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좌) 일본 교토의 사찰 ‘긴카쿠지’(銀閣寺) (우) 일본 교토 ‘철학의 길’(哲学の道) © 브레이크뉴스 |
오랜 자료를 찾다가 일본의 화가 ‘도쿠리키 토미키치로’(徳力 富吉郎. 1902-2000)의 소품을 찾았다. 30년 전 일본 교토의 골동품 점을 겸한 어느 화랑에 결려있던 작품이었다. 작품은 일본 교토의 사찰 ‘긴카쿠지’(銀閣寺)를 수묵 담채로 그린 것이다. 이와 같은 일본의 화가 ‘도쿠리키 토미키치로’는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도쿠리키 토미키치로’는 일본 교토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사찰인 ‘니시혼간지’(西本願寺)의 불화 제작 공방인 ‘니시혼간지 회소’(西本願寺 絵所)를 맡아온 오랜 화원 가문의 12대 후손이다. 그는 교토 시립 미술 공예학교를 졸업하고 일본화의 선구적인 현대화를 지향한 ‘츠치다 바쿠센’(土田 麦僊. 1887-1936)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그의 스승 ‘츠치다 바쿠센’은 일본 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상을 가진 화가이다. 그는 일본화를 전공하였지만, 1921년 유럽을 순회하며 프랑스 인상파 화가 르누아르와 후기 인상파 고갱과 같은 화가를 깊숙하게 연구하여 작품의 구성(Composition)에서 조형의 기하학적 공간성을 추구하였으며 화면의 질감에서 동양화와 서양화의 접목을 시도한 선구적인 화가였다.
당시 유럽 순회 중에 그가 수집한 세잔과 르누아르, 모네와 같은 여러 거장의 작품이 바탕이 되어 일본 최초의 사설 미술관이 설립된 것이다. 바로 오카야마 현에 있는 오하라 미술관(大原美術館)이다. 이는 격동하는 시대에 섬유 산업으로 거부가 되었던 ‘오하라 마구사부로’(大原孫三郞, 1880-1943)가 친구인 서양화가 ‘가코지마 토라지로’(児島虎次郎. 1881-1929)를 평생 동안 후원하였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당시 재벌 ‘오하라 마구사부로’가 친구인 서양화가 ‘가코지마 토라지로’를 후원하면서 세계 미술의 중심이었던 유럽 순회 여행을 후원하였다. 이때 뛰어난 감성과 안목을 가졌던 일본 화가 ‘츠치다 바쿠센’이 동행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유럽 순회 여행에서 유럽의 당시 주요한 화가의 작품에 대한 컬렉션을 주장하였던 인물이 바로 ‘츠치다 바쿠센’이었다.
당시 이와 같은 컬렉션 과정에서 ‘츠치다 바쿠센’이 개인적으로 수집한 대표적인 작품이 세잔의 작품 ‘목욕’이었다. 이 작품은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오하라 미술관에 소장되었다. 당시 어려운 시기에 많은 작품의 컬렉션을 주선한 ‘츠치다 바쿠센’의 문화적 공적을 인정하여 1927년 프랑스 정부가 최고의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훈하였다.
이와 같은 선구적인 혜안을 가졌던 ‘츠치다 바쿠센’에게 사사한 화가 ‘도쿠리키 토미키치로’는 불교 판화와 현대 판화예술에 열정을 바쳐 교토판화협회를 창립하였으며 동인지 판(版)과 판화 전문잡지 ‘대중판화’를 창간하였다. 이어 2차 대전이 종전되면서 판화 제작소를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주력한 작가이다.
이와 같은 화가 ‘도쿠리키 토미키치로’가 그린 작품 속의 사찰 ‘긴카쿠지’(銀閣寺)는 많은 이야기를 가진 사찰이다. 일본 무로마치 시대의 제8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1436-1490)가 아들 ‘요시히사 아시카가’(1465-1489)에게 1473년 쇼군을 물려주고 당시 작은 사찰이 있던 이곳에 1482년 별장을 짓기 시작하여 다음 해 1483년 거처를 옮겨오면서 관음상을 모신 불전 긴카쿠(銀閣)와 불당 도구도(東求堂)를 건축하였다. 이때 선대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1358~1408)의 아호 로쿠온(鹿苑)별장으로 지어 세웠던 사찰 로쿠온지(鹿苑寺)의 금으로 입힌 사리탑 킨카쿠(金閣)를 받들어 은으로 입힌 불전 긴카쿠(銀閣)를 구상하였으나 당시 피폐한 재정난으로 은으로 입히지는 못하였다.
