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예술혼을 위하여 (178) - 갤러리 관장이 쓰는 달 이야기

이일영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8/04/15 [02:39]

우주에서 스스로 빛을 발하는 유일한 별 ‘태양’(sun) 은 별과 별 사이에 존재하는 물질을 뜻하는 ‘성간물질’(interstellar matter)의 회전과 수축 운동으로 탄생한 것으로 규명되었습니다.
 
이렇게 명확하게 정립된 태양의 탄생과 다르게 달의 탄생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진행형이라 할 만큼 많은 가설이 지속하여왔습니다. 이러한 달의 탄생에 대하여 살펴보면 태양계 행성의 생성기에 지구와의 중력으로 달과 지구가 형제처럼 생겨났다는 ‘동시 탄생설’ 이 먼저 살펴집니다. 이는 지구의 약 4분의 1의 크기와 약 80분의 1의 질량을 가진 달보다 큰 지구 중력의 비례로 달이 지구를 돈다는 것이지만 엄밀하게 과학적으로 달이 지구에서 조금씩 멀어져가고 있는 사실에서 지구 중력의 저하이거나 달의 중력이 증대하고 있다는 사실이 규명되지 않았기에 ‘동시 탄생설’은 더는  진전된 이론이 제시되지 못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동시 탄생설’을 붙들고 등장한 학설이 지구에서 떨어져 나간 달이라는 ‘지구 분리설’ 입니다. 이는 진화론의 창시자인 영국 생물학자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의 둘째 아들인 천문학자 ‘조지 다윈’(George Howard Darwin. 1845~1912)이 제기한 학설입니다. 그는 밀물과 썰물로 해수면의 높낮이가 변하는 ‘조석 현상’을 그 주기와 규모 그리고 진폭을 시간의 경과에 따라 관측된 변동 값으로 정리하여 ‘조화상수’(harmonic constant)를 구하는 수학적 ‘조화 분석’(harmonic analysis of tides)을 통하여 달의 탄생에 대한 ‘지구 분리설’이라는 학설을 제기한 것입니다.
 

▲ (좌로부터) '달'(月- moon),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 ‘조지 다윈’(George Howard Darwin), ‘레지널드 데일리’(Reginald Aldworth Daly) 출처: https://translate.google.co.kr/ http://awakeningthegoddesswithin.net/full-moon-in-sagittarius/     © 브레이크뉴스

 

 

이는 태양계가 생성되면서 지구가 탄생시점에 경화된 물질이 아닌 유연한 물질이었던 사실을 중시한 이론입니다. 이는 지구의 탄생시점에 엄청난 속도의 자전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그 원심력에 의하여 유연한 물질의 부분적인 팽창이 발생하여 결국 이러한 부분이 분리되어 달이 탄생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조지 다윈’이 제기한 달의 ‘지구 분리설’에 대하여 달은 분리 된 것이 아닌 거대한 충돌 때문에 탄생한 것이라는 1946년 ‘대형 충동설’(giant impact theory)을 제기한 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캐나다 출신의 하버드대학 교수 이었던 지질학자 ‘레지널드 데일리’(Reginald Aldworth Daly. 1871~1957)입니다. 여기서 잠시 짚고 가야 할 부분은 지질학자 ‘레지널드 데일리’는 진화론의 창시자인 ‘찰스 다윈’의 '육지침강설'과 ‘찰스 다윈’의 아들 ‘조지 다윈’이 주창한 달의 ‘지구 분리설’을 연이어 밀쳐낸 인물입니다.

 

이에 대하여 잠시 살펴보면 1842년 ‘찰스 다윈’이 처음 발표한 논문은 바다의 ‘산호초’(coral reef)에 대한 ‘산호초의 ’구조와 분포‘’라는 논문이었습니다. 산호초는 촉수와 창자를 가진 자포동물로 산호의 분비물이 퇴적하여 단단하게 이루어진 몸과 한자리에 붙어서 자라는 특성으로 18세기까지 광물이거나 식물로 추정하였던 지구의 역사와 깊은 연관성을 가진 해양생물입니다.

