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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혼을 위하여(184)-일본 열도의 꿈의 정원 ‘Art Biotop’ 이야기

이일영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9/12/26 [11:59]

▲ ‘꿈의 정원 ‘아트 비오톱’(Art Biotop)     © 브레이크뉴스

 


신세계 미술관 지명문 전 관장에게 일본에서 요청한 전시 자료를 디밀었다. 그의 눈빛이 빛났다. ‘관장님 '아트 비오톱' 여러 프로젝트 유명하자나요!’, 처음으로 '아트 비오톱‘(Art Biotop)의 실체를 명확하게 알고있는 이를 만나 외롭게 품고 있었던 이야기를 쏟아내었다. 아무리 많은 것을 헤아려도 알아주는 이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아니 손에 쥐어주어도 알아보지 못하면 더욱더 무용지물이다. 이에 언제나 많이 듣는 편이지만, 요즘 지 관장을 만나면 내가 많이 떠든다. 이는 아는 만큼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것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지난 4월 광주일보 문화부 기자를 역임한 35년 지인 이종태 국장과 동행하여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우에노 공원 모리미술관 분관에서 열리는 일본작가의 전시에 약속된 일정이었다. 오픈식을 마치자마자 일본 도쿄에서 사업을 하는 후배 이명식 대표가 약속된 일정이 있다며 데려간 곳은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과 레스토랑으로 변해있는 호텔 구관 곁 저택이었다. 이와 같은 프린스 호텔은 많은 이야기가 있는 곳으로 대한제국 최후의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의 일본 저택이 1954년 대한민국 정부가 구황실재산처리법을 제정하여 세이부 그룹 창업자 ‘츠츠미 야스지로’(堤康次郎)에게 매각한 것이다. 다음 해 현재 레스토랑으로 변해있는 자리에 1955년 그랜드 프린스 호텔 구관이 들어서고 이후 오늘날 신관이 세워진 것이다.

 

약속된 만찬장에 도착하여 ‘키타야마 히토미’(北山 ひとみ) 여회장님을 비롯한 일본 빈 뮤지움 관장님과 유럽 아트 컨설팅사를 운영하는 쿠보 사치코 상 그리고 오스트리아 미술 에이전시 파울 어셈바움씨 그리고 오이타현 미술관 고문 류 리미 상, 일본의 저명한 디자이너 기미 상과 히토미 회장의 따님 미유 상 그리고 일본 주요 미술관 큐레이터 등과 인사를 나누었다. 익숙하지 않지만, 분명하게 한국어로 말하는 ‘키타야마 히토미’회장의 명함을 다시 살폈다. 이어 니키구락부(二期 俱樂部) 대표와 현 아트 비오톱(Art Biotop)대표가 기재된 자료를 전달받고 많은 궁금증이 있었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한 자리인지라 말을 아꼈다.

 

1차 만찬을 마치고 안내하는 2차 미팅장소로 옮겨갔다. 가는 길목에 프린스 호텔 구관 자리의 아름다운 레스토랑 앞을 지나면서 히토미 회장에게 ‘저곳이 황태자비 이방자여사의 저택이었는데 이젠 레스토랑이네요’ 했더니 정색을 한다. ‘아! 아시네요! 제가 매입하려 몇 번 생각했었어요!’ ‘아! 그러셨군요!’ 대답하면서도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그렇게 옮겨간 곳은 유럽식 비어카페였다. 2차 미팅을 마치고 난후 히토미 회장은 한국에서 온 분들을 위하여 한국식당으로 자리를 옮겨가자며 3차 미팅을 제안하여 옮겨간 한국식당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어우러졌다. 당시 히토미 회장은 자신이 한국인 3세라는 사실을 알렸다. 여러 궁금한 이야기가 있었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당시 히토미 회장이 요청한 전시가 있었다. 일본의 전후 시대를 관통한 사진작가 ‘하야시 타다히코’(はやし ただひこ.1918-1990)의 기본적인 자료를 건네면서 동시대를 대표하는 한국의 사진작가와 함께 한국에서 전시를 주선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미 많은 조사가 있었는지 한국의 주요한 사진작가를 언급하였다. 자세히 알아보겠다는 이야기를 남기고 돌아왔다. 한국에 돌아와 10여일이 지났을 무렵 어느 교수에서부터 몇 차례의 전화가 왔다. 일본 히토미 회장님의 연락을 받았다면서 전시가 가능하겠느냐는 취지였다. 차분하게 검토해볼 내용이라는 대답을 남긴 이후 한일간에 많은 문제가 생겨나면서 더 이상 진전된 내용을 언급하기가 어려웠다.

