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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혼을 위하여-(220) 하늘을 향한 인류의 꿈 이야기

이일영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8/10/31 [10:28]

하늘을 나는 꿈은 인류가 가졌던 가장 오랜 꿈이었다. 무한한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우주를 향한 꿈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필자는 이에 대한 여러 편의 칼럼을 쓰면서 하늘을 나는 꿈이 세계 최대의 스미소니언 박물관과 구겐하임 미술관과 연결되어 있음을 살피게 되었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완성 적으로 마무리하려는 뜻을 가지고 오랫동안 정리하여온 자료를 안타깝게도 모두 잃고 말았다.

 

오랜 역사의 행간을 헤아려오면서 많은 시간을 삼킨 기억을 겸허하게 매만지며 지난 칼럼을 요약하면서 새롭게 공부하는 자세로 이 글을 쓴다. 이에 기존의 칼럼 내용과 중복되는 점에 대하여 이해를 구한다.     
 
하늘을 향한 인류의 역사는 흥미로운 사실들이 많다. 먼저 하늘을 날아오르려는 인류의 꿈은 뛰어내리는 낙하를 통하여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른바 낙하산(parachute-落下傘)이다. 

 

이와 같은 낙하산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중국의 전한 시대(前漢時代)의 역사가인 사마천(司馬遷. B.C. 145?~B.C. 86?)의 사기(史記)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다. 고대 중국의 전설적인 제왕인 5제(五帝)의 한 사람인 순(舜)임금이 어려서 어머니가 죽고 난 후 계모가 동생 상(象)을 낳았다. 이에 순(舜)을 죽이려는 음모가 이어졌다. 어느 날 순(舜)이 곡물창고 지붕을 수리하자 계모가 불을 질러 순(舜)을 죽이려 하였으나 삿갓(笠) 두 개를 들고 뛰어내려 목숨을 구했다는 설화가 바로 낙하산에 대한 인류 최초의 기록이다.

 

이후 이와 같은 설화가 아닌 실체적인 기록으로 이슬람 왕국의 우마야드 왕조(Umayyad)와 아바스 왕조(Abbasids)가 교차하던 시대에 오늘날 스페인 지역인 안달루시아의 시인이며 수학자와 발명가이었던 ‘아바스 이븐 피르나스’(Abbas Ibn Firnas, 810~887)가 깃털로 된 날개를 달고 종탑에서 뛰어내린 이야기가 기록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10세기경 영국 잉글랜드 남부의 윌트셔(Wiltshire)에 베네딕토회가 설립한 ‘맘즈버리 대 수도원’(Malmesbury abbey)의 수도사 ‘에일머’(Eilmer of Malmesbury)가 손과 발에 날개를 달고 수도원 탑 꼭대기에서 낙하하였던 기록이 가장 많은 역사서를 통하여 전해져왔다.
 
이와 같은 고대에서 중세의 터널을 달려온 전설과 같은 기록은 인류문명의 새로운 부흥을 일깨운 르네상스의 물결과 함께 미술가에 의하여 실체적인 기록이 이루어졌다. 바로 세기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의 1483년 스케치 수첩에 낙하산 그림과 함께 작가 메모가 정리되었던 것이다. 또한, 이와 같은 다빈치의 낙하산 스케치를 바탕으로 낙하산을 제작한 인물이 있었다, 베네치아 공화국의 ‘파우스토 베란치오’(Fausto Veranzio. 1555~1617)주교이다. ‘파우스토 베란치오’주교는 어려서부터 과학에 깊은 관심을 가져 법학을 공부하면서 물리학과 기계 공학에 더욱 열중하였다, 그는 ‘다빈치’의 낙하산 그림을 보고 1593년 ‘비행하는 인간’(Homo Volans)으로 명명한 최초의 낙하산을 제작하였던 것이다.
 
당시 기록을 살펴보면 이와 같은 시기에 하늘에서 날아내린 인물이 있었다. 이탈리아 미술가 ‘파올로 귀도띠’(Paolo Guidotti. 1559~1629)이다. 그는 ‘카발리에 보르게세’(Cavalier Borghese)로도 불린 화가이며 건축가였다, ‘바오로 5세 교황’(Papa Paolo V. 1552~1621) 시대에 많은 건축물과 회화 작업을 남긴 그는 인간의 비행에 유난히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고래 뼈에 깃털로 만든 도구를 입고 수차례의 실험을 거듭하였다. 이후 1590년 많은 군중이 지켜보는 공개행사로 토스카나 루카(Lucca)의 종탑에서 뛰어내렸다. 당시 그는 지붕을 뚫고 방으로 떨어지면서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 (좌) 새의 비상/ (중) 연날리기 / (우) 공군박물관에 전시된 비차(飛車) 모형/ 출처:https://wikipedia.org/     © 브레이크뉴스


