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눈 내린 16일 서울 도심에서 바라본 북악산 사진 출처: http://www.queen.co.kr/ © 브레이크뉴스 |
올해의 겨울은 서울에 눈이 온다는 예보를 연신 비켜 가며 여우 눈물 같은 눈발마저 아끼던 이상기온이 계속된 한해의 겨울이었다. 이에 남극의 빙하가 녹아내린다는 지구촌 기후변화를 절감하며 눈이 없는 서울의 역사가 최초로 기록되는 듯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새로운 역사를 허용하지 않는 하늘은 휴일인 오늘 서울 도심에 거친 눈발을 종일 날리고 있다.
필자가 헤아려본 기록에 의하면 서울에 눈이 내리지 않은 겨울의 역사는 없었다. 이는 조선왕조 1대왕 태조 이성계가 왕에 오른 1392년부터 제25대 철종 임금이 재위한 1863년까지 472년간의 역사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그렇다. 조선왕조실록은 동양의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한 우리 민족의 보물과 같은 기록이다.
이에 1394년 (음력 8월 24일) 서울 천도가 결정된 이후 626년이 흐른 올해까지 서울에 눈이 오지 않은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472년간의 역사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에서부터 오늘날까지 기상 관측을 기록한 내용과 각 시대의 주요한 문헌을 살펴본 내용에서 확인된 사실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우리의 기상 관측에 대한 역사를 기록으로 살펴보면 가장 먼저 고려 공민왕 시대의 문신으로 예서와 초서에 당대의 명필이었던 행촌 이암(李嵒)이 1363년 저술한 단군세기(檀君世記)가 살펴진다. 이는 일제가 1905년 을사늑약과 1910년 한일병탄(韓日倂呑)으로 강토를 침탈한 이후 1911년 민족 사학자 계연수(桂延壽)가 서술한 한국 상고사의 역사서 환단고기(桓檀古記)에 담긴 내용이다.
이와 같은 연대기 단군세기(檀君世記)는 기원전 2333년의 1세 단군에서부터 기원전 295년의 47세 단군에 이르는 2,000여 년간의 역사를 기록한 실록의 연대기에 이어 기원전 239년 건국된 북부여의 시조 해모수(解慕漱)의 건국에 대한 연대기가 서술되어있다.
이와 같은 단군세기에 기록을 보면 ‘기원전 2283년 고조선의 1세 왕 단군왕검 51년에 운사(雲師)인 배달신(倍達臣)에 명하여 혈구(穴口)에 삼랑성을 축조하고 마리산(摩璃山)에 제천단을 쌓게 하였다.’ ‘지금의 참성단(塹城壇)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바로 인천시 강화군 화도면에 소재한 마니산(摩尼山) 정상의 오늘날 사적으로 보존하고 있는 ‘참성단’이다.
이와 같은 기록의 행간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낸 천제(天祭)의 뜻과 함께 천문을 관측한 의미가 담겨있다. 이는 단군세기의 또 다른 기록에 의하면 ‘기원전 1916년 전 10세 단군 35년에 처음으로 별을 관측하는 ‘감성대’(監星臺)를 설치했다’는 기록을 주시하게 되는 내용이다. 다시 말하면 이는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은 하늘에 제사와 천문관측의 뜻을 함께 품어 오다가 도성 궁궐 부근에 전문적으로 천문을 관측한 천문대인 ‘감성대’를 분리하여 설치한 것이다.
여기서 심중하게 살펴지는 내용이 있다. 중국의 여러 역사서를 종합하여 보면 당시 동북아를 강타한 대홍수를 1세 단군 왕이 풍백(風伯)인 팽우(彭虞)에게 명하여 이를 다스리게 하여 치수 사업을 성공시킨 업적이다. 이와 같은 단군왕검의 업적은 당시 여러 나라에 전하여졌다. 이에 단군왕검은 네 아들 중 장자인 부루 태자를 중국 고대의 하(夏)나라 우(禹)임금에게 보내어 천문 관측법을 바탕으로 오행의 상생과 상극의 원리를 이용한 ‘오행치수법’을 전하여 하(夏)나라의 국난과도 같았던 9년 홍수의 어려움을 벗어나게 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이 우리 민족 최초의 천문과 기상을 관측한 사실을 일깨우는 역사의 기록이다. 이를 부연하는 기록은 1454년 단종 시대에 편찬된 세종장헌대왕실록‘ 제148권에서 제155권까지 8권에 걸쳐 실려 있는 전국 지리지로 우리는 이를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라 한다. 기록에 보면 ‘참성단’ 축조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함께 조선 단군이 하늘에 제사 지내던 석단으로 매년 봄과 가을에 하늘의 별들에 제사를 지내었다. 라는 상세한 설명이 들어있다. 이와 같은 명확한 기록은 조선 정조 시대의 천문학자 성주덕(成周悳)이 저술한 기상관측서 ‘서운관지’(書雲觀志)에 혜성 등의 천문 관측을 위하여 대대로 ‘참성단’에 관상감 관원이 파견되었다는 기록이다.
