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에는 의문으로 남아버린 이야기가 많다. 근 현대사에서 우주를 향한 바탕이 되고 강대국이 자랑하는 신형무기의 원형으로 존재하는 인류 최초의 액체형 로켓에 대한 이야기를 헤아리면 이와 같은 의문의 벽을 마주하게 된다, 액체형 로켓을 최초로 개발한 인물은 미국의 과학자 ‘로버트 고다드’(Robert Goddard. 1882~1945)이다. 이를 바탕으로 로켓 공학의 귀재‘ 독일 출신의 ‘베르너 폰 브라운’(Wernher Von Braun. 1912~1977)이 주도하여 1942년 v2 로켓 폭탄을 개발하여 2차 세계대전 중 1944년 9월 8일 파리에 처음 발사하였다, 이는 오늘날 대륙을 겨냥하여 실전 배치된 탄도미사일의 원조이다. 나아가 우주로 향하는 우주선 추진체의 바탕이다.
이와 같은 액체 로켓의 실체를 최초로 개발한 미국의 ‘로버트 고다드’에 대하여 살펴보면 그는 1909년 연소 열에너지의 절반이 배기가스의 운동 에너지로 변환되는 내용을 바탕으로 로켓의 액체 추진제에 대한 구체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이후 1923년 11월 액체 산소와 휘발유를 혼합하여 충돌 분사 방식을 통한 연소실험에 성공한다. 이후에도 많은 실험을 거쳐 1926년 액체 산소와 가솔린을 추진제로 사용하는 로켓 발사에 성공하였다. 이처럼 20여 년을 앞서 개발한 ‘로버트 고다드’는 왜? 이를 먼저 실용화하지 못한 의문의 문을 열면 역사에 담긴 많은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먼저 독일이 대량으로 생산하였던 V-2 로켓 폭탄의 구조를 보면 ‘로버트 고다드’가 사용한 액체연료와 안정비행 유도장치인 ‘자이로스코프’가 그대로 장착되어 있었다. 이는 2차대전이 끝난 후 미국 해군이 입수하였던 독일의 V2 로켓을 보았던 ‘로버트 고다드’가 ‘이것은 나의 기술을 훔친 것이다!’라고 외쳤던 사실에서 더욱 분명하게 확인된다.
![]() ▲ (좌로부터) ‘우스터’(Worcester)‘로버트 고다드’(Robert Goddard)/ ‘중력 전지’(gravity cel)/ 출처: https://en.wikipedia.org © 브레이크뉴스 |
‘로버트 고다드’(Robert Goddard. 1882~1945)는 1600년대 후반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조상의 후손으로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우스터’(Worcester)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농부였다, ‘로버트 ‘고다드’는 태어나자마자 보스턴으로 이주하였다. ‘고다드’는 어려서부터 유난히 많은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고다드’ 아버지는 아이의 특별한 호기심에 아이의 관심을 돌려놓기 위하여 카펫에서 정전기가 일어나는 현상을 알려주었다. 다음날 ‘고다드’는 정전기의 원인을 찾기 위하여 카펫의 실올을 하나하나 뜯고 있었다, 당시 ‘고다드’ 나이 다섯 살이었다. 또한, 그 시대에 전화는 공전식 전화기가 개발되기 이전의 자석식 전화기로 많은 가입자를 하나의 망으로 연결하여 통화하려는 가입자가 전화기에 달린 손잡이를 돌리면 교환소에서 이를 감지하고 통화를 원하는 가입자에게 수동으로 연결해주는 교환 방식이었다, 이와 같은 전화기에는 전류를 공급해주는 건전지가 늘 붙어있었다, 어린 ‘고다드’는 이와 같은 전화기에서 교체된 전지를 분해하여 온갖 실험을 하다가 방을 태우기도 하고 몇 번의 위험한 고비를 넘기기도 하였다, 여기서 잠시 이와 같은 전지의 발달사를 짚고 가기로 한다.
