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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혼을 위하여 (187) - 소리를 품어온 역사

이일영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9/12/30 [10:52]

▲ ‘에두아르드 레옹 스콧’과 1857년 발명한 ‘포노토그라프’(phonautographe)' 출처: google     © 브레이크뉴스

 

 

인류가 세상의 기록을 보존하여 후세에 전하려 하였던 노력은 신성한 지혜이다. 기원전 15,000년 전에 그려진 알타미라 동굴 벽화와 기원전 11,000년 전에 그려진 라스코 동굴벽화는 인류 최초의 회화 기록이다. 이와 함께 소리를 담아 전하려는 꿈과 같은 오랜 노력이 있었다. 오늘날 이와 같은 소리를 전하는 전화와 소리를 녹음하고 재생하는 다양한 문명은 인류사에서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주역이다. 이와 같은 꿈을 이루어낸 역사 속에는 실로 많은 이야기가 녹아있다.

 

이와 같은 인류 최초의 목소리를 녹음한 기록이 처음으로 공개된 것은 2008년 3월 27일 뉴욕타임스가 특종으로 보도한 뉴스였다. 당시 기사 내용은 ‘세계 최초의 음성 녹음 기록이 미국 연구팀에 의해 파리에서 발견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하여 살펴보면 인류 최초의 음성 녹음 기록은 1860년 4월 9일 프랑스 음성학자 ‘에두아르드 레옹 스콧’(1817-1879)이 녹음한 것으로 기름 램프에서 생기는 그을음을 종이 또는 유리 판에 씌워 이를 긁어서 음파를 기록하는 원리인 ‘포노토그래프’를 발명하여 소리 사진과 같은 기록을 남겼던 것이다.

 

이러한 소리 사진의 발명자 ‘에두아르드 레옹 스콧’에 대하여 살펴보면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서점을 운영하며 당시 최신 기계기술이었던 인쇄기 무역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는 직업에서 오는 영향으로 기록의 보존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 이에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 그리고 고대 중국에서부터 사용하였던 속기(速記)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로 여러 저술을 남긴 인물이다. 이렇듯 말을 빠르게 문자화하는 필기법인 속기에 대한 연구에서 말을 음성 그대로 보존하는 방법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이와 같은 속기는 여러 분야에 기록성 업무를 대신하게 되면서 이후 사람의 손글씨를 대신하는 더욱 빠르고 간편한 기계의 발명이 '타자기(Typewriter)'이다. 이와 같은 타자기의 역사는 1500년대에 활동하였던 이탈리아 판화가 ‘프란체스코 람파제토’(F.Rampazetto)의 문자 인쇄기에서 그 기원이 시작되었다.

 

그는 1455년 독일의 구텐베르크에 의하여 발명된 금속활자 인쇄기의 보급에 따라 다양한 서적이 출판되면서 책의 삽화와 문양 등을 판화로 작업한 전문적인 화가였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특정한 예술적 서체와 악보 등을 소량으로 인쇄가 가능하였던 문자 인쇄기 ‘스크리뚜라 따띠네(scrittura tattile)’를 최초로 개발하였다. 이후 1714년 영국의 엔지니어 출신 발명가 ‘헨리 밀(Henry Mill. 1683~1771)’이 이와 같은 바탕에서 최초의 타자기를 발명하면서 다양한 타자기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타자기를 낳은 속기에 대한 깊은 연구가 있었던 ‘스콧’은 소리를 담아 보존하는 연구를 위하여 사람의 청각기관 구조에 대한 의학적인 분야에 이르기까지 많은 공부를 하였다. 이와 같은 배경은 프랑스 생리학자 ‘프랑수아 롱게’(F,Longet, 1811~1871)교수의 ‘생리학 개론’의 출판을 그가 맡아 원고를 편집하게 되면서 이와 같은 전문 분야에 대한 많은 공부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소리를 담아 보존할 수 있는 장치에 관한 발상이 비롯되었다. 이와 같은 ‘스콧’의 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인물이 독일의 물리학자 ‘루돌프 코닉’(R.Koenig. 1832~?)이다.

