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3년 9월 19일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루이 16세 왕’(Louis XVI of France. 1754~1793)과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Marie Antoinette. 1755~1793)가 지켜보는 가운데 닭과 오리와 양을 태운 열기구가 하늘을 날았다. 이와 같은 열기구 이름이 고급 벽지회사를 운영하던 ‘장 밥티스트 레베용’(Jean-Baptiste Reveillon. 1725~1811)의 이름인 ‘레보용 비행선’(Aérostat Réveillon)이었다.
또한, 11월 21일 인류 최초의 사람이 비행하는 열기구 비행 날짜가 결정되면서 루이 16세 국왕은 하늘을 날아가는 열기구에 타는 사람의 안전을 믿기 어려웠던 이유로 중죄인을 태우라는 명령을 내렸다. 당시 몽골피에 형제는 ‘레베용’의 공장에서 열기구를 제작하고 있었다. 형제와 ‘레베용’은 인류 최초의 감격스러운 비행에 죄수가 등장하는 문제에 부딪혔다. 이와 같은 국왕의 결정이 번복되었다. 그것은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가 국왕을 설득하였던 것이다. 왕비에게 이와 같은 요청을 한 인물이 있었다. 그는 왕비’와 너무나 절친한 ‘폴리냑 공작부인’(Yolande de Polastron. 1749~1793)이었다. 바로 ‘레비용’이 ‘폴리냑 공작부인’에게 부탁한 것이었다. 이에 죄수가 아닌 과학자 ‘장 프랑수아 필라트르 드 로지에’와 왕실 경비병이었던 ‘푸랑수아 로랑 다를랑드’가 열기구 조종사가 되어 1783년 11월 21일 파리 서쪽의 ‘불로뉴 숲’에 자리한 ‘뮈에트 성’에서 인류 최초 유인비행의 역사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와 같은 인류 최초의 열기구 비행에 대한 다양한 내용은 파리의 ‘포부르 생 앙투안’(Faubourg Saint-Antoine)에서 고급 벽지회사와 공장을 운영하는 ‘장 밥티스트 레베용’(Jean-Baptiste Reveillon. 1725~1811)의 기획이었다. 이에 필자는 지난 칼럼에서 ‘레베용’을 열기구 유인 비행의 기획자로 기록한 것이다. 이와 같은 ‘레베용’에 대하여 살펴보면 그는 문방구와 잡화를 파는 가게에서 일하다 28세이던 1753년 독립하여 벽지 가게를 열었다. 처음에는 영국에서 수입한 벽지를 판매하던 그는 7년 전쟁(Seven Years' War. 1756~1763) 기간에 결혼하여 신부의 지참금으로 벽지 제조공장을 설립하였다. ‘레베용’은 뛰어난 응용력을 가진 비상한 두뇌의 인물이었다. 그는 오랜 역사 동안 권력과 부의 상징으로 자리하였던 고급 옷감 벨벳(Velvet)을 벽지로 개발한 선구자이다. 오늘 칼럼은 이와 같은 ‘벨벳’(Velvet) 이야기이다.
![]() ▲ ‘벨벳’(Velvet) 과 ‘카슈미르’(Kashmir) 출처: https://en.wikipedia.org © 브레이크뉴스 |
이러한 ‘벨벳’(Velvet)은 고운 털이 있는 비단이라는 뜻의 한자권의 우단(羽緞)과 라틴어의 이끼 또는 털의 묶음을 뜻하는 빌루스(villus)에서 전해진 포르투갈어의 비로드(veludo)로도 부르는 직물이다. 이와 같은 ‘벨벳’은 표면에 부드러운 섬유 털이 촘촘하게 박힌 파일직물(pile fabric)이다. 보편적으로 직물이란 가로 방향으로 엇갈아 넣으며 무늬를 만들어 내는 ‘씨실’인 ‘위사’(Weft)와 세로 방향의 날실인 경사(Warp)의 교차로 이루어지는 직조(weaving)가 보편적이다. ‘벨벳’은 날실이 겹으로 엉키어 직물 표면에 사선으로 나타나는 능직(twill weave-綾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시대마다 조금씩 다른 직조기법이 등장하지만 모두가 고도의 섬세한 작업이 요구되는 직물이다.
