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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혼을 위하여-(222) 역사로 듣는 민요밴드 씽씽(SsingSsing)

이일영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8/11/13 [15:40]

지난 10월 2일 영국 런던의 사우스뱅크센터 퍼셀룸에서는 한국 음악축제인 K-뮤직페스티벌의 개막을 알리는 퓨전 민요밴드 씽씽(SsingSsing)의 공연이 열렸다. 민요밴드 씽씽은 은빛과 갈색 가발을 쓰고 하이힐을 신은 화려한 여장으로 노래하는 전통 소리꾼 출신의 이희문과 신승태 그리고 멤버 중 유일한 여성인 민요를 전공한 추다혜가 호흡하는 3인의 보컬과 베이스 장영규, 기타 이태원, 드럼 이철희로 구성된 밴드이다.  

 

이와 같은 씽씽밴드는 지난해 9월 미국 공영라디오 NPR의 인기 프로그램인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Tiny Desk Concert)에 한국음악으로는 최초로 출연하였다. 파격적인 차림으로 우리의 민요를 현대음악으로 새롭게 해석하였던 공연 영상이 인터넷을 통하여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 공연장에는 이와 같은 씽씽밴드를 알고 있었던 관객들이 다수 있었다. 

 

여기서 잠시 씽씽 밴드가 한국 음악 최초로 출연한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에 대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 라디오 방송 NPR의 음악가 출신의 방송인 밥 보일렌(Bob Boilen)이 진행하는 온라인 미니콘서트이다. 밥 보일렌은 라디오 NPR에서 1989년부터 2007년까지 종합 뉴스프로그램 ‘모든 것을 고려할 때’(All Things Considered)의 제작 감독이었다. 그는 당시 자신의 전문 분야를 살려 뉴스 사이에 음악을 내보내는 기획으로 많은 관심을 끌었다.

 

▲ (좌) 제5회 k-뮤직페스티벌 개막공연 장면 영국 런던 사우스뱅크센터 /NPR 라디오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 장면(Tiny Desk Concert) 출처: https://www.theguardian.com/ https://en.wikipedia.org/     © 브레이크뉴스

 

이와 같은 바탕에서 2000년 1월 모든 음악의 고려(All Songs Considered) 라는 온라인 스트리밍(streaming) 음악프로그램이 생겨났다. 이는 인터넷에서 영상이나 음악 파일을 내려받아 재생하던 방식에서 실시간으로 영상과 음악 파일을 재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이어 2005년 인터넷에서 실시간으로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 팝캐스트(pod cast) 음악 방송이 시작된 것이다. 이와 같은 기반에서 2007년 NPR 라디오의 음악 분야를 총괄하는 종합 콘텐츠 사업 ‘NPR Music’이 탄생하면서 2008년 온라인 미니콘서트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Tiny Desk Concert) 프로그램이 탄생하였다. 이 프로그램의 명칭은 진행자 밥 보일렌(Bob Boilen)이 1979년 무렵 결성하여 신시사이저(synthesIzer)연주자로 활동하였던 라이브 댄스밴드 ‘Tiny Desk Unit’에서 가져왔다.

 

이와 같은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는 월드뮤직과 인디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악을 소개하면서 세계적인 가수와 밴드의 출연으로 잘 알려진 프로그램이다. 바로 영국의 팝 디바 아델(Adele)과 미국의 힙합 듀오 맥클모어 & 라이언 루이스(Macklemore & Ryan Lewis) 그리고 미국의 R&B 가수 존 레전드 (John Legend)와 같은 세계적인 가수들이 출연하였다. 이러한 프로그램에 한국 음악으로는 씽씽(SsingSsing)이 최초로 출연하면서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관심을 가져왔던 것이다. 당시 프로그램 소개자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파격적인 공연이라는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이와 같은 씽씽의 K-뮤직페스티벌 개막공연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무속음악의 장단에 시조 시를 노래한 우리의 민요 ‘노랫가락’으로 시작되었다. 이어 베틀가와 오봉산타령과 한강수타령으로 이어진 민요메들리와 경쾌하고 흥겨운 자진 아라리를 품은 정선아리랑으로 한층 흥을 돋우며 관객을 휘어잡았다.
    
공연의 절정은 평안도와 황해도 지방에서 불려온 서도민요 난봉가를 부르면서였다. 중모리장단의 긴 난봉가와 굿거리장단의 자진 난봉가 그리고 타령장단의 사설난봉가로 이어진 난봉가를 우리의 전통 악기인 삼현 육각이 아닌 베이스와 드럼과 기타와 같은 현대적인 악기로 쏟아내는 신명의 절창이었다. 이와 같은 생소한 어울림의 음악이 주는 흥을 느낀 관객들이 스스로 일어나 후렴을 함께 부르고 뜨거운 화답의 함성을 보내며 소통하는 열광적인 공연이 이루어졌다.

