽임」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처럼 시해란 왕조시대에 쓰는 말인데, 박정희 대통령이 제 부하 총에 맞아 죽은 것이 어째서 「시해」냐? 

박정희가 언제적 사람이냐! 삼국시대 혹은 고려시대 아니면 조선시대 왕이었단 말인가? (주: 「시해」를 대통령이 죽었을 때도 쓰는 말이라고 풀이해놓은 사전이 혹시 있다면, 그 사전 풀이가 잘못되었다. 그렇게 풀이한 자가 말 뜻을 잘 몰랐거나, 아니면 비겁해서 그랬지 싶다. 학문도 제대로 하려면 용기가 있어야 하고, 어쩌다 용기없는 작자가 학문을 하다보면, 이렇게 금세 탄로날 잘못을 저지를 수 밖에 없고, 이런 자들은 목숨 부지하려면 곡학아세 안 할 수가 없다.)

링컨이나 케네디가 죽었을 때,「시해」란 표현을 쓰지 않고 「암살」이라고 했다. 그 두 사람은 왕이 아니었고 대통령이었다. 왕이란 말과  대통령이란 말의 뜻은 전혀 다르다. 어떤 나라나 왕조의 최고 높은 자리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 시대 배경은 전혀 다르다.

흔히 「민비 시해」라는 표현을 한다. 이 표현은 맞다. 그런데 박정희가 죽은 것은 시해가 아니다! 부하 김 재규가 박정희 먹는 음식에 독약을 타서 쥐도 새도 몰래 죽인 것이 아니라, 대통령 비서실장 김계원, 경호실장 차지철, 가수 심수봉, 그리고 신 재순인가 하는 여자 등이 빤히 보는 앞에서 당당하게 권총으로 쏘아 죽였다. 이는 「사살射殺」이다!  그 무렵 일본 무슨 신문에는 분명히 「사살」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고는 역시 일본 언론은 우리나라 언론보다 정직하고 정확하게 표현했구나 생각했다.

얼마 전 까지만 언론에서 다들 「대통령 영부인」이라고 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시대착오적이고 아첨성 표현 안 하지 않는가! 「대통령 영부인」이 아니라 그냥 「대통령부인」이다! 요거 하나 바뀌는데 수십년이 걸렸으니, 이것 하나만 봐도 이 나라 언론 수준이 얼마나 낮고, 용기가 없는지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가령, 지식인이나 언론들이 권력에 아첨하려고, 혹은 바른 말하다 다칠까 겁이나 이런 얼빠진 표현을 쓰는데도 누구도 그게 틀렸다고 말 한마디 못하고 가만히 있으면, 그놈도 얼빠진 놈이거나 겁쟁이 아닌가?  조선시대만 해도, 사약이나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니오!」 할 때 「아니오!」하는 용기 있는 선비들이 씨가 마르지 않고 더러 있었다. 생육신이니 사육신이니 하는 분들이 바로 그런 표본이 아닌가. 

박정희 죽었을 때, 여기 저기서 「시해」라는 얼빠진 표현들을 마구 써댔지만, 그 흔해빠진 교수나 언론인 중에 어느 한 놈도 「시해란 왕조시대 임금님이 죽었을 때 쓰는 말이다.  박정희는 임금이 아니고, 대통령이다. 그러니 시해란 잘못된 표현이다!」라고 용기 있게 말 하는 것을 나는 못 보았다. 이게 다 그 시대의 지식인과 언론인이 얼마나 비겁했는가를 웅변으로 증명하는 한 부분이다.

말은 할 수 있는 데까지 정확하게 표현해야 한다. 적절한 단어가 없다면 몰라도, 그 상황, 그 시대에 맞는 말이 있는데도, 바로 표현하지 않고 엉뚱하게 한다는 것은 무슨 변명을 하더라도 정당화할 수 없다. 말을 할 때, 어떤 단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사상과 감정이 그 단어에 묻어나오는 법이다. 