 

이후 차분하게 자료를 살펴보면서 히토미 회장이 그 유명한 전 니키구락부(二期 俱樂部) 대표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15년 전 몇 번을 찾아간 그곳의 대표였다니? 아득한 기억 속의 15년 전 일본의 지인이 꼭 가볼 곳이 있다며 데려간 곳이 있었다. 일본 도쿄에서 한 시간 남짓의 도치기현(栃木県) 북동쪽에 소재한 천혜의 풍광을 가진 온천 지대 나스마치(那須町)였다. 이곳은 유럽의 낙농산업을 방불케 하는 유제품 산지로도 잘 알려진 곳이다. 일반적으로 이곳 나스마치의 온천은 잘 알지만, 특히 일본의 특산 아이스크림 하면 홋카이도 우유 아이스크림으로 많이 기억하지만, 가장 양질의 아이스크림이 나스마치아이스크림 이라는 사실과 중동과 세계적 부호들이 바로 나스마치 우유아이스크림을 선호하는 사실은 잘 모른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이와 같은 아이스크림이 최초로 생겨난 역사와 함께 아이스크림에 담긴 이야기다. 인류 최초의 아이스크림은 기원전 500년경 이란고원의 고대 왕국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제국시대에 최초로 생겨났다. 당시 오늘날 이탈리아의 매우 얇은 면발의 국수(파스타)와 같은 ‘베르미첼리’(Vermicelli)에 향료와 얼음을 넣어 만들었던 아이스크림 ‘바스타니 손나티’(Bastani sonnati)가 최초의 아이스크림이다. 오늘날 이란의 유명한 전통 아이스크림 ‘바스타니’이야기이다. 이와 같은 종주국 중동의 부호들이 나스마치 우유아이스크림을 선호하는 사실에서 우리는 일본인 특성의 장인 정신과 상업 술을 헤아려야 한다.

 

덧붙여 이와 같은 아이스크림이 프랑스 혁명사에 소중한 이야기로 남은 사실이다. 바로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기까지 당시 주요한 혁명 세력들이 아이스크림을 팔았던 유명 카페 ‘프로코프’(Procope)를 아지트로 삼아 한 여름 흔들리지 않는 정신을 지키기 위하여 차가운 아이스크림으로 달래며 단합하였던 일화는 역사적 기록이다.

 

이와 같은 나스마치에는 천혜의 지형 나스 고원을 따라 양질의 온천이 존재하여 다양한 테마 파크와 뮤지엄 등이 세워지면서 일본의 고급 휴양지가 되어 추락하는 일본의 부동산 경기와 달리 부동산 붐이 일었던 곳이다. 이곳 수려한 풍광을 품은 20년 전통의 리조트 호텔 에피나르 나스(エピナール那須)를 기억하는 사람이면 일본을 많이 아는 사람이다. 프랑스어로 시금치를 뜻하는 에피나르(epinard)에 걸맞게 신선한 야채가 넘쳐나는 호텔의 조식은 일품이다. 특히 신선한 달걀로 만든 계란밥 ‘타마고카케고항’(卵掛け御飯)은 두뇌발달에 좋다는 입소문에 조식 뷔페 타임에는 더 먹이려는 부모와 고개를 흔드는 아이의 모습이 심심찮게 보이는 국경이 없는 부모의 마음을 살피게 한다.

 

일본에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동심을 자극하는 테마파크 ‘과자의 성’ 이른바 오카시노 시로(お菓子の城)가 많다. 돗토리의 요나고시로 들어서는 입구 벌판에 있는 ‘과자의 성’이거나 나스마치의 ‘과자의 성’은 대표적인 곳이다. 특히 나스마치 ‘과자의 성’은 계절마다 특별한 이벤트들이 다채롭다. 딸기 철이면 딸기의 숲 ‘이치고노 모리’(イチゴの森)에서 도치기 현의 특산딸기 ‘토치오토메’(とちおとめ)를 일정 시간 동안 마음대로 따서 가져갈 수도 있다.

 

바로 이곳 천혜의 자연 요건을 가진 나스마치 요코사와(横沢) 지역의 두개의 강이 만나는 자리에 30여 년 전에 세워진 니키구락부(二期 俱樂部)라는 고급 리조트 호텔이 있었다. 당시 50여개의 작은 객실에도 불구하고 4만여 평의 방대한 부지의 자연환경 속에 야외 노천탕과 다양한 자연 시설들이 어우러져 세계 100대 유명 호텔에 선정되어 세계 명사들이 찾았던 곳이다. 언제나 예약이 차있던 곳으로 정작 나는 그곳은 투숙하지 못하고 리조트 호텔 에피나르나스에 투숙하였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가진 장본인을 직접 만나게 되었으니 실로 감회가 컷다.