 

이와 같은 씽씽(SsingSsing)의 K-뮤직 페스티벌의 개막공연을 마친 후 관람객과 주요 언론의 평가는 뜨거웠다. 공연을 관람한 bbc 라디오 3의 월드 뮤직을 소개하는 금요일 진행자 로파 코타리(Lopa Kothari)는 ‘이번 공연은 정말 대단하고 놀라웠다’면서 ‘파티와 같은 분위기에서 좋은 뮤지션들로부터 활기찬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며 ‘사우스뱅크센터에서 관객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하며 공연을 즐기는 경험은 처음이었다.’고 말하였다.
  
이어 BBC의 텔레비전 채널 BBC Two의 주요 뉴스 프로그램인 ‘Newsnight’의 기자 출신으로 영국의 주요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의 기고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로빈 덴슬로’(Robin Denselow)는 씽씽밴드(SsingSsing)를 극찬하는 상세한 공연 리뷰 기사를 썼다. 그는 기사의 서두에서 씽씽 밴드의 여장 보컬의 비주얼에 담긴 전통적인 정신성을 언급하였다. 이어 구성원에서부터 음악적인 분석과 함께 공연에 호응하는 관객의 뜨거운 열기를 고스란히 전하면서 새로운 괴물 밴드 씽씽의 등장이라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어 기자는 실험적인 한국 음악을 선보이는 K-뮤직 페스티벌의 성공적인 성과를 언급하며 지난 페스티벌에 참가한 포스트 록 밴드 ‘잠비나이’(Jambinai)와 국악 그룹 '블랙스트링'(Black String)이 K-뮤직 페스티벌을 통하여 세계무대의 활동이 시작된 사실을 전하였다. 이어 씽씽밴드가 한 팀으로 계속 존재한다면 다음 차례라는 이례적인 극찬을 쏟아놓으며 씽씽밴드가 내년 여름 축제에 공연을 한다면 대박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같은 언어와 문화적 환경이 전혀 다른 유럽 무대에서 관객들의 환호를 받은 씽씽의 공연은 은빛과 갈색 가발을 쓰고 하이힐을 신은 화려한 여장의 소리꾼 이희문과 신승태의 몸짓이 뿜어내는 역할 또한 컸다. 이러한 여장 남자 보컬에 대한 이야기는 미국의 대표적인 일간지 뉴욕타임스에서 최초로 언급되었다. 씽씽밴드가 지난해 1월 초 뉴욕에서 열린 북미 최대 규모의 공연 마켓(APAP -NYC)의 뮤직 쇼케이스인 글로벌페스트(globalFEST)에 참가하였을 때 공연을 살핀 뉴욕타임스의 음악평론가 출신 기자 ‘존 파를리스’(Jon Pareles)가 리뷰 기사에서 최초로 언급하였던 것이다. 그는 당시 씽씽의 공연에 대하여 한국의 민속적인 전통음악에서 창법을 끌어낸 밴드이며 글램록(glam-rock)과 디스코(disco)와 사이키델릭(psychedelic)을 탈바꿈 시킨 흥미로운 음악으로 헤아렸다.
  
바로 소리꾼 이희문과 신승태의 화려한 여장의 몸짓을 1970년 대 초반 영국에서 탄생한 글램록(glam-rock)으로 헤아린 것이다. 잠시 이와 같은 글램록(glam-rock)에 대하여 살펴본다.
  
글램록이란 원색으로 염색한 머리와 짙은 화장 그리고 화려한 의상으로 시각적인 효과를 음악과 함께 추구하였던 장르의 음악이다. 이는 시대의 비판적 의식을 가졌던 록 음악에서 더욱 다양한 의식으로의 접근을 의미하는 전위적인 변화였다. 즉 남녀 양성의 다양한 성적 취향에서부터 개인과 세대의 구분을 넘어선 관념의 변화를 추구한 음악을 말한다. 이는 엄밀하게 1960년대 중반 비틀스가 시도하였던 사이키델릭 록(Psychedelic rock)과 여러 장르의 록 음악에 담긴 심미적인 면면들을 혼합하여 탄생한 아트록(art rock)을 딛고 다양한 장르의 록 음악을 아우른 음악이다.
  
이와 같은 글램록의 탄생을 헤아리면 트렉스 밴드(T. Rex)의 리더 싱어였던 영국의 시인이며 기타리스트인 마크 볼란(Marc Bolan. 1947~1977)이 살펴진다. 그는 독특한 형태의 탑 모자와 깃털로 만든 화려한 목도리인 보아(boa)를 걸치고 반짝이는 화장에 이르는 파격적인 모습으로 글램록의 문을 열었다. 그가 1971년 BBC 방송의 팝 순위 프로그램 ‘Top of the Pops’에 이와 같은 화려한 치장에 반짝이는 새틴(satin) 의상을 입고 출연하였던 내용을 글램록(glam-rock)의 출발로 헤아린다.
  