 

이처럼 오랜 꿈으로 전해온 인간 비행과 낙하의 이야기는 역사를 따라 오스만 제국으로 이어졌다. 당대의 작가 ‘에울리야 첼레비’(Evliya Çelebi. 1611~1682)가 저술하였던 ‘여행의 책’(Seyahatname)은 작가의 사후 1834년 출판되었다. 책에 담긴 기록을 보면 1630년 무렵 오스만 제국의 17대 술탄 무라드 4세(Murad IV. 1612~1640) 시대에 ‘하제르펜 아흐멧 첼레비’(Hezarfen Ahmet Celebi. 1609~1640)라는 인물이 양 날개가 달린 도구를 착용하고 높은 곳에서 새처럼 날아 앉는 재주가 뛰어났던 내용이 담겨있다.

 

기록에 의하면 1632년 제국의 축일을 맞아 국왕이 지켜보는 가운데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에 세워진 갈라타 타워(Galata Tower)를 날아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 아나톨리아 해안의 우스크다르(Üsküdar)언덕에 착륙하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내용은 작가의 주장이 상당 부분 가미된 점에서 참작해야 할 점도 있지만, 비행 자체를 부정할 수 없는 여러 기록이 존재하고 있다.

 

여기서 잠시 짚고 가야 하는 내용이 있다, 앞에서 기술하였듯이 하늘을 향한 인류의 꿈은 높은 곳에서 낙하하는 과정을 통하여 시작되어 하늘로 날아오른 비상(飛上)과 하늘을 나는 비상(飛翔)의 역사로 발전하였다. 이에 대하여 살펴보면 바람에 날리는 연(鳶)과 하늘을 나는 수레를 뜻하는 비차(飛車)로 알려진 동양의 기록이 살펴진다.

 

이와 같은 연(鳶)의 역사는 중국의 전국시대 초기 사상가이며 병법가인 ‘묵자’(墨子. BC. 479?~ BC. 381?)의 본명은 묵적(墨翟)이다. 그의 편명(篇名)으로 전해오는 저술 노문(魯問) 편에 노(魯)나라 목수장인 공수반(公輸般)이 나무와 대로 만들었던 까치 형상의 목연(木鳶)이 하늘을 사흘 동안 날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어 송나라 때 고승(高丞)이 지은 ‘사물기원’(事物記原)에 따르면 진말 한초의 인물로 한나라 건국 후에 한왕(韓王)에 오른 한신(韓信. BC. ?~BC. 196)이 연(鳶)을 만들어 군사용으로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와 같은 연(鳶)은 우리나라에 전해져 ‘삼국사기’ 열전(列傳)에 신라 선덕여왕 시대에 김유신 장군이 밤에 풍연(風鳶)에 불을 달아 하늘로 올린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이와 함께 하늘을 나는 수레를 뜻하는 비차(飛車) 또는 비거가 처음 등장하는 기록은 중국의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신화적인 지리서 산해경(山海經)이다. 오늘날 전해지는 산해경은 진나라의 시인이며 학자이었던 곽박(郭璞. 227~324)이 주석을 달아 전한 것이다. 산해경의 기록에 의하면 전설적인 기굉국(奇肱國)이라는 나라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기록에(其人善爲機巧, 以取百禽, 能作飛車, 從風遠行) 처음 등장한다. 이를 해석하면 기굉국 사람들은 기계를 잘 만들었다, 그 기계로 온갖 짐승을 잡았다. 또한 날아가는 수레를 만들어 바람을 타고 멀리 다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비차(飛車)의 기록은 진(晉)나라의 문장가이며 정치가인 장화(張華. 232~300)가 저술한 박물지(博物志)에도 전해지고 있다. 또한. 우리가 소동파 시인으로 잘 알고 있는 북송 시대의 시인 소식(蘇軾. 1036~1101)의 시 ‘금산묘고대’(金山妙高臺)의 첫 구절 ‘아욕승비차’ ‘동방적송자’(我欲乘飛車 東訪赤松子)에 등장한다. 이 시의 제목 ‘금산묘고대’(金山妙高臺)는 강소성(江蘇省) 양쯔강에 있는 금산사(金山寺) 뒤편에 절벽을 깎아 쌓은 묘고대(妙高臺)를 말하는 것이다. 시에 내용은 날아가는 수레(飛車)를 타고 비를 내리는 우신(雨神)이었던 전설의 선인(仙人) 적송자(赤松子)를 찾아가겠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하늘을 나는 이야기에 빠트릴 수 없는 우리나라의 ‘비차’(飛車) 또는 ‘비거’(飛車)로 전해온 기록이 있다. 이에 대하여 살펴본다.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발명가이며 군관이었던 정평구(鄭平九)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1592년 임진왜란 때에 비차(飛車)를 날려 화약을 터트렸으며 진주성(晉州城)이 왜군에 고립되었을 때 비차(飛車)를 타고 날아가 성주를 구출하였다는 이야기다. 이는 조선조 후기의 실학자 신경준(申景濬. 1712~1781)의 문집 여암전서(旅菴全書)의 '수차도설'(水車圖說)편의 포차(砲車)에 대한 설명에서 전해지는 내용이다.