 

그는 독일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공부한 이후 프랑스의 유명 바이올린 제작자 ‘쟝 밥띠스트 뷔욤’의 문하에서 악기 제작을 배웠던 인물이다. 이후 음향기기 제작자로 일하면서 음향의 파동에 대하여 연구하였으며 이를 측정하는 기계인 ‘압력 불꽃 장치’(Manometric Flame Apparatus)를 발명한 인물이다. 이러한 기술적 내용을 제공하여 ‘스콧’이 음성 녹음 기계를 개발하게 되는 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를 품고 ‘스콧’이 마침내 1857년 3월 25일 소리를 기록하는 뜻을 가진 ‘포노토그라프’를 발명하여 특허를 취득하였다. 이후 이와 같은 단순한 음파의 기록 장치인 ‘포노토그라프’를 소리가 재생 가능한 발명으로 끌어올린 인물이 있었다. 그는 프랑스 시인이며 발명가인 ‘샤를 크로’(Charles Cros. 1842~1888)이다.

 

‘샤를 크로’는 화학약품으로 동판에 부식성을 이용하는 정밀한 판화 기법인 에칭(etching) 기법을 통하여 컬러사진 구현에 많은 열정을 바친 인물이었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스콧’이 사용하였던 원본이 쉽게 훼손되는 그을음 기법이 아닌 금속판에 에칭 원리를 응용하여 소리를 담아 이를 재생하는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이는 본디 과거의 소리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 ‘팔레오 폰(paleo phone)으로 발명되어 1877년 10월 10일 ‘포노그라프(phonographe)’라는 이름으로 그 작동 원리와 제작 방법을 담은 논문이 발표되었다.

 

이와 같은 세기의 발명가 ‘샤를 크로’에 대하여 잠시 살펴 갈 필요가 있다. 그는 초현실주의 선구적 시인으로 평가받을 만큼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는 독학으로 14살 나이에 대학 입학 자격에 합격하여 공부한 이후 과학교사로 근무하면서 컬러 사진의 초기 기술을 최초로 발명한 인물이다. 이후 음성의 기록과 재생을 함께 할 수 있는 훗날의 축음기와 같은 ‘포노그라프' 원리를 세계 최초로 발명하였지만, 상업적 개발을 이루지 못한 채 46세의 나이로 천재적인 삶을 마감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세기의 발명가 ‘에디슨’(Thomas Edison. 1847~1931)이 1878년 1월 15일 미국에서 인류 최초의 축음기를 발명하였다. 에디슨이 발명한 축음기의 원리가 공교롭게도 프랑스 천재 ‘샤를 크로’가 발명한 원리와 같았던 내용에서 천재의 영감은 시공을 초월하는 것임을 일깨우게 한다. 이는 1876년 2월 14일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A. G.Bell, 1847~1922)이 ‘엘리샤 그레이’(Elisha Gray, 1835~1901)보다 몇 시간 앞서 전화에 대한 특허를 신청하여 세기의 인물로 등장한 내용과 맞닿은 이야기로 그 기술적 원리가 ‘에두아르드 레옹 스콧’에서 ‘샤를 크로’ 그리고 ‘에디슨’으로 이어진 음성기록과 재생의 발명에 이르는 이야기와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는 역사의 이야기이다.

 

▲ (좌로부터)1877년 축음기 원리 ‘포노그라프(phonographe)’를 발표한 ‘샤를 크로’와 ‘자크드 보쾅송’이 발명한 플루트 자동연주 나무 로봇 ‘오토메톤’(Automaton) 출처: google     © 브레이크뉴스

 

이와 같은 음성의 기록과 재생을 위한 많은 연구가 이어져 온 발전 과정과 기술의 원천을 면밀하게 살펴보면 미술작가들에 의하여 발전되어온 판화기법이 중요한 바탕이 되었음을 헤아리게 된다. 이와 같은 사실은 독일의 판화가 ‘루드비히 폰 지겐’(Ludwig von Siegen. 1609~1680)에 의하여 환상적인 음영까지도 표현하는 ‘메조-틴토(mezzo-tinto)’의 에칭 기법과 프랑스 화가인 ‘장 밥티스트 프린스(Jean Baptiste Le Prince. 1734~1781)’가 사용한 수채화의 빛깔과 같은 동판화 부식법 ‘아콰틴트’(Aquatint)기법이 음성기록 장치의 기술적 바탕에 중요한 단초가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와 같은 화가들의 선구적인 헤아림을 바탕으로 사진술과 함께 서로의 장점을 아우르며 발명된 석판 인쇄술 ‘리소그래피’(lithograph) 도 빠트릴 수 없는 이야기다.