이와 같은 마크 볼란의 뒤를 이어 글램록의 선구적인 바탕을 일구어 미국에 전한 가수가 영국의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1947~2016)다. 그는 1967년 무렵 동양의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선(禪)의 세계에 빠져 삭발까지 하였던 가수였다. 또한,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능이 있었던 인물로 여러 작품을 남긴 화가이었으며 당대의 주요한 미술작품을 수집하였다. 사실 많은 가수 중에 ‘데이비드 보위’만큼 변화무쌍한 삶을 살면서 그 변화처럼 다양한 실험을 통하여 끝없이 새로운 음악을 추구한 가수는 많지 않다.
 
그는 가수 이외에도 아방가르드 연극에서부터 브로드웨이 뮤지컬 연기자와 영화배우로도 활약하였다. 그는 끝없는 실험을 추구한 음악의 삶 속에서 한때 매우 심각하게 마약(코카인)에 중독되어 파시즘의 민족주의를 숭배하는 행동까지 보이는 등 좌충우돌하였다. 이에 대하여 그는 훗날 마약으로 인한 광기의 행동이었음을 인정하며 깊게 성찰하였다. 이러한 ‘데이비드 보위’의 음악에서 글램록 음악을 추구한 의식을 헤아려 보면 글램록 초기의 개인주의적이거나 성의 정체성에 대한 포용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주에 대한 상상력에까지 의식을 확장하였다. 이러한 그는 당시로는 매우 이색적인 우주인과 같은 메이크업과 특수한 장화를 신었으며 이에 걸맞게 물들인 머리 염색을 선보였다. 이와 같은 외형적인 특성으로 쉽게 구분되는 내용을 글램록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 (좌) 글램록(glam-rock) 선구자 마크 볼란(Marc Bolan)/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출처: https://en.wikipedia.org/     © 브레이크뉴스


  
이와 같은 씽씽(SsingSsing)의 화려한 여장 퍼포먼스를 서양의 글램록으로 비교하는 점에 대하여 씽씽의 소리꾼 이희문은 우리의 전통 무속에서 남성과 여성의 영혼을 모두 매만지며 신을 모시는 박수무당(남자)의 양성적인 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설명하였다. 이는 우리나라 서민의 가락인 민요를 서양 악기를 통하여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씽씽의 음악에 대한 대중적인 소통의 몸짓이 우리의 전통적인 민속을 바탕으로 삼았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와 같은 씽씽(SsingSsing)의 공연에서 주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는 남자 보컬의 여장 의상이 우리의 민속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세계라는 무대에서는 글램록으로 쉽게 이해되어 더욱 친밀한 소통을 갖게 한다. 이는 동양과 서양의 전혀 다른 언어와 문화 속에서도 여장 의상의 문화가 함께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게 되어 국경이 없는 교감을 갖게 하는 것이다. 바로 지난 시대의 산물인 글램록을 넘어서 서양의 여성적인 메이크업과 옷차림을 통한 몸짓과 행동으로 연기하는 남자를 뜻하는 드래그 퀸(drag queen)과 교감 되는 것이다. 나아가 의상 속에서 남성과 여성의 양면성을 추구하는 ‘크로스 드레싱’(cross dressing)으로 연결되면서 씽씽의 공연이 더욱 강하게 어필되는 효과까지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여장의 옷차림에 대한 내용을 더욱더 확대하여 살펴보면 흥미로운 내용이 살펴진다. 먼저 글램록(glam-rock)의 아티스트들이 추구한 화려한 의상과 화장에 대한 역사성을 살펴보면 러시아 출신의 미국의 사회학자 ‘피티림 소로킨’(Pitirim Sorokin. 1889~1968)이 1956년 출판한 저서 ‘미국의 성혁명’(The American Sex Revolution)을 만나게 된다. 그는 저서에서 남자와 여성의 구별이 없어지는 동등한 시대상황 즉 유니섹스(unisex)를 맨 처음 언급한 인물이다.
  
이와 같은 유니섹스는 헤어스타일과 의상에서 가장 먼저 변화가 시작된 사실로 보면 미국의 사회학자 ‘피티림 소로킨’이 언급한 1956년 이전부터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여기서 참고해야 할 내용은 우리가 오늘날 세계의 유명 해변 휴양지에서 남녀노소의 규제 없이 자유롭게 수영하는 문화가 오랫동안 남자와 여성의 해수욕이 엄격하게 법으로 규제되었던 사실이다. 이러한 법을 바꾸어 자유롭게 남자와 여성의 해수욕이 함께 이루어진 것은 1901년 영국이었다. 이후 1920년 무렵에 이르러서야 주요한 서방국가에서 남녀의 자유로운 해수욕이 허용된 역사의 이야기를 헤아려 보면 문화의 시대적 변화를 쉽게 이해하게 된다.
  
