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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마고문화를 마고문화로 바꾸기 위한 시도

노중평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2/03/11 [06:45]
금년 들어서 마고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다. 대통령선거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금년 12월에 새로운 철학과 사상을 실천할 수 있는 믿을만한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데, 이런 대통령이 갖추고 있어야 할 철학과 사상이 무엇이냐 하는 점에서 찾다 보니, 마고의 철학과 사상이 거론되기 시작한 때문일 것이다.

▲ 마고재단 발기인 대회     © 거리검
▲ 마고재단 발기인 대회     ©거리검


그런데 마고가 누구냐고 물으면 마고가 누구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어쨌든 누군가 마고를 거론하지 않으면 아니 될 시점에 와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할 것이다.

내가 마고를 처음 말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말기라 벌써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세계무속신문>을 주간신문으로 창간하여 주간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이때부터 상고사上古史를 연재를 시작하며 마고를 첫 화두로 삼았다. 이때 마고와 함께 마고가 세운 인류최초의 나라 마고지나麻姑之那를 이야기하였다. 마고는 박제상 선생이 쓴 <부도지>에 근거하여 쓴 것이고, 마고지나는 <고려사 세가 제 36 충혜왕조>에 근거하여 쓴 것이었다.

당시에 막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한 때라 그 후로 인터넷을 통하여 마고의 신화, 역사, 설화, 철학, 사상, 종교 등을 대중에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2011년에 인터넷 신문 환타임스와 브레이크 뉴스에서도 연재물에서 마고를 이야기하였다. 환타임스에서는 <우리별 이야기>와 소설에서 이야기 하였고, 브레이크 뉴스에서는 노중평 칼럼을 통하여 <부도지>를 해석하여 마고를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실었던 글들을 내 개인의 블러그와 카페에 옮겨 실었다.

2011년부터 마고재단을 만들자는 모임이 태동되기 시작하였다. 여러 가지 일을 추진하자는 취지가 있는데, 이 모임에서 내가 하고 싶어 했던 것은 마고문학 콘텐츠를 다양한 콘텐츠로 개발하자는 것이었다. 발기인대회를 2012년 3월 9일 저녁에 국회의원식당에서 가졌는데, 나는 우리가 앞으로 추진해야 할 작품으로서의 콘텐츠와 행사로서의 콘텐츠에 대하여 말하였다.

나는 문학작품으로서의 콘텐츠는 장편소설 2편을 써서 2개 출판사에 넘겼다. 하나는 마고의 이데올로기에 초점을 맞추어 쓴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마고유토피아에 초점을 맞추어 쓴 것이었다. 다른 출판사에는 <오컬트 마고신화역사서>를 만들어 넘겼다. 나로서는 마고재단이 출범되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셈이다. 이제부터 모든 것을 시운에 맡기고 기다리는 것 이외에 다른 도리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행사로서의 콘텐츠는 마고제례麻姑祭禮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나는 이미 덕수궁에서 고려연등회의高麗燃燈會儀를 덕수궁에서 복원한 바 있고, 모 문화재단에서 이 복원 물로 조선시대의 궁중다례를 만들어 모 시의 문화재로 등록한 바 있었다. 또 삼성제례를 복원하여 강북문화원에서 10여 년 동안 개천절에 시행해 오고 있는데, 이 작품이 삼각산산신제라는 이름으로 시문화재로 등록이 된 것을 본 적이 있다. 칠석제도 만들었는데 이 칠석제도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 김종월씨가 그린 마고 캡쳐     © 거리검


나는 마고이야기를 쓰면서 마고 캐릭터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마고에 대한 이야기는 <선가서仙家書>에 단편적으로 나오는데, 그런 것 말고 우리의 현실에서 마고에게 접신이 되는 사람을 찾아서 인터뷰하여 마고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 현실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내가 그런 분을 만난다면, 첫째 마고가 오늘날 현신할 때가 되었는지, 그분이 얼마나 마고에게 가까이 근접되어 있는지, 마고가 어디에 계신지 오컬트적인 관점에서 알아보아야 하였다.

예기치 않게 나는 사전 정보 없이 당일에 김성원 선생의 사무실에서 김종월이란 분을 만나게 되었다. 소개를 받고 보니 마고를 접신한다는 분이었다. 김 선생의 초청을 받고 오늘 행사에 참석하기 위하여 부천에 온 것이었다. 그래서 17시에 시작되는 발기인대회에 미리 가서 함께 참석하였다. 이 날 사이버국회 발기인대회, 평화통일 대표 발기인대회, 마고재단 발기인대회가 함께 같은 장소에서 순서대로 진행되도록 되어 있었다. 나는 사이버국회와 평화통일 대표 발기인대회에는 관심이 없었다. 나의 관심은 마고재단 발기인대회에 있었다.