당시 전화기에 사용하던 전지는 훗날 개발된 휴대용 건전지(dry cell) 이전의 전지이다. 그 역사를 간략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먼저 이탈리아 의학자이며 물리학자인 ‘루이지 갈바니’(Luigi Galvani. 1737~1798)는 1780년 구리와 아연과 같은 두 개의 서로 다른 금속이 연결되어 동시에 개구리 다리 근육에 접촉되면 개구리 다리가 수축하는 현상을 발견하였다, 당시 ‘루이지 갈바니’는 이 현상을 전기로 인식하였다, 그러나 그는 미국의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1790)이 1752년 6월 하늘에 연을 날려 최초로 번개가 전기현상이라는 사실을 규명한 것과 같은 원리의 전기는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전기가 뇌(腦)에서 발생하여 동물의 근육으로 흘러간다고 생각한 이른바 ‘동물 전기’로 정리하였다.
그러나 이탈리아 물리학자이며 화학자인 ‘볼타’(Alessandro Volta. 1745~1827)는 개구리 다리가 아닌 소금물에 젖은 종이의 실험을 통하여 전류가 흐르는 즉 ‘전해질’이 분리된 한 쌍의 금속 전극에서 전기를 이동시키는 힘이 두 전극(+-)의 전기를 흐르게 하는 양(전위-electric potential)의 차이라는 사실을 규명한 ‘볼타 법칙’(Volta’s law)을 정리하면서 전압을 표시하는 볼트(V)가 생겨났다. ‘볼타’는 이후 묽은 황산에 구리와 아연을 넣은 최초의 화학전지 ‘볼타 전지’(volta cell)를 1800년경 개발하였다, 이후 이와 같은 바탕에서 1836년 영국의 화학자 ‘존 다니엘’(John Frederic Daniell. 1790~1845)이 다니엘 전지(Daniell cell)를 개발하였다, 이 전지는 황산동 용액과 황산아연 용액이 분리되어 채워진 용기에 구리와 아연 전극을 담근 양극에서 아연이 산화되며 전기가 발생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다니엘 전지의 용액을 분리한 벽에서 발생하는 저항으로 편극이 심한 문제를 해결한 인물이 프랑스 귀족 출신으로 추정되는 ‘무슈 카우드’(Monsieur Callaud)이다, 그는 1860년 다니엘 전지의 문제를 개선한 ‘중력 전지’(gravity cel)를 개발하였다. 이는 유리병 바닥에 구리 전극을 두고 아연 양극을 맨 위에 설치하고 황산동액을 전극 주위에 두어 증류수를 채운 것이었다. 전신국 기술자가 유리병에 보이는 아연과 황산동액의 상태를 보고 배터리 수명을 측정 할 수 있었던 전지는 당시 자석식 전화기용 전지로 가장 인기가 있었다, 바로 ‘로버트 고다드’가 실험용으로 가지고 놀았던 전지인 것이다. 이러한 전지를 바탕으로 오늘날의 건전지가 탄생한 것이다.
이러한 ‘고다드’의 특별한 호기심을 ‘고다드’ 아버지는 질책하지 않고 망원경과 현미경은 물론 다양한 과학 교재를 사주면서 늘 그를 격려하였다. 이렇게 어려서부터 과학 분야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고다드’는 망원경으로 자연의 변화를 일일이 관찰하며 일기를 썼다. 특히 하늘을 나는 새들의 관찰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러한 새들의 관찰에서 특수한 연과 풍선을 가지고 하늘을 나는 꿈을 이루려 노력한 이야기를 담은 그의 일기는 훗날 그의 삶에서 많은 것들을 일깨웠다. 16세 되던 해 ‘고다드’는 알루미늄으로 거대한 풍선을 만들어 수소를 채워 하늘로 날려 보내려는 야심 찬 프로젝트를 준비하였다, 2달에 걸친 이 계획은 풍선이라기보다는 두꺼운 알루미늄 용기가 되어 결국 실패하였다.