이와 같은 유니섹스를 예고한 대표적인 현상은 여성의 짧은 머리 스타일 쇼트커트(short cut) 이었다. 이와 같은 헤어스타일 쇼트커트는 남성과 여성으로 구별되어 오랫동안 억제되어온 여성이라는 사회적 관념의 사슬을 벗어던진 의미가 있다. 사실 영국과 미국에서는 예부터 짧은 머리를 쇼트커트(short cut)라고 하지 않는다. 이는 비영어권의 직역에서 생겨난 말이다. 이와 같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쇼트커트를 영어권에서는 프린지(fringe)로 표현한다, 이는 주변과 경계라는 뜻을 가진 말로 스카프나 숄의 끝에 달린 수술을 의미하며 전문적인 헤어 용어에서는 눈썹 위로 자른 머리를 말한다. 필자는 칼럼의 쉬운 이해를 위하여 우리가 오늘날 쉽게 소통하는 쇼트커트로 표현하는 점에 대한 이해를 구한다.
  
이러한 맥락의 짧은 헤어스타일 쇼트커트가 사회의 이슈로 등장한 것은 대중문화의 파급효과가 가장 컸던 영화에서였다. 대표적으로 1953년 상영된 영화 ‘로마의 휴일’의 여주인공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 1929~1993)의 너무나 잘 알려진 짧은 머리 쇼트커트다. 이와 같은 헵번의 머리는 픽시 컷(Pixie cut)으로 표현한다. 여기서 픽시(Pixie)란 스코틀랜드와 북유럽의 민속 신화에서 유래된 귀가 뾰족한 앙증맞은 남녀의 구분이 없는 요정과 같은 작은 어린이를 의미한다.
  
이와 같은 헵번의 짧은 머리 픽시 컷(Pixie cut)이 등장한 배경을 살펴보면 1920년 무렵부터 유행하였던 ‘페이지 보이’(Page boy) 스타일이 살펴진다. 이는 머리끝이 안쪽으로 말린 스타일로 미국의 ‘존 텐시’(John Tansey. 1901~1971)와 ‘잭키 쿠건’(Jackie Coogan. 1914~1984)과 같은 아역배우가 이와 같은 모습으로 영화에 등장하면서 오랫동안 이어진 짧은 머리의 가장 선구적인 스타일이다.
  
이어 프랑스 문화의 새로운 물결 누벨바그 영화 운동의 표상인 ‘장뤼크 고다르’(Jean-Luc Godard. 1930~) 감독이 제작한 1960년 영화 ‘네 멋대로 해라’(À bout de souffle)에서 파리 거리에서 신문을 팔던 여배우 ‘진 세버그’(Jean Seberg. 1938~1979)의 쇼트커트 머리는 많은 메시지를 품은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또한, ‘장뤼크 고다르’ 감독이 제작한 1962년 상영된 영화로 자신의 삶을 산다는 뜻의 ‘비브르 사비’(Vivre sa vie)에 여주인공 안나 카리나(Anna Karina. 1940~)의 앞머리를 눈썹 위로 자른 뱅 스타일의 쇼트커트가 있다. 이는 영화에서 거리의 여자로 살아가는 처절한 삶의 경계선처럼 또 하나의 표정으로 존재하였다. 이와 같은 쇼트커트의 역사는 1968년 공포영화의 고전 ‘악마의 씨’(Rosemary's Baby)에 출연한 미아 패로(Mia Farrow. 1945~)의 쇼트커트 머리로 이어져 1960대 후반의 패션 가를 관통하였다.
  
이와 같은 헤어스타일 쇼트커트의 역사에서 빠트릴 수 없는 인물이 영국 출신의 패션모델이며 연기자인 ‘트위기’(Twiggy. 1949~) 스타일이다. 그는 미용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1967년 세계적인 패션잡지 보그(Vogue)의 표지모델로 데뷔하여 1960년대 패션을 대표하는 모델이 되었다. 잠시 이에 대하여 살펴보면 그의 본명은 ‘레슬리 혼비’(Lesley Hornby)로 나무의 가느다란 잔가지를 뜻하는 ‘트위기’(Twiggy)가 예명이 되었을 만큼 깡마른 몸매의 소녀였다.
  