우리는 행사 2시간 전에 미리 가서 행사에 필요한 준비를 약간 하였다. 그리고 오늘 행사에 몇 개 단체에서 온 분들이 참석하였다. 김성원 선생의 사회로, 오늘의 행사를 주선한 정호선 박사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사이버국회에 대한 이야기, 평화통일에 관한 이야기가 끝나고, 마고재단에 대한 이야기를 마지막에 하였다.

행사의 목적이나 성격이나 참석자의 성향으로 보아서 앞에서 행한 두 이야기는 마고재단과는 거리가 먼 분들의 이야기지만 이 회의를 주선한 분의 의도로 동석이 된 것이다. 마고재단 발기인대회에 참석한 분들은 약 20명이 되는데, 거의가 다 나와 조성제 선생이 초대한 무인巫人들이었다.

발기인대회를 마치고 나와 김성원 선생과 김종월 선생은 시간이 늦었지만 목동 쪽으로 가서 식사하였다. 식사를 하면서 우리가 오늘 이후에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일정이 잡혔다. 그가 모시고 있는 마고대신, 조상신인 할아버지와 할머니, 몸주로 모시는 시숙의 합의 하에 마고파의 거두로 볼 수 있는 내가 초대를 받은 셈이었다.

내가 나 스스로를 마고파의 거두(?)라 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 내가 마고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한지 20년이 넘었고, 금년에 이미 써서 출판사에 넘긴 마고관련 서적이 소설 2권에 학술서 1권이니 그런 말을 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고 학술단체에 가입하거나 세미나 같은 데에 참석한 적은 없었다.

김종월 선생은 천명도인天命道人이라는 당호를 가지고 무업을 하는 분인데, 6살 때부터 마고 어머니가 접신이 되기 시작한 분이었다. 금년에 47세이니 나이는 많지 않았다. 가장 활동하기 좋은 나이로 볼 수 있다. 나중에 대전에 가서 인터뷰를 해 보니 신에게 잡혀오지 않았다면 선망 받는 일을 해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마고대신을 접신한다는 분을 만나기는 처음이었다. 그가 사는 곳은 대전시 서구청 내동이다. 도착하여 천명도인이라는 당호가 걸린 신당에 들어갔다. 무인들을 인터뷰해 보면 구구절절 다 기막힌 사연이 있게 마련인데 천명도인이라고 어찌 그러한 사연이 없을 수 있겠는가.

▲ 마고 어머니가 현신하여 만들라고 한 방울과 부채. 마고 어머니가 지시한 대로 만들어지지 않아서 다시 만들겠다고 한다.     © 거리검


그가 마고 어머니(그는 특이하게도 마고할미를 마고 어머니라 하였다)가 만들라고 하여 만들었다는 놋대 끝에 달린 3개의 방울과 놋쇠로 만든 선녀부체를 보여준다. 3개의 방울은 삼신을 감응하는 방울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고, 8자형으로 된 선녀부채는 조상을 부르는 바람인 8풍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8풍 안에 마고대신이 운행하는 바람인 영등풍瀛登風이 들어 있으니 그가 아무나 들이대고 마고 어머니라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도 좋았다. 그의 명함을 보니 김종월金鐘月이라 되어 있다. 이름 자체가 신선을 부르는 데에 쓰는 금종부적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름이 신선을 부르는 부적이군요.”

하니, 그렇다고 한다.

나는 마고할머니를 언제 만났는가를 물었다. 그는 6살 때 이미 손톱이 긴 분을 만났는데, 그때는 그가 누구인지 몰랐지만 신이 재차 왔을 때인 32세 때 밀양에 있는 천태산에 들어가서 기도하면서 허공중에서 마고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는데, 역시 손톱이 긴 분이었다. 그래서 그분이 마고 어머니임을 알게 되었다.

그가 만난 분은 호호할머니인데 얼굴이 동그랗고 피부가 젊고 탱탱한 분이었다고 한다. 얼굴은 미인 형이 아닌데 자태가 고왔다고 하였다. 긴 머리카락을 위로 올려 둥글게 묶었다. 키가 작았고, 서면 커 보이는 데 몸이 풍만해 보였다. 옷은 소매가 좁고 어깨 쪽으로 가면서 폭이 넓어졌고, 몸을 감싸고 있는 옷이 자루형의 옷인데 풍성하였고, 허리를 묶었다. 신은 실내화처럼 낮은 신을 신고 있었다. 옷의 색은 여러 색이 섞인 색으로 칙칙한 빛을 띠고 있었다.