이러한 ‘고다드’(Robert Goddard. 1882~1945) 가 16살 때 읽었던 공상과학 소설 ‘우주 전쟁’(The War of the Worlds)에 담긴 이야기는 그의 꿈이었으며 목표였다, 영국의 소설가이며 문명 비평가인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 1866~1946)가 1898년 출판한 ‘우주 전쟁’은 꿈과 같은 무기를 소유한 외계 화성인이 지구를 침공하는 스토리로 ‘고다드’의 머릿속에는 우주를 날아다니는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고다드’가 16살이던 해 어머니가 결핵에 걸려 공기가 좋은 그가 태어났던 고향 ‘우스터’(Worcester)로 돌아왔다.
‘고다드’는 자연환경이 좋은 고향 ‘우스터’(Worcester)에서 당시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전신이었던 스미스소니언 연구소가 간행하는 과학 논문을 열심히 탐구하였다, 특히 미국의 천문학자이며 항공학자인 ‘새뮤얼 피어폰트 랭글리’(Samuel Pierpont Langley. 1834~1906)가 발표한 항공 역학 논문에서 새들이 공중을 날면서 방향과 고도의 목적에 따라 날개의 형태와 속도가 다른 점을 언급한 내용을 중시하여 새들의 관찰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제비가 현관의 제비집을 들락거리는 형태에서부터 모든 새가 나는 방향과 떠오르고 착륙하는 방법에서 날개의 꼬리로 이를 제어하고 있다는 사실을 면밀하게 파악하였다. 바로 훗날 액체형 추진 로켓의 가장 성공적인 장치인 안정적인 비행을 위하여 장착한 ‘자이로스코프’(Gyroscope)가 이와 같은 관찰에서 탄생한 것이다,
‘고다드’는 이러한 시기에 ‘뉴턴’(Isaac Newton. 1642~1727)이 만유인력과 운동의 법칙에 바탕을 두어 지상과 천체의 모든 운동을 정리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를 읽었다, 그는 특히 두 물체가 서로 힘을 가할 때 그 힘의 크기는 같지만, 방향은 반대로 작용이 있게 되면 이에 따른 반작용이 존재한다는 ‘뉴턴의 운동 제3 법칙’(third law of motion)에 담긴 작용 반작용의 원리를 헤아려 추진체 로켓을 구상하게 된다. 그는 이때 모든 운동의 법칙이 무중력 상태인 우주에서도 적용되는 사실을 일깨웠다.
여기서 잠시 미국의 천문학자이며 항공학자인 ‘새뮤얼 피어폰트 랭글리’(Samuel Pierpont Langley. 1834~1906)에 대하여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영국 식민지 시대에 1635년 미국에 최초로 세워진 ‘보스턴 라틴 공립학교’(Boston Latin School)를 졸업하였다, 다음 해 1636년 하버드 대학이 생겨났다. 예나 지금이나 영재학교인 보스턴 라틴 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 천문대에 조교가 되었다. 이후 해군사관학교 수학 교수를 거쳐 1867년 피츠버그 대학교수가 되어 ‘알레게니 천문대’(Allegheny Observatory) 소장을 겸임하면서 1890년 스미스소니안 천체물리학 관측소(Smithsonian Astrophysical Observatory)를 설립하였다. 이와 같은 ‘새뮤얼 피어폰트 랭글리’는 항공분야에도 많은 연구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는 1887년부터 수많은 글라이더 비행실험을 거쳐 1896년 5월 증기 구동식 비행기를 제작하여 최초의 무인비행 시험에 성공하였다. 이후 1898년 스미스소니언 연구소로부터 유인 항공기 개발 기금을 후원받아 비행기 제작에 들어가면서 미국 육군 성(Department of War)이 비행장 개발자금을 지원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비행장이 ‘랭글리 비행장’(Langley Aerodrome)이었다. 이와 같은 ‘새뮤얼 피어폰트 랭글리’의 하늘을 날아오르려는 노력을 헤아리면 인류 최초로 하늘을 날았던 ‘라이트형제’(Wright brothers) 이야기와 만나게 된다. 이러한 ‘라이트 형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필자는 풍족한 재정지원이 이루어진 ‘새뮤얼 피어폰트 랭글리’의 활약에 앞서 한 번의 실패로 막대한 재정부담의 압력을 극복하지 못하고 선구적인 꿈을 안고 쓸쓸하게 자신을 버린 프랑스 항공과학자 ‘알폰스 페노’(Alphones Penaud. 1850~1880)를 생각하며 하늘을 나는 오랜 비행의 역사에서 섬광과 같은 삶을 남긴 그의 이야기를 잠시 정리한다.