1966년 1월 그녀는 16살의 고등학생이었다. 그는 당시 패션계를 흔들었던 슈퍼모델 ‘진 쉬림튼’(Jean Shrimpton. 1942~)과 ‘패티 보이드’(Pattie Boyd. 1944~)를 꿈꾸었던 소녀였다. 이에 토요일이면 영국의 전설적인 헤어드레서(hairdresser)인 메이페어의 ‘레너드’(Leonard of Mayfair. 1938~2016)가 운영하던 헤어살롱에서 고객의 머리를 감겨주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이 무렵 ‘레너드’는 새로운 쇼트커트 스타일을 개발하여 이미지 컷을 촬영할 모델을 찾다가 짧은 머리를 원하지 않는 아르바이트생 레슬리 혼비(트위기)를 설득하였다. 당시 염색사로 일하던 ‘다니엘 갤빈’(Daniel Galvin. 1944~)이 고대 바벨론 사람들이 벽돌을 가마에 구웠던 브릭웍(brickwork)기술을 응용한 열적용과 오늘날 유행하는 하이라이트 염색기법으로 염색을 하고 레너드가 커트를 마치기까지 8시간이 걸렸다. 이후 다음날 촬영하여 미용실에 이미지 컷으로 걸었다.
  
이후 헤어드레서 레너드에 대한 이야기를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 익스프레스(Daily Express) 패션 란에 소개하는 기사에 사용할 사진을 촬영하러 남아프리카 출신 사진작가 ‘배리 레이트건’(Barry Lategan, 1935)이 미용실에 왔다. 그는 레너드의 여러 사진과 함께 살롱에 걸려있던 이미지 사진을 함께 촬영하여 데일리 익스프레스의 패션담당 편집장 ‘데어드레 맥샤리’(Deirdre McSharry. 1932~)에게 보냈다. 이를 받아본 편집장은 사진작가에게 이미지 사진의 쇼트커트 머리의 소녀를 지목하며 다양한 사진을 찍어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난 후에 ‘66년의 얼굴’(The Face of 66)이라는 즉 1966년 올해의 얼굴이라는 제목과 함께 수탉과 같은 소녀가 수천 가지의 모습을 내놓을 얼굴이라며 소녀의 나이 이제 16세라는 기사를 썼다. 이후 다음 해 트위기는 세계적인 잡지 ‘보그’(Vogue)의 표지모델이 되었다.
  
이러한 내용에서 머리 염색의 장인 ‘다니엘 갤빈’의 염색과 커트의 명인 ‘레너드’의 8시간이라는 작업을 통한 장인의 감성을 파악하게 된다. 이어 미용실에 걸린 트위기의 이미지 사진을 촬영한 사진작가 배리 레이트건의 렌즈에 잡힌 감각을 헤아리게 되고, 마치 액세서리처럼 따라온 이미지 사진에서 멈춘 ‘데어드레 맥샤리’ 편집장의 예리한 감각에서 세기의 아이콘 트위기 모델이 탄생한 사실은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이와 같은 각 분야 전문가의 감각에 의하여 탄생한 모델 트위기는 짧은 머리에 한층 부각된 큰 눈과 긴 속눈썹을 트레이드로 남녀 양성의 보이쉬한 느낌을 뿌리며 당시 세계 대중 문화의 근원지 영국 런던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이른바 현대적인 또는 최신의 뜻을 가진모즈 룩(mods look)이다. 이는 시대의 음악인 록의 영향으로 저항심을 키워가던 젊은 세대에게 특히 의상에 대한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허리를 가늘게 조인 꽃무늬가 있는 화려한 셔츠와 바지 끝 통이 넓은 판탈롱 그리고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큰 센세이션을 가져왔던 미니스커트(mini skirt) 와 핫팬츠가 바로 트위기가 일으킨 바람이었다. 이는 당대의 아이콘 비틀스가 모즈 룩의 선도로 청년문화를 이끌었다면 트위기는 젊은 우먼의 문화를 선도한 쌍두마차의 의미가 있다.
  
당시 이와 같은 트위기의 머리 염색을 맡았던 ‘다니엘 갤빈’(Daniel Galvin. 1944~)은 세계 최고의 헤어 컬러리스트이다. 오늘날 머리카락의 가닥과 부분에 다양한 컬러의 밝기를 자유롭게 조절하는 염색 방식으로 각광받는 ‘하이라이트’(highlight) 염색의 현대 기법의 실질적인 창안자이다.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형으로 이어진 3대의 머리 염색 장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대대로 이어온 가문의 비법을 바탕으로 레너드의 미용실에서 염색사로 일하였으며 주요한 디자이너에서부터 영화 제작자와 많은 작업을 남긴 후 1977년 독립하였다. 셀 수 없는 세계적인 스타와 유명인사를 고객으로 두었던 그는 섹시퀸 가수 마돈나(Madonna. 1958~)의 세계를 빛낸 헤어 컬러와 비운의 왕세자비 다이애나(Diana. 1961~1997)의 품격을 드높인 머리 빛깔이 그의 손길이 빚어낸 작품이었다.
  