이와 같은 벨벳(Velvet)의 역사는 BC. 2000년 무렵 고대 이집트 유물과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BC. 403~BC. 221)와 서한 시대(西漢·BC 206년∼AD 24년)의 유물에서도 나타나는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누구도 그 실체적인 명확한 이야기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비근한 예로 지난 2004년 뉴욕타임스에서 창간한 라이프 스타일 잡지인 ‘뉴욕타임스 스타일 매거진’(The New York Times Style Magazine)이 있다. 이 잡지는 2013년 8월 패션 특집으로 ‘국제 벨벳’(International Velvet)이라는 벨벳 직물에 대한 특집 기사를 실었다. 당시 온라인에 특집 비디오물까지 게시하였지만, 역사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기사였다. 이렇듯 오늘날까지 정리되고 있는 벨벳(Velvet)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고대 이집트 유물을 앞세워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카이로(Cairo)에서 전문적인 생산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후 르네상스 시대에 이탈리아에서 고급 벨벳 직물이 생산되면서 권력과 부를 상징하는 직물로 그 역사를 이어왔다는 것이다.
필자는 민간 경제 연구소에서 주식 분석 일을 하면서 우리나라 주요한 전자, 화학, 철강, 섬유 등에 이르는 모든 산업의 현장을 직접 살펴 가며 기업 리포트를 작성하였다. 예를 들어 섬유 산업의 실을 뽑아내는 방적에서부터 방적된 실에 꼬임을 주어 섬유의 얽힘을 방지하는 연사와 함께 생사의 제사 방식에 이어 직물이 직조되는 공장까지 현장의 작업과정을 낱낱이 살펴보았다. 이러한 섬유가 의류로 만들어지는 봉제 과정의 특수한 재봉틀과 기계의 기능적 특성을 직접 가동해보기도 하였던 젊은 날의 생생한 경험이 칼럼을 쓰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와 같은 젊은 날의 소중한 경험을 떠올리며 필자가 헤아려온 벨벳(Velvet)의 역사를 정리하기로 한다.
여기서 잠시 살펴야 하는 내용이 있다. 인도 북서부와 파키스탄 북동부에 이르는 히말라야산맥 골짜기 고원을 거점으로 정주하는 ‘카슈미르’(Kashmir) 인들이 있었다. 벨벳(Velvet) 직물은 바로 이와 같은 ‘카슈미르’ 상인에 의하여 이슬람 아바스 왕조(Abbasids)의 5대 칼리프인 ‘하룬 알 라시드’(Harun al-Rashid. 763~809) 통치 기간에 수도 바그다드(Baghdad)에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당시 아바스 궁전에서 활동하던 음악가 ‘지르얍’(Ziryab. 789~857)이 있었다. 그는 음악은 물론 다양한 문화와 예술에 깊은 식견을 가진 인물이었다, 칼리프 ‘하룬 알 라시드’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이베리아반도 에스파냐(스페인) 남부에 독립 토후국인 ‘코르도바’(Córdoba)의 총독이었던 ‘아브탈 라흐만 2세’(Abdar-Rahman II, 792-852)의 궁정 악사로 가게 되면서 822년 이곳에 벨벳(Velvet) 직물을 소개하였다.
음악가 ‘지르얍’은 이슬람의 전설적인 가수이었던 ‘이브라힘 알 마우실리’(Ibrahim al-Mawsili. 742~804)의 제자이며 아들이었던 ‘이스하크 알 마우실리’(767~850)의 제자이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지르얍’에 의하여 이슬람의 ‘나우바’(Nawbah)음악이 탄생하였다. 이는 중동음악은 물론 안달루시아 음악과 북아프리카 음악이 탄생한 바탕이 되었다. 이와 같은 나우바’(Nawbah)음악은 다양한 시적 형태를 노래하며 여러 악기로 구성한 변주 기법이 많은 음악이었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 이베리아에 거점을 가졌던 이슬람 문화권에서 900년 무렵부터 여러 악기 제조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벨벳(Velvet) 직물의 제조에서부터 다양한 기술이 부흥하였다. 이와 같은 모든 문화가 ‘프로방스’를 거쳐 유럽 전역으로 퍼져갔지만 벨벳(Velvet) 직물의 제조 기술은 전수되지 않았다. 그만큼 벨벳 직물은 소중한 직물이었다.
이후 오랜 역사를 가진 중앙아시아 초원 지역을 거점으로 활동하였던 튀르크족(Turks) 출신으로 노예이었던 ‘쿠트브 웃 딘 아이바크’(Qutb al-Din Aibak. 1150~1210)가 1206년 인도 북부에 이슬람 맘루크 왕조(Memluks)인 ‘델리 왕조’(Delhi Sultanate) 세웠으나 1290년 실질적인 막을 내렸다.
