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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후손 조범제 화가의 예술혼 “지지 않는 꽃”

[전시평]조범제 화가 개인전을 다녀와서

이일영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9/10/31 [22:15]

▲ 조범제 作 “지지 않는 꽃”     © 이일영 칼럼니스트



국내 최초의 인터넷 매체 브레이크뉴스 문일석 대표와 세상 그릇된 것들에 대한 깊은 쓴소리를 주저하지 않는 불교신문 편집국장과 종단 재무국장을 역임하신 원로 법철 스님을 모시고 인사동 소재 조형갤러리에서 30일 오픈하여 11월 5일까지 열리는 조범제 화가의 개인전을 다녀왔다. 

 

어려서부터 뛰어난 감성과 재능을 드러내어 다섯 살 나이에 붓을 들어 60년 동안 천착하여온 조범제 화가의 27번째 개인전에 펼쳐진 작품을 살펴보면서 많은 생각을 가슴에서 매만져야 했다. 조범제 화가는 우리 민족사에서 남과 북을 막론하고 민족적인 애국 충정을 분명하게 인정받는 독립운동가 조소앙(趙素昻. 1887-1958) 선생과 형제인 독립운동가 조시원(趙時元. 1904-1982) 선생의 아들이다.   

 

이와 같은 조범제 화가의 작품은 작가의 내면적 의식과의 연관성이 남다르다. 이를 깊게 헤아리려면 작가의 선친과 큰아버지에 대한 민족사적 의미를 반드시 짚고 가야 한다. 이는 필자가 많은 시간 동안 조범제 화가의 작품과 작가를 지켜보면서 깊게 느낀 부분이다.

 

필자는 오래전 작가의 깊은 의식이 담긴 작품 전시를 역사적 이해가 얽힌 일본에서 열고 싶은 생각을 품고 있었다. 이에 작가의 작품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얻기 위하여 해외아트페어 참가와 함께 국내 전시를 추진하였으나 큰 비용문제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에 일본 현지의 뜻있는 지인의 협력을 받아 일본 전시를 추진하려 몇 번의 일본행을 통하여 노력하였다. 그러나 역사상 유례없는 양국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적정한 시기를 기다리다가 오늘날 최악의 한일 관계를 맞아 끝없이 유보되고 말았다.    

 

이후 작가 스스로 국내에서 펼친 작가의 작품을 살펴본 필자는 그동안 작가에게서 들어왔던 많은 이야기들이 가슴에서 웅얼거렸다. 작가의 유년과 성장기의 기억을 관통하는 이야기는 마치 대하드라마와 같은 민족사를 흘러내린 숨은 이야기가 많았다.

 

작가는 부친인 독립운동가 조시원 선생의 사랑을 유난히 깊게 받고 자라면서 일상처럼 전해 들은 큰아버지 조소앙 선생과 부친의 일제 강점기 시대에 벌였던 치열한 독립운동 이야기가 작가의 가슴에 흐드러진 꽃잎처럼 쌓여있었다. 이어 남북분단의 육이오전쟁이 일어나면서 큰아버지 조소앙 선생이 거처하였던 성북동에서 납북당한 긴박한 이야기는 모진 바람에 떨어지는 꽃잎처럼 민족의 아픔으로 물들어 갔다.

 

이어 작가의 부친 조시원 선생에 대한 이야기는 격동하는 민족사의 시대 상황을 그림처럼 그려갔다. 작가의 부친은 형 조소앙 선생과 함께 중국에서 한국독립당 중앙상임위원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원 그리고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법무처장과 같은 중책을 맡아 활동하였다. 이어 광복 이후 귀국하여 제2대 국회의원과 한중문화협회 회장 그리고 광복회 회장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 조범제 作 “지지 않는 꽃”     © 이일영 칼럼니스트



이와 같은 애국지사의 후손으로 성장하여오면서 남다른 의식을 매만져온 작가의 내면에는 특성적인 미감이 존재한다. 먼저 작가는 빛깔에 대한 생각과 해석에서 깊은 사유를 담고 있다. 필자는 이와 같은 작가의 작품에 담긴 독특한 색채감에 관하여 물은 적이 있었다. 이에 작가는 “제가 그려가는 작품의 빛깔은 일차적인 시각의 색채에 살아가는 시대의 감성을 담아내는 차이가 있다”는 설명을 쏟아내었다. 즉 인류사의 모든 그림은 시대의 감성을 담아낸 빛깔의 차이가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어 작가는 특정한 작품 소재의 형태에 대한 원형은 시대 구분이 없는 불변이지만, 빛깔은 어떤 소재를 그려내는 관념과 사실의 추구에서 다르게 나타나며 이는 시대에 담긴 감성을 인식하는 차이에서 작가 내면의 빛깔이 다르게 드러나는 차이라는 사실을 설명하였다.   

