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상화(鳳翔花)에서 봉선화(鳳仙花)와 봉숭아로 불려온 봉선화는 인도가 원산지이지만, 한국에서 가장 번성한 꽃이다. 인도에서부터 파키스탄과 페르시아 이란 고원에까지 피어났고, 히말라야산맥을 넘어 중국과 몽골에 전해졌으며, 미얀마와 베트남을 거쳐 말레이시아에 이르는 동남아시아 전역에 피어난 봉선화가 반도인 우리나라에서 가장 번성한 꽃으로 피어난 역사는 앞으로도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여러 자료를 살펴보면 봉선화는 인도와 중국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모든 나라에서 관상용 화초와 약용 식물이었다. ‘투골초’(透骨草) 라는 특별한 이름도 가진 봉선화는 씨앗을 넣으면 질긴 고기의 뼈까지 부드러워지는 효능처럼 뼈에까지 미치는 약효를 말한 것이다. 이어 벌과 나비는 물론 벌레들이 가까이하지 않는 독성을 가진 식물로 특히 뱀의 독성에 해독기능을 가진 봉선화를 싫어하는 뱀의 습성을 헤아려 장독대와 울타리에 유난히 많은 봉선화가 심어진 것은 우리 조상의 지혜였다.
![]() ▲ (좌로부터) ‘표암 강세황’(1713~1791) ‘봉선화도’ 비단에 수묵, 28.6×20.0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중국 청나라 화가 장웅(張熊. 1803~1886)의 鳳仙花圖,金箋設色,17.9×51.5cm 北京故宮博物院藏 / 중국 화가 제백석(齐白石. 1860~1957)의 봉선화도/ © 브레이크뉴스 |
이와 같은 봉선화에 대한 여러 의학서 내용을 보면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는 뱀에 물린 해독을 풀어주고 혈액의 순환을 원활하게 하며 류머티즘의 통증을 완화하는 효능을 기록하고 있다. 이어 민약서 ‘귀주민간방약집’(貴州民間方藥集)에서는 부인병의 특출한 효능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복건민간초약(福建民間草藥)에서는 화농성 염증 질환의 효능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허준이 펴낸 ‘동의보감’(東醫寶鑑) 탕액편(湯液篇)에 기록된 봉선화의 약효도 다양하다. 곤장을 맞고 붓거나 상한 ‘장창’(杖瘡)에는 봉선화 뿌리와 줄기를 찧어 환부에 붙인다는 연근엽도도(連根葉搗塗)와 같은 치료법외에도 여러 약효를 기록하였다.
이와 같은 효능 이외에도 현대의학의 실험에 의하여 봉선화 씨와 꽃받침의 수액이 위염의 원인인 헬리코박터를 제거하는 항생 효과를 연구하였으며. 포도상구균과 연쇄상구균 그리고 녹농균과 같은 화농성 균에 탁월한 치유성분이 존재하고 있음을 밝혀내었다.
이처럼 봉선화가 가진 다양한 성분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특히 인도와 말레이시아 응용 생물학자들에 의하여 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차세대 실험적 연구가 진행 중인 사실에서 필자는 왜 봉선화 식물을 통하여 이러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지에 호기심에 이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너무 전문분야로 그 실체적 중심에 대한 접근은 어려웠지만, 대략 이해된 내용을 요약한다.
이와 같은 연구는 유전학에서 그것이 동물이건 식물이던 유전자의 분자구조와 기능을 해체하여 유전자의 변이와 변화 등을 연구하는 내용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었다. 즉 유전자 본체의 화합물 분자가 결합하여 다른 화합물이 되는 중합체(重合體-polymer)의 고리에서 개체의 순서를 헤아리는 ‘시퀀싱’(sequencing)의 의미에서 출발하고 있는 맥락이었다.
이에 대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설명이 필요하다, 유전자의 본질인 핵산(Nucleic acids)은 DNA(데옥시리보 핵산)와 RNA(리보핵산)로 결합한 중합체(polymer)이다. 여기서 DNA는 같은 형태의 구조를 물려주고 복제하는 유전 양식의 암호를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활동에 필요한 단백질의 합성과 촉매의 역할을 하는 고분자 화합물이 RNA(리보핵산)이다, 이러한 DNA의 염기는 (A:아데닌, G:구아닌, C:사이토신, T:타이민)으로 구성되어 있고 RNA는 (A:아데닌, G:구아닌, C:사이토신, U:유라실)로 구성되어 있다. 이어 DNA 사슬의 구조는 이중나선형이며 RNA는 단일사슬이다.
여기서 유전자의 본체인 핵산의 구성성분인 염기(base)를 순서대로 나열한 이른바 염기서열은 모든 생명체에 대한 단백질을 지정하는 원리이다. 이러한 염기서열의 구조적인 분석에서 해당 유전자의 형태와 본질이 확인되는 것이다.
