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좌) 최초의 검역 활동을 편 라구사 공국의 항구 도시 두브로브니크(우) 유럽 남부 지중해 몰타공화국의 마모엘 섬의 검역소 병원 라자레토(Lazzaretto) 사진 출처:google ©브레이크뉴스 |
신종코로나의 검역과 방역에 대한 세계 각국의 대처방안이 전쟁 수준이다. 이와 같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한 전염성 질병에 대처한 인류사의 검역과 격리에 대한 역사를 헤아려보면 많은 이야기가 살펴진다.
이와 같은 질병에 대한 격리를 기록한 내용은 성경 구약성서 ‘레위기’에서 가장 먼저 살펴진다. ‘레위기’는 구약성서의 모세 5경 중 하나로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이 지켜야 하는 삶의 규범과 여러 제사제도 등이 담겨 있는 신성법전이다. 이와 같은 ‘레위기’ 13장 1절에서 4절에 나병으로도 부르는 한센병(Hansen’s disease) 환자의 진단과 격리에 대한 내용이 다음과 같이 담겨있다.
레위기 13장 (1: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2: 만일 누군가의 피부에 무엇이 돋거나 뾰루지가 나거나 색 점이 생겨서 그의 피부에 나병 같은 것이 생기거든 그를 곧 제사장 아론에게나 그의 아들 중 한 제사장에게로 데리고 갈 것이요/ 3: 제사장은 그의 피부의 병을 진찰할지니 환부의 털이 하얘졌고 환부가 피부보다 우묵하여졌으면 이는 나병의 환부라 제사장이 그를 진찰하여 부정하다 할 것이요/ 4: 그러나 피부의 색 점이 희나 우묵하지 아니하고 그 털이 하얗지 아니하면 제사장은 그 환자를 일정 기간 격리할 것이요)
레위기가 쓰인 연대에 대한 논란은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성서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에 의하면 기원전 550년에서 기원전 330년 까지 존재한 고대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제국 시대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나병으로도 부르는 한센병은 고대에서부터 무서운 병으로 인식되어 격리되어 나환자촌에서 살았다. 바로 격리병원 라자레토(lazaretto)의 역사이다. 이와 같은 ‘라자레토’의 어원은 신약 누가복음 16장 19절에서부터 21절에 부자와 거지 이야기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20: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21절: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에 기록된 거지 나사로에서 유래된 것이다.
한센병 환자를 격리하였던 나환자촌의 오랜 역사에서 흑사병과 같은 전염병 격리병원 ‘라자레토’로 운영된 최초의 기록을 살펴보면 1377년 발칸반도 도시국가 ‘라구사 공국’의 항구도시 두브로브니크(Dubrovnik)에 최초로 세워져 운영되었다. 이후 1403년 이탈리아 도시국가 베네치아 공국의 섬 동쪽에 위치한 리도 섬 인근에 바다와 분리되어 생긴 호수의 섬 석호 ‘라자레토 베키오’에 격리병원 ‘라자레토’가 세워졌다 이와 같은 역사를 안고 독일어로 군 병원을 뜻하는 라자레트(Lazarett)가 생겨난 사실도 짚고 갈 일이다.
이와 같은 성경에 기록된 인류 최초의 진단과 격리 기록 나환자촌에서 유래된 격리병원 ‘라자레토’와 함께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검역과 격리의 뜻을 함께 가지고 있는 영어 ‘쿼런틴’(quarantine)은 이탈리아어로 40일간의 공간을 뜻하는 ‘콰란티나’(quarantina)에서 유래된 언어이다. 이와 같은 어원 ‘콰란티나’의 검역과 격리의 유래는 중세 시대 이탈리아의 해양 강국 베네치아 도시 공국이 지배하였던 라구사의 항구 도시 두브로브니크에서 시작되었다, 앞에서 언급 하였듯이 1377년 격리병원 ‘라자레토’가 발칸반도 도시국가 ‘라구사 공국’에 세워지고 이후 1403년 이탈리아 도시국가 베네치아 공국에 세워졌듯이 발칸반도의 도시국가 라구사 공국(Ragusa)에서 처음 시작된 배경이다.