 

석판화로 부르는 ‘리소그래피’는 기존의 요철 기법을 사용하는 동판화에서 발전된 기법으로 탄산칼슘(CaCO3)으로 이루어진 석회암 석판이 기름에 반응하는 특성을 이용하여 평면 석판에 직접 그림을 그려 인쇄하는 기법으로 독일의 극작가이며 작곡가였던 ‘알로이스 제네펠더’(1771~1834)가 여러 연극제작의 실패로 파산 직전의 위기에서 많은 대본과 악보의 인쇄 비용을 줄이려는 아이디어에서 발명되었던 기법이다. 이와 같은 ‘리소그래피’가 악보와 정밀한 지도 제작 등에 사용되면서 사진술과 결합하여 ‘포토리소그래피’기법을 낳았으며 마침내 오늘날 첨단 문명의 씨앗인 반도체 산업의 주요한 제조공정으로 발전된 사실은 많은 것을 일깨우게 한다.

 

이처럼 역사를 품은 많은 이야기를 통하여 인간의 삶이 빚어낸 소중한 이야기를 문자와 사진 그리고 소리로 남기려 하였던 지혜의 연구가 서로 맞물리면서 치열한 경쟁의 역사가 문명을 낳은 것이다. 이와 같은 치열한 역사를 더욱 상세하게 살펴보면 음성의 기록과 재생을 위한 연구가 음성을 있는 그대로 멀리 전달하려는 인류의 통신수단인 전화의 발명과 맞물린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이는 전화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발명이 있기까지 그 바탕에 많은 연구가 있었음을 살피게 되는 까닭이다. 먼저 자동직조기계를 발명하였던 프랑스 발명가 ‘자크드 보쾅송’(1709~1782)이 살펴진다.

 

그는 자동기계 ‘소화하는 오리’와 플루트를 자동으로 연주하는 나무 로봇 ‘오토메톤’(Automaton)에 담긴 소리의 재생 원리를 선구적으로 헤아렸던 인물이다. 이어 오늘날 알파고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체스를 두는 자동인형 ‘터키 사람’(The Turk)을 발명하여 나폴레옹에서부터 주요한 명사들과 대적하여 화제를 모았던 헝가리의 귀족 발명가 ‘볼프강 폰 켐펠렌’(W.v.Kempelen. 1734~1804)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1769년 말하는 기계speaking machine를 발명하여 큰 화제를 가져왔다. 바로 이와 같은 기술적 바탕의 연구에서 전화라는 세기의 발명이 이루어진 것이다.

 

여기서 축음기를 개발한 세기의 발명가 ‘에디슨’과 전화기를 개발한 ‘벨’이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내용을 짚고 가야 한다. 이는 1878년 에디슨이 최초로 축음기를 발명한 이후 불완전한 실린더로 인하여 온전한 음향을 재생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그가 이러한 문제에 접근할 즈음 뉴욕시의 전기 수급에 대한 중대한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서 발명된 축음기의 상용화가 보류되었다. 이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한 인물이 ‘벨’이었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쉽게 이해하려면 전화의 발명자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반드시 살펴야 한다.

 

‘벨’은 1847년 영국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서 태어나 문학과 음악에 상당한 감성을 가졌던 아이였다. 그는 ‘에딘버러 왕립고등학교’를 다니다 15세에 자퇴하였다. 당시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로 이어진 유명한 웅변술 가문에서 자라면서 12살 때에 어머니가 청력을 잃었다. 이에 어머니와 소통하는 수화와 함께 어머니에게 전달하는 언어를 간략하게 표현하는 입술 형태를 통한 음향 언어에 많은 연구를 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라틴어와 산스크리트어 그리고 스코틀랜드 게일어에 이르는 많은 언어를 음성으로 표현하는 놀라운 재능을 갖게 되었다. 이와 같은 바탕에서 16살 나이에 스코틀랜드 ‘엘진’에 있는 학교에 음악 교사가 되어 근무하다가 런던대학에 입학하였다. 이후 ‘벨’은 1863년 앞서 언급한 헝가리의 발명가 ‘볼프강 폰 켐펠렌’이 개발한 ‘말하는 기계’(speaking machine)를 보고서 19세 때에 몇 마디의 언어를 구사하는 얼굴 로봇을 만들었다.

 

이후 ‘벨’은 모든 가족이 캐나다로 이주하여 아버지가 미국 보스턴 농아학교에 초대되어 갔을 때 아버지를 따라 농아학교에 선생이 되었다. 이는 그가 청력을 잃은 어머니 때문에 입술 형태를 통한 음향 언어법을 개발한 전문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이때 만난 학생이 인간 승리의 상징으로 기억하는 ‘헬렌 켈러1880-1968이다. ‘헬렌 컬러’는 태어나 19개월 만에 청각과 시각을 모두 잃어 그의 부모가 당시 특성적인 방법으로 청각장애 교육에 두각을 나타낸 ‘벨’을 찾아왔던 것이다. 이때 ‘벨’이 소개한 가정교사가 ‘퍼킨스 맹아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로 재직하던 ‘앤 설리번’이었다. 이와 같은 ‘앤 설리번’의 헌신적인 열정으로 ‘헬렌 켈러’가 미국의 명문 ‘래드클리프 대학’을 졸업한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감동의 이야기이다.

