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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홍산문화 왜곡에 대응해야 할 국가전략의 필요성

노중평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2/06/30 [14:51]
격암 남사고 선생은 멀지 않은 장래에 한·중·일이 하나의 국가로 통합이 되고, 국가통합을 우리가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그의 비결에서 예언하였다. 이를 기본 모델로 하여 전 세계의

국가들이 단일지구국가로 통합하게 될 것이며 지구 정부가 인천과 부천 사이에 들어서게 될 것이고 소사에 있는 성주산이 미래에 생기게 될 지구국가의 주산主山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때가 되면 지국국가 이름은 선국僊國이 되고, 지구국가인을 이끌어가게 될 이데올로기는 천지인天地人 인仁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전 세계가 단일지국국가로 통합하게 될 지음에 우리 대한민국 땅에는 세계대전에 버금하는 전쟁이 일어나게 될 것이며 이 땅에는 미래 지국국가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비전을 가진 자가 2개 면 정도의 인구로, 이러한 정신을 갖추지 못한 자가 2개 리 정도의 인구로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 땅에서는 도부신인桃符神人으로 불리는 세계지도자만 내게 될 것이고 정부를 구성하고 군대를 구성하는 필수요원은 대한민국 사람들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모여든 최고의 엘리트 구릅으로 편성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요즈음 우리나라에 외국인들이 많이 들어와 직업을 갖고 살게 되었고, 내국인은 교육이민을 내세우며 국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인구개편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격암선생의 예언이 맞아 들어간다면 앞으로 우



리나라는 이들의 후예가 이끌어가는 사회가 될 것으로 본다.



격암선생은 임진왜란 직전에 사셨던 분인데 당시의 지식인들은 암암리에 국가비전의 설계도를 <남사고비결>에서 찾았다. 19세기에 들어와서 민족종교가 일어났는데 민족종교는 <남사고비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일부 인사들은 비밀리에 기독교세계가 올 것임을 예언하는 비결을 만들어 끼어 넣기도 하여 위서시비에 휘말리게 하였다.



나의 생각으로 임진왜란이 일본이 조선에 보낸 밀정들이 수거해간 <남사고비결>과도 깊은 연관이 있었을 것으로 본다. 한·중·일 삼국통일의 의지를 처음 보인 사람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였다. 그러나 그의 무력침공은 명의 개입과 조선의병의 선전으로 좌절되고 말았다. 다음 명치유신 때에도 사이고 다카모리를 선두로 하여 조선강점에 성공하고 36년을 조선총독부를 두어 통치하였다. 조선통치를 이끌어간 사람은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사람의 후예인 이토오 히로부미였다. 일본은 중국도 거의 다 석권하여 일본의 통치로 들어가게 하였다.



만약에 공산주의가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등장하지 않았다면 중국이 일본을 몰아내는데 좀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으로 본다.



일본이 한반도에 와서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소사에 복숭아밭을 일구어 도부신인이 좌정할 수 있도록 무릉도원을 만들려고 하였고, 성주산에 신궁을 세워 조상신들을 모셨다. 경인철로를 놓아 공장을 지어 산업을 일으켰다. 그리고 공공연하게 경성천도론을 주장하였다. 여기에서 더 나가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대동아공영大東亞共榮을 획책하려고 하였다.
나는 일본이 이렇게 거창한 국가마스터플랜을 시행하려는 무모함을 내보이는 데엔 그 배후에 임신왜란 때 수거해 간 <남사고비결>에 그 비밀이 숨어 있다고 본다.




일본이 두 번에 걸쳐 삼국통일을 획책하다가 실패한 후에 그 바통을 중국이 넘겨받아 본격적으로 동북공정과 탐원공정을 내세우며 한반도 강점의 길로 들어섰다. 동북공정은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의 역사를 당나라의 역사 밑에 편성하자는 것이요, 탐원공정은 화하족의 조상으로 내세운 황제 밑에 단군조선을 넣자는 것이다. 이렇게 일차로 우리역사를 중국역사화 하여 한반도를 중국의 변방국가화 하였다가 어느 시점에 가서 티베트처럼 강점해 버리자는 의도를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전례에서 보았듯이 중국이 무력을 행사하여 절대로 삼국이 통합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 역사는 중국의 의도대로 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홍산문화로 알려진 요하 일대에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는 홍산문화유적지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유물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역사의 신명께서 중국의 지도자들에게 삼국통일의 사명을 맡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역사가들은 이 유적이 발굴되면 될수록 이 유적이 단군조선의 실체를 해명하게 될 것을 예견하기 시작하였다.



만약 홍산문화유물이 단군조선유물로 공인을 받게 되면(아마 중국도 그렇게 되기를 바랄 것이다) 중국은 단군조선이 황제의 후예라는 그럴듯한 이론을 만들어 들고 나오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역사는 중국의 역사에 편입되게 되고, (중국과 일본은 다량의 영문판 역사서를 만들어 전 세계의 국회도서관과 같은 곳에 배포했는데, 이들 역사서에서 중국은 우리의 역사를 중국에 종속된 역사로 기술하였고, 일본은 우리의 역사를 일본에 종속한 역사로 기술하였다) 우리의 역사와 정체성은 중국의 역사와 정체성으로 둔갑을 하게 될 것이다.