가령, 「본인」이라고 하는 것과 「나」라고 하는 것과 「저」라고 하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어떤 단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사상이나 감정만 묻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상대와 관계, 그리고 그 시대 배경까지 묻어나오는 수가 있다. 가령, 자신을 「소신」,혹은 「신첩」이라고 한다면 그 말에는 벌써 상대와 주종 관계임이 묻어 나오고 시대 상황도 묻어나온다. 이런 말은 왕조시대에 쓰는 오래 전에 죽은 말이다. 텔리비젼 사극 「왕과 비」나 「왕건」 등에 나오는 말이다. 이처럼 「시해」란 말도 임금이 죽었을 때 쓰는 말이지, 대통령이 죽었을 때는 쓰는 말이 아니다! 그래서 이런 얼빠진 표현은 죽은 박정희를 한때나마 더 욕되게 했고, 나라와 국민을 욕되게 했다.

국어 사전만 찾아보면 금세 알 수 있는 이런 상식을 그 무렵의 지식인이나 언론들이 몰라서, 「시해」라는 단어를 썼을까? 결코 아니다.그때, 언론과 지식인들이 너무나도 비겁했기 때문이다. 비겁했을 뿐 아니라 정직하지도 않았다. 왜냐면 그런 자들이 비굴하게 살아남는 길은 권력에 아첨하는 길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더 한심하고 가소로운 것은 그때 「시해」 운운 하는 이런 사소한 문제조차도 용기 있게 지적하지 못하고, 바로 말하지도 못하던 치들이, 박정희 죽고, 전두환 물러가고, 노태우 물러가니까, 그제사 너도 나도 방송이고 잡지에 나와서 민주화 어쩌고, 언론자유 어쩌고 하면서, 떠드는 꼬락서니들이다. 이런 대학교수(지식인) 이런 언론인들은 진짜 나쁜 놈들이다.

군사 독재시절에 용기 없어 바른 말 한 마디 못했으면, 잡지나 방송에 나와서 떠들고 설칠 것이 아니라, 평생 입 다물고 죄인처럼 속죄하거나 부끄러워하며 살아야 한다. 아마, 이런 비겁하고 교활한 놈들이 서부개척시대에 살았다면, 보나마나 「등 뒤에서 총질」도 밥 먹듯이 하고도 남을  비겁한 놈들이다. 늦었지만, 반드시 「일제청산」을 해야 하듯이 「현대사 왜곡」도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  

2.
지도(指導)란 “가르치어 이끄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 신문이나 잡지, 언론에서 걸핏하면 「사회지도층」이니 「사회 지도층인사」란 말을 한다.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나쁘고, 또 그런 표현을 쓰는 자들의 가치관이 의심스럽고, 그 천박한 사고방식이 한심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요즘 세상 누가 누구를 지도한단 말인가!

가령, 강아지가 애견훈련소에 입소를 했다면, 조련사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 신병이 논산훈련소에 입소했다면, 숙달된 조교나 교관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 기업의 신입사원이 「신입사원 연수 프로그램」에 참가했다면, 강사나 회사 상급자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 대학신입생이 「학군단」에 입단했다면  교관이나 단장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

내가 예비군훈련과 민방위교육을 받을 때 일이다. 특히 정신 교육 시간에 나왔던 강사 수준이 어땠는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강사료 아끼려고 어디서 수준 낮은 강사만 싼 맛에 골라와 그런지 몰라도 정말 형편없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실력 쥐뿔도 없고, 형편없는 수준의 목사들의 설교 듣는 것은 고역이다 못해 고문에 가까웠다. 거기다가 한 술 더 떠 “때려잡자 김일성!”식의 유치한 반공강의까지 들어야 했으니, 그럴 때는 차라리 다른 나라에 이민이라도 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때는 내 신분이 예비군이었고, 민방위였기 때문에 찍소리 않고, “모자 쓰고 완장 차고” 아침에 나와라 하면 아침에 나가고, 낮에 나와라 하면 낮에 나가고, 밤에 나와라 하면 밤에 나가서, 그 치졸하고 한심한 목사 설교 다 듣고, 그 유치하고 치졸한 반공강의 다 들어주면서 내 임무를 완수했다. 그때 그 한심한 목사들과 그 유치한 반공강사들에게 정신적으로 「지도」를 받던 것 상상하면, 지금도 금세 온 몸에 소름이 쫘악 돋는다.

