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예술혼을 위하여-(231) 역사를 잃어버린 부채 이야기

이일영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8/12/21 [11:25]

일제 강점기 시대에 우리 문화를 오랫동안 연구한 일본의 민예연구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悦.1889~1961)는 ‘조선이 영원히 전해야 할 공예는 합죽선(合竹扇) 부채이며, 일본에는 이런 부채가 없다’는 기록을 남겼다.

 

부채는 쉽게 다양한 형태의 단선(團扇)과 접고 펴는 부채 접선(摺扇)으로 구분한다. 인류가 생활하면서 더위를 피하거나 햇볕을 가리기 위한 지혜로 시작되었던 단선으로 된 부채의 역사는 고대 이집트의 고대유물에서부터 존재한다. 그러나 접고 펴는 부채 접선(摺扇)은 그 전환적인 발상과 극히 과학적인 부채로 선구적인 발명이 어느 나라에서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문제는 인류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에 필자는 우리 문화의 깊은 관심과 연구로 민예(民藝)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야나기 무네요시’가 조선의 가장 소중한 민예(民藝)로 단언한 합죽선 부채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면서 접고 펴는 부채에 대한 역사적인 맥락을 오랫동안 헤아렸다. 

 

이와 같은 접고 펴는 합죽선(合竹扇) 부채에 대한 기록은 많다. 그중 중국 북송 시대의 화가이며 화론가인 ‘곽약허’(郭若虛)가 1076년에 저술한 ‘도화견문지’(圖畵見聞誌)에 ‘고려에서 중국에 오는 사신들은 접고 펴는 접부채를 사용하였다.’ ‘부채에는 산수와 화조 등을 그려 매우 아름답고 신기한 부채로 이는 가장 귀한 선물이었다,’ 는 기록은 당시 중국에는 이와 같은 접고 펴는 접선(摺扇)의 부채가 없었음을 증명하는 소중한 기록이다.

 

▲ 겸재 정선 부채그림 (금강내산도)/ 전북 무형문화재 선자장 엄재수 作 합죽선 (어피 칠접선) / 출처: 간송미술관/ 전주한옥부채박물관/     © 브레이크뉴스

 

 

또한, 이와 같은 기록은 1076년 북송 시대 6대 황제 신종(神宗)이 통치하던 희녕(熙寧) 9년에 고려사신 최사훈(崔思訓)이 사은품으로 전한 접부채 합죽선에 대한 기록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아울러 중국 송나라 시대의 문신이었던 서긍(徐兢, 1091~1153)이 1123년 고려에 사신으로 와서 직접 보고 체험한 사실들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은 오늘날 그림은 훼손되어 글만 전해지는 문헌이다. 이 문헌에는 ‘고려인들은 한겨울에도 부채를 가지고 다니며 그 부채는 접고 펼 수 있는 신기한 부채이었다.’라고 기록한 내용을 통하여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이와 같은 역사적인 기록을 바탕으로 중국 초서(草書)의 대가로 잘 알려진 명나라의 관리 동해(東海) 장필(張弼. 1425~1487)이 펴낸 동해집(東海集)을 보면 중국에는 접부채가 없었으나 우리나라에서 전한 접부채에 대한 기록이 자세하게 기록된 사실에서 10세기에서 15세기에 이르는 500년의 역사가 흐른 이후에도 중국에는 접고 펴는 부채가 없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어 청나라의 4대 황제 강희제(康熙帝)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던 서화 수집가로 잘 알려진 강촌(江村) 고사기(高士奇. 1644~1703)의 천록식여(天祿識餘)와 청음당집(清吟堂集)과 같은 저서에서는 당시 중국에 유행하였던 조선의 접부채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일본의 민예연구가 ‘야나기 무네요시’가 이와 같은 역사적인 기록을 살펴보지 않았을 리가 없다, 바로 이러한 바탕에서 ‘조선이 영원히 전해야 할 공예는 합죽선(合竹扇) 부채이며, 일본에는 이런 부채가 없다’고 단언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일본에는 이런 부채가 없다는 ‘야나기 무네요시’의 단언과 달리 일본은 오늘날 자신들이 접고 펴는 부채를 맨 처음 만들어 사용하였다는 주장을 줄기차게 펴고 있다. 그 배경을 살펴보면 일본의 에도 시대에 의사이었던 ‘데라시마 요야스’(寺島良安)가 1712년 펴낸 백과사전과 같은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圖會)에서 여왕인 신공 황후(神功皇后-じんぐうこうごう, 171~270)가 박쥐의 날개에서 착안하여 홰나무 껍질로 엮어 사용한 접선을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는 내용을 근거로 삼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화한삼재도회’는 중국 명나라의 학자 왕기(王圻. 1530~1615)가 1607년 편찬하였던 중국의 백과사전 ‘삼재도회’(三才圖會)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위에서 언급한 중국의 주요한 기록에서 명확하게 고증하고 있는 우리의 접선 합죽선 부채와 달리 전설의 여왕 신공 황후(神功皇后)를 등장시켜 최초의 접선 부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에 ‘야나기 무네요시’가 ‘조선이 영원히 전해야 할 공예는 합죽선(合竹扇) 부채이며, 일본에는 이런 부채가 없다’고 단언한 사실을 일본인들은 깊게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이와 같은 내용을 오랫동안 헤아려 우리나라 목조 건축물에서만 존재하는 서까래를 부챗살 모양으로 놓은 대표적으로 경복궁 근정전에서 나타나는 하늘을 향하여 치켜든 선자(扇子)추녀의 미학이 합죽선 부채에서 생겨난 것임을 확인하였다. 이어 우리의 접고 펴는 합죽선 부채는 중국과 일본의 부채와 달리 유일하게 180도 반원형 도형을 지닌 부채라는 사실을 규명하였다. 이러한 부채에 그려진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의 부채 그림 ‘금강산전도’가 현존하는 가장 오랜 180도 반원형 부채 그림이라는 사실을 살폈다.