홍산문화유적에서 관심을 끌게 하는 것을 살펴보면, 첫째가 우하량 유적지에서 발굴된 여신묘와 신전 터, 천원지방형상의 제단, 유물 등이다. 단군조선에는 조선개국 초부터 단군왕검의 비인 하백녀를 신모神母로 모시고 국가제사를 주관하게 하였다. 매년 국중대회國中大會(굿)를 열어 국가통합의 행사를 하였다. 최치원 선생에 따르면 단군조선이 멸망할 때 대국이 9국, 소국이 12국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국가통합의 행사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여신묘에서는 옥으로 눈알을 박은 실물 크기의 여신두상이 발굴되었다. 두상이 편두로 만들어져 있어서 여신상임을 알 수 있는데, 단군왕검 탄생신화에서 한웅의 비가 된 웅녀신상熊女神像으로 볼 수 있다.



홍산문화를 대표할 수 있는 것이 발굴된 다수의 옥기들이다. 옥기는 장신구나 생활용기라기보다 신상 또는 신물이나 정체성 정통성과 관련이 있는 것들이다. 이들 옥기들이 압록강에 인접한 요녕성 수암岫岩에서 생산된 수암옥으로 만든 옥기들이라고 한다. 옥의 생산지가 압록강에 인접한 요하문명권이라는 점에서 황하문화를 대표하는 황제를 정점으로 하는 화하족의 유물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하겠다. 중국의 학자들이 거리가 동떨어져 있는 황하문명에 요하문명을 어떻게 갖다 붙이게 될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이들 중에서 필자의 관심을 끄는 것은 단연 올빼미상이다. 나는 졸저 <일본의 신도와 마쓰리>에서 올빼미상이 단군왕검을 상징하는 인종 아이콘이 된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를 증명해 주는 엄청나게 많은 유물이 발굴되어 자료가 풍부해졌다.



나의 생각은 여기가 <부소보서扶蘇譜序>에서 일실된 환국사에서 인용했다고 출전을 밝히면서, 한인천제가 기묘년에 풍주風州 배곡倍谷에서 한국桓國을 개국한 곳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부소보서>에서 한인천제를 적제赤帝 축융祝融이라고 하였는데, 이곳을 적봉赤峰 또는 홍산紅山이라고 하는 점으로 보아서 적제가 여기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축융(불의 신)이 한인천제에게서 시작되어 기성己姓 곤오昆吾에게로 계승되어 곤오가 청동기를 제조하는 는데 쓰이게 되었고, 또한 축융은 염제炎帝神農에게도 계승되었다. 곤오는 불암산 북쪽 숙신 땅에 정착하였고, 염제는 산동성의 곡부에 정착했다. 한인천제의 축융은 기성 곤오에 의하여 계승이 되었고, 또한 신농에 의해서도 계승이 되었던 것이다.



적봉(홍산)이 적제라는 신명의 탄생지라면 적봉의 홍산문화는 실은 한국의 한인천제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에 생각해 볼 것이 홍산문화를 대표할 수 있는 색깔이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필자가 보기에 그 색깔은 적색이나 홍색이다. 지명을 적봉이나 홍산이라고 했으므로 적색과 홍색이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한인천제를 적제라고 했고, 또한 불을 다루는 축융이라고 했기 때문에 그러한 점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굿에서 단군왕검의 의대가 홍포紅袍와 홍갓이라는 점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홍산이 있는 곳의 지명에는 좌기左旗와 우기右旗라는 지명이 나온다. 적봉의 북쪽 내몽고자치구 안에 파림좌기巴林左旗와 파림우기巴林右旗가 나란히 마주보고 있는 것이다. 그 아래 쪽으로 요하遼河(상류를 서남목륜하)가 동서로 가로질러 흐른다. 요하의 지류인 노함하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정공이 있다. 적봉과 요하와는 상당한 거리가 떨어져 있는 셈인데, 좌기니 우기니 하는 지명은 神市時代의 유습으로 남아있는 볼 수 있는 지명들이다. 신시의 중심인 시장을 세우고 시장 앞에 죄기와 우기를 세운 데에서 비롯하였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요하를 한수漢水(은하수)로 바꾸면 죄기와 우기는 은하수에 있는 별자리로 바뀐다. 좌기와 우기 가운데에는 하고河鼓라는 별자리가 있고, 북쪽으로 마고의 아들을 상징하는 점대漸臺별자리가 있고, 그 북쪽에 직녀별자리가 있다. 하고의 남쪽으로는 견우별자리가 있다. 이들 별자리의 분야가 북방현무칠수北方玄武七宿이다. 이곳이 견우직녀신화의 발생지일 가능성이 있다.



홍산문화유적 발굴과 관련하여 몇 가지를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이 유적에 대하여 어떻게 개념을 정립하고, 만일 중국이 말도 되지 않는 논리를 세워 단군조선의 실체를 황제 밑에 넣으려 든다면 어떠한 국가전략을 세워 대항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할 때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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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세현 2012/12/27 [21:13] 수정 | 삭제
  •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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