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이익태 화백의 전시회가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 6 갤러리 팔레 드 서울 (1,2,3F. 전화 02-730-7707)에서 지난 4월 3일부터 4월 17일까지 열린다. 전시명은 “아이쿠”. 갤러리 팔레 드 서울이 주최하고 (주)신영 커뮤니케이션, (주)비전 크리에이티브이 후원한다.
'아이쿠' 란 제목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서 작가는 전통 한지를 이용한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익태란 이름에는 전방위 예술가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로 독립영화 ‘아침과 저녁 사이’를 만든 영화감독이며 블랙코미디 형식의 ‘병태의 감격시대’ 등 여러 편의 시나리오를 쓴 작가. 또한 70년대 초 기발한 도전을 감행했던 전위해프닝 그룹 ‘제4집단’의 멤버이기도 했고, 연극 콜렉터의 캐리번 역과 영화(무진기행의 각색‘황홀’) 배우로도 활약, 매스컴에 분주하게 오르내리는 인물이었다.
1977년 도미한 그는 마음의 본향으로 여기고 있던 그림 작업에 본격적으로 전념하기 시작하여 뉴욕주 클라리마이너 화랑 국제전에 1등으로 입상한 것을 위시하여 수차례 국제전에 입상했다.
작가는 그림만 그리는 것에 머물지 않고 퍼포먼스 그룹(Theater1981)을 창단하여 소리와 비주얼에 역점을 둔 연극과 실험적 퍼포먼스를 펼쳤다. 광주의 비극을 주제로 한 ‘곡1(哭1983. LA)’, ‘곡3(물의 죽음, LA, 1985)’ 와 ‘곡4(땅의 죽음 LA,1988)’, Walking into a blue space LA, 1990’ 는 미술전문지 High Performance. Art Week. LA Times 등 메이저 지면에 비중있게 다뤄졌다.
특히 KAL기 격추 사건으로 사망한 혼령을 추모하는 퍼포먼스 ‘sprit 265' 는 ABC 등 메이저 언론에서 톱뉴스로 다루기도 했다. LA 흑인폭동 1주기를 맞아 폭동현장에서 벌였던 대규모 설치미술과 퍼포먼스인 ‘볼케노 아일랜드’ (Volcano Island)는 LA시 문화국으로부터 그랜트를 받아 올린 대규모 공연으로 NBC TV에 소개되기도 했다.
그 후에도 ‘Hugging Angels’와 ‘The day of collage' 로 LA시 문화국으로부터 연속 그랜트를 수상했고, 캘리포니아의 대표적 표현주의 아티스트인 GRONK 와 설치, 퍼포먼스, 전시라는 새로운 형식의 이벤트를 갖기도 했다. 이익태의 퍼포먼스는 귀국 후에도 남북분단을 주제로 펼쳐졌다. 통일대교와 서강대교에서 거대한 얼음덩어리들을 쌓아놓고 한 ‘빙벽’ 시리즈 ‘아이스 월1(Ice wall 1)’과 ‘아이스 월2(Ice wall2)’ 등이 그것이다.
작가는 그 동안 해왔던 영화와 퍼포먼스 작업들을 전시기간 중 화랑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관람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또한 90년대 후반부터 작업해온 아이쿠(일본 하이쿠의 이익태 버전)의 먹그림과 시의 해설을 스크린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
귀국 후 무주에 머물고 있는 작가는 먹그림을 통한 서체개발과 한국적 하이쿠 작업을 그림과 병행하고 있다. 특히 그림에서는 시골생활을 통해 만난 빛과 물을 작품 속에 녹여내는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 그림을 그려 물로 씻어내고 햇빛에 말린 후 그 위에 다시 그림을 그리고 다시 씻어내고 구기는 작업을 반복하는 행위는 작품 속에서 빛과 물을 만나기 위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지극히 일상적인 작가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퍼포먼스와 최근에 작업한 다양한 한지작업, 아울러 그 동안 한국과 미국에서 작업한 퍼포먼스 동영상, 사진, 드로잉 작가의 작업 동영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 화백은 작가노트에서 “산은 풀과 나무, 흙이나 바위로만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동물과 벌레, 눈에 보이지 않는 숱한 생명체들이 뿜어내는 運氣로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너와 나, 풀과 공기, 빛과 어둠, 먼지와 우주가 서로 이어져 있다”고 전제하고 “인간의 물질적 욕망에 의해 자연환경이 급속도로 훼손되고 있다. 