이렇게 이날 껏 나라에서 시키는대로, 훈련 다하고,「지도」 다 받았는데, 또 무슨 지도를 누구에게 받는단 말인가!  가령, 노가다 판에서도 처음에는 「하청업체」란 말을 썼다. 그러다가 나중에 삼성에선가 「협력업체」라는 말로 바꾸어 썼다. 그냥 「하청업체」라고 해도 아무도 불평 안하고 납품 잘 하는데도 굳이 「협력업체」라고 바꾼 것은 상대를 인격적으로 대우 하겠다는 뜻이다. 이거야 말로 「아 다르고 어 다른」 경우이다. 이런 점에서 삼성은 상대를 인격적으로 대우해주는 훌륭한 기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개 돼지 라면 먹을 것만 푸짐하게 주면 될지 몰라도, 사람은 돈도 돈이지만 인격적 대우를 받아야 한다. 인격적 대우를 못 받으면 노예다, 노예! 참 그러고 보니, 노예들을 지도 한다면 말이 된다.그런데 요즘 세상에 노예가 어디 있나.

내 분야에서 열심히 일해 세금 내라는대로 다 내고(더러 제 때 못내면 과태료 붙여서 내고), 남 해꼬지 안 하고, 쓰레기 분리 수거 잘하며, 내 밥 먹고 사는데, 지도는 무슨 얼어죽을 지도인가. 혹시 내게 필요한 것이 있어, 학교나 단체나 모임에 가서 무엇을 배워야 한다면 그때는 얼마든지 배울 수도 있고, 지도도 받을 수 있다. 모르는 것이나 부족한 것이 있으면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는 게 사람이다. 그러나 그것도 다 내가 필요해서, 내가 자발적으로 배우겠다는 마음이 있을 때 말이지, 내가 배우기 싫거나 배울 생각도 없고, 지도자라는 놈을 보면, 제놈이나 나나 별 수 없는데, 배우고 싶은 마음이 눈꼽만큼도 있을 리 없다. 그런데 지도는 무슨 얼어죽을 지도냐!

남을 지도하려면 지도자의 자격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자격을 감히 누가 무슨 근거로 줄 수 있나! 공부 많이 한 것과 정직하고 성실한 것과 비례라도 한단 말인가! 돈이 많거나 권력을 쥐고 있으면 남을 지도할 자격이 있단 말인가! 도대체 지도층 인사의 기준이 뭔가? 어떤 작자가 「지도층인사」인가? 대학교수면 지도층인사인가? 박사 학위가 있으면 지도층인사인가?

돈 많은 자가 지도층인사인가? 고급 공무원이면 지도층 인사인가, 판검사면 지도청 인사인가? 국영기업체 부장급 이상이면 지도층인사인가? 도대체 뭐 말라 비틀어진 것이 지도층인사란 말인가! 이런 시대착오적인 엉터리 표현을 버젓이 쓰는 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수준이 낮은가를 알 수 있고, 언론이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아는 가를 짐작할 수 있다.

「사회지도층」이란 비민주적이고 시대착오적이고, 쓸개빠진 이런 표현은 조선총독부 관리가 조선 사람들에게 할 법한 표현이다. 조선 사람을 무지하고 더러운 야만인으로 생각하고나 할 말이다. 무지하고 비위생적이고, 야만적인 무리들은 매로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 차 있는 경우에나 할 말이다.