 

이러한 바탕에서 서양의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 ‘피사로’(Camille Pissaro. 1830~1903)와 ‘드가’(Edgar De Gas. 1834~1917) ‘고갱’(Paul Gauguin. 1848~1903) 을 비롯하여 많은 서양의 화가들이 이러한 반원형 합죽선 도형에 그린 부채 그림이 존재하는 사실이 확인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은 이와 같은 접고 펴는 부채가 일본의 부채라는 사실로 알고 있었던 내용도 살필 수 있었다. 이는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의 합죽선 부채가 파리 만국 산업박람회 등에 출품되었을 때 잃어버린 나라 조선은 일본의 그늘에 가려 그 참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다. 이에 합죽선 부채에서 전파된 일본과 중국의 부채가 마치 접고 펴는 부채의 종주국과 같은 역사로 잘못 기록된 배경이었다.     

 

일본은 이와 같은 접고 펴는 부채에 종이를 발라 사용한 발명이 자기 나라에서 이루어졌다는 환상을 마치 사실처럼 붙잡고 있다. 나아가 종이를 최초로 발명하여 사용한 중국에도 접고 펴는 부채에 대한 발명의 기록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정작 한국에 대한 기록은 피해간다, 이와 같은 일본이 주장하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살펴보면 710년 중국 당나라 장안성을 모방하여 나라(奈良)에 수도를 건설하여 794년까지 이어간 나라 시대(奈良 時代)와 이후 1185년 막을 내린 ‘헤이안 시대’(平安時代)의 유물로 발굴된 노송나무를 얇게 엮어 만든 종이도 붙여지지 않은 ‘히오우기’(檜扇)를 세계 최초의 접부채 발명국이라고 자랑하는 실체이다. 그러나 의식이 있는 일본 학자들은 이러한 ‘히오우기’(檜扇)가 목간 형태의 기록을 위한 용도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어 일본의 역사에는 헤이안 시대 중반에 5개 또는 6개의 동물의 얇은 뼈에 종이를 붙인 박쥐 부채(호리아오기)가 등장한다. 이는 당시에 우리의 합죽선이 전해진 이후 이를 모방한 극히 단순한 형태의 부채임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부채이다.  

 

▲ 좌로부터 일본 부채 ‘히오우기’(檜扇)/  중국 부채/  프랑스 부채 /     © 브레이크뉴스

 

이러한 역사에서 일본은 중국 원나라의 사서인 송사(宋史)의 일본 편 기록에 988년 일본의 승려 조연(奝然. 938~1036)이 송나라를 방문하면서 쥘부채 ‘히오우기’(檜扇)와 ‘박쥐 부채’(호리아오기)를 중국 조정에 선물하였다는 기록을 내세운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의 많은 부채가 중국으로 전해져 중국이 이를 모방하여 중국에서 접고 펴는 부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더 나아가 이와 같은 중국의 부채가 실크로드를 통하여 에스파냐(스페인)까지 전해져 유럽에서 접고 펴는 부채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또한, 16세기에 일본이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스페인) 그리고 네덜란드 등과 교역하면서 일본의 부채가 유럽에 전해지면서 중국의 부채와 함께 유럽에 퍼져간 바탕이 되었다는 사실로 정리하고 있다. 