 

이와 같은 내용은 조선 후기의 학자 이규경(李圭景, 1788~1863)이 저술한 백과사전 형식인 필사본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전해졌다. 이어 독립 운동가이며 국어학자인 권덕규(權悳奎,1890~1950)가 1923년 일제 강점기 시대에 펴낸 국어 문법서 조선어문경위(朝鮮語文經緯)에 이와 같은 이야기가 실렸다. 필자는 여기서 학문적으로 고대국어의 구결(口訣)과 이두(吏讀)의 차이점을 최초로 피력한 너무나 소중한 문법서에 임진왜란 당시 전해진 비차(飛車)에 대한 이야기를 공중을 나는 물체 비기(飛機)로 표현하여 일제 강점기 시대에 국어 문법서에 이를 전한 깊은 민족의식을 헤아렸다. 이에 이러한 내용의 실증적인 확인을 위하여 많은 자료를 살폈다.

 

필자가 살펴온 내용에 의하면 정평구(鄭平九)가 발명하였다는 비차(飛車)는 그 형태와 구조에 대한 설계가 오늘날의 충남 논산의 옛 지명 노성(魯城) 출신의 어린이 교육을 맡았던 동몽교관(童蒙敎官) 이었던 윤달규(尹達圭)가 그 제작법을 기록하였다는 일부 기록이 존재하지만, 설계도는 끝내 전해지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에서 민족적 측면에서는 소중한 이야기지만 실증적인 관점에서 기록으로만 존재하는 우리나라 전설적인 비차(飛車)는 앞으로도 많은 연구와 자료가 필요하다. 이는 비차(飛車)에 대한 선구적인 기록이 구체적인 그림과 함께 중국에서 오랜 역사 동안 기록되어온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분명한 자료가 존재하여 세계 최초의 발명품으로 자랑하는 우리의 금속활자와는 그 내용이 다른 것이다.

 

이와 같은 우리의 전설적인 비차(飛車)에 대한 기록을 중시하여 필자가 파악한 내용에서 우리나라의 장기와 같은 일본의 장기 놀이에서 살펴지는 특이점이 있었다. 잠시 이에 대하여 살펴본다.

 

우리나라 장기(將棋)놀이에 대한 유래의 가장 명확한 기록은 육당 최남선(崔南善)의 저서 ‘조선상식’(朝鮮常識) 유희류(遊戱類) 편에 담긴 기록이다. 오늘날 모든 자료에서 최남선의 저서로 그 명칭을 백과사전(百科事典)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오류이다. 이는 ‘조선상식’이 백과사전과 같은 방식으로 저술된 사실에서 온 착오인듯 하다. 이는 본래 최남선이 한국의 역사와 전통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신보(每日新報)에 연재하였던 내용이었다. 이를 정리하여 1948년 동명사(東明社)에서 ‘조선상식’(朝鮮常識)으로 출판하였다. 

 

최남선의 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 장기는 중국 송나라 때 고려로 전래하였다. 이와 같은 장기의 명칭은 우리나라 여러 문헌에 혁기(奕棋)와 상기(象棋) 또는 상희(象戱)등으로 기술되어있다. 대표적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 심수경(沈守慶. 1516~1599)의 저서 유한잡록 또는 견한잡록(遺閑雜錄)에 오늘날 장기와 구성 기물이 같은 기록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이와 같은 장기(將棋)는 그 기원이 고대 인도의 ‘차투랑가’(caturaṅga) 놀이에서 유래되었다, ‘차투랑가’ 놀이는 코끼리(象)와 말(馬) 그리고 차(車)와 보병(卒)으로 구성된 4개 전투 대형에서 유래된 것이다. 6세기 무렵 굽타 왕국 시대에 본격적인 게임으로 개발되어 중국에는 중국 장기인 상치(象棋)로 전해졌다. 이어 당시 사산조 페르시아 시대에 인도 ‘타투랑가’ 게임이 전해져 페르시아 체스 ‘챠트랑’(Shatrang)이 생겨났다. 이는 서양 ‘체스’(Chess)의 탄생을 의미한다. 이어 651년 무함마드의 이슬람제국에 의하여 사산조 페르시아가 정복당하면서 아랍 장기 ‘샤트란즈’(Shatranj)가 탄생하였다.