마고대신은 특이하게도 원효스님과 사명스님을 동행하고 있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마고대신이 한국에 오실 때 두 분 스님이 동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중국에 갔을 때는 그쪽의 다른 분을 동행한다고 볼 수 있고, 일본에 갔을 때는 또 그곳의 다른 분을 동행한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마고대신이 어떤 서수瑞獸와 함께 있는가도 질문하였다. 붕을 타고 하늘을 나는 마고신선도와 백호를 탄 마고신선도를 그린 화가가 있어서 화가가 계시를 받고 그런 산신도를 그린 것이 아닌가 싶어서 물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들은 말은 좀 의외였다. 지금은 멸종한 동물이 아닌가 싶은 동물들과 함께 있었던 것이다. 용형상이 아니라고 한 것으로 보아서, 어떤 파충류를 의미하는 것 같고, 호랑이 형상이 아니라고 한 것으로 보아서 호랑이 산신도가 그려진 것은 훨씬 후대의 그림으로 생각되었다. 그가 데리고 있는 짐승은 사자 형상도 아니었다. 그러나 사람처럼 변하기도 하였다. 서수로 그려진 맥이가 아닌가 싶었다. 날짐승은 올빼미나 부엉이 보다 큰 새가 함께 있었다. 그 새도 역시 오늘날 볼 수 없는 새였다.

신화에 따르면, 마고대신은 천도복숭아와 깊은 관련이 있는 분인데, 이 점에 대해서 질문을 해 보기로 하였다. 천도복숭아를 제상에 올려서는 아니 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천도복숭아와 인간들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신을 제물로 삼지 말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조선왕조시대까지만 해도 남방을 항해하는 무역선이 인당수에서 심청을 인신 제물로 삼았음을 <심청전>이 보여주고 있어서 당연한 말로 보인다. 복숭아는 일종의 메타포로 볼 수 있다. 메타포로 삼는 이유는 복숭아 안에 핏줄이 있기 때문이라 한다. 그래서 자신은 천도복숭아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먹으면 입속에 피가 난다고 했는데, 실제로 피가 나는 것인지 핏빛으로 물이 드는 것인지 보지 못하여 확인할 수 없었다.

김성원 선생이 마인드 콘트럴을 해 준다. 그래서 마고의 근원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 피진술자가 3개의 방울을 내려다보며 말한다. 그에게 영상이 잡히는 것이다.

“태초에 한웅…….구렁이…….용이 물을 뿌린다…….”

지금 대단히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 있다. <단군신화>, <부도지>, 공룡시대가 짬뽕이 되어 있는 것이다. 한웅은 웅녀와 혼인하였다. 웅녀는 곰을 아바타로 가지고 있는 마고대신이다. 곰 아바타가 한웅의 신부 노릇을 해 주고 있다. 그러니까 마고대신이 신랑신부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구렁이는 구룡이九龍夷로 한인시대의 9인종이다. 용은 한인천제이다. 물을 뿌린다는 것은 마고대신이 마고성에서 인간들을 내쫓고 천수를 끌어들여 마고대성을 청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이 가능한 점으로 보아서 진술자의 잠재의식 안에 여러 가지 지식이 입력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마 학교에서 배운 것, 들은 것, 등등일 것이다. 여기에 마고에 대한 인간에게서 오염되지 않은 순수지식은 없는 것인가? 아마 겹쳐 있을지 모른다.

마고대신이 왜 엉뚱하게 신라시대의 원효와 조선왕조시대의 사명대사와 동행이 되어야 하는가?

“산속 깊은 곳에서 원효가 끌어들였다…….나를 인간으로 만들어 버렸지…….”

그렇다면 마고대신이 한반도나 중원에 오시기 전에 플라즈마로, 카오스상태로 있었다는 말인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니면 별이 차원이동을 하여 인간의 형상으로 나타나게 된 것일까? 혹시 외계인이 순간적으로 행성이동을 하여?

“사명! 못난 것들! 인간이 아닌 나를 천태산에…….”

인간의 형상이 아닌 마고대신을 사명대사가 천태산에 불러들인 것인가? 그렇다면 원효와 사명이 마고대신의 동행자가 되는 이유는 불교의 스승인 그들이 마고대신을 그들에게서 이탈하지 못하도록 감시하기 위하여 동행하는 것이 아닌가?

마인드 콘트럴은 그가 어떻게 지구에 오셨는가를 묻는다.

“무지개, 그게 내 다리야. 그 다리 놓고 태양을 가지고 빛을 주었지…….”

여기까지만 기록하기로 한다. 오컬트로 마고대신에게 접근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다음에 파악되는 것들을 다음 글에 올리기로 한다. 글이 너무 길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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