이어 ‘세종실록지리지’ 평양부 편에는 ‘평양성 안의 연못 부근에 천문 관측대 첨성대(瞻星臺)가 있었다는 기록이다. 이는 고구려 시대의 천문관측대 첨성대를 뜻하는 것으로 앞으로 많은 연구가 필요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내용이다. 이는 바로 신라 시대의 경주 첨성대와의 연관성을 헤아리게 되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현존하는 경주 첨성대는 국보 제31호로 동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천문 기상관측대이다. 이와 같은 첨성대가 세워진 역사에 대한 기록은 고려 충렬왕 때의 승려 일연(一然)이 삼국의 역사를 집대성한 삼국유사에서 7세기 중엽 신라의 선덕여왕 시대에 건립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이와 함께 세종실록은 신라 최초의 여왕 선덕여왕이 재위한 다음 해인 633년 건립된 기록을 전하고 있다.
이후 고려사의 기록을 살펴보면 고려 건국 초에 풍수지리를 주관하였던 태복감(太卜監)과 함께 설치되었던 태사국(太史局)은 우주와 세상의 현상을 헤아린 천문(天文)과 천체의 운행과 기후변화를 기록한 역수(曆數) 그리고 기상 관측의 측후(測候)와 물시계인 각루(刻漏)를 관장하던 오늘날의 천문대와 기상관측소를 관장하던 관청이었다. 이후 사천대(司天臺)로 바뀌었다가 다시 사천감(司天監)과 관후서(觀候署) 그리고 서운관(書雲觀)으로 부서의 명칭이 바뀌었다. 또한, 고려 시대에 천문을 관측하던 곳의 명칭은 첨성당(瞻星堂)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기상 관측을 주관하였던 관청은 고려의 명칭을 유지하다가 조선 시대 세조 당대인 1466년 관상감(觀象監)으로 새롭게 바꾸어 예조에 두었다. 이후 조선조 10대 왕 연산군의 재임 마지막 해인 1506년 사력서(司曆署)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뒤를 이은 11대 왕 중종 시대 초에 관상감으로 다시 환원되었다.
이와 같은 역사 속에서 1433년 세종 임금 15년에 조선 시대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蔣英實. 1390-?)이 천문관측기 혼천의(渾天儀)를 발명하여 설치하였으며 다음 해 1434년 자동으로 표준 시간을 알려주는 정교한 물시계 자격루(自擊漏)를 발명하여 경복궁 경회루 남쪽에 보루각(報漏閣) 지어 이를 설치하였다. 또한, 당시 1434년 혼천의를 더욱 요약한 천체 관측기기 간의(簡儀)를 제작하여 경복궁 경회루 북쪽에 천문관측대 간의대(簡儀臺)를 설치하였다. 이후 1438년 세종 20년에 경복궁 천추전 앞에 흠경각(欽敬閣)을 건립하여 자동 물시계 자격루를 설치하였다. 이후 장영실은 1441년 세계 최초의 우량계인 측우기를 발명하였다. 여기서 짚고 가는 이야기는 세종 시대에 자동 물시계가 설치된 흠경각이 1533년 명종 임금 시대에 경복궁 화재로 소실되었다. 이에 다음 해 1434년 복원되었지만, 1592년 선조 25년에 임진왜란으로 다시 불타버리면서 이후 1613년 광해군 시대에 창덕궁 서린문 앞에 복원되었다.
이와 같은 오랜 역사를 이어온 천문과 기상관측을 관장하던 관상감(觀象監)이 조선 제26대 왕이며 대한제국 제1대 황제인 고종 시대 1894년에 관상국(觀象局)으로 직제와 명칭이 개편되었다. 이와 같은 우리나라 근대 기상관측의 역사에서 잠시 살펴 갈 내용이 있다. 바로 1876년 고종 13년 2월 일본의 군사력을 동원한 강압에 의하여 불평등 조약인 조일수호조규인 이른바 강화도조약이 체결되면서 우리나라는 가장 주요한 법권(法權)과 세권(稅權)을 잃었다. 이는 당시 조약이 (첫째, 조선은 부산과 원산과 인천 항구를 20개월 이내에 개항한다. 는 것이며 둘째, 치외 법권을 인정하여, 개항장에서 일본인의 범죄가 발생할 경우 일본인은 일본인의 법률에 따라 처벌된다.) 라는 조약과 함께 수출입 화물에 대한 관세 및 내국통과세의 부과징수권을 잃었다.