 

이후 이슬람 우마이야 왕조(Umayyad dynasty)시대에 아랍 상인들에 의하여 비잔틴 제국의 콘스탄티노플과 페르시아에 이르는 드네프르강과 볼가강 줄기를 따라 형성된 무역로를 따라 아랍 장기 ‘샤트란즈’와 함께 페르시아 체스 챠트랑(Shatrang) 이 일찍 러시아로 전해졌다. 이후 서유럽에 전해지면서 중세 체스(medieval Chess)가 탄생하였다. 이후에 스페인을 거쳐 체스의 주요 게임 방식이 변경되면서 오늘날의 여왕 체스라 불리는 현대 체스의 기틀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와 같은 인도에서 시작되어 동양의 장기와 서양의 체스로 발전한 게임의 특징은 의외로 일본식 장기인 쇼기(将棋)에서 살펴지게 된다. 이에 대하여 설명하면 오늘날 일본의 장기 쇼기(将棋)는 중국과 한국을 통하여 전해진 사실을 의미하듯 한자권 기물의 표현은 비슷하다. 그러나 서양 체스처럼 기물을 칸에 놓는 방식은 태국 장기인 막룩(Makruk)이거나 캄보디아 장기인 욱 차트랑(Ouk Chatrang) 비슷하여 아랍 장기 ‘샤트란즈’와의 연관성을 추정하게 한다. 여기서 살펴지는 특징적인 내용은 중국과 한국이 예로부터 차(車)로 표현하고 있는 기물을 일본 장기에서는 유일하게 비차(飛車)로 표현하는 점이다.

 

이와 같은 일본 장기는 8세기 무렵 중국 당나라에서 명확하게 전해진 바둑과 달리 그 유래와 게임방식이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있어 일본의 전문가들도 분명하게 이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을 상세하게 살펴보면 6세기 무렵의 유래설이 있는 일본 장기는 794년에서 1185년까지의 헤이안 시대(平安 時代)에 도입된 것으로 알려진 일본의 고대 장기인 헤이안쇼쇼기(平安小将棋)에서부터 정확한 기록이 존재한다. 이와 같은 헤이안쇼쇼기(平安小将棋)에서는 기물 중 차(車)의 명칭이 비차(飛車)가 아닌 쿄샤(香車)였다. 이후 1185년부터 1333년간 지속한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의 가마쿠라 다이쇼기(鎌倉 大将棋)에서 비차(飛車)가 등장하였다. 이후 혼쇼기(本将棋)로 이어진 현대의 장기에서도 비차(飛車)는 존재한다.

 

이와 같은 일본 장기 ‘쇼기’(将棋) 는 중국과 우리나라 장기 기물 32개와 달리 40개이며 장기판에 우리나라의 장기에 있는 초(楚)와 한(漢)과 같은 궁성이 없다. 또한, ‘체스’처럼 기물을 칸에 놓는다. 그러나 일본의 장기‘비차(飛車)는 중국과 우리나라의 차(車)와 같은 움직임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일본 장기에서 유일하게 비차(飛車)로 기물이 구성된 배경에 대하여 필자는 많은 자료를 살펴보았지만 뚜렷하게 와 닿는 내용을 아직 찾지 못하였다.  

 

▲ (좌로부터) 인도 ‘차투랑가’(caturaṅga)/ 서양 체스/ 한국 장기/ 일본쇼기(将棋)/ 출처: https://en.wikipedia.org     © 브레이크뉴스

 

이와 같은 오랜 역사의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아득한 공중에서 뛰어내리는 낙하로 시작된 인류의 꿈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꿈으로 펼쳐진 동양의 연(鳶)과 비차(飛車)에 이어 등장한 기록이 바로 세기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려낸 ‘공중 프로펠러’와 ‘낙하산 스케치’이다. 이후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그 실체는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이론적 배경을 제시한 연구의 업적은 ‘비행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인물이 있다. 이탈리아 브레시아 출신의 수도사로 수학자이며 비행이론의 선구자인 ‘프란체스코 라나 데 테르지’(Francesco Lana de Terzi, 1631~1687)이다.

 

그는 ‘진공 비행선’(Vacuum airship)이라는 선구적인 비행체를 설계하여 항공과 항법 이론을 제시하면서 과학적인 비행 시대를 예고하였다, 그가 제시한 ‘진공 비행선’ 설계를 보면 얇은 구리로 된 진공상태의 구체가 부착된 돛대가 있었다. 즉 공기를 제거한 진공상태의 가벼운 구체의 양력을 이용하는 논리였다. 이는 당시 기술로는 불가능한 선구적인 발상으로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연구가 이어진 것이다. 

