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에서 바그네리언들은 바그너의 몇 개의 오페라를 보게 된다. 유명한 ‘링‘ ’니벨룽겐의 반지‘는 그 한 작품만으로 나흘이 걸린다. ‘링’의 마지막 4부‘신들의 황혼’만 휴식시간 합해 7시간이 넘는다. 그 고행 ?을 턱시도와 드레스를 차려입은 차림으로 세계 각 곳에서 모여든 , 그나마 선택된 바그너 팬들은 즐겨 해 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항상 바이로이트 축제의 티켓은 모자라기 때문이다.
|
“ 참된 비문은 시간이 흐른 뒤에 내 쉬는 한숨인 것이다” 19세기말 바그너 생전, 그 시대 유럽 최고봉의 천재들의 경쟁관계에서 언제나 애증(愛憎)을 절절히 끓이며 앓아오던 ‘프리드리히 니체’가 나름 용기 내어 불같은 연정을 고백하고 실연당했던 당시의 혜성같이 빛나던 아름다운 여성작가 ‘루 살로메’와 함께 바그너의 무덤을 찾아와 데이트 하다가 한숨처럼 내 뱉은 말이다. 니체는 이 실연의 상처로 심연의 밑바닥가지 추락해 두문불출했고, 유럽의 인사들은 니체가 자살하지 않을까 곁눈으로 주시하며 숨을 죽였다. 그러나 그는 며칠 만에 수직상승했다. 그 작품이 바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다. 천재는 동시대의 천재를 가장 미워한다. 니체가 끝없이 증오하면서 질투했던 사람이 바로 리하르트 바그너 였다. 바그너는 젊은 니체의 애정과 증오와 비난적 공격을 견디다 못해 그의 친애하는 명사들의 리스트에서 프리드리히 니체라는 이름을 지워 버린다.
바그너도 니체도 결국 가장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인간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예술과 학문은 누구도 쉽게 정복하지 못할 부분을 이미 생전에 이룩했던 것이다. 그들의 육신은 이미 오래전에 한줌 흙으로 산화되었지만 그들의 업적은 아직도 살아있는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고 너무도 큰 북소리를 울리고 있다. 리하르트 바그너는 그를 숭배하는 은둔의 젊은 백조왕자 바이애른 왕국의 루드비히 2세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현재 독일영토인 이 바이로이트에 1882년 6월의 마지막 주, 바그너 오페라 축전극장 건축을 완성하고 오페라 ‘파르지팔’을 초연한다. 유럽은 들떴고 그 해를 기념해 1882년을 ‘파르지팔의 해’로 명명하자는 움직임까지 일 정도였다. 지금의 바로 그 바이로이트의 바그너 축전 극장이다.
그리고 1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름이 되면 이 바이로이트의 축전 극장에서 비록 인간적으로는 우리 모두, 혹은 누구나처럼 무수한 약점들이 있겠지만,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신비와 마력적인 예술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수많은 오페라는 세계에서 모여드는 턱시도와 드레스의 정장을 고수하는 그의 예의바른 숭배자들에게 매년 끊임없이 공연되고 있는 것이다.
올해의 첫 무대는 ‘방황하는 네델란드인’ 이다. 우리나라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윤태훈)이 타이틀 롤인 네델란드인 선장 역을 전격적으로 꿰 찼다는 영화 같은 일이 그 바이로이트에서 바로 며칠 전에 일어났다. 원래는 러시아 태생 예브게니 니키틴이 그 역할이었다. 그러나 그의 가슴에 나치 모양의 문신이 있었고 그는 사퇴할 수 밖에 없었다는 스캔들이 이유였다. 그리고 ‘로엔그린’에 출연하기로 되어 대기 중이던 ‘사무엘 윤’ 씨에게 축제개막 오페라의 주연 자리가 돌아가게 되었다. 마법같은 드라마틱 행운이다.
사무엘 윤씨는, 오묘하게도 130여년 전 이 바이로이트 축전극장 개막작으로 바그너가 마력의 돌풍을 유럽의 하늘에 일으켰던 작품 ‘파르지팔’이라는 오페라에 지난 2004년 출연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2012년 25일 개막일을 앞두고 불과 며칠 전인 23일에 사무엘 윤에게 연락이 왔고 주최 측은 ‘네델란드인’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왔던 것이다. 윤 씨는 평소 너무나 해 보고 싶은 역이라 당장에 할 수 있다고 대답했고, 그는 마치 기적처럼 바이로이트 축제 개막작품의 주역인 ‘네델란드인‘이 된 것이다.
행운은 때로 그렇게 오기도 한다. 물론 그가 평소에 그만한 준비를 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겠지만. 그동안 한국인 성악가로 베이스 바리톤 연광철 씨나 강병운 씨 등이 ‘링’의 보탄역 등 헬덴 바리톤의 웅장하고도 광활한 음색으로 바이로이트 축제 오페라 무대에 선 적은 있으나 타이틀 롤은 아니었다. 사무엘 윤 씨는 이번 페스티발에서 ‘또 하나의 가장 유명한 바그너 오페라인 ’로엔 그린’에서 ‘헤이루퍼’역에 출연하기 위해 마침 바이로이트에 있었다. 그리고 그는 딱 두 시간 연습하고 ‘ 네달란드 인’을 훌륭히 소화해 냈다. 실은 그는 이미 준비된 ‘네델란드인’ 이었고 그만큼 예비 된 럭키 맨 이었다. 우리 음악계의 거목인 김민 바이올리니스트도 이미 수 십년 바이로이트 축제의 오케스트라에 참여해 오고 있다.
한국에도 이미 창립 20주년을 바라보는 바그너 협회가 있다. 지난 2003년 10주년 때는 회원들의 글을 모아 ‘바그너와 나’(삶과 꿈) 라는 기념문집을 내기도 했고, 당시의 바그너축제 이사장이었던 ‘볼프강 바그너 ’내외를 한국으로 초청해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바그너 협회를 창립했던 초창기의 회장인 김경원 전 유엔대사가 얼마 전에 별세했다는 소식은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일이었다. 그 분의 학문과 의견과 신념 , 그리고 신사다운 유머와 겉으로는 절제된 엄청난 열정을, 그 기품을 당시의 모든 회원들은 한동안 추억하고 그리워하게 될 것 같다.
다시 폭염의 여름, 그러나 더욱 뜨겁고도 열렬한, 그래서 더욱 멋진 바이로이트의 바그너 축제의 계절이다. 바그너는 이미 작은 묘비 하나만으로, 시간이 지나면 이윽고 내쉬는 한숨으로 갔지만 그의 작품은 영원히, 매년 여름을 더욱 열정적으로 만들며 기적과 마법의 드라마도 탄생시키면서 눈부신 빛을 발하고 있다. 그래서 인생은, 그리고 특히 예술은 여전히 매번 참으로 경이롭다.inioh@naver.com
*필자/오정인. 소설가. ON뉴스 발행인.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