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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는 거짓이 있어도 죽음은 거짓이없다!

산 조실 무산上人의 염장이야기

윤소암 시인 | 기사입력 2012/03/09 [08:29]
2008년 국제영화제 수상작인 일본영화“굿바이”는 우리말로 염장인(殮匠人) 「납관사」이야기이다. 납관사, 염장이는 죽은 사람을 향물로 깨끗이 씻고 옷을 입혀서 관에 넣는 장례전문가다. 일본의 납관사는 창백한 시체의 얼굴에 화장을 해서 온기를 불어넣어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꾸민다. 아마도 전통적 동양풍습이 아닌 서구의 장례문화 영향일 것이다. 유명명사들이나 인기연예인들이 죽으면 얼굴에 화장품으로 곱게 단장하는 것이다.

오래전 천안문광장의 마오쩌둥 시신과 모스크바궁전의 유리관에 모신 시신을 보았을 때 각종 방부제와 분장약품을 써서 백납처럼 흰 얼굴을 보았던 적이 있다.

첼리스트인 주인공이 입단한지 얼마 안 돼 악단이 해체되어 고향에 내려가 신입사원모집을 보고 찾아간 곳이 뜻밖에 장례회사의 하청업인 납관사였다. 전도유망한 젊은 음악가가 예쁜 마누라의 기대에 걸맞게 높은 수입과 명예로운 직업? 임을 계속 감추기에는 무리였다. 직업에 대한 고민과 회의, 생활고로 갈등을 겪으면서 납관사의 혐오스러운 일들이 익숙해지고 유가족들을 감동시키는 거룩한 직업임을 깨달은 주인공은 이혼직전 마누라를 설득시키고 납관의 현장체험을 통해 공감을 이끌어낸다.
 
무산 오현 대종사의 사자후 법문
 
정월대보름 하루전날 설악산 신흥사에서 동안거 해제 법회가 열렸다. 오랫동안 설악산회주로 있으면서 백담사 중창불사를 비롯해 만해한용운선사의 전당인 만해마을을 건립하고 걸림 없는 대자유의 삶을 살아온 무산대종사는 작년가을 동안거 결제 때 설악산조실로 추대되었다. 국립공원이지만 실소유주는 신흥사 절 땅으로 1억 평의 광대한 산림과 문화재 강원도사찰의 절반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말사를 거느리는 교구장의 소임을 넘어 만해평화사상을 세계에 널리 알렸다. 그리고 백담사 신흥사등지에 선원을 개설해서 수도승들의 전통을 잇게 했고 만해마을에는 문학 예술인들의 메카로 만들어 연중행사가 끊어지지 않고 있다.

규모가 작고 대중이 적은 본사에도 조실이 반드시 계시는데 규모가 크고 대중이 많으며 역사에 길이 남을 문화복지 불사의 큰 업적이 있는 대종사의 조실추대는 만시지탄이었다. 십 수 년간을 다녔지만 이날의 해제법문 주제는 완전히 다르고 시간도 지루하게 느껴질 만큼 길었다. 평소에 종정 대종사의 법어를 대독하고 끝내는 초간단 법회에 비해서 말이다. 서두가 길었는데 그동안의 경위를 밝히기 위함이다. 대종사가 젊었을 적에 나이 먹은 염장이를 만났다.

그 염장이의 말인즉은 “염을 해보면 그 사람의 살아온 자취를 알수 있지요. 가령 시신이 험하고 멍이 많으며 얼굴모습이 추악한 사람을 보면 이 사람은 생전에도 험하고 추악하게 산 사람이구나 느끼고 반대로 시신이 깨끗하고 냄새가 없으며 얼굴이 자는듯 웃는듯 편안한 모습이면 이 사람은 생전에 깨끗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구나. 하고 느낍니다.”

“나중에 죽은이의 직업과 인생역정을 유가족들에게 듣고 그대로 들어맞는 것이 신통했는데 평생 하다보니 그대로 맞아 떨어지는 것이 상식이 돼버렸지요.”

“그런데 이상한 일은 생전에 잘 먹고 잘산 부자들이나 높은 벼슬로 호가호위하던 사람들의 몸에서는 왜 그렇게 냄새가 나고 피부가 검으며 얼굴이 일그러져있는 반면 별로 이름도 없고 잘살지도 못한 사람들의 몸은 깨끗하고 냄새가 별로 없으며 뼈와 관절마저 부드러워 옷을 입히기가 수월합니다.”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을 하나
 
무산대종사의 법문요지를 옮겨 보았다. 1시간 가까이 진행된 대종사의 법회자리에는 수백 명의 스님들과 국회의원 도지사 시장군수, 정치가를 꿈꾸는 예비후보들 수백 명의 신도들이 큰방과 마당을 메우고 있었다. 필자도 이근배 송준영 오세영시인 옆에서 법문을 듣고 함께 박장대소를 했다. 때로는 염장이 법문의 엄중함으로 때로는 대종사의 가식 없는 천진과 해학으로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선법문이라는 이름으로 옛 조사들의 어록과 주장자 법문이 전부인 절집에서 인간세상의 적나라한 이야기와 비유법으로 경책한 대종사의 법문은 대중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대종사는 염장 법문에 이어 “삿된 사람이 아무리 바른 말을 해도 전부 삿되고 올바른 사람이 삿되게 말해도 모두 바른 말이 된다.”로 끝맺었다. (邪人正言 諸邪言 正人邪言  諸正言 - 필자의 글)

앞서 일본영화 납관사의 스승인 대납관사는 항상 시신을 정성스럽게 다루고 고귀하게 대함으로써 산자와 죽은 자의 화해를 도모했다. 젊은 여인의 시신과 노인의 시신 가족의 원망으로 떠난 사람 등 어떤 시신이라도 한결같이 아름답게 처리하는 숭고한 모습에 유가족들의 탄성과 감동을 자아내게 만든다. 마치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불교의 생사일여관(生死一如觀)을 보는 것 같다. 삶은 죽음을 동반하는 것이 진리이나 행복할 때는 잊어버린다. 세계의 성자 달라이 라마는 “행복할 때 죽음을 생각하라”라고 했다. 삶과 죽음을 나누어보는 현대인들에게 주는 메시지이다.

화려한 제단, 틀에 박힌 법문과 설교가 아닌 삶의 현장에서 부딪치는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준 무산대종사나 시신을 경건하게 수습하는 염장이는 달관한 선지식이다. 도인이나 보살이 따로 없다. 위선적인 지식인과 탐욕적인 종교인이 판을 치는 세상이 아닌가 살아생전 어떻게 살아도 죽을 때 안다는 말이 있고 훌륭한 삶은 훌륭한 죽음과 같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오복가운데 잘 죽는 고종명(考終命)이 있고 삶은 거짓이 있어도 죽음은 거짓이 없다고 한다.
때마침 선원 앞마당에 입춘 매화가 만개했다.  즉흥시 한수 설악산인사자후(雪岳山人獅子吼)에 입춘매화만개홍(立春梅花滿開紅) 이로구나.
soam2005@hanmail.net

*필자/윤소암(昭菴). 시인, 한국불교역사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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