이와 같은 시점에 1250년 무렵 이집트 지역에 세워진 또 다른 맘루크 왕조가 있었다. 이들은 튀르크족의 일파로 터키에서 불가리아, 헝가리 일대에서 활동하였던 유목민 쿠만족(Cumans)과 중세시대 루마니아에서부터 카자흐스탄, 몽골에 이르는 유라시아 대초원을 방랑하면서 혼합인종으로 존재한 캅카스인(Kipchaks)출신의 노예였다. 또한, 흑해 연안 캅카스에서 정주하였던 아디게인(Adyghe)과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 카프카즈 산맥과 흑해 연안의 조지아(Georgia)에서 활동한 아브하즈인(Abkhazians) 그리고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족으로부터 출발한 셀주크튀르크족(Seljuk Turks)과 같은 계보이었던 오구즈 튀르크인(Oghuz Turks)과 같은 노예들이 세운 왕조였다. 이와 같은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는 오랜 역사 동안 수많은 세계사를 남겼다.
이때 오늘날 터키령의 산악지대 아나톨리아(Anatolia)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오구즈 튀르크인(Oghuz Turks)의 후예 ‘오스만 1세’(Osman I. 1258~1326)가 1299년 오스만 제국(Osman Empire)을 세웠다, 이와 같은 오스만 제국에 의하여 1517년 오랜 역사를 써 내려온 이집트 맘루크 왕조가 막을 내렸다.
이와 같은 역사 속에서 신비의 직물로 전해온 벨벳(Velvet)이 맘루크 왕조 시대에 이집트 카이로에서 많은 생산이 이루어진 배경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추정이 가능해진다. 먼저 인도 히말라야산맥의 고원 ‘카슈미르’(Kashmiri) 상인에 의하여 이슬람 아바스 왕조(Abbasids) 시대에 전해진 실크로 직조된 벨벳(Velvet)은 신비의 직물이었다. 그 촉감은 물론 한눈에 지상 최대의 직물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까지 보아온 직물과 다르게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또 다른 광택이 드러나는 신비한 직물에 빠져버린 지도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직조공을 데려와 비밀리에 작업장을 운영하였을 것이다.
이후 아바스 왕조(Abbasids)가 무너지고 맘루크 왕조가 통치하면서 이집트 카이로에서 벨벳(Velvet) 생산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배경은 벨벳 직물의 직조에 필요한 고도의 기술 때문이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오랜 섬유 직조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카이로는 특히 그 예술성을 자랑하는 콥트 직물(Copt textile fabric) 직조법이 전승되어 왔다. 이는 날실인 경사(Warp)에 마(麻)를 사용하여 밑그림 위에 ‘씨실’인 ‘위사’(Weft)를 양털(wool)을 사용하여 무늬를 나타내는 낮은 수평 방식의 직조법이다. 이후 이를 바탕으로 고대 그리스 시대에 섬유예술 태피스트리(tapestry)가 탄생하였다. 이는 동양에서 이루어진 철직(綴織)과 같은 기법이다. 이와 같은 오랜 기술적 바탕을 가진 카이로에서 신비의 직물 벨벳(Velvet)이 생산되면서 지중해 무역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상품이 되었다.
당시 서아프리카의 황금 왕국으로 잘 알려진 말리 제국(Manden Kurufa)의 왕 ‘만사 무사’(Mansa Musa. 1280~1337)가 1324년 성지순례를 떠나 1325년 돌아오면서 실로 엄청난 비용을 들여 벨벳 직조공을 데려와 ‘팀북투’(Timbuktu)에 비밀공장을 만들었다. 이러한 역사의 바탕에서 오늘날 아프리카 중서부의 나라 콩고(Congo)에서 생산되는 최고의 명품 벨벳으로 인정받는 ‘쿠바 벨벳’(Kuba Velvet)이 탄생한 것이다.
중세 지중해 무역을 통하여 유럽지역 영국과 프랑스는 물론 여러 자치 도시 공국으로 통치되던 이탈리아 주요 공국에 가장 인기 있는 상품으로 통하였던 벨벳(Velvet)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 많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리처드 2세 왕’(Richard II of England. 1367~1400)은 자신이 죽으면 벨벳으로 자신의 몸을 덮으라는 말을 남겼을 만큼 당대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직물이었다.