 

‘찰스 다윈’은 이와 같은 산호초의 생성과 형성이 화산섬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은 자연적인 힘으로 인하여 땅이 주변보다 낮아지는 육지의 침강 현상 때문이라는 ‘육지침강설’(Land subsidence theory)을 주창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산호초의 연구가 바탕이 되어 지구의 생명체가 자연적인 선택을 통하여 진화하였다는 인류사에 빛나는 저서 ‘종의 기원’이 탄생하게 되어 마침내 ‘진화론’이라는 업적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다윈의 ‘육지침강설’을 뒤엎은 학설이 바로 ‘레지널드 데일리’가 1910년 발표한 ‘빙하 제약설’(glacial control theory)입니다. ‘레지널드 데일리’는 지구의 역사라 할 수 있는 ‘지질 시대’의 관점에서 지구의 기온이 오랫동안 얼어붙은 빙하기 중에서도 가장 절정의 시기 ‘빙기’(glacial age)에는 물이 없는 해안과 산호초는 침식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와 같은 ‘빙기’와 ‘빙기’ 사이의 ‘간빙기’(interglacial epoch)에는 바닷물 온도가 높아지면서 수면이 상승하여 침식된 산호초 위에 다시 산호초가 자라게 되는 사실을 정리한 학설입니다.

 

이와 같은 ‘레지널드 데일리’가 발표한 ‘빙하 제약설’을 헤아려보면 그 바탕인 ‘빙하시대’(ice age)를 정의한 독일의 식물학자이며 시인인 ‘헤르바르트 심퍼’(Karl Friedrich Schimper. 1803~1867)와 스위스 출신 미국의 생물학자이며 지질학자인 하버드 대학의 ‘장 루이 로돌프 아가시’(Jean Louis Rodolphe Agassiz. 1807~1873)교수를 살피게 됩니다.

 

하버드 대학의 ‘장 루이 로돌프 아가시’ 교수는 1840년 ‘빙하에 대한 연구’(Études sur les glaciers)를 출판하여 빙하 시대에 대한 학설을 처음으로 주창한 학자입니다. 또한, 어류화석의 연구를 통하여 고생대 후기인 3억 7500만 년 전에 서식하다가 중생대 백악기 후기인 8천만 년 전에 멸종된 것으로 추정되는 턱이 있는 유악류 물고기 ‘실러캔스’(coelacanth)를 밝혀낸 학자입니다. 물론 그가 빙하 시대가 수차례에 걸친 반복적인 빙기가 있었음을 헤아리지는 못하였지만, 그의 선구적인 연구는 소중하게 평가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장 루이 로돌프 아가시’ 교수에 앞서 빙하 시대를 제기한 학자가 독일의 식물학자이며 시인인 ‘헤르바르트 심퍼’(Karl Friedrich Schimper. 1803~1867)입니다. ‘헤르바르트 심퍼’는 식물의 줄기에 잎이 생겨나는 규칙 즉 ‘잎차례’(phyllotaxis)론을 정립한 학자입니다. 이와 같은 식물의 줄기에 대한 잎의 배열 방식은 지구의 역사를 헤아리게 되는 매우 소중한 부분입니다. 이러한 연구에서 빙하 시대의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학설을 최초로 언급하였지만 ‘장 루이 로돌프 아가시’ 교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뛰어난 통찰력과 직관으로 영국의 대표적인 일간 신문 ‘타임스’(The Times)와 ‘인디펜던트’(The Independent)지에서 기자로 활동한 미국 출신의 저널리스트 ‘빌 브라이슨’(Bill Bryson. 1951~)에 의하여 ‘헤르바르트 심퍼’의 선구적인 혜안이 뒤늦게 소개되었습니다. 콕콕 박혀 드는 해석과 수려한 문체로 역사에서부터 과학에 이르기까지 많은 글을 남긴 그가 2003년 펴낸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서 선구적으로 ‘빙하기’(Eiszeit)를 제시한 ‘헤르바르트 심퍼’를 명확하게 알렸던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를 안고 캐나다 출신의 하버드대학 교수 이었던 지질학자 ‘레지널드 데일리’(Reginald Aldworth Daly. 1871~1957)의 ‘빙하 제약설’(glacial control theory)이 1910년 탄생한 것입니다. ‘레지널드 데일리’는 이와 같은 산호초의 연구에서 탄생시킨 ‘빙하 제약설’을 바탕으로 해양의 암석에 대한 많은 연구를 거듭하였습니다. 그는 1914년 ‘화성암’(igneous rock)의 기원을 정리합니다. 이는 지구의 깊은 곳에서 녹아내린 ‘마그마’(magma)가 분출하는 화산활동에서 지표에서 식어버린 화산암과 지하 깊은 곳에서 천천히 식어가는 심성암으로 구분되는 화성암의 기원과 그 실체를 명확하게 정리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을 안고 만나게 되는 인물이 바로 약 3억 년 전에 큰 대륙으로 이루어진 지구가 여러 대륙으로 분리되고 이동하였다는 이른바 ‘대륙이동설’을 제기한 독일의 물리학자이며 기상학자인 ‘알프레트 베게너’(Alfred Wegener. 1880~1930)입니다.

