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에서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기독교에서는 우리 인간을 모두 죄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속죄(贖罪)를 해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고 하죠. 불교에서도 선 악간에 지은 업(業)을 멸(滅)하기 위하여 참회(懺悔)를 하라고 합니다. 아마 어느 종교의 가르침이나 다 죄업을 참회하고 선업을 쌓으라고 하는 것은 마찬 가지 아닐까요?
그렇다면 그 죄의 경중(輕重)을 논할 수 있을까요? 아마 유무(有無)는 논할 수 없을 지라도 경중은 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수없는 죄업 중에서 어느 죄가 가장 무거울까요? 옛날에 본 영화 <빠삐용(Papillon, 나비)>이 생각납니다.
그 영화에서 주인공인 프랑스인 ‘앙리 살리엘’은 젊은 시절 날건달로 살았습니다. 나쁜 짓을 일삼다가 살인 혐의로 투옥이 됩니다. 그는 악명 높은 남미 기아나 감옥에 보내지는데 10여 차례나 탈옥을 시도하지만 실패하죠. 결국 가면 나오지 못한다는 무인고도에 보내집니다. 그런데 ‘나비’처럼 자유롭고 싶었던 그는 마침내 그 무인도에서 탈출하는데 성공을 합니다.
한 때 그는 탈옥을 시도하다가 잡혀 춥고 어두운 독방에 갇혔습니다. 그리고 절망과 피곤에 지쳐 잠이 들었고 꿈을 꿉니다. 꿈속에서 그는 얼굴이 얼음장 같은 재판장 앞에 서서 그와 말을 주고받습니다. “재판장님, 저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무죄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러나 너에게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있다.” “그 죄가 무엇입니까?” “인생을 낭비한 죄니라.” “인생을 낭비한 죄라고요? 아, 그렇군요. 유죄, 유죄군요!” “그렇다. 너는 사형이다.”
사람은 ‘소비적 시간’을 살던가 아니면 ‘투자 적 시간’을 살든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소비적 시간’을 사는 사람은 생의 ‘목적’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저 즉흥적으로 시간을 ‘때우며’ 살아갑니다. 계획 없이 그 때 그 때 하고 싶은 일이나 하며 살아가는 인생이죠. 그의 삶은 정확히 ‘낭비되는 삶’일 것입니다.
반면 ‘투자 적 시간’을 사는 사람은 목적과 비전(vision)이 분명한 삶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목적과 비전을 이루기 위한 일과 땀과 준비로 현재의 시간을 채우며 사는 사람입니다. 목적(purpose)과 집중(focus)과 땀의 일(work), 이 세 가지를 삶에 적용하는 사람은 낭비가 아닌 ‘채워진 시간’을 사는 사람인 것이죠.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행각(行脚)을 하시던 무렵입니다. 어느 날, 석가모니가 설법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제자 가운데 한 명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석가모니는 제자들에게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 제자가 늦잠을 자고 있다고 합니다. 이 제자는 매우 나태해 좌선을 하고 있을 때도 앉아서 졸며 식사 후에는 반드시 장시간 낮잠을 잔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신 부처님께서는 그 제자가 여간 불쌍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처님의 혜안(慧眼)으로 보시니 이 나태한 제자는 이후 7일 밖에 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석가모니께서는 제자 아난다를 따라 나태한 제자가 자고 있는 장소를 찾아가셨습니다.
숙소에 도착하자 그 제자의 코고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려옵니다. 아난다가 호소해도 그는 전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부처님께서 직접 자고 있는 제자를 상냥하게 흔들어 깨웠죠. 석가모니를 보고 놀라 일어난 제자는 “스승님, 죄송합니다. 제자의 불경을 용서해 주십시오.” “너는 앞으로 7일간 밖에 살 수 없다. 네가 계속 자면서 수행하지 않아 부처로 성취할 수 있는 기회를 잃는 것을 보니 참을 수 없어 이렇게 찾아왔노라.”
제자는 석가모니의 말씀을 듣고 두려워졌습니다. “너는 윤회(輪回) 중에서 옛날 승려였던 때가 있었다. 그 때 맛있는 음식과 졸음에 빠져 법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느니라. 계율을 지키지 않고 게을러 덕을 잃었다. 그 때문에 너는 쌀벌레로 환생해 5만년을 살았구나, 그 다음은 각각 지렁이, 조개, 나방으로 태어나 각각 5만년씩 살았었지.”
“이제야 죄를 다 갚고 다시 승려로 태어났는데 너는 지금도 전생의 버러지들과 같이 장시간 잠만 자고 있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으냐? 시간을 낭비하고 수행을 게을리 하면 또 20만 년 전과 같이 된다. 그 후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잘 생각해야 한다.” 부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는 진심으로 회한(悔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그 제자는 그 날부터 모든 유혹을 이겨내고 열심히 수행에 힘을 썼습니다. 7일 후 인생에 마지막에 도달한 즈음 그는 끝내 나한(羅漢)의 위(位)를 성취했다고 하네요.
저도 한 때는 젊음을 주체하지 못해 산으로 들로, 갈 곳 안 갈 곳을 천방지축(天方地軸)으로 쏘다닌 적이 있습니다. 악동(惡童)들과 더불어 못할 짓이란 짓은 다 저지르고 다녔죠. 결국 빈털터리가 되어 지옥에 떨어지기 직전 까지 몰렸습니다. 아마 저도 저 부처님의 제자처럼 게으름을 부리다가 부처님 문하에서 쫓겨났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제 인생이 불쌍했던지, 아니면 전생의 인연으로 소태산(少太山)부처님께서 저를 다시 거두어 주신 것 같습니다.
누구는 7일간 죽기 살기로 수행하여 나한과(羅漢果)를 얻었다고 합니다. 저 역시 이 한생 안 태어났다고 생각하고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면 누가 압니까? 혹시 아라한(阿羅漢)의 위에 오를 수 있을 런지요!
청춘을 낭비한 죄가 큽니다. 용서받지 못할 죄인도 수행을 통해 부처를 이룰 수 있습니다. 원불교의 대산(大山) 종사님의 법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10년을 적공(積功)하면 자신이 알고, 20년을 적공하면 대중이 안다. 그리고 30년을 적공하면 진리가 아시느니라.」시간이 없습니다. 어찌 우리가 청춘을 낭비할 수 있겠는지요! duksan725@hanmail.net
*필자/김덕권. 시인/ 원불교 문인협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