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컨대 웃음은 인간의 내면에 건설되어 있는 댐-저수지와 같은 것입니다. 아무 때나 필요할 때 퍼다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많이 사용해도 고갈되지 않은, 수량이 풍부한 댐-저수지와 같은 것입니다.
인간 내면에 숨겨져 있는 웃음의 댐-저수지는 보이지 않은 무형입니다. 아무리 웃음을 퍼다 사용해도 고갈되는 법이 없습니다. 천혜의 “기쁨 자원”입니다. 이것이 웃음종교가 존재할 수 있는 모태입니다.
우리민족에겐 웃음의 댐-저수지 안에 고여 있는 하나의 콘텐츠로서의 육담(肉談)이 전래되어 왔습니다. 웃음 댐을 채워주는 한 계곡의 물줄기 같은 존재인 육담은 쌍담(常談)이라고도 합니다. 중동의 유전에서 원유를 생산하듯 우리의 전래되는 육담에서 웃음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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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존재가 영원한 것은 남녀의 성(性)에 의해서입니다. 성을 주제로 한,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해학이 곧 육담입니다. 끼리끼리 모여 육담 대화를 나누며, 깔깔 웃어대며, 스트레스를 풀어왔습니다.
김선풍 교수는 육담대회 제안자로서 강릉단오제의 육담대회를 이끌어 왔습니다.
다음은 김 교수가 채록한 “터널(옥문)이 길어 시달림을 당하는 트럭(남근)” 제하의 육담입니다.
터널(옥문)이 길어 시달림을 당하는 트럭(남근)
“아버지가 다섯 살 먹은 아들놈을 데리고 공중 목욕탕을 갔어요. 이 아들놈이 지 고추를 보다가 아버지 것을 본께 아, 이 놈이 이 정도로 홀랑까져 가지고 지아(자기 것)는 포경수술도 안 한 우습게 생긴 고추 같이 생겼는디. 아, 붙잡본께 그냥 잽히지도 않을 정도로 퉁겁고 그러거든요.
근께 제 아버지보고 물었어요. 왜 지아는 이렇게 쬐깐한데 왜 아버지것은 이렇게 크냐고 한께 아버지가 참 설명하기가 곤란해요. 너도 인제 크면 아빠같이 이렇게 커진다 해도 이놈이 이해를 못해요. 그런께 이 아버지가 어떤 비교를 시키는 것이 어떤 비유법을 썼냐? 아빠가 말하기를, 『아빠의 거시기는 저 행길의 버스 아니 트럭에다 비유한다면 니아는 티코다 티코』 그런단 말여.
아, 이 놈이 집에 돌아가서 저희 어머니가 실은 춤바람이 나가지고 춤추러 갈라고 인제 저 경대 앞에서 화장을 하는디, 가서 말하기를, 『엄마 엄마』 『왜 그러냐』 『나 오늘 아침에 아빠하고 목욕탕에 갔는데 지 팔뚝을 가리키면서 아빠것은 내 팔뚝만한디 내아는 왜 조그만한 고추만 하냐』고 물으니까 아빠가 하는 소리가 아빠것은 추럭에 비유를 하고 내야는 티코에다 비유를 혀.
그런께, 엄마가 하는 소리가 『야, 이 놈아, 별 소리를 다 한다. 트럭이면 뭐한다냐, 껌껌한 굴 속에 들어가면 들어가자마자 시동이 잘 꺼지는데 크기만하면 뭘 혀』 그러니께, 이 놈이 또 가서는 뭐라고 했냐면, 『아빠 아빠, 크면 뭐하냐고 엄마가 그려. 껌껌한 터널만 들어가면 시동이 잘 꺼진담서?』 그런께, 저 아빠가 뭐라고 그러냐면, 『얼마나 그 놈의 터널이 길고 부대끼면 시동이 꺼지겄냐』 그런께, 또 그 아들놈이 가서 저 엄마보고, 『아버지가 그 터널이 얼마나 길고 시달림을 주면 시동이 꺼지겄냐고 그럽니다』 해서 온가족이 웃고 즐기더랍니다. (김선풍 교수가 채록한 육담)”
육담은 우리 민족에게 웃음을 웃게한 좋은 소재였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웃음을 선사해준 육담은 불멸의 웃음소재이자 기쁨 소재입니다. 그래서 이 육담은 웃음종교 일부분의 성경적 역할을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웃음종교 교인 여러분! 더불어서 웃음종교 주기도문을 낭송합시다. “마음 놓고 웃으며, 기쁜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자! 하하하. moonilsuk@korea.com
*필자/문일석, 시인. 자칭 웃음종교 교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