 

이와 같은 설명을 깨물며 작가의 작품을 더욱더 깊이 있게 헤아리기 위하여 작가의 내면적 바탕으로 살펴진 작가의 선친과 큰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작가의 큰아버지 조소앙 선생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나 성균관에서 수학한 이후 황실 유학생으로 일본 동경 제1 중학에 입학한 이후 메이지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였다. 당시 1909년 동경에 조선인 단체를 통합한 대한흥학회를 창립한 이후 1910년 치욕적인 한일병탄(韓日倂呑)을 맞게 되자 성토문을 발표하기 직전 거사가 발각되어 혹독한 고초를 겪었다. 이후 1911년 조선유학생친목회 회장으로 활동하다가 1912년 대학 졸업과 함께 귀국하여 여러 학교에서 민족 교육에 주력하였으나 일제의 서슬 퍼런 감시망이 좁혀오자 1913년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이후 중국 상해에서 신규식, 박은식, 신채호, 박용만, 윤세복, 신석우, 한진교에 이르는 독립지사와 단결하여 중국의 혁명가 천궈푸(陳果夫. 1892-1951) 등과 함께 항일단체 대동당(大同黨)을 조직하여 일제 침략에 저항하였다.

 

당시 항일단체 대동당이 상해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민족대회의 소집을 제창한 “대동단결선언문”에는 일제의 강압적인 침략으로 체결된 한일합병조약에 의하여 포기된 주권은 불법이며 이에 대한제국의 주권은 조선의 민족사적 전통에 의하여 국민에게 양여된 것이라는 주권불멸론(主權不滅論)을 주창하였다. 이에 일제가 침략으로 점거한 한반도의 주권은 재외에 있는 동포가 이를 행사해야 한다는 국민주권설을 바탕으로 임시정부 수립의 기초를 일구었다.

 

조소앙 선생은 이와 같은 논지를 바탕으로 1917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개최된 국제사회당대회에 한반도 의제로 제출하여 국제사회에 주목을 받았다. 이후 1918년 무오년에 최초로 한국의 독립을 선언한 ‘무오독립선언서’를 기초하였다. 이와 같은 바탕에서 1919년 삼일절 만세 운동에서 독립운동선언서가 탄생하였으며 이후 4월 설립된 상해임시정부 헌법의 바탕이 되었다.   

 

이와 같은 근원은 조소앙 선생이 정립하여 주창한 민족주의 정치사상 삼균주의(三均主義)가 바탕이었다. 이와 같은 삼균주의란 정치와 경제 그리고 교육의 균등한 혜택을 통하여 국민 개인과 개인의 균등이 이루어짐을 주창하였다. 이어 외세에 간섭이 없는 민족자결을 통하여 민족과 민족의 균등이 이루어지며, 자본제국주의의 식민정책과 침략행위의 금지에서 국가와 국가 간에 완전한 균등이 성립된다는 선구적인 사상이었다. 
 

▲ 조범제 作 “지지 않는 꽃”     © 이일영 칼럼니스트


 

이와 같은 조소앙 선생의 선구적인 정치사상은 임시정부의 기초정당으로 1930년 설립된 한국독립당의 정당 강령으로 탄생하였으며 1941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삼균주의 사상을 국시(國是)로 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국강령’이 공표되면서 임시정부의 기본이념과 정책이 되었다.

 

이후 광복을 맞아 임시정부 2진으로 귀국한 조소앙 선생은 1946년 비상국민회의를 조직하면서 김구 주석과 더불어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중시하였다. 이어 김구, 김규식 선생과 1948년 4월 평양으로 가 남북협상을 하였다. 이후 사회당을 결성하여 1950년 총선에 서울 성북구에 출마하여 전국 최다득표자로 제2대 국회에 진출하였지만, 6·25전쟁으로 납북되고 말았다. 이후 북한에서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최고위원을 지냈으나 투옥된 사실이 알려졌으며 1958년 9월 10일 사망하였다. 그러나 북한도 조소앙 선생의 민족적인 의식과 애국 운동을 부정할 수 없어 평양에 소재한 선생의 묘소를 애국열사릉으로 이장하였다.