 

바로 이탈리아 물리학자 토리첼리(Evangelista Torricelli, 1608~1647)가 대기압을 연구하면서 수은을 채운 유리관을 거꾸로 세우다가 위의 공간이 진공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이른바 '토리첼리의 진공'(Torricellian vacuum)이 탄생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압계가 발명되면서 1654년 독일의 물리학자 ‘오토 폰 괴리케’(Otto von Guericke, 1602-1686)는 진공 펌프를 만들어 진공 상태의 현상과 대기압에 대해 연구를 통하여 진공상태의 강력한 힘을 증명하였다.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진공 상태에 들어갈 공기보다 가벼운 수소가스와 같은 기체가 발견되면서 ‘프란체스코 라나 데 테르지’가 제안한 전설적인 ‘진공 비행선’(Vacuum airship)은 비행의 역사에 실체적인 주인공으로 떠오르게 된다. 그러면 이와 같은 공기보다 가벼운 기체 수소가스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잠시 이에 대하여 짚고 가야 한다. 

 

아일랜드의 화학자 ‘로버트 보일’(Robert Boyle. 1627~1695)은 1662년 가스의 절대 압력과 부피 간의 반비례 관계를 설명한 ‘보일의 법칙’(Boyle's law)을 정립하였다. 이어 1666년 ‘질료(재료)와 형상(모양)에 관한 기원’이라는 논문을 통하여 정립된 물질로 기하학적이며 기계적인 성질을 가진 입자는 외적인 작용에 의하여 단독으로 움직인다는 입자 철학을 정립하였다. 이후 그는 1671년 철(iron)과 산(acid)의 반응에서 생겨나는 공기보다 가벼운 기체를 발견하였지만 정작 그 기체가 수소인지를 몰랐다. 이러한 기체를 수소로 증명한 인물이 바로 프랑스 출신의 영국 물리학자이며 화학자인 ‘헨리 캐번디시’(Henry Cavendish. 1731~1810)이다. 그는 1766년 수소(Hydrogen)를 논리적으로 정리하면서 산소 가스와 수소가스의 전기불꽃 화합으로 물이 화합물임을 규명하였다.

 

이와 같은 역사에서 빠트릴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비운의 화학자인 프랑스의 ‘앙투안 라부아지에’(Antoine Lavoisier. 1743~1794)이다. 그는 1772년 발표한 연소 이론(combustion theory)과 1782년 ‘화학 명명법’(Chemical nomenclature)의 제안자이다. 그는 물체가 불에 탄다는 것이 곧 산소와 결합하는 것임을 규명하여 오랜 플로지스톤 설(phlogiston )을 벗어나 근대 화학의 혁명을 가져온 인물이다.

 

또한. 오랫동안 지속하여온 두서없는 화학 용어를 화학물질의 성분을 바탕으로 33종의 체계적인 ‘화학 명명법’을 정리하였다. 그러나 그는 1789년 프랑스 혁명시기에 옛날의 세금청부와 불법 담배 제조에 대한 혐의로 처형당하였다. 당시 이탈리아 출신 프랑스 수학자 ‘조제프 루이 라그랑주’(Joseph Louis Lagrange. 1736~1813)는 그의 안타까운 처형에 대하여 ‘이 사람 머리를 베는 것은 순간이지만 이와 같은 두뇌를 만들려면 100년은 더 걸릴 것이다.’라며 한탄하였다.

 

이와 같은 역사 속에서 ‘프란체스코 라나 데 테르지’가 제안하였던 기록 속의 ‘진공 비행선’(Vacuum airship)과 같은 구조에 수소를 채워 하늘을 날았던 과학자가 있었다. 프랑스 발명가 ‘쟈크 알렉산더 세자르 샤를’(Jacques Alexandre César Charles. 1746~1823)이다. 그는 1782년 대형 수소가스 풍선에 대한 설계를 마치고 ‘로베르 형제’(Robert brothers)로 부르는 공학도인 ‘안 장 로베르’(Anne-Jean Robert. 1758~1820)와 ‘니콜라스 루이스 로베르’(Nicolas-Louis Robert. 1760~1820)형제와 함께 풍선 제작에 들어갔다.
 
그러나 언제나 선구자가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수소가스를 활용한 열기구제작에 들어갈 즈음 프랑스 남부 앙노네(Annonay)에서 제지공장을 운영하던 ‘몽골피에 형제’(Montgolfier brothers)는 하늘을 날아오르는 오랜 꿈을 실현해 1782년 12월 14일 최초로 공기를 데워 하늘로 오르는 열기구를 하늘에 띄웠다. 이후 1783년 11월 21일 최초의 사람을 태운 열기구 비행에 성공하였다.
 