![]() ▲ (좌로부터) ‘알폰스 페노’/ 抱朴子 / ‘구스타브 드 폰톤 다메크르’ / ‘로런스 하그레이브’ ‘상자-연’(box-kite) 출처: https://en.wikipedia.org © 브레이크뉴스 |
‘알폰스 페노’는 해군 제독의 아들로 태어나 해군학교에 입학하였으나 고관절 결핵으로 퇴소하여 1870년 감아놓은 고무줄이 풀리면서 날아가는 장난감 비행기‘ 헬리콥터’(hélicoptère)를 개발하였다. 당시 50㎝ 길이의 모형 헬리콥터는 11초 동안 40m를 날았다. 이는 근대 항공발전사의 선구적인 바탕이다, 라이트형제가 이와 같은 장난감 헬리콥터에서 하늘을 나는 꿈을 키웠다.
이와 같은 헬리콥터’라는 비행체의 역사는 그 원형이 동양에서 시작되었다, 이는 우리가 어려서 대나무로 된 프로펠러 형태의 바람개비를 손으로 비벼서 놓게 되면 멀리 날아가는 장난감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와 같은 동양의 하늘을 나는 대나무 장난감에 대한 기록이 유럽의 항공 공학에 대한 역사에는 중국 동진(東晉) 시대에 의학자이며 자연주의자인 ‘갈홍’(葛洪:283∼343)이 저술한 ‘포박자’(抱朴子) 에 전해온다는 내용으로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이와 같은 헬리콥터’(hélicoptère)의 발전과정을 살펴보면 프랑스 ‘알폰스 페노’(Alphones Penaud. 1850~1880)가 1870년 모형 장난감으로 개발하기 전에 많은 노력이 있었다, 먼저 세기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의 노트를 보면 ‘공중 프로펠러’(aerial screw)라는 설계 그림과 메모가 존재한다. 이 메모에서는 작은 비행체의 모델을 만들어야 하는 제안을 담고 있다, 이어 러시아의 시인이며 과학자인 ‘미하일 노모노소프’(Mikhail Lomonosov. 1711~1765)가 1754년 중국의 대나무 장난감과 같은 방식으로 비행체를 만들어 기상관측 장비를 들어 올리는 실험을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에서 시연하였다.
이러한 원리는 최초로 비행기의 개념을 과학적으로 정립한 영국의 항공학자 ‘조지 케일러’(George Cayley. 1773~1857)에 의하여 선행된 연구가 있었다, 그는 1799년 양력과 추진 그리고 제어에 대한 개념을 통하여 비행기는 전진형으로 즉 후진할 수 없음을 뜻하는 ‘고정익’(Fixed Wing)에 대한 현대적 개념을 당시 설명하였다, 이후 그는 1804년 글라이더형 비행기를 하늘에 띄웠다, 이러한 전진형 ‘고정익’’(Fixed Wing)과 대비되는 개념이 회전익(Rotary Wing)이다, 이는 회전하는 날개에 의하여 비행체가 떠오르는 양력을 얻게 되는 헬리콥터와 같은 비행체를 말하며 이와 같은 기술의 발달이 많은 연구와 시간을 필요로 하였다. 이와 같은 비행체가 떠오르는 양력에서 빠트릴 수 없는 인물이 있다, 그는 영국 출신의 호주 항공과학자 ‘로런스 하그레이브’(Lawrence Hargrave. 1850~1915)이다, 그는 1893년 일명 ‘상자-연’(box-kite)을 개발하였다, 이는 강철선을 이용하여 상자 형태의 연을 연속적으로 이어 날리면서 물체가 떠오르는 양력을 모아 그 원리를 정리하였다.