이와 같은 벨벳(Velvet) 직물이 이탈리아에서 생산된 시기는 1500년 이후이다. 이에 앞서 꿈의 직물 Silk(비단)의 직조가 토스카나 지방의 피렌체(Florence)와 루카(Lucca)에서 가장 먼저 이루어졌다. 피렌체 기준으로 Silk(비단)를 직조하던 직조공의 실크길드(Arte della Seta) 가 형성된 시기가 1192년이다, 이와 같은 Silk(비단)에 금실을 넣어 무늬를 만드는 고난도의 기술로 이루어진 ‘세마이트’(samite) 숙련공들이 있었다. 바로 이들이 나중에 벨벳(Velvet) 직물을 생산하는 주역이 되었다.
![]() ▲ (좌로부터) 아바스 왕조(Abbasids)의 5대 칼리프인 ‘하룬 알 라시드’(Harun al-Rashid. 763~809) / ‘지르얍’(Ziryab. 789~857)/ 말리 제국(Manden Kurufa)의 왕 ‘만사 무사’(Mansa Musa. 1280~1337) 출처: https://en.wikipedia.org © 브레이크뉴스 |
당시 이탈리아 북동부 섬의 도시 ‘베네치아’(Venice)와 토스카나 지방의 피렌체(Florence)와 루카(Lucca) 그리고 서북부의 항구도시 제노바(Genoa)에서 벨벳(Velvet) 직물이 생산되면서 이탈리아는 세계 최대의 벨벳 생산국이 되었다. 지형적으로 교역요건이 좋았던 항구도시 베네치아와 제노바의 벨벳은 그 품질이 뛰어났다. 당시 이와 같은 벨벳을 생산한 이탈리아의 도시 공국들이 벨벳 직조공을 양성하고 공장을 세우면서 기밀의 유지를 위하여 은밀한 수도원과 교회를 이용하였다. 또한, 일체의 기록을 남기지 않은 첩보전을 방불케 하였던 사실들이 오늘날 이탈리아 벨벳 직물 생산에 대한 이야기를 명확하게 살피지 못하는 요인이다. 이는 벨벳 직물이 최초로 세상에 등장한 시점부터 약 700년의 역사 동안 지속하여온 비밀로 인류 역사에서 핵폭탄보다 더 비밀스러운 침묵을 안고 있는 사례이다.
이와 같은 오랜 역사에 담긴 이야기를 정리하면 끝없는 신비감이 밀려드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인도 북서부와 파키스탄 북동부에 이르는 히말라야산맥 골짜기를 거점으로 정주하였던 ‘카슈미르’(Kashmir)인들 이다. 그들이 최초로 벨벳(Velvet) 직물을 직조하였던 배경이 히말라야의 만년설과 같은 신비로 몰려들기 때문이다.
우리가 100% 면양의 털로 만든 섬유를 순모(純毛) 또는 ‘캐시미어’(Cashmere)라고 한다. 이와 같은 ‘캐시미어’는 씨실이 날실의 위와 아래를 지나면서 줄마다 하나의 실이 교차하며 경사진 무늬를 만들어낸다, 이른바 사문직(斜紋織-twill weave) 또는 능직(綾織)으로 짜인 전통 직물이다. 바로 ‘카슈미르’(Kashmir) 인들이 오랫동안 직조하여온 기술이다. 바로 이러한 바탕에서 뛰어난 전설적인 숙련공에 의하여 인류 최초의 벨벳(Velvet) 직물이 탄생하였다. 기록으로 남아있는 유일한 증거인 ‘카슈미르’ 상인에 의하여 이슬람 아바스 왕조(Abbasids) 시대에 수도 바그다드(Baghdad)에 처음으로 소개되었다는 히말라야 만년설과 같은 신비가 녹아내리는 대목이다. (더욱 전문적인 기술적 설명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이와 같은 ‘카슈미르’ 인들이 직조하였던 전통 ‘캐시미어’(Cashmere)는 사문직(斜紋織-twill weave)으로 짜인 오늘날에도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는 어깨걸이 ‘숄’(shawl) 형태 이거나 목도리 형태였다. 이러한 ‘카슈미르’ 인들의 오랜 직조 술을 증명하는 중대한 유적발굴이 있었다. ‘숄’ 형태의 목도리가 있는 고대 인더스 문명의 유적이 1922년 발굴되었던 것이다. 인더스강 하류의 파키스탄 남부 신드주 중북부에 있는 ‘모헨조-다로’(Mohenjo-daro)에서 BC. 2600년에서 BC. 1900년간에 꽃 피운 인더스 문명의 도시 유적이 발굴되면서 인물 동상에 둘려 있는 ‘숄’ 형태의 목도리에 클로버와 같은 세 잎으로 구성된 삼엽형(三葉形-trefoil)문양이 선명하게 담겨 있었다.