3.
내가 애완견을 키워본 적이 있는데, 그때 강아지새끼도 고집이 있는 것을 알았다. 내가 오라고 부르면, 무조건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오고 싶으면 오고, 오기 싫으면 가만히 서서 멀뚱멀뚱하고 올 생각을 안 하는 것을 보았다. 그 조막만한 강아지 새끼도 생각이 있고, 고집이 있는데, 고등교육 받은 사람이 대부분인 나라에서, 어떤 작자가 누구를 「지도」 한단 말인가! 국민을 군인으로 알고 하는 소린가? 아니면 제놈들은 양반이고, 다른 사람들은 다 상놈으로 보여서 그런단 말인가? 아니면 국민을 노예로 보고 하는 소린가! 내 밥 먹고, 내 발로, 법 안 어기고, 땀흘려 일하는 멀쩡한 사람을, 어떤 놈이 지도한다는 것은 아주 자존심 상하게 하고, 기분 잡치게 하는 일이다.

그래, 이왕 말  한 김에 한 번 따져보자! 그 잘난 지도층이란 것들 중에 「비난 받는 짓」, 혹은 「범법행위」 한 인간들이 어디 한 둘이며, 그 좋은 일류대학 나오고, 그 높은 자리에서 떵떵대던 놈들 중에 쇠고랑 차고 감방간 놈은 또 한 둘인가! 국민 중에 어떤 바보가 그런 것들을 지도층인사라고 존경하고, 그런 것들의 지도를 받겠다고 하는 바보가 있을까? 

설령, 그자들이 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해도, 그들은 그들이고 나는 난데, 왜 내가 그들의 지도를 받아야 한단 말인가. 저는 제 밥 먹고 나는 내 밥 먹고 법 안 거기고 세금 꼬박꼬박 내고 살면 되지. 난데없이 지도는 무슨 얼어죽을 지도인가! 아니 국민이 글을 몰라 글자라도 가르쳐 주겠다는 건가? 도대체 지도층인사란 누구에게 뭘 지도하는 계층이란 말인가? 자동차 운전을 배우고 싶으면 운전학원 강사의 지도를 받으면 되고, 수영을 배우고 싶으면 수영장코치에게 지도를 받으면 된다. 그런데 사회지도층인사에게 내가 무슨 지도를 받아야 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평생가야 내가 그자들에게 지도 받을 게 없지 싶다!

나는 어릴 때 우리 부모님 말도 잘 안 듣고 엔간한 것은 내 고집대로 했다. 물론 부모님 말씀을 잘 들은 적도 더러 있다. 학교 다닐 때도 어떤 때는 선생님 말씀을 잘 들었고, 어떤 때는 잘 안 들었다. 내가 듣고 싶으면 들었고, 듣기 싫으면 안 들었다. 그래도 이날까지 내가 무슨 법을 어기지도 않고, 무슨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사회지도층인사」에게 지도를 받아야 한단 말인가. 나는 이대고 살고 싶지, 「사회지도층인사」의 지도를 받으면서 살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다. 내 참 듣다듣다 별 더러운 소리 다 듣는다!

남을 지도하려면 그 바닥에 전문 지식이나 식견만 있어서는 안되고, 도덕적으로 흠이 없거나 적어야 하고, 정직하고 성실해야 한다. 가령, 땅 투기하려고 제 마누라 위장 전입시키고, 그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세금 한푼 안 내고, 권력 바뀔 때마다 간에 붙고 쓸개에 붙고, 또 숱한 거짓말을 하고도 거짓말이 아니고 겨우 “말바꾸기” 좀 했을 뿐이라고 하는 국무총리 정도의 위치면 지도층인사인가?

말이야 바른말이지, 이런 한심한 자를 총리로 임명한 김대통령의 처사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거기다가 이런 함량 미달인 자를 국무총리로 임명 동의해준 국회의원들은 또 어떤 자들인가. 이런 한심한 국회의원이 지도층인사란 말인가?  이런 자의 지도를 순순히 받을만치 우리 국민들이 바보들이란 말인가? 개가 웃고 소가 웃을 일이다. 아니, 내 밥 먹고 살면서 내가 미쳤다고 이런 한심한 지도층인사의 지도를 받냐! 이거 사람 어찌 보고 하는 소린가. 