여기서 참고할 사실은 ‘유전자분석’과 ‘유전암호 해독’에 대한 내용이다. 유전자 분석이란 여러 염색체와 유전자의 특정한 형태를 분석하는 것이다, 즉 유전자의 성질과 연관된 유전자의 수와 염색체의 위치에 대한 분석이다. 이어 ‘유전암호 해독’은 특정한 유전자에서 생성되는 단백질의 합성에 관한 구조를 헤아리는 차이를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유전암호 해독은 구조적으로 DNA(데옥시리보 핵산)가 가지고 있는 유전 양식의 암호가 RNA(리보핵산)로 합성되는 전사(transcription)과정에서 단백질의 합성에 관한 배열 순서를 확인하게 된다.
이와 같은 염기서열의 구조적인 분석의 ‘시퀀싱’(sequencing)은 생화학적 DNA 염기 서열(DNA sequencing)법으로 하버드대학교 생물물리학 교수 ‘월터 길버트’(Walter Gilbert. 1932~)와 조교 ‘알랜 맥삼’(Allan Maxam. 1942~)에 의하여 ‘맥삼-길버트법’(Maxam-Gilbert sequencing)으로 탄생하였다. 이는 특정한 염기에서 DNA를 절단하는 화학 물질의 결합을 통하여 긴 DNA의 마디로 나뉜 서열을 결정하는 DNA 서열 분석법으로 1977년 ‘DNA 시퀀싱을 위한 새로운 방법’(A new method for sequencing DNA)이라는 논문으로 발표되었다.
이와 같은 시기에 ‘맥삼-길버트법’ 보다 해로운 화학물질의 사용이 적고 방사능의 수치를 낮춘 실용성이 높은 ‘시퀀싱’(sequencing)이 탄생한다. 바로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생화학자인 ‘프레더릭 생어’(Fredrick Sanger. 1918~2013)의 ‘사슬 종료법’(Chain-termination methods)으로 불리는 ‘생어의 염기서열 분석법’이다. 그동안 오랫동안 사용되어온 이와 같은 ‘생어의 분석법’은 다양한 ‘시퀀싱’(sequencing)이 개발되어오면서 많은 수의 DNA를 병렬로 처리하는 고속처리와 함께 비용의 효율화를 꾀한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법(Next Generation Sequencing)으로 대체되었다.
이와 같은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법을 활용하여 DNA로부터 전사된 RNA의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이른바 ‘RNA 서열분석’(RNA sequencing)은 곧 다양한 유전자의 융합에 대한 열쇠로 질병과 난치병의 정복이라는 공헌과 함께 상상할 수 없는 미래의 다양한 현실을 가능하게 하는 인류의 과학 문명이 낳을 수 있는 무한한 신비의 세계이다.
바로 이와 같은 차세대 스퀀싱(Next Sequencing)연구에 봉선화(鳳仙花)가 그 대상이라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필자는 이 분야에 전문성이 없는 입장에서 많은 이야기를 헤아렸지만,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학자에 의하여 더욱더 명확한 설명이 이루어지도록 그 공간을 비워두려 한다.
![]() ▲ 봉선화의 계통 분류를 통한 분자 및 형태학적 분류 분석표 (좌-봉선화종) (우-꽃가루 형태) © 브레이크뉴스 |
이와 같은 동양의 봉선화(Impatiens balsamina)가 유럽에 처음 소개된 것은 16세기 초 무렵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1575년 출판한 백과사전 ‘식물의 역사’(Generall Historie)로 잘 알려진 영국의 식물학자 ‘존 제라드’(John Gerard, 1545~1612)가 1596년 자신의 정원에 재배한 ‘봉선화’(Impatiens balsamina)는 1542년경 유럽에 처음 소개되었다고 한다.
또한, 봉선화가 미국에 전해진 것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영국 식물학자 ‘필립 밀러’(Philip Miller. 1691~1871)에 의하여 인도의 봉선화가 1760년 보스턴에 최초로 꽃피웠다. 이는 ‘필립 밀러’가 서인도제도 바하마 섬에 재배되던 양질의 면화 ‘해도면’(sea island cotton) 종을 개량하여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의 조지아주 연안에 재배하게 되면서 미국에 면화농장이 생겨난 역사와 맞닿은 이야기다.
이처럼 봉선화는 세계를 휘돌아 면화농장에서 삶을 바친 아프리카 흑인 노예의 핏빛 눈물로 아메리카에서도 피어났던 것이다.
필자가 이와 같은 봉선화 꽃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살핀 주요한 이유는 봉선화 꽃물을 손톱에 물들인 풍습이 우리나라에서 생겨난 배경이다. 앞 편의 칼럼에서 설명하였듯이 이에 대한 역사적인 문헌은 중국의 분명하지 않은 기록에 비하여 우리의 기록은 구체적이며 분명하다. 나아가 이웃 나라 일본은 에도시대 이후에 봉선화 꽃물을 손톱에 물들이는 풍습이 생겨났지만, 오키나와를 근거지로 역사를 이어온 유구국(琉球國)은 우리나라와 긴밀한 역사를 가진 나라로 오래전부터 이와 같은 풍습이 존재한 사실이다.