이와 같은 ‘캐시미어’에서 가장 품질이 좋은 직물을 ‘파시미나’(pashmina)라고 한다. 이는 페르시아어로 울이라는 뜻을 가진 ‘파심'(pashm)과 보석의 뜻인 ‘미나(mina)’의 합성어이다. 이와 같은 ‘파심'은 티베트와 카슈미르지역 라다크(Ladakh) 고원에 서식하는 염소인 창그탕기(Changthangi)로도 부르는 ‘파시미나’(Pashmina) 염소의 털에서 얻어진다. 또한, 같은 지역 ‘카르길’(Kargil)에 서식하는 말라아(Malra) 염소와 인도 북서부의 설산 ‘히마찰프라데시주’(Himachal Pradesh)에 있는 ‘치구’Chegu)염소, 그리고 네팔 ‘파시미나’로 부르는 창가라(Chyangara) 염소의 가슴 털로 직조되는 직물이 ‘파시미나’(pashmina)이다.
이와 같은 최상의 품질을 가진 ‘파시미나’(pashmina)로 직조된 ‘자마바’(jamavar)숄은 예로부터 최상의 품질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신이 내린 선물이라는 수식이 따라다니는 가장 희귀한 어깨걸이 ‘숄’(shawl) ‘샤투슈’(shahtoosh)가 있다. 이러한 ‘샤투슈’(shahtoosh)숄은 카슈미르 지역에 서식하는 염소 ‘아이빅스’(ibex)와 티베트 희귀 영양 ‘치루’(chiru)의 털로 만들어진다. 이와 함께 중국 북부의 국경지대인 ‘네이멍구 자치구’(內蒙古 自治區)에 서식하는 염소의 솜털로 직조되는 황제의 양모로 전해오는 ‘새미너’(Shamina)숄 또한 전설적인 희귀품이다.
기록에 의하면 이슬람 학자이며 시인이었던 ‘미르 사이드 알리 하만다니’(Mir Sayyid Ali Hamadani. 1314~1384)가 ‘카슈미르’ 지역에 이슬람을 전파하면서 이란지역에서 섬유 직조공을 데려왔다. 이어 카슈미르 지역을 통치하던 8번째 술탄 ‘자인-울-알비딘’(Zain-ul-Abidin)이 중앙아시아에서 직조기술을 들여와 ‘파시미나’(pashmina) 산업이 부흥하였다고 한다. 물론 잘못된 기록은 아니지만 찬연한 인도 문명의 실체를 바르게 전하지 못하는 기록으로 오랫동안 존재하고 있다. 당시 그들이 도입한 새로운 직조기와 기술에 의하여 효율성 있는 직조가 이루어진 점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류 최초의 벨벳 직물이 탄생한 사실과 같은 오랜 역사가 품은 찬연한 전통에 대한 기록은 이러한 기록에 가려져 역사의 바람으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 ▲ (좌로부터) Raw (left) and de-haired (right) Cashmere Pashmina wool/ ‘샤투슈’(shahtoosh)숄 / ‘파시미나’(Pashmina) 염소 출처: https://en.wikipedia.org © 브레이크뉴스 |
직조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이다. 외부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일차적인 의미에서부터 드러내지 않아야 할 것을 감추는 정신적인 의미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용도에서 탄생한 기술이다. 이와 같은 직조는 만들어야 할 크기를 정하는 ‘날실’(Warp-經絲-세로실) 사이로 ‘씨실’(Weft-緯絲-가로실)이 얽혀들며 직물이 탄생한다. 이는 태초의 수공에서부터 오늘날 기계문명의 제직에 이르기까지 그 원리는 변함이 없다. 다만 ‘씨실’(Weft-緯絲-가로실)이 얽혀드는 방식과 기교에 따라 다양한 무늬가 생겨나고 바탕의 질감이 달라질 뿐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인도 문명에서 직조의 역사는 바로 문명의 발상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역사에서 발아된 샤크티 신앙(Shakti)과 시바 신앙(Siva)을 바탕으로 전통사상이 생겨나면서 직조의 바탕과 같은 ‘날실’(Warp-經絲-세로실)을 뜻하는 수트라(sūtra)가 탄생하였다. 이는 무엇을 꿰는 끈이라는 뜻으로 주요한 가르침을 기록하여 묶은 의미로 날실과 같은 바탕을 뜻하는 것이다, 이후 드넓은 인도의 서부지역 평민들이 사용하였던 파이샤치어(paiśācī) 즉 팔리어(pāli)에서 ‘수타’(sutta)로 전해져 중국에 번역되면서 경전(經典)이 되었다.