시대의 아이콘 ‘트위기’(Twiggy)가 몰고 왔던 미니스커트(mini skirt) 이야기도 잠시 정리하고 가도록 한다. 미니스커트의 역사는 고대에서부터 오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댄서의 의상과 여성 테니스와 피겨 스케이팅 선수 그리고 치어리더의 의상에서 보더라도 그 역사는 길다. 이와 같은 미니스커트의 대중적인 발명에 대한 논란은 오래도록 이어져 왔다. 쇼트커트 헤어스타일의 역사에 등장하는 영국의 패션 디자이너 ‘매리 퀀트’(Marry Quant. 1934~)와 우주복인 스페이스 룩의 창시자인 프랑스 디자이너 ‘앙드레 쿠레즈’(André Courrèges. 1923~2016)가 대표적이다.
  

▲ (좌) ‘트위기’(Twiggy)/ ‘트위기’의 보그지 표지 (Vogue) 세기의 컬러리스트 ‘다니엘 갤빈’(Daniel Galvin) 출처: https://en.wikipedia.org/     © 브레이크뉴스

 

여기서 살펴지는 부분은 우리나라 최초의 남성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André Kim. 1935~2010)의 이름이 바로 이와 같은 ‘앙드레 쿠레즈’에서 유래된 사실이다. 본명 김봉남이었던 앙드레 김은 우리나라 선구적인 패션 디자이너 최경자(崔敬子. 1911~2010)가 1961년 설립한 국제복장학원의 첫 회 졸업생이었다. 이후 1962년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 앞에 의상실을 오픈하기 전에 지인의 소개로 알고 지냈던 프랑스 대사관 외교관을 만나 조언을 구하였다. 이때 그는 프랑스 유명 디자이너 ‘앙드레 쿠레즈’를 설명하며 국제적인 활동을 위한 이름 ‘앙드레 김’을 권유하였다. 이를 받아들여 ‘살롱 앙드레’가 오픈 되었으며 세계무대에 오르는 이름이 되었다.
  
필자의 자료에 의하면 미니스커트의 현대적 창시는 대체로 비슷한 시기의 작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는 당시 1964년 파리 컬렉션에서 프랑스 디자이너 ‘앙드레 쿠레즈’가 발표한 짧은 치마에 대한 자료도 분명하지만 그 무렵에 여러 매거진에서 언급한 영국의 ‘매리 퀀트’에 짧은 스커트 작품도 존재한다. 나아가 ‘매리 퀀트’의 작품은 벨트 위치를 허리 끝으로 하여 더욱 짧은 스커트를 추구하고 있었던 점은 더욱 구체적이다. 또한, 당시 시대를 대표한 유명 브랜드의 디자이너 작품에서도 치마의 끝을 뜻하는 헴라인(hemlines)의 수준이 미니스커트와 비슷한 자료가 상당 부분 확인되고 있는 점이다.
  
여기서 세기의 아이콘 ‘트위기’(Twiggy. 1949~)를 탄생시킨 영국의 전설적인 헤어드레서(hairdresser) 메이페어의 ‘레너드’(Leonard of Mayfair. 1938~2016)와 함께 살펴 가야 할 인물이 있다. ‘레너드’의 실질적인 스승이었으며 당시 미용계의 쌍두마차와도 같았던 세기의 헤어 디자이너 ‘비달 사순’((Vidal Sassoon. 1928~2012)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 까닭이다.
  
메이페어의 ‘레너드’는 폴란드 유대인 출신 여성 미용사 ‘로즈 에반스키’(Rose Evansky. 1922~2016)에게 미용 기술을 배웠다. 이러한 ‘로즈 에반스키’는 런던의 빈민가였던 화이트채플(Whitechapel Road)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던 ‘아돌프 코헨’(Adolf Cohen)에게서 미용기술을 익혔다. 이후 1947년 런던 북쪽 교외의 헨던(Hendon)에 미용실을 개업한 후 1953년 중심가 메이페어로 옮겼다. 이때 ‘레너드’가 견습생으로 들어가 미용기술을 공부하였다. ‘로즈 에반스키’는 헤어 스타일링의 역사에서 매우 주요한 업적을 남긴 여성이다. 그는 핸드 드라이어와 브러시를 사용하여 퍼머나 커트 그리고 염색이 이루어진 머리를 마무리 스타일링하는 가장 주요한 ‘블로 드라이’(blow-dry)를 최초로 고안해낸 미용사이다. 또한 드라이어와 브러시로 자연스러운 웨이브를 만들어내는 블로우 웨이브(blow-wave)의 창시자이다.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바로 ‘비달 사순’((Vidal Sassoon. 1928~2012)의 첫 스승이 ‘아돌프 코헨’이었다. ‘비달 사순’은 런던에서 유대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그가 3살이었고 동생이 두 살이었을 때 아버지는 가정을 버리고 다른 여자와 떠났다. 너무나 가난했던 형편에 어머니는 유대인 고아원에 두 아들을 맡겼다. 그가 11살이었을 때 어머니가 재혼하여 동생과 고아원에서 집으로 돌아와 기독교 학교에 입학하였다. 이후 어머니의 권유로 ‘아돌프 코헨’(Adolf Cohen)의 미용실로 들어가 기술을 배웠다.
  