이와 같은 일본의 어처구니없는 침탈 속에 1876년 부산항이 개항되면서 무관세 무역(無關稅貿易)이 강요되어 국권의 침탈은 물론 합법적인 약탈이 자행되었다. 이에 분노와 항의가 이어지면서 1878년 9월 부산 두모진(豆毛鎭)에 海關(해관)을 설치하여 수출입 화물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면서 일본의 불법적인 관세권 회복을 도모하였다. 이에 일본은 조약위반이라는 명목을 들어 협박하면서 마침내 1878년 11월 군함을 이끌고 부산에 도착하여 12월 4일 해병대를 상륙 시켜 무력 시위 하면서 군함에서는 함포를 연속 발사하여 전쟁 공포를 조장하였다. 이에 우리 정부는 12월 26일 두모진 해관과 과세 조처를 철폐하고 말았다. 바로 두모진 관세 사건이다. (지난 박근혜 정부 시대에 맺어진 부당한 일본군 위안부(성노예 피해자) 합의 이후 이를 거부한 현 정부에 대응하는 일본 아베 정부의 태도에서 변함없는 일본의 민낯을 다시 살피게 한다)
이후 1882년 5월 한국의 관세권을 인정하는 미국과의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면서 온갖 꼼수를 자행하며 시기를 미루던 일본은 1883년 7월 ‘조일통상장정 및 동 해관 세칙’에 합의하여 관세권 일부를 회복하게 되면서 5월 인천과 10월 원산과 부산에 정식 해관(海關)이 세워졌다. 그러나 이와 같은 근대적인 관세 업무와 그 운영에 경험과 전례가 없었던 우리나라는 독일인 ‘묄렌도르프’(Mollendorff)를 초빙하여 총세무사(總稅務司)라는 직책으로 해관의 창설과 운영 전권을 위임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1905년 말부터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조선의 총세무사를 비롯하여 각 해관의 세무사를 일본인으로 교체하였으며 1907년 4월 일본에서 사용하는 세관(稅關)으로 그 명칭을 교체하였다.
천문과 기상관측에 관한 이야기를 살펴 가다 이와 같은 일본의 만행이 언급된 까닭은 바로 당시 해관이 창설되면서 선박의 운항과 가장 연관성이 많은 기상예보로 최초의 근대적인 기상관측이 해관에서 이루어진 까닭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와 같은 해관에서 관측된 기상관측의 자료는 일본에서 운영한 까닭으로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근대 기상관측의 자료는 측우 기록으로 1894년 6월 21일 관보가 창간되면서부터이다. 이와 같은 관보에 게재된 기상관측 자료는 1910년 일제의 국권침탈까지 총 4,768호가 발행되었다. 또한, 고종 시대 1894년 갑오경장 때에 개편된 관상국(觀象局)은 1895년 4월 ‘관상소’(觀象所)로 바뀌었으며 1907년 7월 20일 고종 황제가 강제 퇴위당하고 7월 24일 한일 신협약이 체결되면서 대한제국이 일본제국의 보호령으로 전락하였다. 이어 7월 31일 일제에 의하여 우리나라 군대의 해산령이 공포되면서 마침내 8월 1일 일제는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 해산시켰다. 이어 8월 2일 순종 황제가 즉위하면서 10월 9일 일제는 우리의 경찰권까지 강탈하였다. 이 무렵 일제는 우리의 기상 관측소를 폐지하고 측후소(測候所)를 설립하여 모든 운영권을 거머쥐었다.
이후 일본은 이와 같은 측후소를 일본 임시관측소로 바꾸어 1908년 대한제국 관측소로 바꾸었다. 이와 같은 배경에는 바로 일본의 음흉한 흉계가 녹아있다. 바로 치욕적인 국권침탈(한일병탄)을 앞둔 눈가림이었다. 바로 1910년 8월 29일 국권침탈이 자행되면서 1905년 을사늑약을 통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한 이후 1906년 설치한 통감부(統監府)를 통하여 예비작업을 수행한 일제는 1910년 8월 29일 국권침탈이후 즉시 조선총독부를 설치하였다. 이어 10월 1일 대한제국 관측소를 조선총독부 관측소로 바꾸었다.
이어 일제는 조선총독부 관측소를 1939년 조선총독부 기상대로 다시 명칭을 바꾸었다. 이는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일어나면서 기상 관측이 전쟁에 가장 주요한 기밀의 하나인 사실에서 기상 관측 자료의 철저한 보안 유지를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바로 각 도에서 관할하던 지방의 가상관측소인 측후소를 1938년부터 조선총독부가 직접 관할 감독하였던 사실이 증명하는 내용이다.
이와 같은 조선총독부 기상대는 1945년 조국 광복 이후 국립 중앙관상대로 바뀌었다. 이후 1974년 천문관측과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국립천문대가 새롭게 탄생하였으며 국립 중앙관상대는 1990년 12월 기상청으로 승격하였다.
올겨울 서울 도심에 처음 내린 눈은 서울을 둘러싼 모든 산을 하얗게 뒤덮었다. 그러나 덮여지지 않는 역사의 흔적이 눈발처럼 스쳐간다. 필자: 이일영(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 시인. artwww@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