이후 뒤를 이어 수소 열기구를 제작한 프랑스 발명가 ‘쟈크 알렉산더 세자르 샤를’(Jacques Alexandre César Charles. 1746~1823)과 ‘로베르 형제’(Robert brothers)의 열기구도 1783년 8월 27일 하늘을 날았으며 이후 1783년 12월 1일 사람을 태운 수소 열기구가 하늘을 날았다.

 

이와 같은 사람을 태운 열기구가 미국에서 처음으로 하늘을 날았던 때는 프랑스에서 성공한 이후 10년이 지나서였다. 프랑스 발명가 ‘장 피에르 블랑카르드’(Jean-Pierre Blanchard. 1753~1809)가 미국으로 건너가 1793년 1월 9일 필라델피아의 ‘월넛 스트리트 교도소’(Walnut Street Jail) 운동장에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시연을 하였다.

 

당시 열기구가 하늘을 날았던 현장에는 현직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1732~1799)과 그 뒤를 이었던 2대 대통령 ‘존 애덤스’(John Adams. 1735~1826) 그리고 이후 3대 대통령이 되었던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 4대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 1751~1836) 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James Monroe. 1758~1831)가 모두 날아오르는 열기구의 비행광경을 지켜보았다.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되려면 하늘을 나는 광경을 보라! 는 말이 생겨났다.

 

이처럼 열기구를 타고 하늘을 나는 시대에까지 도달한 인류의 꿈은 더욱 구체적인 비행을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이러한 과정에서 다시 등장하는 것이 우리가 어려서 대나무로 된 프로펠러 형태의 바람개비를 손으로 비벼서 놓으면 멀리 날아가는 장난감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는 중국 동진(東晉) 시대에 의학자이며 자연주의자인 ‘갈홍’(葛洪:283∼343)이 저술한 ‘포박자’(抱朴子) 에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이와 같은 동양의 하늘을 나는 대나무 장난감과 함께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공중 프로펠러’(aerial screw)라는 설계 그림과 함께 작가 노트를 통하여 작은 비행체의 제작을 제안하였다. 이에 러시아의 시인이며 과학자인 ‘미하일 노모노소프’(Mikhail Lomonosov. 1711~1765)가 1754년 중국의 대나무 장난감과 같은 방식으로 비행체를 만들어 기상관측 장비를 들어 올리는 실험을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에서 시연하였다.   

 

이후 프랑스 해군 제독의 아들로 태어나 해군학교에 입학하였으나 고관절 결핵으로 퇴소하였던 ‘알폰스 페노’(Alphones Penaud. 1850~1880)가 동양의 오랜 장난감인 대나무 프로펠러와 같은 방식으로 1870년 감아놓은 고무줄이 풀리면서 날아가는 장난감 비행기‘ 헬리콥터’(hélicoptère)를 개발하였다. 당시 50㎝ 길이의 모형 헬리콥터는 11초 동안 40m를 날았다. 이는 근대 항공 발전사의 선구적인 기원으로 훗날 라이트형제가 아버지가 사다 준 장난감 헬리콥터를 매만지며 하늘을 나는 꿈을 키웠다.
 
여기서 이와 같은 장난감의 한계를 극복하고 실체적 비행기의 개념을 과학적으로 정립한 영국의 항공학자 ‘조지 케일러’(George Cayley. 1773~1857)의 연구를 짚고 가야 한다, 그는 1799년 양력과 추진 그리고 제어에 대한 개념을 통하여 비행기는 전진 형으로 즉 후진할 수 없음을 뜻하는 ‘고정익’(Fixed Wing)에 대한 현대적 개념을 당시 설명하였다. 이후 그는 1804년 글라이더형 비행기를 하늘에 띄웠다.

 

항공학에서 이러한 전진형 ‘고정익’(Fixed Wing)과 대비되는 개념이 회전익(Rotary Wing)이다. 이는 회전하는 날개에 의하여 비행체가 떠오르는 양력을 얻게 되는 헬리콥터와 같은 비행체를 말한다. 이는 ‘고정익’(Fixed Wing)과 다르게 많은 연구와 시간이 필요하였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빠트릴 수 없는 인물이 있다, 그는 영국 출신의 호주 항공과학자 ‘로런스 하그레이브’(Lawrence Hargrave. 1850~1915)이다, 그는 1893년 일명 ‘상자-연’(box-kite)을 개발하였다. 이는 강철선을 이용하여 상자 형태의 연을 연속적으로 이어 날리면서 물체가 떠오르는 양력을 모아 그 원리를 정리하였다.