 

이처럼 청각 장애 교육에 많은 연구를 하였던 ‘벨’은 보스턴 대학교수가 되어 음향과 언어에 대한 여러 연구를 시도하였다. 이러한 ‘벨’에게 개인적으로 특수한 교육을 받은 인물이 있었다. 그가 바로 훗날 ‘벨’과 결혼한 ‘마벨 가드너 허버드’(M.G.Hubbard. 1857~1923)이다. 그녀는 다섯 살 나이에 앓게 된 성홍열 후유증으로 청력을 잃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훗날 ‘내셔널 지오그래픽’사를 창립한 ‘가드너 그린 허버드’(G. G. Hubbard. 1822~1897)로 당시 미국 사회의 저명한 인사였다. 그는 청각 장애 교육에 많은 후원을 하였던 인물로 딸 ‘마벨’의 개인 교육을 ‘벨’에게 맡기게 되면서 역사는 새로운 이야기를 낳게 된다. 바로 1877년 ‘가드너 그린 허버드’의 딸 ‘마벨’과 ‘벨’이 결혼하였던 해에 만들어진 회사가 ‘벨 전화 회사’(Bell T.Company)인 것이다. 이 회사가 성장을 거듭하여 1899년 세계 최대의 통신회사 ‘AT & T’가 되었다.

 

여기서 살펴 갈 내용이 있다. 1878년 에디슨이 최초로 축음기를 발명하면서 ‘벨’의 장인 ‘가드너 그린 허버드’가 투자하여 설립된 회사가 ‘에디슨 스피킹 포노그래프 회사’였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로운 사실이 많다. 본디 ‘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한 근원이 전화기였다. 이는 당시 ‘벨’의 장인 ‘가드너 그린 허버드’가 사위 ‘벨이’ 연구를 거듭하던 전화의 가장 중요한 문제인 수화기의 기술적 문제를 ‘에디슨’에게 요청하였던 것이다. 이에 ‘에디슨’이 이를 연구하면서 수화기의 진동판에서 결정적인 원리를 얻어 축음기가 발명된 것이다. 그러나 ‘에디슨’은 축음기의 상용화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다. 이에 ‘벨’이 ‘에디슨’이 개발한 은박 실린더와 달리 왁스로 입힌 실린더를 개발하여 1886년 이에 대한 특허가 취득되면서 상용화된 축음기가 개발되어 엄청난 이익을 얻어 1886년 세계적인 ‘콜롬비아 레코드’사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치열한 경쟁으로 이루어진 지혜로운 역사의 숨결을 품은 최초의 근원이 결국 인류 최초의 음성기록과 맞닿아 있음을 기억하여야 한다. 이와 같은 선구적인 소리 사진의 발명가 ‘스콧’이 1860년 최초로 녹음하였던 음성이 2008년 복원되면서 뉴욕타임스에 의하여 그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당시 미국의 ‘로렌스 버클리 연구소’ 과학자들이 당시 녹음 음성을 재생하였다.

 

당시 발표된 내용을 살펴보면 녹음된 목소리는 여성으로 끝부분의 10초 동안 프랑스 민요 ‘달빛에’(Au clair de la lune)를 부른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와 같은 프랑스 민요 ‘달빛에’는 프랑스 음악가 ‘카미유 생상스’가 ‘동물의 사육제’에서 해골들이 춤추는 죽음의 무도회를 그려낸 12악장 '화석'(Fossil)에 인용된 음악으로 많은 음악가들이 다양한 소재로 삼았던 민요이다. 이와 같은 ‘스콧’의 음성 기록은 1877년 에디슨이 동요 ‘메리의 양’을 자신의 음성으로 녹음한 내용보다 17년을 앞선 인류 최초의 음성 녹음기록이었다. (필자는 이와 같은 역사의 이야기를 헤아리면서 인류 문명사에 화가의 역할이 실로 크고 높았음을 절감하였다. 시대를 앞서간 인물들의 지혜에 겸허하게 옷깃을 여미며 이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하였다,)  필자: 이일영 (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 시인 artww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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