 

나아가 이와 같은 대륙이동설을 더욱 구체적으로 정립한 인물이 영국의 지구 물리학자 ‘아서 홈스’(Arthur Holmes. 1890~1965)입니다, ‘홈스’는 지구의 겉 부분을 이루고 있는 여러 판의 움직임에 따라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이러한 힘은 지각과 핵 사이에 존재하는 방사성 원소들이 붕괴하며 발생하는 열을 품은 ‘맨틀’(mantle)의 대류에 의하여 생겨난 판이 움직여지각운 동이 일어난다는 ‘맨틀대류설’(convection current theory)을 정리하면서 이른바 판구조론이 정립되었던 것입니다.

 

조금은 장황하게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이와 같은 맥락 속에서 찾게 되는 요점은 캐나다 출신의 지질학자 ‘레지널드 데일리’가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이 주창한 ‘육지 침강설’을 ‘빙하 제약설’로 뒤집은 사실과 찰스 다윈’의 아들 ‘조지 다윈’이 제기한 달의 ‘지구 분리설’을 ‘대형 충동설’(giant impact theory)로 바꾼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화성 크기의 행성과 충돌하여 달이 생겨났다는 ‘대형 충동설’(giant impact theory)이 기존의 가설보다는 더욱 설득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또한 엄밀하게 완성적인 연구가 아닌 가설이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아직도 풀리지 않은 미궁의 과제를 안고 많은 과학자가 부단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는 사실에서 짚고 가야 할 인물들이 있습니다. 먼저 행성 과학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네덜란드계 미국의 천문학자이며 행성 과학자인 ‘제라드 피터 카이퍼’(Gerrit Pieter Kuiper, 1905~1973)입니다.

 

이어 우크라이나 이민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미국의 전설적인 천문학자로 거듭난 ‘칼 세이건’(Carl Sagan. 1934~1996)입니다. 이와 함께 행성계와 행성 표면의 기원과 진화에 관하여 많은 연구를 남긴 미국의 행성 과학자 ‘윌리엄 케니스 하트만’(William Kenneth Hartmann. 1939~)입니다.

 

네덜란드계 미국의 천문학자 ‘제라드 피터 카이퍼’는 1951년 해왕성 바깥에서 태양주위를 회전하는 ‘얼음과 운석이 집합된 원반 형태의 작은 천체들로 구성된 집합체가 있다는 주장을 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이 훗날 입증되어 ‘카이퍼의 띠’(Kuiper belt)로 명명되었습니다. 그는 네덜란드 ‘라이덴대학’에서 천문학을 공부한 후 1935년 하버드대학 천문대에서 연구 활동을 시작한 이후 1936년 시카고대학이 운영하는 ‘어키스천문대’(Yerkes Observatory)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후 1948년 천왕성의 위성 ‘미란다’(Miranda)와 1949년 해왕성의 위성 ‘네레이드’(Nereid)를 발견하여 큰 명성을 얻게 되면서 1949년 미국으로 귀화하였습니다. 이후 시카고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던 ‘칼 세이건’(Carl Sagan. 1934~1996)의 논문지도 교수가 되었던 것입니다. 

 

▲ (좌로부터) ‘제라드 피터 카이퍼’(Gerrit Pieter Kuiper), ‘칼 세이건’(Carl Sagan). ‘윌리엄 케니스 하트만’(William Kenneth Hartmann), ‘파이오니어 플래그’, 출처: https://translate.google.co.kr/ http://fortune.com/2017/11/28/nasa-vinyl-records-kickstarter/     © 브레이크뉴스

 

이러한 네덜란드계 미국 천문학자 ‘제라드 피터 카이퍼’와 우크라이나 이민 노동자의 아들인 ‘칼 세이건’이 1958년 미국 역사상 가장 비밀스러운 프로젝트 중 하나인 달나라에서의 핵실험 계획 ‘A119’(Project A119)에 주요한 인물이었음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이 계획은 1957년 10월 구소련이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Sputnik 1)를 발사하자 미국은 긴장 상태에 돌입하여 우주개발 계획을 구체화한 ‘미 항공 우주국’(NASA)을 빠르게 설립합니다. 이와 같은 ‘A119’ 프로젝트는 미국과 소련의 핵 개발과 연관된 내용으로 이를 잠시 살펴봅니다.