이와 같은 라구사 공국은 오늘날 동유럽국가 크로아티아의 달마티아 해안에 ‘아드리아 해의 진주’라 불려온 항구도시 두브로브니크(Dubrovnik)에서 번성하였던 금과 은의 무역으로 유명한 해양 공국으로 베네치아 공국에 점령되었던 도시로 1358년 독립한 자치도시이다. 이와 같은 역사에는 복잡한 이야기가 얽혀 있다. 잠시 이를 요약할 필요가 있다.
항구 도시 두브로브니크는 오랫동안 동로마제국(비잔틴)의 통치를 받아온 도시로 866년 이슬람의 공격으로 잠시 점령되었으나 곧 회복되었다. 이후 베네치아 공국이 호시탐탐 노렸던 해양 요충지로 마침내 동로마제국(비잔틴)의 세력이 약해진 1000년부터 약 30년간 베네치아 공국이 점령하였다. 그러나 민족대이동이라는 세계사의 물결이 요동치면서 해가 바뀌면 주인이 바뀌는 시대를 거쳐 덴마크계의 가장 강인한 노르만족(Normans)이 911년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을 거점으로 노르망디공국을 세워 1081년 달마티아 해안 지역을 점령하면서 1190년까지 통치하였다. 이후 동로마제국(비잔틴)에 다시 반환되었으나 또다시 거센 역사의 바람이 휘몰아쳤다.
이는 1198년 교황에 선출되었던 인노켄티우스 3세(Innocent Ⅲ) 교황 시대에 4차 십자군 결성이 이루어졌다. 당시 이집트를 공격하여 거점을 확보하고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는 전략을 세워 병력 수송과 보급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육로가 아닌 바닷길을 선택하면서 당시 이와 같은 수송 능력을 보유한 해양강국 베네치아 공국에 제안하였다.
이에 1192년 베네치아 공국 총독으로 취임한 엔리코 단돌로(Enrico Dandolo, 1107-1205)는 이와 같은 제안을 받아들여 1202년 제4차 십자군 출정거점으로 지정되었던 베네치아에 모여든 십자군 수뇌부를 회유하여 아드리아 해 연안의 헝가리 영역인 달마티아 지방의 도시 자다르(Zadar)를 침공하면서 라구사 공국의 항구도시 두브로브니크(Dubrovnik)도 함께 침공하여 베네치아 공국의 해군기지로 삼았다. 이후 1342년 헝가리의 루이스 1세 왕(Louis I)이 왕에 오른 후 달마티아 지방의 자다르와 두브로브니크를 점령한 베네치아 군을 공격하여 1358년 자다르조약을 통하여 원상회복되었다.
이와 같은 거센 역사의 물결 속에서 1347년 무렵부터 쥐에 기생하는 벼룩에 의하여 페스트균이 옮겨져 발병된 흑사병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야 한다. 이와 같은 흑사병은 1348년에서 1359년 사이에 정점을 이루면서 유럽 인구의 약 삼분의 1을 앗아간 죽음의 병이었다.