이러한 비행체에 대하여 헬리콥터’(hélicoptère)라는 명칭을 부여한 인물은 프랑스 고고학자이며 화폐학자인 ‘구스타브 드 폰톤 다메크르’(Gustave de Ponton d' Amécourt. 1825~1888)였다, 그는 1861년 소형증기 동력을 사용하여 알루미늄으로 비행체를 만들어 실험하였지만, 비행체는 땅에서 조금도 날지 못하였다. 그러나 수직상승을 추구하였던 ‘폰톤 다메크르’는 산스크리트어에서부터 그리스어와 라틴어에 능통한 실력으로 그리스어로 물체의 겉모양이 빙빙 비틀린 형태의 소용돌이와 같은 곡선(나선)을 의미하는 헬릭스(helix, ἕλιξ)와 고대 신전의 안쪽 옆면과 평행하여 줄지어 늘어선 기둥을 날개로 상징한 ‘프테론’(pteron, πτερόν)을 합성한 용어로 표기하면서 이를 영어로 번역하게 되면서 ‘헬리콥터’(helicopter)가 되었다.
이와 같은 소형 증기 동력을 활용한 ‘폰톤 다메크르’는 실패하였지만 이후 이러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성공사례가 뒤를 이었다, 1887년 전기기술자 ‘구스타브 투르베’(Gustave Trouvé. 1839~1902)의 배터리를 이용한 줄로 묶인 전기모형 헬리콥터가 공중을 날았다.
이와 같은 시기인 1885년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Thomas A. Edison. 1847~1931)도 헬리콥터 개발에 전념하였다, 이는 오늘날 뉴욕타임스의 전신인 뉴욕헤럴드의 발행인이었던 ‘제임스 고든 베넷 주니어’(James Gordon Bennett Jr. 1795~1872)가 주문하였다. 그러나 심혈을 들여 개발한 헬리콥터는 실험 즉시 폭발하면서 자존심이 날아가 버린 에디슨은 수많은 엔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1905년 5월 5일 헬리콥터는 고도 4m로 1,500m 이상을 날았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그는 1908년 가솔린 엔진 헬리콥터의 특허를 신청하였지만 끝내 날아오르지 못하고 세기의 발명왕 에디슨은 헬리콥터 개발의 꿈을 중단하고 말았다.
이처럼 동양의 장난감에서 출발한 헬리콥터는 많은 이야기를 품고 1907년 9월 29일 최초의 헬리콥터 비행체의 유인 비행이라는 어설픈 기록을 낳았다, 이에 대하여 살펴보면 오늘날 에어 프랑스의 창업자인 ‘루이 샤를 브레게’(. 1880~1955)와 자크 브레게(Jacques Breguet) 형제가 오늘날 쿼드콥터(quadcopter) 방식의 드론(drone)과 유사한 4개의 회전날개를 이용하여 떠 오르는 ‘브레게-리셰 자이로플레인’(Breguet-Richet Gyroplane)를 제작하여 조종사를 태우고 약 1분간 60cm 정도를 떠올랐다. 이는 엄밀하게 실패한 인류 최초의 헬리콥터 유인 비행이었다, 이후 1933년 젊은 엔지니어 ‘르네 도랑’(Rene Dorand. 1898~1981)과 자이로 플레인-실험’(Gyroplane-Laboratoire)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하여 새로운 비행체를 제작하였다, 이에 1935년 6월 조종사 ‘모리스 클레스’(Maurice Claisse. 1905~1986)가 고도 158m까지 비행하여 지난 실패를 극복하였으나 후속 개발이 중단되었다.