미국이 1943년 맨해튼 프로젝트를 통한 원자탄이 개발되어 1945년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탄이 투하되면서 2차 대전이 종전된 이후 소련은 극비리에 핵 개발에 총력을 기울여 1949년 8월 29일 카자흐스탄 세미팔라틴스크(Semipalatinsk)에서 핵실험을 성공시켰습니다. 이와 같은 소련의 핵실험 성공 시점까지 스탈린이 북한의 김일성에게 남침을 허용하지 않았던 사실은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이후 1950년 6.25 한국전쟁이 일어났으며 휴전 이후 소련이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Sputnik 1)를 성공적으로 발사하면서 당시 냉전 시대에 세계 첩보 당국에서는 소련이 달나라에서 수소폭탄 실험을 하게 될 것이라는 첩보가 긴박하게 나돌고 있었습니다.

 

이에 미국은 달나라에서의 핵실험 계획 ‘A119’(Project A119)을 극비리에 추진하였던 것입니다. 당시 4단계로 이루어진 미국의 계획은 모도 완료되어 마지막 4단계의 핵탄두를 실은 ICBM의 발사단계에서 낙진의 우려와 다양한 요인으로 취소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45년간 비밀로 유지되었으나 주요한 요직을 맡았던 미국의 물리학자 ‘레너드 레이펠’(Leonard Reiffel. 1927~2017)이 이를 공개하여 세상에 알려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미국은 공식적으로 정부와 연관되지 않았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이후 네덜란드계 미국 천문학자 ‘제라드 피터 카이퍼’는 '미항공우주국'(NASA)이 비영리기관으로 애리조나에 설립한 ‘행성과학연구소’(Planetary Science Institute)로 자리를 옮겨갑니다. 이 시기에 미국의 행성 과학자 ‘윌리엄 케니스 하트만’(William Kenneth Hartmann. 1939~)을 만나 행성연구에 몰입하였던 것입니다. 이에 달의 분화구와 ‘오리엔탈 분지’(Mare Orientale)와 같은 달의 표면 연구가 이루어졌습니다. 이어 화성 탐사선 ‘마리너 9호’(Mariner 9) 프로젝트를 수행하여 화성 연구에 착수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화성 전역을 조사하는 우주선 ‘마스 글로벌 서베이어’(Mars Global Surveyor)를 발사하여 화성의 지질학적 특성을 분석하는 화성표면지도계획을 수행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우크라이나 이민 노동자의 아들인 ‘칼 세이건’은 미국의 달나라 핵실험 계획 ‘A119’(Project A119) 프로젝트 참여 이후 미항공우주국(NASA)의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우주 시대의 강연과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큰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는 특히 1980년부터 1990년까지 10년간 방영되어 미국의 TV 역사상 과학 분야에서 가장 많은 시청률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우주 개인 항해’의 발표자로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이와 같은 ‘칼 세이건’은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는 과학 기자 출신의 작가 ‘에릭 버제스’(Eric Burgess. 1920~2005)의 제안으로 1972년 미국의 우주탐사선 ‘파이오니어 10호’(Pioneer 10)에 우주로 보낸 최초의 메시지를 제작한 인물입니다. 이는 알루미늄판에 우주선의 기원을 담은 여러 기호와 그림으로 이루어진 ‘파이오니어 플래그’(Pioneer plaque)로 명명된 메시지 작품을 제작하여 우주로 보냈던 것입니다.

 

또한, 1977년 발사된 우주 탐사선 ‘보이저호’(Voyager)에는 외계인에게 전하는 녹음기록 ‘보이저 골든 레코드’(VoyagerGolden Record)를 제작하였던 습니다. 이렇듯 공상 소설에서나 가능할 이야기들이 천문학자와 우주과학자를 통하여 실제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칼 세이건’은 이외에도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계속 발사된 우주탐사선의 실험 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캘리포니아에 설치된 전파교신 장비를 통하여 우주 생명체와의 소통을 추진하는 등 많은 일화를 남겼던 것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행성계와 행성 표면의 기원과 진화에 관하여 많은 업적을 남긴 ‘윌리엄 케니스 하트만’ 또한 과학자로 우주 예술 분야에 많은 활동을 남긴 학자입니다. 그는 ‘국제 천문 예술가 협회’의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미국의 ‘국립 항공 우주박물관’의 ‘아인슈타인 천문대’ 예술 감독이었던 일러스트레이터 작가 ‘론 밀러’(Ron Miller. 1947)와 함께 우주를 소재로 한 소설에서부터 지구와 태양계의 행성에 관한 여러 예술작품을 남겼습니다.