이후 1490년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명복을 기원하기 위하여 사찰로 바꾸면서 그가 거처하였던 동쪽의 주산에 소재한 원호 지쇼엔(慈照院)을 받들어 ‘히가시야마지쇼지(東山慈照寺)로 명명하였다. 이후 지쇼지(慈照寺)로 바꾸어 부르다가 에도시대에 불전 긴카쿠(銀閣)와 불당 도구도(東求堂)를 아우르는 사찰의 이름 긴카쿠지(銀閣寺)로 불린 것이다.
이와 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사찰 긴카쿠지(銀閣寺)의 명칭을 묻는 문제가 1977년 홋카이도 교육위원회 출제로 홋카이도 공립 고등학교 입학시험에 실제로 등장하였다. 당시 지문에서 역사의 명칭이라는 답을 요구하여 통용되는 ‘긴카쿠지’(銀閣寺)를 오답으로 처리하였다. 바로 ‘지쇼지’(慈照寺)를 정답으로 하는 이른바 ‘긴카쿠지’(銀閣寺)시험문제 사건은 당시 일본 열도를 뜨겁게 달구었다. 이후에도 2002년 요코하마 중학교 입학시험에서 동일한 해답을 요구하는 문제가 출제되었음을 짚고 간다.
여기서 분명하게 짚고 가야 하는 내용이 있다. 이처럼 역사의 원형을 중시하는 일본이 역사의 진실을 왜곡하여 식민지 침략 전쟁에 대한 사죄를 부정하면서 독도의 자국 영토라는 터무니없는 내용을 교과서에 실어 교육하는 이중성을 가진 문제에 대해서이다.
이와 같은 많은 이야기를 가진 사찰 ‘긴카쿠지’는 불당 도구도(東求堂)를 국보로 지정하였으며 ‘긴카쿠지’ 사찰 전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여 자랑하고 있다. 또한, 사찰의 입구에는 ‘철학의 길’(哲学の道)이라는 유명한 산책로가 있다. 이와 같은 산책로는 당시 교토 대학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던 많은 문인들이 이 길을 산책하며 명상하였던 사실에서 유래된 길이다.
바로 교토대학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교토 학파를 창출하였으며 불교의 선에 담긴 사유의 정신을 바탕으로 탄생시킨 ‘니시다 철학’의 창시자 ‘니시다 기타로’(西田 幾多郎. 1870-1945) 이거나 ‘다나베 하지메’(田辺元. 1882-1962)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다나베 하지메’는 수학을 전공하여 철학을 완성시킨 학자로 1922년 독일 유학을 통하여 칸트 철학의 목적론이 품은 변증법적 이론에 깊은 연구가 있었다. 특히 독일의 실존 철학자 ‘하이데거’와 깊은 교유를 통하여 '하이데거'가 1927년에 펴낸 ‘존재와 시간’이 세계적으로 평가받기 이전에 일본에 최초로 소개하였던 인물이다.
이와 같은 철학의 길에 벚꽃나무 길은 너무나 유명하다. 이와 같은 벚꽃길이 조성된 배경에도 화가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는 '철학의 길' 인근에 존재하고 있는 ‘하쿠사손소’(白沙村荘)라는 일본화의 대가 ‘하시모토 간세쓰’(橋本 関雪. 1883-1945)의 기념관 이야기로부터 존재한다, 이는 화가가 크게 성공하여 1914년 이곳에 별장을 겸한 저택을 짓게 되면서 1921년 부인과 상의하여 자신의 영예를 안겨준 교토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철학의 길에 수많은 벚꽃 나무 묘목을 심었던 것이다.
이에 ‘간세쓰 사쿠라 길’(関雪桜 道)로도 부르는 사색과 아름다움이 어우러진 ‘철학의 길’을 지나 역사의 이름으로 서있는 ‘긴카쿠지’(銀閣寺)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는 역사의 원형적인 이름 ‘지쇼지’(慈照寺)를 증 고등학생들의 입학 문제로 제시하면서까지 역사를 각인시키면서 정작 역사의 진실은 외면하는 일본의 이중성이 이와 같은 아름다움에 숨어 있음을 우리는 깊게 헤아려야 하는 까닭이다. 필자: 이일영(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 시인, artwww@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