 

우리나라는 이와 같은 조소앙 선생의 민족정신을 기리기 위한 운동이 전개되어 1975년 삼균학회가 창립되면서 1984년 경기도 양주시 남면 황방리 선영에 묘소가 지어졌으며 198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이어 2015년 경기도 양주시의 지원으로 조소앙기념관이 건립되었다.

 

이와 같은 민족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후손 조범제 화가는 선인들이 매만진 민족정신을 어려서부터 깊숙하게 삼켜오며 성장한 탓으로 그 누구보다 투철한 민족의식과 승화된 감성을 가지고 있다. 조범제 화가는 실로 곤궁한 생활 속에서도 이와 같은 선대의 정신을 목숨보다 소중하게 인식하여 화가라는 자신의 존재를 지켜온 화가이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가의 작품에 담긴 예술성을 헤아리게 되면 크게 빛깔로 추구한 시대의 감성과 작품에 표출된 역사라는 시간성으로 매만진 흔적의 질감을 만나게 된다,

 

▲ 조범제 作 “지지 않는 꽃”     © 이일영 칼럼니스트

 

조범제 화가가 최근 수년간 열정을 쏟아온 작품세계의 주제는 꽃이다. 이와 같은 작가의 작품 꽃은 영원히 지지 않는 꽃을 추구한 의식에서 빚어진 작품이다. 꽃이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시대마다 미술 작품에 등장하는 가장 주요한 소재이다. 이와 같은 꽃을 그려간 화가의 내면에는 꽃이 가지는 심미적인 아름다움과 생명의 예찬에서부터 피고 지는 자연의 섭리를 품은 의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와 같은 수천 년을 흘러온 꽃을 그려낸 역사 속에서 필자는 조범제 화가의 승화된 의식이 빚어낸 “지지 않는 꽃”에 대한 의식을 헤아리면서 작가의 작품에 대하여 많은 것을 세세하게 살펴왔다.               
  
이에 조범제 화가의 승화된 작품 “지지 않는 꽃”에 대한 재료와 기법에서 작가의 깊은 의식에 담긴 근원을 살피게 되었다. 이와 같은 작가의 작품에 사용되는 주요한 재료는 고운 입자의 돌가루와 쇳가루로 이루어진 모델링 컴파운드(Modeling Compound)이다. 이는 캔버스 위에 질감의 입체적인 효과를 위하여 사용되는 재료로 극히 섬세한 나이프 작업으로 작품의 입체적인 형태가 빚어진다. 이는 화면을 안료로 발라 입체감을 표현하는 보편적인 임패스토(impasto)기법과는 그 차원이 다르다. 이어 몇 가지 색을 덧칠하면서 깊은 울림의 빛깔을 건져 올리는 마티블(Matible)기법을 역으로 해체한 작가의 특성적인 방식의 색채감으로 작품이 완성된다. 

 

▲ 조범제 화가(오른쪽)와 브레이크뉴스 문일석 대표     © 이일영 칼럼니스트


이와 같은 특성으로 작가의 작품은 감각적인 색채의 현란함이거나 몽환적인 빛깔로 시선을 끄는 포장된 색채의 감성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있다. 이는 시대의 애환을 깊은 울림으로 승화시킨 작가의 의식이며 바로 “지지 않는 꽃” 영원한 꽃을 추구한 고독한 작업의 산물이다.


오래전부터 이와 같은 깊숙한 의식의 언저리를 헤아려 세계 속에 당당한 평가를 이끌고 싶었으나 물질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현실의 벽에 막혀 뜻을 이루지 못하여 인사동 어느 상업화랑에서 열린 작가의 전시 작품을 보면서 더욱더 대형화된 작품이 전문적인 기획의 디스플레이를 통하여 보여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밀려와 자책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격동하는 굴절의 역사 속에서 굽힐 수 없는 민족의 정신을 거머쥔 독립지사의 가난한 후손이 그려낸 예술혼 “지지 않는 꽃”이 품은 깊은 빛깔의 외침이 많은 사람의 눈에 보이고 가슴에 들려오는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다. 필자: 이일영(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 시인, artww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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