 

이러한 비행체에 대하여 헬리콥터’(hélicoptère)라는 이름을 남긴 인물이 프랑스 고고학자이며 화폐학자인 ‘구스타브 드 폰톤 다메크르’(Gustave de Ponton d' Amécourt. 1825~1888)였다, 그는 1861년 소형증기 동력을 사용하여 알루미늄으로 비행체를 만들어 실험하였지만, 비행체는 날지 못하였다. 이와 같은 ‘폰톤 다메크르’는 산스크리트어에서부터 그리스어와 라틴어에 능통한 인물로 비록 비행체 실험에는 실패하였지만, 그리스어로 물체의 겉모양이 빙빙 비틀린 형태의 소용돌이와 같은 곡선(나선)을 의미하는 헬릭스(helix, ἕλιξ)와 고대 신전의 안쪽 옆면과 평행하여 줄지어 늘어선 기둥을 날개로 상징한 ‘프테론’(pteron, πτερόν)을 합성한 용어로 표기하면서 이를 영어로 번역하게 되면서 오늘날의 명칭 ‘헬리콥터’(helicopter)를 탄생시킨 주역이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소형 증기 동력을 활용한 ‘폰톤 다메크르’는 실패하였지만 이후 이러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다양한 시도가 이어졌다, 1887년 전기기술자 ‘구스타브 투르베’(Gustave Trouvé. 1839~1902)는 배터리를 이용하여 줄로 묶인 전기모형 헬리콥터의 비행에 성공하였다, 이와 같은 시기인 1885년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Thomas A. Edison. 1847~1931)이 헬리콥터 개발에 전념하였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 역사의 이야기다, 이는 오늘날 뉴욕타임스의 전신인 뉴욕 헤럴드의 발행인이었던 ‘제임스 고든 베넷 주니어’(James Gordon Bennett Jr. 1795~1872)의 주문에 의해서였다.

 

당시 발명왕 에디슨이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헬리콥터는 실험 즉시 폭발하고 말았다. 이렇게 세기의 발명왕 에디슨의 자존심이 날아가 버린 이후 그는 수많은 엔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제작한 헬리콥터가 1905년 5월 5일 고도 4m로 1,500m 이상을 날았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그는 1908년 가솔린 엔진 헬리콥터의 특허를 신청하였지만 끝내 날아오르지 못하면서 에디슨은 헬리콥터 개발의 꿈을 접어야 했다.

 

이후 1907년 9월 29일 최초의 헬리콥터 비행체의 유인 비행이라는 어설픈 기록이 이루어졌다, 이에 대하여 살펴보면 에어 프랑스의 창업자인 ‘루이 샤를 브레게’(. 1880~1955)와 자크 브레게(Jacques Breguet) 형제가 오늘날 쿼드콥터(quadcopter) 방식의 드론(drone)과 유사한 4개의 회전날개를 이용하여 떠 오르는 ‘브레게-리셰 자이로플레인’(Breguet-Richet Gyroplane)를 제작하여 조종사를 태우고 약 1분간 60cm 정도를 떠올랐다. 이는 엄밀하게 실패한 인류 최초의 헬리콥터 유인 비행이었다.

 

이와 같은 역사는 바로 프랑스 항공 과학자 ‘알폰스 페노’가 1870년 동양의 하늘을 나는 대나무 장난감에서 출발한 모형 헬리콥터의 개발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그는 다음 해 1871년 고무줄로 프로펠러를 돌려 날아가는 장난감 모형비행기 ‘프라노포’(Planophore)를 개발하였다. 이어 고무줄 동력을 이용한 '오니숍터’(Ornithopter)라는 날개를 펄럭이는 모형 비행체도 개발하였다. 이러한 장난감 비행체로 1903년 인류 최초로 하늘을 날았던 ‘라이트 형제’를 비롯하여 동시대의 어린이들에게 우주의 꿈을 안겨주었던 그는 장난감 모형이 아닌 실제의 비행기를 제작하려는 뜻을 폈다.

 

1876년 이와 같은 대형 비행기의 구체적인 설계를 마친 그는 첫 실험에서 실패하였다. 이후 온갖 노력으로 문제점을 보완하였다. 이에 새로운 프로젝트에 들어갈 비용의 후원자를 찾으려 노력하였으나 실패한 그는 1880년 10월 22일 프랑스 8구역 자택에서 한 발의 총성으로 30살의 너무나 젊은 자신을 버렸다. 필자는 동양의 장난감을 바탕으로 세기의 장난감을 만들어 스스로 비행의 꿈을 키우며 세계의 어린이들에게 무한한 꿈을 안겨주었던 ‘알폰스 페노’가 후원자를 만나 비행체의 제작에 성공하였다면 세계의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매만졌다, 이에 프랑스에 갈 때마다 너무나 희미한 그의 흔적을 찾아 많은 곳을 헤매었다.