이와 같은 이야기에서 살펴지듯이 헬리콥터의 비행 역사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였다. 이후의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프랑스 항공 과학자 ‘알폰스 페노’(Alphones Penaud. 1850~1880)의 이야기를 다시 이어간다. 그는 1870년 동양의 하늘을 나는 대나무 장난감에서 출발한 모형 헬리콥터를 개발하고 다음 해 1871년 고무줄로 프로펠러를 돌려 날아가는 장난감 모형비행기 ‘프라노포’(Planophore)를 개발하였다. 그는 이 무렵 고무줄 동력을 이용한 '오니숍터’(Ornithopter)라는 날개를 펄럭이는 모형 비행체도 개발하였다, 이러한 장난감 비행체로 1903년 인류 최초로 하늘을 날았던 ‘라이트 형제’를 비롯하여 시대의 어린이들에게 우주의 꿈을 안겨주었던 그는 장난감 모형이 아닌 실제의 비행기를 제작하려는 뜻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1876년 이와 같은 대형 비행기의 구체적인 설계를 마친 그는 첫 실험에 실패하였다. 이후 혼신의 노력으로 문제점을 보완하여 새로운 프로젝트에 들어갈 비용의 후원자를 찾으려 백방으로 노력하였으나 실패하면서 1880년 10월 22일 프랑스 8구역 자택에서 한 발의 총성으로 30세 나이의 너무나 젊은 자신을 버렸다, 이처럼 섬광처럼 사라져버린 ‘알폰스 페노’(Alphones Penaud. 1850~1880)의 장난감 헬리콥터에서 꿈을 키웠던 ‘라이트형제’(Wright brothers)는 그의 안타까운 영혼을 위로하듯 1903년 인류최초의 동력 비행기로 하늘을 나는 주인공이 되었다, 만약 ‘알폰스 페노’에게 재정적인 후원이 이루어져 그의 꿈이 펼쳐졌더라면 세상은 또 다른 역사를 가졌을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쓸쓸한 이야기를 안고 다시 1896년 5월 증기 구동식 비행기를 제작하여 최초의 무인비행 시험에 성공하였던 미국의 ‘새뮤얼 피어폰트 랭글리’(Samuel Pierpont Langley. 1834~1906)와 인류 최초의 동력 유인 비행에 성공한 ‘라이트형제’(Wright brothers)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라이트형제’(Wright brothers)는 형 ‘윌버’(Wilber, 1867~1912)와 동생 ‘오빌’(Orville. 1871~1948) 형제이다. 형제는 어려서 아버지가 사다 준 프랑스 ‘알폰스 페노’가 개발한 모형 헬리콥터를 매만지며 하늘을 나는 물체에 깊은 관심과 호기심을 가지고 자랐다, 형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인쇄 사업을 하다가 1892년 미국에 선풍적인 바람이 불었던 자전거 열풍에 자전거 수리 점포를 열어 뛰어난 기술을 발휘하였다. 이와 같은 뛰어난 기술력을 지켜본 자전거 부품 회사에서 자전거 조립을 제안하여 자체 자전거를 제작 판매하면서 많은 이익을 축적하였다.