그는 20살이 되었던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 선포로 아랍 국가와 제1차 중동전쟁이 일어나자 이스라엘 방위군에 지원하여 전쟁에 참가하였다. 이후 런던에 돌아온 그는 메이페어에 있는 ‘레이먼드 벤손’(Raymond Bessone. 1911~1992)의 살롱에 들어가 일하며 공부하였다. ‘레이먼드 벤손’은 머리에 볼륨감을 주기 위하여 머릿결을 반대 방향으로 세우거나 바깥쪽으로 말아 돔 모양이 되는 ‘부팡’(bouffant) 스타일의 현대적인 창시자이다.
  
그는 스키를 타다 굴러 기절하였다가 깨어나 바라본 산의 정상에서 이와 같은 영감을 얻었다. 이와 같은 부팡 스타일은 머리 안쪽으로 빗질하는 백 코밍(back combing)으로 머리가 말려 들어가면서 위로 올리는 힘이 생겨나 볼륨감이 생겨나는 업(up) 스타일의 바탕이었다. 이에 귀를 덮는 부팡 스타일과 위로 솟아오르는 형태의 차이를 가진 벌집 머리인 ‘비하이브 헤어’(beehive hair)와 함께 시대의 유행이 되었다.
  
‘비달 사순’(Vidal Sassoon. 1928~2012)은 ‘레이먼드 벤손’의 숍을 나와 1954년 메이페어 본드 스트리트에 미용실을 오픈하였다. 그는 스승 ‘레이먼드 벤손’의 업스타일의 뛰어난 기술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은 전혀 다른 헤어스타일을 추구하였다.
 
‘비달 사순’은 당시 유행하는 머리 손질이 어려운 업(up) 스타일과는 다르게 머리를 매만지는 시간이 걸리지 않는 단발머리인 보브컷(bob cut)을 선보였다. 이는 당시 산업사회의 발달로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들이 늘어나는 변화를 감안한 것이었다. ‘비달 사순’은 근 현대 헤어 스타일링 역사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바탕을 중시한 헤어 디자이너였다.
  
이러한 ‘비달 사순’은 5개의 요점을 가진 기하학적인 컷(Five point geometric cut)이라는 헤어스타일을 창안하였다. 이는 미용사는 고객의 얼굴을 보고 그 구조와 모양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창안한 보브컷(bob cut)을 통하여 한쪽 머리가 짧은 비대칭적인 커트의 형태에서 앞머리를 내린 곳에 하나의 포인트를 두었다, 이어 양쪽 귀의 앞과 뒤를 뾰족하게 자른 옆머리에 두 개의 포인트를 두었다. 마지막으로 역 V자 형태의 깊게 깎아 올린 목덜미로 흐르는 뒷머리에 두 개의 포인트를 두어 자연스러운 깔끔한 머릿결이 마치 살아있는 것 같은 역동적인 커트 스타일을 선보여 이후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쇼트커트와 헤어스타일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비달 사순’의 헤어 스타일링은 다른 미용사들의 경험과 감각에서 탄생한 스타일과 달리 여기에 선과 면과 도형에서 오는 기하학적인 대상의 모양과 크기는 물론 상대적인 위치와 공간의 성질에 대한 내용을 가장 적극적으로 구현한 건축물에 대한 오랜 연구와 공부가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러한 배경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나중 기회가 되면 별도로 다루기로 한다,) 대표적으로 그는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 1886~1969)라는 20세기 대표적 건축가 중 한 명인 독일 출신의 미국 건축가에 대한 깊은 연구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유리와 철강을 소재로 전통적인 고전주의 미학을 바탕으로 과학 산업이 낳은 첨단 소재를 미학적으로 통합한 건축가의 작품에 대한 깊은 헤아림이 있었던 것이다,
  
세기의 헤어 디자이너 ‘비달 사순’에 대한 연구는 오늘날 다시 평가되어야 할 내용이 실로 많다, 이러한 사실은 영국 보그(Vogue) 지의 모델을 거쳐 미국 보그지의 편집장이 되었던 영국 웨일스 출신의 모델 ‘그레이스 코딩턴’(Grace Coddington. 1941~)이 언급한 내용에서 극명하게 확인된다. 그는 ‘비달 사순’과 많은 작업을 함께 하였던 경험을 바탕으로 ‘비달 사순’의 깊은 사유를 품은 섬세한 커트 능력은 마치 의상의 재단처럼 과학적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라고 평가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비달 사순’을 헤아린 인물이 있었다, 뉴욕 출신의 영국의 광고 회사와 화장품 회사에 근무하던 여성 카피라이터 ‘나탈리 도네이’(Natalie Donay. 1928~1991)였다. 그녀는 ‘비달 사순’의 헤어 스타일링에 대한 깊은 헤아림으로 미국행을 설득하였다. 결국 ‘비달 사순’은 1965년 미국행을 결심하여 뉴욕 메디슨가에 헤어살롱을 오픈하였다. 1970년 로스앤젤레스로 옮겨간 그는 미국에서 많은 활동을 펼쳤으며 특히 할리우드 영화 발전에 많은 공헌을 남겼다. 그는 헤어 제품 전문 화장품 회사를 설립하여 크게 성공하여 평생을 자선과 반 유태주의 운동과 연구 단체 지원으로 헌신하다 2012년 세상을 떠났다.