이와 같은 봉선화 꽃물을 손톱에 물들이는 풍습을 큰 맥락으로 살피면 오늘날의 매니큐어(manicure)와 네일 폴리시(nail polish)와 같다. 이와 같은 화장술의 한 분야로 손톱에 치장하고 장식하였던 역사는 인류의 오랜 역사와 동행하여왔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땅속에서부터 줄기가 갈라져 나는 즉 떨기나무과인 열대성 관목 ‘로소니아 이너미스’(Lawsonia inermis)의 잎을 가루로 말린 염료 헤나(henna)를 사용하여 머리를 물들이고 손과 발에 다양한 치장을 하였다. 이러한 식물이 헤나(henna)로 인도에 전해지면서 인도인들의 몸에 그림을 그리고 치장을 하는 풍습이 생겨났다. 당시 고대 바빌로니아 문명 시대에 황금으로 손톱을 칠하였던 풍습 또한 오늘날의 매니큐어와 같은 의미이다.
이는 고대 이집트 제18왕조 아케나톤 왕(Akhenaton. BC. ?~BC. 1335)의 부인 ‘네페르티티 여왕’(Nefertiti. BC. 1370~BC. 1330)과 고대 이집트 프롤레마이오스 왕조 최후의 여왕인 ‘클레오 파트라 7세 여왕’(Cleopatra VII. BC. 69~BC. 30)의 손톱에서 빛났다. 여러 유물과 기록으로 살펴보면 염료 헤나(henna)를 사용하여 ‘네페르티티 여왕’은 루비의 빛깔로 ‘클레오 파트라 7세 여왕’은 붉은빛으로 무한한 영광을 과시하였다.
이와 같은 서양의 손톱 화장 매니큐어(manicure) 역사는 그리스와 로마 시대를 거쳐 아랍문화로 이어졌으며 중세 유럽에는 한층 발전된 염료의 치장과 함께 보석을 붙이는 등의 손톱 자체를 예술화하는 네일아트가 생겨났다.
이와 같은 서양의 손톱 화장 매니큐어(manicure)의 역사가 있다면 동양의 손톱 치장은 무엇이었을까? 중국의 손톱 치장에 대한 역사는 남다르다. 이는 BC 200년경의 한(漢)나라 유물에서 살펴지듯이 손톱 자체를 감싸는 금으로 제작된 손톱이거나 손가락과 같은 이른바 네일아트 적인 치장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어 원나라 시대에 봉선화로 손톱을 물들인 시의 기록이 존재하며 명나라 시대에 이르러 헤나(henna)와 같은 식물성 염료를 활용하여 손톱을 염색하는 치장이 유행하였다. 이어 당시 손톱의 염색은 남녀가 신분의 표시로도 활용하였으며 오랜 기간 이어져 왔다. 그러나 엄밀하게 중국의 역사적인 손톱 치장의 특성은 손톱의 염색이 아닌 금으로 제작된 공예품으로 손톱 자체를 감싸는 치장이거나 인조 손가락과 같은 네일아트 적인 역사에 있다.
![]() ▲ (좌로부터) 길림성 한 왕조 무덤 유물 손톱 장식품 /중국 유물 박쥐무늬 손가락(네일 커버)/ 중국 자금성 박물관 동상 여인의 네일아트/ © 브레이크뉴스 |
이렇듯 인류 역사에서 손톱에 대한 치장은 왕족과 귀족에 이르는 상류계층의 전유물이었지만, 소담한 봉선화 꽃잎으로 손톱을 물들인 민간의 자연발생적인 풍습은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 시작되어 오늘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집 마당에서부터 산야에 이르기까지 지천으로 피어나는 꽃잎을 손톱에 감싸고 주인집 딸과 하녀가 신분과 무관하게 함께 손톱을 물들인 아름다운 풍습은 전 세계의 역사에서 우리나라 이외에는 찾아볼 수 없다. 이에 우리는 이와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바탕으로 민족의 슬기로운 지혜의 감성과 미감을 추슬러 세계에 널리 알리고 우리 스스로 지켜가는 축제로 발전시켜갈 필요가 있다,
이는 옛날 우리 조상들이 손톱에 봉선화 꽃물을 들이던 때에 가슴에 담았던 기원과 함께 손톱의 봉선화 꽃물이 빠져나갈 즈음이면 그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세계에서 유일한 흥미로운 관광 상품의 개발과 함께 봉선화 꽃물 키트의 개발과 같은 감성적인 콘텐츠가 무궁무진하다.
이와 같은 봉선화(鳳仙花)는 우리나라의 민족적인 감성을 담은 대표적인 꽃이다. 이에 일제 강점기의 핍박 속에서 봉선화 꽃잎을 물들여온 역사의 순결한 소녀의 마음으로 부른 노래가 있었다. 바로 잃어버린 나라의 슬픔을 담은 가곡 봉선화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노래는 민족의 노래로 남았으나 노래를 작곡하고 불렀던 작곡가와 성악가는 시대의 질곡을 거부하지 못한 친일 행적으로 인한 반민족 행위자로 역사에 기록되는 아픔을 낳고 말았다. 이어서 이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도록 한다. 다음 칼럼은 (234) ‘봉선화 꽃물을 삼킨 민족의 애환 ’입니다. *필자: 이일영, 시인. 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artwww@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