 

이와 같은 일본 리조트 산업의 선구적인 터전 니키구락부가 까닭모를 이유로 도야마시(富山市)에 소재한 호라이즌 호텔로 소유권이 넘어가 2017년 영업이 종료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전부였다. 이에 왜? 그와 같은 일이 벌어졌는지 궁금하여 여러 자료를 살펴보니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후미코 회장의 남편이 일본의 전설적인 교육학원과 교재출판 그리고 에듀케이션 프로그램을 처음 세워 일본 증권시장에 상장되었던 ‘영광 세미나’(栄光ゼミナール) 그룹의 설립자 ‘기타야마 마사시’였다. 그는 사이타마 대학 재학 중에 세미나 학원이라는 새로운 교육프로그램을 최초로 도입한 인물이었다. 이와 같은 바탕으로 출판 교재사업에 성공하면서 1980년 영광 세미나 그룹을 설립하여 일본 열도에 셀 수 없는 많은 학원과 자회사를 거느린 재벌로 성장하였다.

 

아마도 필자의 생각에 어떤 심중한 갈등이 생겨나 후미코 여사가 운영하던 나스마치의 니키구락부를 모회사인 '영광 그룹이 매각하면서 오랜 법정 투쟁이 있었으며 결국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후미코 여사가 패소하게 된 배경이라는 심증이 가는 사실을 살피게 되었다. 당시에는 무심코 간과하였지만, 의미심장한 말들이 스쳐갔다.

 

이후 후미코 여사는 30여 년간 열정을 바친 나스마치 요코사와(横沢) 니키구락부(二期 俱樂部) 인근의 대단위 부지에 다시 재기의 칼을 갈았다. 이와 같은 후미코 여사의 꿈을 설계하였던 이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일본의 현대 건축가 이시가미 준야(石上純也. 1974)이다. 그는 하버드대학 객원교수로 2010년 제12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 건축 금사자상을 받았다. 그가 후미코 여사의 꿈의 정원 ‘아트 비오톱’(Art Biotop)을 설계한 것이다. 이와 같은 아트 비오톱은 예술(Art)과 생명체의 자연적인 서식공간을 뜻하는 비오톱’(Biotop)이 합쳐진 말로 환상적인 ‘물의 정원’(水庭)을 구축한 것이다. 이와 함께 세워진 유리 도예 스튜디오는 이미 알려진 명소이다.

 

이어 일본의 대표적인 건설가중 한명인 반 시게루(坂 茂, 1957)가 설계하여 현재 작업 중인 프로젝트는 ‘보태니컬 팜 가든’(botanical farm agarden) 이른바 ‘숲의 정원’(森の庭)이다. 건축가 반 시게루는 프랑스 메츠에 소재한 '퐁피두센터 분관'과 수많은 주요 건축물을 설계한 건축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정작 유명한 것은 그의 정신이다. 그는 종이를 재료로 한 인간의 자연친화적 건축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세계적인 건축가이다. 세계의 아프고 아픈 재난지역과 분쟁지역을 찾아 이와 같은 친화적인 자재로 난민 보호소를 지어 아픈이들의 집이 되었던 그의 정신은 2014년 건축분야의 노벨상 프리츠커상을 수상하였으며 2017년 테레사수녀회가 주는 사회정의상을 일본인 최초로 받았다.

 

이와 같은 프로젝트가 아트 뮤지엄과 갤러리와 함께 완성되면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후미코 여사가 추구한 예술과 생명이 함께 숨쉬는 공간 ‘아트 비오톱’(Art Biotop)은 세계적인 명소로 알려질 것이다. 지 관장이 그동안 품어두었던 모든 자료를 챙겨갔다. 그리고 일본에서 요청한 전시를 추진하기로 하였다. 어려움이 많은 삶을 살아가지만, 단 한명이라도 소통되는 누군가 존재하는 세상은 외롭지 않다.

 

▲ 기타야마 히토미’회장님과     © 브레이크뉴스


일본 후배에게 후미코 여사에게 이와 같은 뜻을 전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후미코 여사가 추구하는 깊은 뜻을 가진 전시를 지관장과 함께 열과 성을 다하여 도울 것이다. 이와 같은 바탕에서 진정한 예술혼을 불태우는 단 한명의 우리 작가를 그곳에 소개 할 수 있다면 이 시대에 서있는 이유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일영(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 시인, artww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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