 

필자는 이와 같은 일본의 주장이 얼마나 황당한 것이며 역사적인 기록과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오랫동안 헤아려왔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중국의 기록을 살펴보면 중국의 전설적인 순(舜)임금 시대에 등장하는 오명선(五明扇)이거나 주나라를 건국한 무왕(武王) 시대에 등장하는 초량선(招凉扇)은 접고 펴는 부채가 아닌 단선 부채이다. 이어 일부 기록에서 등장하는 당나라 시대에 등장하는 접고 펴는 부채 당선(唐扇)은 그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 기록으로 이는 중국에서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접고 펴는 부채에 대한 분명한 기록 중 중국에서 만들어진 내용이 확인되는 기록은 명나라 학자 유원경(劉元卿. 1544~1609)이 펴낸 고사집 ‘현혁편’(賢奕編) 기록이다. 이 기록에 접부채는 일명 살선(撒扇)으로 명나라 초에 조선국이 이와 같은 살선(撒扇)을 진상하면서 명나라 태조가 그 접고 펴는 신기함에 상방(尙方)에 명하여 이를 모방하여 만들어진 접고 펴는 부채를 살선(撒扇) 또는 고려선(高麗扇)이라 하였던 기록이다. 그러나 이처럼 접고 펴는 부채의 기록이 너무나 명확하게 정리된 한국의 부채에 대한 기록을 중국 또한, 오늘날 이 부분에선 침묵하고 있다.

 

더욱더 안타까운 사실은 브리태니커백과사전 이거나 세계 주요나라의 부채에 대한 역사의 기록은 이와 같은 중국의 전설적인 순(舜)임금 시대에 오명선(五明扇)과 주나라 무왕(武王) 시대에 초량선(招凉扇)을 시작으로 중국과 일본의 접고 펴는 부채가 유럽으로 전해진 것으로 정리되고 있는 점이다.  

 

필자는 1908년 일제 강점기 시대에 평양 경찰서장과 제주 경찰서장 등을 역임하면서 한국의 민속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를 연구하여 ‘조선 사회고’와 ‘조선 풍속집’등을 출판하였던 일본인 학자 ‘이마무라 토모’(今村 鞆. 1870~1943)가 일본이 자랑하는 접고 펴는 부채 ‘히오우기’(檜扇)에 대한 언급을 중시한다. 그는 ‘일본에 있어서 창제되었던 부채’라는 글에서 이와 같은 ‘히오우기’(檜扇)의 신공왕후 부채 창제설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라는 양심적인 지적을 하였다, 그는 경찰직 근무 이후 조선 왕실의 모든 업무를 총괄한 ‘이왕직’(李王職)의 서무과장으로 재직하면서 1930년 조선사 편수회와 1931년 인삼 역사 편찬 등을 주도한 인물로 일제 강점기 우리 문화사에 천착한 재야 학자이다.

 

필자는 이러한 사실에서 부채 그림 전시에 대한 역사적 인식을 통한 체계적인 기획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이에 지난 1997년 이어령 박사님과 당시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님으로 규장각 관장을 역임하시고 이후 국사편찬 위원장을 지내신 정옥자 박사님을 면담하였다. 당시 필자는 과연 우리의 지성 두 분 박사님은 이러한 내용에 대하여 어떤 인식을 두고 계신 것인지가 궁금하였다. 이에 필자가 준비하는 부채 그림 전시 기획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받고 싶었던 의미가 있었다, 

 

이에 1997년 이어령 박사님과 정옥자 박사님을 처음 뵈었을 때 두 분 박사님이 보여주신 실로 표현키 어려운 참다운 지성과 민족적인 의식은 무한한 격려가 되어 지난 20여 년 동안 50여 회에 이르는 국내와 세계 주요나라에서 부채 그림 전시를 기획하였다.
 
현재 세계에는 몇 곳의 부채 박물관이 존재한다. 그 하나는 영국 런던의 템스강 남쪽 연안에 세계 시각의 기준을 알리는 그리니치 천문대가 있는 그리니치(Greenwich) 지역에 1991년 개관한 세계 최초의 ‘부채 박물관’(Fan Museum)이다. 이곳 박물관에는 4,000점이 넘는 전 세계의 다양한 부채와 관련된 자료가 소장되어있다. 아울러 부채의 역사와 그 제조 공정에 이르기까지 이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 이에 일반인에서부터 단체 학생에 이르기까지 현장수업과 다양한 부채 만들기 프로그램이 열리고 있다.