이와 함께 등장하는 ‘씨실’(Weft-緯絲-가로실)을 상징하는 탄트라(tantra)가 있다. 이는 대표적으로 절대신 샤크티(Shakti)를 숭배하는 샤크티파(Śāktaṃ)의 수행 경전이다. 우주의 원리와 같은 신성한 어머니로 받드는 여신 샤크티의 은밀한 능력에 담긴 가르침을 수행을 통하여 일깨우는 것으로 오랫동안 밀교(密敎-Esotericism)로 전해왔다. 이러한 밀교(密敎)의 한자어 의미는 틈새(간극-間隙-clearance)가 없는 즉 보이지 않는 것에서 영적인 지혜의 일깨움을 의미한다. 서양의 은비주의(Esotericism) 또는 신비주의(mysticism)와 맞닿은 것이다.
이와 같은 탄트라(tantra)는 비슈누파(Vaisnava)와 시바파(Śaiva)로 분류되는 숭배하는 신은 다르지만 가르침을 받드는 수행의 신성한 방법이 맞닿은 사실에서 인도 사상의 일깨움에 대한 가장 주요한 맥락이라 할 것이다. 탄트라(tantra-तन्त्र)는 어원적으로 이러한 맥락을 극명하게 상징한다. 탄트라는 산스크리트어로 ‘씨실’(Weft-緯絲-가로실)의 뜻과 함께 넓혀 간다라는 의미가 있다. 이는 전통과 가르침을 엮어 널리 전한다는 맥락이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 다시 헤아리게 되는 곳이 바로 신성한 직물 ‘캐시미어’(Cashmere)를 매만지며 최초의 벨벳(Velvet) 직물이 탄생한 히말라야 골짜기 ‘카슈미르’(Kashmir)이다. 이곳 ‘카슈미르’에서 9세기 무렵부터 탄트라의 가장 신비한 수행그룹인 ‘카슈미르 샤이비즘’(Kashmir Shaivism)이 형성되었다. (이와 같은 내용은 실로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이에 구체적인 내용은 독립된 칼럼에서 다루기로 한다.)
카슈미르 출신의 철학자이며 사상가인 ‘아비나바굽타’(Abhinavagupta. ?~?)는 어느 날 꿈에서 신이 가르쳐준 영적 수행의 경구를 정리하여 발표하였다. 이른바 ‘시바 수트라’(Shiva Sutras)이다. 이어 이를 해석한 저술 ‘스판다 카리카’(Spandakārikā)를 펴냈다. 그는 이와 같은 신성한 진동의 해석이라는 저술에서 ‘시바 수트라’의 수행 경구를 해석하면서 세상의 모든 소리와 흔들림이 가지고 있는 깊은 원리를 헤아리며 인간의 몸짓과 숨결이 가지는 심오한 수행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였다.
그는 특히 탄트라에 관련된 주요한 저술 이외에도 행동의 교훈이라는 뜻을 가진 저술 ‘나티야 샤스트라’(Natya Shastra)를 펴냈다. 이는 인도 음악과 무용 그리고 악기에 대한 내용과 함께 연극과 공연에 이르기까지 고대의 문헌을 망라한 방대한 저술이다. 물론 이와 같은 ‘나티야 샤스트라’(Natya Shastra)가 ‘아비나바굽타’ 개인에 의하여 모든 저술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의 저술은 고대에서부터 수차례에 걸쳐 보완되어온 내용을 바탕으로 행동과 소리라는 관점에서 예술과 인간의 감성적 관계에 대한 깊은 의견이 제시되었다. 숱한 속박에서 진정한 해탈을 추구한 탄트라의 깊은 수행의 지침이 탄생한 바탕이기도 하다.
최초의 벨벳(Velvet) 직물이 탄생한 히말라야 골짜기 ‘카슈미르’(Kashmir)에는 오늘도 고원의 극한 환경에서 신성한 생명을 호흡하는 염소의 여린 울음만이 존재한다. 인간은 오랜 역사 동안 이와 같은 동물의 털 한 올에 권위와 명예를 의지하였다. 진정한 해탈의 의미가 무엇인지 쉽게 다가오는 대목이기도 하다. 다음 칼럼은 (213) 열기구와 추락한 권력 입니다. *필자: 이일영, 시인. 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artwww@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