 

이러한 맥락을 헤아리면 우주를 예술화하였던 아티스트로 현대 우주 예술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화가 ‘첼시 보네스텔’(Chesley Bonestell. 1888~1986)의 영향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우주를 소재로 한 회화예술은 프랑스의 화가 ‘에드몽 루도’(Edmond Rudaux. 1865~1925)의 아들인 천문학자이며 예술가로 활동한 ‘루시앙 루도’(Lucien Rudaux. 1847~1947)가 선구적인 역사를 열었습니다.

 

이러한 우주를 주제로 한 예술의 역사를 살펴 가면 지구의 예술가가 제작한 조각 작품이 최초로 우주에 설치된 작품 ‘추락한 우주비행사’(Fallen Astronaut)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게 됩니다.

 

이는 1971년 발사된 아폴로 15호 우주 비행사로 선정된 ‘데이비드 스콧’(David Scott. 1932)이 어느 날 지인의 파티에서 벨기에의 조각가 ‘뽈 바네이동’(Paul Van Hoeydonck. 1925~)을 만났습니다. 당시 조각가 ‘뽈 바네이동’은 우주 비행사 ‘데이비드 스콧’이 달에 안착하는 형상의 조각작품을 만들겠다는 제안을 하였습니다. 이에 8.5cm 크기의 알루미늄으로 제작된 조각품 ‘추락한 우주비행사’(Fallen Astronaut)에 ‘데이비드 스콧’은 우주 비행에서 희생된 미국과 소련의 우주 비행사 14명을 추모하는 뜻을 담은 명단이 들어있는 특수금속으로 제작된 판을 부착하여 달나라에 조각품을 설치하였습니다. 당시 승무원들은 이러한 내용을 비밀리에 수행하였던 것입니다.

 

훗날 조각가 ‘뽈 바네이동’은 인류를 대표하는 의미로 제작한 조각 작품에 대하여 언론에 이를 공개하면서 예술작품을 제작한 조각가와 이를 달나라에 놓은 우주비행사 사이의 의견이 다른 내용에 대한 논란이 많았습니다. 
 

(좌로부터) ‘첼시 보네스텔’ 작품, 론 밀러 일러스트 작품 ‘뽈 바네이동’ 작품 ‘추락한 우주비행사’(Fallen Astronaut) 출처: https://translate.google.co.kr/     © 브레이크뉴스

 

필자는 지난 2016년 한불수교 130주년을 기념하여 프랑스와 연관된 세계미술작가 전시 에이전시로 일하면서 이와 같은 달나라에 최초의 예술작품을 설치한 벨기에의 조각가 ‘뽈 바네이동’(Paul Van Hoeydonck. 1925~)의 참가를 실현하여 ‘달’(月-moon)의 동양적인 감성을 주제로 담아낸 그의 미술작품이 한국에 기증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인류 역사에서 영원한 상징성을 가진 작가 ‘뽈 바네이동’과 협업하여 달에 대한 인류사에서 가장 독창적인 설화가 많이 전해오는 우리나라의 달 이야기를 담은 작품 전시구상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뜻은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당시 그의 작품은 88올림픽 기념관 전시 이후 양평군립미술관에 초대되어 오랫동안 전시되었습니다. 당시 91세의 예술가가 동양과 서양의 달에 대한 감성을 관통한 작품 앞을 모두가 달빛처럼 스쳐 갔습니다. 

 

달(月-moon)은 지구에서 영원히 한쪽 면만을 보아야 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신비의 뒷모습을 찾아 나서듯 인간이 유일하게 발을 디딘 우주입니다. 이러한 달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긴밀한 존재로 동행하였습니다. 이어서 이러한 내용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합니다. 다음 칼럼은 (179) ‘’달이 낳은 인류의 시간표입니다.’ *필자: 이일영, 시인. 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artwww@naver.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119@breaknews.com
ⓒ 한국언론의 세대교체 브레이크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