 

이 박물관은 런던관광위원회와 영국 문화유산위원회의 후원을 받으며 국립 미술 컬렉션 기금과 스포츠 및 예술재단기금 그리고 런던 트러스트 유산과 헤리티지 복권 기금에서 많은 재정지원을 받아 운영된다. 여기서 너무나 안타까운 사실은 일본의 접고 펴는 부채에 대한 전 방위적인 홍보의 힘으로 세계 최초의 영국의 부채 박물관에 부채 모양의 일본식 정원과 화단 그리고 연못이 상징처럼 존재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는 세계 최초의 공공박물관인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한국의 유물이 중국과 일본의 전시실 한쪽에 초라하게 놓여 있는 현실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이와 같은 영국의 부채박물관이 1991년 개관되면서 1993년 프랑스 파리에 ‘파리 부채 박물관’(Fan Museum in Paris)이 개관하였다. 파리 10구 스트라스부르 생 드니(Strasbourg St Denis) 역 일대인 스트라스부르 거리(Boulevard de Strasbourg)에 세워진 ‘파리 부채 박물관’은 보석 공예사였던 증조할아버지 ‘조제프 오게’(Joseph Hoguet)가 1872년 귀족부채에 보석을 가공하였던 역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어 2대인 그의 아들 ‘마리우스 오게’(Marius Hoguet)가 부채 제작과 수리업에 종사하면서 이를 가업으로 이어받았다.

 

이어 3대인 에르베 오게(Hervé Hoguet)는 부채 장인으로 할아버지와 아버지로 이어온 가업을 부흥시키면서 많은 부채를 컬렉션 하였다. 이어 그는 당시 쌍벽을 이루던 부채 제조업체인 르폴 & 드베르그(Lepault & Deberghe사를 1960년 인수하였다. 바로 오늘날 부채 박물관 건물이다. 1993년 ‘파리 부채 박물관’(Fan Museum in Paris)이 개관되면서 가문의 4대를 잇는 둘째 딸 ‘안느 오게’(Anne Hoguet)에 의하여 운영되고 있다.

 

‘파리 부채 박물관’은 가문의 개인박물관으로 세계 각국의 희귀부채 1,000여 점의 전시와 함께 부채 제작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그 재료와 작업 도구 등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이 박물관은 부채라는 한정된 공간예술에 국한하지 않고 프랑스의 거리 예술가 ‘코덱스 우르바노’(Codex Urbanus)등과 제휴하여 전통과 현대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현대 미술 운동과 함께 파리의 생생한 거리예술을 함께 보여 주는 등의 다양한 기획을 시도하고 있다.

 

이와 함께 존재하는 부채박물관은 일본에 있는 마루가메시 부채 미나토 박물관(丸亀市うちわの港ミュージアム)이다. 이 박물관은 1995년 일본 시코쿠(四國) 지방 가가와현(香川県)의 마루가메시(丸亀市)가 설립하였다. 이곳은 에도시대에 가장 유행하였던 부채의 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이 박물관은 관리자로 지정된 부채 협동조합 연합회가 관리하면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하여 일본 부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 좌로부터 영국 그리니치 ‘부채 박물관’/ ‘파리 부채 박물관’/ 일본 마루가메시 부채 미나토 박물관/ 한국 전주한옥마을 부채박물관/     © 브레이크뉴스

 

우리나라에도 2곳의 부채박물관과 1곳의 부채문화관이 개관되었다. 지난 2007년 경남 의령의 목도수목원에 처음으로 개관된 일준부채박물관(관장 이일원)은 현재 문이 닫혀있다. 이어 전주시가 조선 시대 왕실에 공급할 부채를 만들고 관리하였던 선자청(扇子廳)의 역사적 의미의 보존과 전주지역에서 활동하는 부채제작 장인의 활동 지원 등을 목표로 전주 한옥마을에 부채문화관(관장 이향미)이 2011년 10월 개관되었다, 이곳은 역사적인 부채 유물 전시와 함께 다양한 체험행사와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어 2014년 2월 전주 한옥마을에 개관된 부채박물관(관장 엄재수)이 있다. 이곳 엄재수 관장은 합죽선 제작 전라북도 무형문화재이었던 고 엄주원 선자장의 아들로 대를 이어 2012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선자장으로 지정되었다. 그가 사비를 들여 개관한 전주 한옥마을 부채박물관은 그의 부채제작 공방과 함께 옛 부채의 전통적인 기법의 재현을 추구하며 다양한 우리 부채의 유물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세계 최초로 접고 펴는 부채를 발명하여 사용하면서 대국 중국의 동경과 선망의 상징이 되었던 당당한 자존의 바람을 일으킨 민족의 지혜를 일깨워야 한다. 분명한 기록과 실체적인 사실이 넘쳐나면서도 이를 널리 알리지 못한 아쉬움을 추슬러 이제라도 세계 속에 민족의 지혜를 분명하게 알리는 대책을 연구하여야 할 것이다. *필자: 이일영, 시인. 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artwww@naver.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119@breaknews.com
ⓒ 한국언론의 세대교체 브레이크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