이러한 ‘라이트형제’는 독일 항공의 개척자인 ‘오토 릴리엔탈’(Otto Lilienthal. 1848~1896)이 1877년 최초의 글라이더를 제작하여 하늘로 띄운 후 1891년 사람이 탈 수 있는 글라이더를 개발하여 처음으로 비행에 성공한 기사를 보며 어려서부터 가졌던 하늘을 날아가는 꿈을 가슴에서 매만지고 있었다. 이때 1896년 5월 ‘새뮤얼 피어폰트 랭글리’가 증기 구동식 비행기를 제작하여 최초의 무인비행 시험에 성공하였다. 는 기사에 이어 그해 8월 9일 독일의 ‘오토 릴리엔탈’이 자신이 개발한 소형엔진을 장착한 글라이더를 비행하다 추락하여 다음 날 세상을 떠난 뉴스를 보았다. ‘라이트형제’는 비록 국적은 다르지만, 오랫동안 자신들이 가졌던 꿈을 수많은 실험을 통하여 이루어 가는 선구자 ‘오토 릴리엔탈’의 기사를 보면서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응원하던 멘토의 죽음을 오래도록 슬퍼하였다,
이후 ‘라이트 형제’는 스미스소니언 연구소에 축적된 항공과 비행에 관련된 자료를 공부하며 비행기 제작과 관련된 비행 실험을 시작하였다. 당시 ‘라이트 형제’는 이미 앞선 선구자들의 실험에서 엔진과 날개의 문제가 아닌 비행체의 조종과 제어가 가장 중요한 문제임을 인식하여 무수한 실험과 노력을 통하여 이를 극복하였다. 이때 ‘라이트 형제’의 가장 주요하게 헤아린 핵심이 새들의 비행이었다, 새가 날개의 끝을 움직여 몸체의 방향을 유도하는 움직임을 수없이 관찰하여 비행체의 날개가 이러한 제어에 움직이도록 하는 기술개발에 주력하였다.
‘라이트 형제’는 특히 영국 출신의 토목학자이며 물리학자인 ‘존 스미턴’(John Smeaton. 1724~1792)이 1759년 ‘동력으로서의 풍력·수력의 실험적 연구’라는 논문을 통하여 대기 중에 움직이는 물체의 압력과 속도 사이의 관계를 정립하였던 이른바 ‘스미턴 계수’(Smeaton coefficient)에 대하여 많은 연구를 거듭하였다, 이와 같은 영국 출신의 토목학자이며 물리학자인 ‘존 스미턴’(John Smeaton. 1724~1792)은 현대 시멘트 공학의 전환을 이룬 수경 시멘트의 실질적인 개발자이다, 시멘트는 인류 역사의 건축물과 동행한 물질로 고대 피라미드에 사용한 석회와 석고를 혼합한 시멘트에서 석회와 화산재를 섞은 시멘트가 개발되었다, 이는 공기 중 이산화탄소 작용으로 표면에 탄산염 피막이 생겨 굳어지는 기경성 시멘트(air setting cement)로 오랫동안 사용되어왔다. 이를 석회석을 구운 시멘트가 물과 공기 속에서 굳어지는 사실을 일깨워 발명한 시멘트가 수경성 시멘트(hydraulic cement)이다, 1756년 ‘존 스미턴’이 영국해협의 요충지 레임헤드(Rame Head)에서 14㎞ 떨어진 암초 구역에 서 있는 '에디스톤 등대'(Eddystone Lighthouse)의 보수 공사를 하면서 이와 같은 수경성 시멘트가 사용되었다.
이러한 ‘존 스미턴’의 계수는 현대 공기역학에서는 역학적 힘이 공기의 밀도에 의존하고 밀도가 고도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당시 스미턴의 계수 식에서는 고도에 따라 항력이 변하기 때문에 계수마다 이와 같은 변화의 값이 필요하였다, 물론 당시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가 공기밀도의 변화가 커지는 높은 고도를 비행한 것은 아니지만 스미턴의 계수는 일정한 고도에서만 그 값이 유지되는 편차에 대하여 라이트 형제는 이를 오랜 실험을 통하여 수정하였다.
‘라이트 형제는’ ‘스미스소니언 연구소’ 자료를 통하여 독일 항공의 개척자인 ‘오토 릴리엔탈’(Otto Lilienthal. 1848~1896)과 미국의 항공학자 ‘새뮤얼 피어폰트 랭글리’(Samuel Pierpont Langley. 1834~1906)가 이와 같은 스미턴 계수의 편차를 고려하지 않은 날개의 크기로 생겨난 오류를 찾아내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이에 공기의 흐름이 물체에 미치는 힘을 조사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공기가 흐르도록 만든 장치 ‘풍동’(wind tunnel)을 이용하였다, 이와 같은 ‘풍동’(wind tunnel)장치는 영국의 수학자이며 군사공학자인 ‘벤저민 로빈스’(Benjamin Robins. 1707~1751)가 맨 처음 실험한 장치로 영국의 항공학자 ‘조지 케일러’(George Cayley. 1773~1857)이거나 독일 항공의 개척자인 ‘오토 릴리엔탈’(Otto Lilienthal.1848~1896)이 뒤를 이어 실험하였던 장치이다.