 

이와 같은 ‘알폰스 페노’의 실패한 비행 실험에 대한 이야기는 그의 사후에 미국의 음악가 마크 블리츠스타인(Marc Blitzstein. 1905~1964)의 1944년 작품 ‘공수 교향곡’(Airborne Symphony)에 언급되었다, 인간 비행의 역사를 담은 이 작품은 1946년 1월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1918~1990)이  뉴욕 시티 센터 에서 뉴욕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초연하였다. 

 

이와 같은 세계 비행의 역사에서 또 한 사람의 너무나 안타까운 희생을 짚고 가야 한다. 바로 독일 항공의 개척자인 ‘오토 릴리엔탈’(Otto Lilienthal. 1848~1896)이다. 그는 1877년 최초의 글라이더를 제작하여 하늘로 띄운 후 1891년 사람이 탈 수 있는 글라이더를 개발하여 최초로 비행에 성공하였다. 이후 그는 같은 해 8월 9일 자신이 개발한 소형엔진을 장착한 글라이더를 비행하다 추락하여 다음 날 8월 10일 세상을 떠났다. ‘오토 릴리엔탈’은 황새의 날아다니는 방식을 오랫동안 연구하여 오면서 새의 날개에 대한 공기 역학을 집중적으로 헤아렸다. 이를 바탕으로 수많은 실험 비행을 통하여 자신의 비행에 대한 문제점을 연구하고 살핀 인물이었다.

 

1896년 8월 10일 독일의 항공학자 ‘오토 릴리엔탈’(Otto Lilienthal. 1848~1896)이 세상을 떠난 다음 날 그의 죽음을 알리는 신문을 거머쥐고 한마디의 말도 없이 온종일 하늘만 바라보던 먼 나라 미국의 형제가 있었다, 형 ‘윌버’(Wilber, 1867~1912)와 동생 ‘오빌’(Orville. 1871~1948)의 ‘라이트형제’(Wright brothers)였다.

 

▲ (좌로부터) ‘알폰스 페노’(Alphones Penaud)와 모형비행기/ 독일의 항공학자 ‘오토 릴리엔탈’(Otto Lilienthal) /‘라이트형제’(Wright brothers)/ 출처: https://en.wikipedia.org     © 브레이크뉴스


라이트형제는 어려서 아버지가 사다 준 프랑스 ‘알폰스 페노’(Alphones Penaud. 1850~1880)가 개발한 모형 헬리콥터를 매만지며 하늘을 나는 꿈을 키웠다. 형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인쇄 사업을 하다가 1892년 미국에 불었던 자전거 열풍을 맞아 기계를 만지는 소질에 뛰어났던 형제는 자전거 수리 점포를 열어 뛰어난 기술을 발휘하였다. 이와 같은 형제의 뛰어난 기술력을 지켜본 자전거 부품 회사에서 자전거 조립을 제안하여 자체 자전거를 제작 판매하여 크게 성공하였다.

 

이후 형제는 어려서부터 가졌던 하늘을 나는 꿈을 다시 매만지면서 독일의 항공학자 ‘오토 릴리엔탈’을 멘토로 삼아 그가 발표하는 내용을 꼼꼼하게 살펴 가면서 비행체의 개발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때 미국의 천문학자이며 항공학자인 ‘새뮤얼 피어폰트 랭글리’(Samuel Pierpont Langley. 1834~1906)가 1896년 5월 증기 구동식 비행기를 제작하여 최초의 무인비행 시험에 성공하였다. 는 기사와 뉴스가 미국을 강타하였다. 이어 그해 8월 9일 독일의 ‘오토 릴리엔탈’이 소형엔진을 장착한 글라이더를 비행하다 추락하여 다음 날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라이트형제는 자신들의 꿈을 지켜주던 독일의 ‘오토 릴리엔탈’이 세상을 떠난 후 깊은 슬픔으로 여러 나날을 보낸 이후 오랫동안 키워온 하늘을 날아오르는 꿈의 날개를 펴기 시작하였다.

 

이어서 이와 같은 최초로 하늘을 날았던 라이트 형제 이야기와 함께 하늘과 우주로 향한 인류의 꿈에 담긴 많은 이야기를 살펴보기로 한다. 다음 칼럼은 (221) ‘우주의 꿈을 키운 스미스소니언과 구겐하임’입니다. *필자: 이일영, 시인. 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artww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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