 

여기서 헤어 스타일링에 대하여 마지막 정리하고 가야 한 인물이 ‘비달 사순’에게 공부하여 그와 함께 세기의 헤어스타일 세계를 끌었던 앞에서 언급된 메이페어의 ‘레너드’(Leonard of Mayfair. 1938~2016)이다. ‘비달 사순’이 유일한 경쟁자로 평가하였던 천재적인 헤어디자이너였던 그의 본명은 레너드 루이스(Leonard Lewis)였다. ‘비달 사순’의 숍에서 1년간의 커트 공부를 마친 그는 ‘비달 사순’의 지원을 받아 동업자 적인 관계로 메이페어에 미용실을 오픈하였다. 그는 ‘비달 사순’의 기하학적인 커트 기법에 자신의 감성을 담은 더욱 부드러운 스타일링으로 일약 최고의 헤어 아티스트로 도약하였다. 
  

▲ (좌) ‘비달 사순’/ 메이페어의 ‘레너드’와 ‘Twiggy’ 1967년 New York (Photograph: Bettmann) 출처: https://en.wikipedia.org/ https://www.vogue.it/en/ / https://www.theguardian.com/     © 브레이크뉴스

 

이는 1966년 무명의 ‘트위기’(Twiggy. 1949~) 쇼트커트 스타일을 탄생시켜 화제에 오르기 전에 이미 세계적인 스타들의 거의 모든 머리를 매만지는 아티스트였다, 그의 살롱은 5층 건물의 전체를 모두 사용하는 런던에서 가장 큰 헤어 살롱이었다. 건물의 한 층은 세기의 컬러리스트 ‘다니엘 갤빈’(Daniel Galvin. 1944~)이 염색 전문공간으로 사용하였다, 그의 손길을 거쳐간 고객은 대표적으로 1961년 당시 세상에 떠오르던 태양과 같았던 비틀스(Beatles)의 주요 멤버 중 유독 개성이 강했던 ‘존 레넌’(John W. Lennon. 1940~1980)과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1942~)가 그에게 머리를 맡겼다. 이어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세계적인 스타와 명사들이 그에게 머리를 맡겼다. 일세를 풍미하였던 그는 1986년 뇌종양으로 쓰러져 수술 이후 실질적인 은퇴가 이루어진 그는 지난 2016년 세상을 떠났다. 이때 영국을 대표하는 헤어 디자이너들의 추모의 변은 한결같았다. 그는 자신의 천재적인 헤어 스타일링의 경험과 감성을 전수시켜주는 역할에 대해 절대로 인색하지 않았다. 이에 오늘날 영국의 모든 헤어디자이너는 그에게 영원한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이야기를 쏟아 놓았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필자의 얄팍한 상식의 늘어놓음이 아니라 우리의 각 분야 젊은 아티스트들이 새겨야 할 역사의 숨결이라는 점이다. 앞에서 많은 이야기로 언급하였듯이 세계를 관통한 문화와 예술은 함께 호흡하고 공유하는 숨결과 같은 어울림이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점에서 필자는 우리의 민요 밴드 씽씽이 세계에서 각광을 받는 배경에 대한 역사적인 이야기를 살펴보고 싶었다. 이에 민요 밴드 씽씽에서 가장 주목받는 남성 보컬들이 추구하는 화려한 여장 의상이 국경이 없는 오랜 역사의 교감이라는 사실에 대한 실체를 헤아려 본 것이다. 보편적으로 글램록(glam-rock)으로 쉽게 소통되는 사실에 대하여 글램록이 존재하게 된 문화의 역사적 근원과 배경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살펴왔다. 여기서 피해 갈수 없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더욱 화려한 가발과 매무새로 심장을 울리는 록 음악을 뿌리며 불완전 한 자신의 존재에 대한 끝없는 독백과 몸짓을 쏟아 내는 록 뮤지컬 헤드윅(Hedwig)에 대한 이야기다.
  
이어 이와 같은 이야기와 함께 세계인의 신명으로 등장한 씽씽밴드 그들은 누구인가!라는 이야기의 여행을 계속하기로 한다.

 

다음 칼럼은 (223) 민요 밴드 씽씽(Ssing Ssing) 그들은 누구인가!입니다. *필자: 이일영, 시인. 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 artww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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