오늘의 문명은 인류의 편리함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자연의 씨줄과 날줄을 디지털의 날카로운 메스로 분류 생존 공간을 이미지 픽셀로 가득 채우고 있다. 인간의식의 입자하나 까지도. 오늘, 음습한 지하에 매장되어 있던 무의식의 몬스터들이 굳게 잠긴 봉인을 깨고 지상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내 옆에 필름이 있으면 영화를 찍었고, 무대가 있을 땐 공연을 했고, 물감이 있을 땐 그림을 그렸고, 풀과 나무, 허공과 함께 있을 땐 짧은 시를 지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시골에 정착해 자연 속에 스며들면서 자연이나 사물의 형태를 묘사하는 일이 마음에서 멀어져 갔다. 형태나 의미, 상징을 포기하자 마음이 가벼워졌다. 캔버스의 벽과 같은 딱딱함과도 멀어졌다. 물을 자연스레 흡수하는 한지가 자연의 물성 그대로 나를 품었다. 실내 작업이 답답할 땐 마당에 한지를 펴놓고 물감을 뿌리고, 물로 씻고, 발로 밟고, 구기고, 편다. 빛과 색채, 물이 어우러져 춤춘다. 바람에 노란 은행잎과 솔잎이 한지 위로 흩어지고, 그 위로 벌과 나비 심지어 잠자리까지 날아든다. 바람과 물과 공기, 벌레와 나뭇잎이 벌이는 한바탕 잔치로 작업은 완성 된다”면서 “그러는 동안 나는 없다. 한줄기 바람, 한 방울의 물, 한줄기 햇빛 속으로 사라진다. 그림을 그린다는 강박증에서 홀가분하게 벗어난다 그리는 그림에서 스스로 그려지는 그림으로 나의 작업은 흘러가고 있다. 붓이 스스로 춤추는 모습은 자연 그대로다. 적적할 때면 주변의 자연을 소재로 먹그림을 그리거나 짧은 시(아이쿠)를 지었다. 아이쿠는 나를 들여다보는 거울이다. 먼지 낀 거울 속에 내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화백은 전시 오프닝 때 땡처리 퍼포몬스를 선보였다. 다음은 전시 오프닝 후 작가 가 쓴 글의 전문이다.
전시 오프닝 후 작가 글의 전문
개인전을 여는 일은 작가에게 설레임이자 두려움이고 스트레스 어쩌다 보니 10년을 먹그림, 아이쿠와 놀다가 갑자기 일년 사이에 개인전을 세 번이나 하게 되었다. 그것도 세군데 화랑 모두 공간이 대형 사이즈이다 보니 부담이 안 될 수 없다. 그렇다고 미술시장의 잘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최악이라고 한다. 미술품을 사는 것은 배가 부르고 여유 있을 때 보석이나 명품을 사는 것과 다름없다. 전시를 하는 대부분의 작가들은 우울하다. 작가 폐업을 하거나 고려하는 예술가가 적잖다. 어디 예술가뿐이랴.
누구나 한번쯤 해보는 생각이지만 나는 얼마나 가치가 있을까? 그것을 화폐로 계산한다면 나를 경매물건으로 시장에 내다 판다면 얼마쯤 받을 수 있을까? 공짜로 준다해도 아무도 거들더 보진 않을까? 예술가는 잉여인간 일지도 모른다. 뭐 그리 당장 뭔가를 생산하고 현실적 이득을 주는 존재도 아니고 아이고 골치야. 나는 오프닝 퍼포먼스로 작가 폐기처분 땡처리 퍼포먼스를 하기로 했다. 황금색으로 조악하게 그린 액자 프레임에 갖힌 듯 앉아있는 작가 이익태. 그 머리 위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커다란 바위돌 작가 스스로를 땡 처리 하는 현장을 보는 사람들은 재미있다는 듯 스마트 폰을 꺼내 내 모습을 찍기에 열심이다.
그것은 나를 향해 총알을 장전하는 건맨이나 카드의 끗발을 쪼아대는 노름꾼처럼 진지?하다. 사람들은 나의 모자, 양말, 허벅지, 머리통 그리고 한쪽 눈썹, 신발 등등을 구입하겠다고 천원, 만원 짜리 심지어는 신용카드를 내 입에 물린다. 그런데 작가를 통채로 사겠다는 작자는 영 나타나지 않는다. ㅋㅋㅋ.
허긴 65세의 늙고 유명하지도 돈이 많은 것도 그렇다고 힘이 좋은 것도 아닌 나를 사간다는 것은 오히려 큰 짐이 될 수도 있는 노릇. 나는 벌떡 일어났다. 화도 나고 절망에서 벗어날 수도 없고. X 팔! 내머리통 위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던 바위 덩어리에 꽝 부딪쳤다. 아이쿠! 이것이 나의 오프닝 퍼포먼스. 다행이 사람들은 나의 유쾌한 놀이에 즐거워한다. 어쩌겠는가? 관객들이 눈물이라도 줄줄 흘리는 것 보다 훨 낫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