이와 같은 흑사병을 인류사에서 살펴보면 1347년 무렵 발병된 대재앙으로부터 800년 전으로 거슬러 오르게 된다. 이는 동로마 제국(비잔틴)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483-565) 시대인 541년에서 542년에 이르는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으로 기록된 흑사병 재앙이다. 당시 동로마 제국(비잔틴)은 사산 왕조 페르시아 제국과 540년부터 562년에 이르는 1차 전쟁 중에 역병이 겹쳐왔다. 이는 542년 해양도시 콘스탄티노플을 강타한 역병은 지중해 해상 무역로를 따라 사산 왕조 페르시아 제국까지 덮쳐 두 제국의 피해는 컸다. 이와 같은 전염병의 기습에 일시 휴전하였지만, 이후 572년부터 591년에 이르는 2차 전쟁이 다시 시작되어 동로마 제국(비잔틴 국)과 사산 왕조 페르시아 제국 모두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이와 같은 역사를 안고 1348년에서 1359년까지 인류를 위협한 흑사병의 발병 원인은 많은 추정이 존재한다. 그중 많이 거론되는 이야기 중 하나를 살펴본다. 몽골제국 칭기즈칸의 후예로 중앙아시아의 오늘날 카자흐스탄 키르기스 초원과 남러시아의 킵차크 초원 일대에 세워진 몽골제국의 분국 킵차크칸국이 있었다. 자니베크 칸(札尼别-Jani Beg)이 1342년 10대 칸에 오른 후 다음 해 1343년 크림반도의 항구도시 카파(Kaffa)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제노바 공국과 연합한 이탈리아 도시 공국의 저항으로 휴전한 이후 1345년 다시 카파를 침공하였다. 이 무렵 킵차크 군에 흑사병이 발생하면서 침공은 다시 실패하였다. 당시 흑사병으로 사망한 병사의 시체를 투석기에 담아 항구도시 카파의 성으로 던져 넣어 이후 흑사병이 해양로를 따라 유럽 전역에 퍼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분명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잠시 짚고 가야 하는 너무나 중요한 역사가 있다. 킵차크칸국 자니베크 칸이 침공하여 흑사병을 퍼트린 제노바 공국의 가장 주요한 식민 항구도시 카파에 대한 역사이다. 제노바는 이탈리아 북부의 항구도시이다. 항구도시 카파는 산 넘고 바다 건너 저편 흑해에 면해 있는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 항구도시이다. 이와 같은 항구 도시를 어떻게 제노바 공국이 소유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역사의 이해가 필요하다.
이와 같은 카파항구는 카자흐스탄에서 동유럽까지 유라시아 초원지대를 누비던 유목민 ‘쿠만족’과 터키 아나톨리아 반도 동남부에서 이란고원 지역에 활동하던 쿠르드족이 연합한 세력 쿠마니아(Cumania)의 점령지였다. 이후 1270년 무렵 몽골제국 킵차크칸국(金帐汗国)의 칸 ‘만그 티무르’(Mengu-Timur)에게 정복되었다. 이때 제노바 공국의 무역 상인들이 킵차크칸국에 거액을 지불하고 카파(Caffa) 항구도시를 매입하였다. 이후 제노바 공국의 무역 상인들에 의하여 최대 노예 무역항구로 번성하였다. (이와 같은 카파 항구를 우즈베크 칸 국의 후예 자니베크 칸이 킵차크 칸국을 정복하여 카파 항구를 무력으로 다시 침공한 배경에는 분열된 몽골제국의 복잡한 역사가 얽혀있다. 나중 기회가 되면 이를 별도로 살펴보기로 한다.)
이와 같은 역사를 안고 1347년 무렵부터 흑사병이 유럽 전역에 퍼지면서 발칸반도 항구도시 두브로브니크(Dubrovnik)에 입항하는 모든 선박과 여행자에 대하여 인근 섬에 30일간 별도로 격리하여 질병의 유무를 확인하였다. 이후 이와 같은 격리 제도가 많은 효과를 얻게 되면서 베네치아 해양 공국은 이와 같은 제도를 받아들여 1448년 베네치아 의회가 격리기간을 40일로 늘려 승인하였다. 이에 40일간의 격리 공간을 뜻하는 ‘콰란티나’(quarantina)가 생겨났으며 오늘날 사용하는 ‘쿼런틴’(quarantine)으로 발전하였다. 이후 유럽 전역의 주요한 항구도시에 이와 같은 검역제도가 생겨났다.
