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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규 교수 글 일부 '필자 이름-출처' 없이 사용 “사과드립니다”

브레이크뉴스 | 기사입력 2015/02/07 [16:01]
본지 2월5일자에 게재한 “<인물탐구 서양화가 황인옥-3>재수와 운수대통 부르는 ‘그림(山水畵)부적’ -물(水)이 없는 산수화 재수(財數)없는 그림” 제하의 기사(필자/노병한 풍수칼럼니스트) 가운데 일부가 김두규 교수(우석대 교양학부 교수)의 글을 무단으로 사용, 이를 사과드립니다.
 
다음 제하[~그림(山水畵)~]의 ‘브레이크뉴스 칼럼기사’를 삭제했고, 거듭 사드립니다.
 
그러함의 이유는 조선일보에 게재되었던 김두규 교수(우석대학교)님의 글 중에…… “風水와 山水畵는 일맥상통... 좋은 그림에도 福이 온다.”의 내용을 차용해 씀에… 인용함을 밝히지 않고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거듭 죄송함을 밝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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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2/05 최종편집: ⓒ 브레이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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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5년 2월 7일. 필자 노병한
 

브레이크뉴스도 사과드립니다.
 
브레이크뉴스는 김두규 교수의 글을 필자 이름과 내용에 대한 출처를 밝히지 않고 보도한 것에 대하여 김 교수께 사과드립니다.
 
한편 조선일보 지난 2014년 8월16일자 “[Why][김두규 교수(우석대 교양학부 교수)의 國運風水(국운풍수)]風水와 山水畵는 일맥상통… 좋은 그림에도 福이 온다” 제하의 글 가운데 ·아래 내용을 노병한 칼럼니스트가 표절 사용했음을 밝힙니다.
 
『언론과 방송을 떠들썩하니 하면서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유명한 인물이 검찰에 소환되거나 구속될 무렵에는 반드시 그 사람의 집이나 사무실에서 압수하는 귀중품들 중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값비싼 골동품이나 유명화가의 작품들이다.

그림이라는 작품은 재테크용, 비자금세탁용, 뇌물용 등 다양한 목적으로 쓰이고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음도 사실이 아니던가 말이다. 순수한 예술 그 자체는 애시 당초 존재하지 않아 보이기도 해서 몹시 씁쓸했던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그림도 재수가 좋은 그림이 있는가하면 불운을 가져다주는 그림도 있다는 점이다. 대체적인 그림들이 모두 다 그러하지만 특히 산수화는 더욱 더 분명히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산수화와 인간사이의 상호관계를 말하고자함은 바로 풍수(風水)의 이치와 동일하기 때문일 것이다.

산수화와 풍수가 어떤 관계를 맺기에 그럴까? 풍수와 산수화는 서로 다른 둘이 아닌 하나임이 분명하다. 풍수의 핵심 구성요소는 산과 물이다. 산수화도 역시 핵심내용이 산과 물이다. 이렇게 풍수와 산수화의 공통분모가 바로 산과 물인 셈이다.

풍수사(風水史)와 산수화사(山水畵史)를 추적하다 보면 중국 송대(宋代)의 풍수와 산수화가 의도하는 바가 거의 같았음을 알 수가 있음이니 말이다. 우선 풍수사(風水史)와 산수화사(山水畵史)가 땅을 어떻게 바라보고 관찰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선시대에 지관(地官)이라는 풍수관리(官吏)의 선발시험에 필수과목으로 ‘명산론(明山論)’이 있었다. 여기에 보면 대지(大地)를 신체에 비유하여 “흙은 살이고, 바위는 뼈이며, 물은 피가 되고, 나무는 모발이 된다.”고 하였다. ‘명산론’의 저자는 중국 송대의 사람으로 알려진 채성우(蔡成禹)이다.

산수화를 잘 그려 궁정에서 활동하였던 송대의 곽희(郭熙)도 자신의 화론(畵論)을 정리한 ‘임천고치(林泉高致)’에서 “산은 큰 물체(大物)이다. …산은 물로써 혈맥을 삼고, 덮여 있는 초목으로 모발을 삼으며, 안개와 구름으로써 신채(神彩)를 삼는다. …바위란 천지의 뼈에 해당한다.”고 하고 있다.

이렇게 풍수는 땅을 글(文章)로써 설명하고, 산수화는 땅을 그림(繪畵)으로써 설명하고 있음이니 말이다. 산수화의 고전인 ‘임천고치’에 “산수(山水)에는 한번 가볼만한 곳(可行者), 바라볼만한 곳(可望者), 놀만한 곳(可游者), 거주할만한 곳(可居者) 등 4가지가 있다.”고 했다.

이런 4가지 가운데서 ‘살만하고 놀만한 곳’을 취하여 그림(山水畵)을 그려야 한다고 하고 있음이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는가? 군자는 그런 산수화를 보고서 감응을 받는다. 형편상 그곳에 가서 살 수가 없는 처지에 놓여있는 군자를 위해서 산수화가 존재하고 있음이었다.

따라서 산수화는 살만한 곳이어야 하고 아름다운 곳을 대상으로 그려야한다. 그런데 만약 산수화에 물이 없다면 그 그림은 가치가 없는 그림이다. 물이 없는 곳은 생명과 사람이 살 수가 없듯이, 물이 없는 산수화는 생명과 사람을 살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물이 없는 그런 산수화 그림은 곧 재수가 없는 그림이라고 할 것이다.

지리적인 기운을 따지는 풍수도 마찬가지이다. 산 사람을 위한 터인 주택(陽宅)지와 죽은 사람을 위한 터인 유택(陰宅)지를 나누어 구분 짓고 찾아야만 바른 것이다. 산 사람을 위한 터는 또다시 주거, 생산, 시장, 교육, 종교, 문화, 레저, 스포츠 등 그 다양한 목적에 따라 터의 입지나 조건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주어진 땅이 요구되는 용도에 잘 부합하면 잘되어 흥하고, 용도에 맞지 않아 부적합하면 생산성이 떨어져 결국에는 망하여 실패하게 된다는 이론이 바로 풍수발복(發福)론이 아닌가 말이다.
그렇다면 산수화도 풍수처럼 분명히 발복(發福)론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임천고치’에 이르기를 “그림(山水畵)에도 관상(觀相)법이 있다. 이성(李成)의 자손이 번성하고 잘되었다. 그가 그린 산수화는 산기슭과 지면이 모두 두껍고 넓고 크며(渾厚闊大), 산봉우리는 빼어나고 산 아래는 풍만하다(上秀而下豊). 그래서 후손들이 번영하는 상(相)과 합치한다.”고 적고 있음이 아니던가?

이성은 10세기 중국 송대의 유명한 산수화가였다. 그러므로 집이나 사무실에 산과 물이 조화롭게 갖춰진 산수화를 걸어두거나 소장하고자 할 때 참고할 만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명한 작가, 비싼 그림만이 재수가 좋은 그림이자 작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브레이크뉴스는 위에 인용된 부분을 삭제 처리했습니다. 이에 대해, 김 두규 교수께 다시금 사과 드립니다.
 
-2015년 2월 7일 브레이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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