이와 같은 ‘풍동’장치는 의학분 야에도 상당한 학문적 경지를 가졌던 네덜란드 출신의 스위스 물리학자 ‘다니엘 베르누이’(Daniel Bernoulli. 1700~1782)가 정립한 ‘베르누이의 원리’(Bernoulli's principle)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는 인체 혈압에 대한 연구에서 근원이 되어 ‘유동의 높이가 일정할 때 유속이 증가하면 압력이 낮아지고’, ‘유속이 감소하면 압력이 높아진다.’는 유체가 흐르는 속도와 압력과 높이의 관계를 수량적으로 나타낸 법칙으로 유체역학의 바탕이 되었다,
이와 같은 ‘라이트 형제’의 끝없는 노력과 실패의 곁에 그림자처럼 서 있던 인물이 있었다, 그는 프랑스 출신의 미국의 항공기술자인 ‘옥타브 샤누트’(Octave Chanute. 1832~1910)였다, 그는 철교 건설에 명성을 가진 토목기술자로 1890년 무렵 하늘을 나는 비행기 열풍이 불던 때에 ‘라이트형제’를 만나 교유하면서 글라이더 날개 제작에 참여하였다, 그는 2장의 날개를 상하로 배치하여 떠오르는 글라이더 날개 복엽기(biplane)에 철교 건설에 사용한 이론을 바탕으로 버팀대와 선을 사용하는 구조를 고안하여 큰 도움을 주었다.
![]() ▲ (좌로부터) Smeaton coefficient/ 1903년 12월 7일 라이트 형제 최초 비행장면 (Kitty Hawk) / ‘라이트 형제’의 ‘풍동’(wind tunnel) 출처: https://en.wikipedia.org © 브레이크뉴스 |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라이트 형제’는 많은 실험을 통하여 비행체의 조종기술을 축적하여 1903년 12월 17일 노스캐롤라이나주의 ‘키티 호크’(Kitty Hawk)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12마력 엔진의 동력 비행기를 조종하여 인간비행에 성공하였다. 이후 ‘라이트 형제’는 이와 같은 최초의 비행에 대한 오랜 법정 투쟁을 벌여야 했다. 그것은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미국의 항공학자 ‘새뮤얼 피어폰트 랭글리’(Samuel Pierpont Langley. 1834~1906)와 그의 비행기에 엔진제작을 맡았던 ‘글렌 커티스’(Glenn H. Curtiss. 1878~1930)의 특허문제가 연관된 문제였다, 여기에 ‘새뮤얼 피어폰트 랭글리’의 비행에 막대한 연구기금을 후원하였던 스미스소니언연구소의 명예에 대한 문제까지 가세하면서 ‘라이트 형제’와 30년간의 진실 공방을 벌였던 이야기는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또한 칼럼의 서두에서 등장한 액체형 로켓을 최초로 개발한 미국의 과학자 ‘로버트 고다드’(Robert Goddard. 1914~1916)에 대한 이야기도 마무리해야 할 내용이 많다. 이어서 이와 같은 이야기와 함께 연관된 우주의 꿈을 후원한 스미소니언 박물관과 구겐하임미술관 이야기를 살펴보기로 한다, 다음 칼럼은 (208) 우주의 꿈을 키운 스미소니언 박물관(Smithsonian Museum)과 구겐하임미술관(Guggenheim Museum)입니다. *필자: 이일영, 시인. 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artwww@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