이처럼 선구적인 검역과 격리의 지혜를 펼친 ‘라구사 공국’은 연구되어야 할 내용이 많은 전설의 나라이다. 필자가 헤아린 기록에 의하면 ‘라구사 공국’은 베네치아 공국의 지배에 있었지만, 1272년 자치 도시 법령을 선포하면서 전염병을 대비한 항구 도시 검역에 대한 법령과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어 1300년부터 체계적인 의료시설에서 진료 활동을 펼쳤으며 1317년 도시 공국이 운영하는 약국을 열었다. 이후 1358년 라구사 공국으로 독립한 후에 인류 최초의 체계적인 검역 격리 병원 라자레토(Lazarete)가 1377년 문을 열었다.
‘라구사 공국’은 1348년 도시를 황폐화한 흑사병 재앙에서 얻은 교훈으로 극비의 프로젝트에 착수하였다. 이는 나폴리 출신의 분수 건축가로 유명한 ‘오노프리오 델라 카바’(Onofrio della Cava)를 초빙하여 대규모 공공 인프라를 구축하였다. 외형상으로는 분수대 건축이었지만, 실제로는 오늘날의 상수도 시설과 같은 급수 시스템이었다. 1435년부터 8년간의 노력으로 약 20km 지점의 물을 중간 저수장과 압력장치를 통하여 도시로 가져와 주민에게 양질의 식수를 공급하였다.
이와 같은 ‘라구사 공국’은 1418년 노예 거래제도를 폐지하였으며 전쟁과 질병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위한 고아원 시설을 1432년 설립한 나라이다. 이와 같은 선구적인 지혜의 나라 ‘라구사 공국’은 1808년 프랑스 제국 나폴레옹의 침공으로 역사에서 사라졌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면서 1945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에 귀속되어 1991년 크로아티아 공화국으로 독립하였다.
라구사 공국의 선구적인 역사를 바탕으로 이후 더욱 체계적인 검역과 격리의 역사가 인류를 지켜왔다. 프랑스어로 검역라인 또는 방역라인과 함께 차단과 봉쇄의 뜻을 품은 ‘코르동 사니테르’(Cordon sanitaire)가 이와 같은 역사의 맥락이다. 이는 스페인(에스파냐)의 요충지 지중해 발레아레스제도의 마요르카섬의 항구도시 팔마(Palma)에 모기가 옮기는 아르보 바이러스에 의하여 발생한 황열병이 전역으로 퍼지면서 프랑스로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1821년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의 국경 피레네산맥에 30,000여명의 프랑스 군대를 배치하여 방역의 봉쇄선을 설치하였으며 모든 해안에 방어 탑을 설치하여 감염자의 출입을 봉쇄하였다.
이후 1830년 러시아제국에 콜레라가 발생하면서 제국의 심장부 모스크바 외곽에 이와 같은 ‘코르동 사니테르’ 군대가 도시의 출입을 봉쇄하였던 사실도 역사가 남긴 이야기다. 이와 같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일인칭 화자의 의식적인 장편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아버지인 저명한 위생학 교수 ‘아드리앙 프루스트’가 1869년 인도에서 발생한 콜레라의 확산을 막기 위하여 역사적으로 설치된 봉쇄선 ‘코르동 사니테르’를 거론하며 유럽으로 향하는 모든 선박을 수에즈에서 격리 검역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국제사회에 큰 논란을 가져왔다.
오늘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 세계 주요 나라에서 크루즈 여객선 입항을 금지하고 발병지 중국인 입국의 제한 수위가 한층 강화되는 사실에서 오랜 역사를 통한 검역과 방역에 대한 조처가 크게 다르지 않음은 많은 것을 일깨우게 한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질병에 대하여 역사의 이야기를 교훈 삼아 국제사회의 지혜로운 대처와 예방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기이다. 필자: 이일영(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 시인. artwww@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