나는 민주시민의 한 사람이다! 도리어 그런 지도층인사들은 모조리 교도소에 보내서 새사람 될 때까지 교화시키든지 해야지. 아니, 국무총리가 그 좋은 서울대학까지 나왔는데 이 모양인데, 그 아랫 것들 중에는 그와 비슷한 치들, 그보다 못한 것들은 얼마나 많을까는 안 봐도 뻔한 것 아닌가! 이런 판에 뭐 말라비틀어진 개뼉다귀가 사회 지도층인사인가?

4.
원래 뭘 제대로 아는 인간은 겸손해서 남 앞에서 나서기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면 무림에는 고수가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줄 모르고 어설픈 실력 가지고 껍죽대다가 임자 만나면 한 수에 가는 수가 있다.  태권도 갓 배운 놈일수록 아무 데나 발길 질 하고, 아무 데나 주먹질해대지만, 실력이 늘면 늘수록, 태권도 하는 티를 안 낸다. 하다못해 초등학교 애들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은가. 

품성이 착하고, 정직하고 예의 바르고 겸손한 애들이 반장하겠다고 스스로 나서는 경우는 잘 없다. 대부분 뒤에 무식하고 극성인 엄마가 있거나, 어딘가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못난 애들이 나서기 좋아하는 것 아닌가? 진짜 미인은 미인대회에 나가지 않는다. 다이아몬드는 시궁창에 빠져 있어도 다이아몬드이다. 그리고 “나 다이아몬드요!”하고 외고 불고 안 해도 다이아몬드이다.

이처럼 “내가 미인이요!” 하고 벌거벗고 남 앞에 나서는 것 자체가 인격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뭔가 부족하고 덜 성숙했다는 증거가 아니고 뭔가? 내 모르긴 해도 예수나 석가, 공자 이런 분들이 초등학교 다녔다면, 스스로 반장 하겠다고 나서지 않았지 싶다. 벼도 익으면 고개 숙이고, 실력 있고, 겸손한 사람은 남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딘가 부족하고 어딘가 못난 구석이 있고, 어딘가 컴플랙스가 있는 자들일수록 남 앞에 나서기 좋아하고, 우쭐대기 좋아하고, 잘난체 하는 법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제 입으로 “나 미인이요!” 하고 벌거벗고 나서는 미인은 진짜 미인이 아닌 것이 확실하고,  남 앞에 나서기 좋아하고 설치기 좋아하는 것들은 상등품은 못되는 것이 틀림없다.

말을 할 때 알맞은 표현을 해야, 상대를 인격적으로 대해주는 것이 된다. 인격적인 대우란 곧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자면, 상대를 무시하고 얕보는 「사회지도층」 운운하는 표현은 쓰지 않아야 한다. 굳이 이런 말을 해야한다면, 차라리 「사회모범층」이라고 하면 어쩔지 모르겠다. 많이 배우고, 많이 알고, 많이 가진 자들이 남에게 좋은 의미로 모범을 보인다면 말릴 필요까지는 없지 않겠는가.

누가 깨끗하고 정직하게 행동하고 양심적으로 용기 있게 행동하여 모범을 보인다면, 기분 나쁘고 말 것이 없다. 모범을 보이겠다면 굳이 말릴 이유도 없고, 굳이 시비할 이유도 없다. 이들을 보고 지도층이라고 하지 않고 「모범층」이라고 하면 기분 나쁘고 말 것도 없다. 그런데 되지도 않는 것들, 검증되지도 않는 것들을 단지 그 잘난 박사학위 있다고, 일류 대학교 나왔다고, 계급 높다고, 돈 많아 기부금 잘 낸다고 「시회지도층인사」 운운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나는 그따위 지도층인사를 절대로 존경하고 따를 수 없다. 뿐 아니라 그런 쓰레기 같은 것들을 쓸어내는 일에 내 작은 힘을 보탤 생각이다. 굳이 따지면, 제놈이나 나나 서로 동격이지, 결코 수직관계가 아니다. 그런데 「지도」는 무슨 얼어죽을 지도냐! 앞으로 「사회지도층」이란 말을 쓰는 사람이 있으면 그런 한심한 표현을 못하게 나무라고, 굳이 써야 한다면, 「사회모범층」이란 말로 바꾸어 쓰라고 충고 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www.songhy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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