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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혼을 위하여(197) - 가면(Mask)의 역사(1)

이일영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20/02/29 [20:14]

 

▲ (좌로부터) 기원전 7세기경 신석기 시대 돌가면/ 기원전 2000년경 고대 미케네 유적 발굴 아가멤논 황금 마스크/ 기원전 1000년 경 고대 엘람왕국 황금 가면/ 국보 121호 안동 하회탈/     ©브레이크뉴스

 

 

신종 바이러스 코로나19가 오대양 육대주를 삼킨 채 온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이와 같은 재난의 질병이 가져다준 심각한 현실을 직시하며 우리는 많은 것을 일깨우게 된다. 이는 인류가 오랜 역사 동안 모든 분야에 상상키 어려운 첨단 과학의 탑을 쌓아왔지만, 7번째 변이종 코로나19 감염증 앞에 무기력한 존재가 되어 지구촌 모든 사람이 얇은 천으로 만든 마스크(Mask) 하나로 공포의 질병과 싸우고 있다. 나아가 이와 같은 마스크를 사려는 끝없이 줄을 선 인파의 광경이 첨단 과학 문명을 일구어낸 오늘의 인류 모습이라는 사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인류 과학의 발달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것은 우주 정복이다. 1957년 10월 4일 구소련이 발사한 먼 우주로의 여행에 동반자라는 뜻을 가진 스푸트니크 1호(Sputnik-1)가 하늘 너머 미지의 우주를 날았다. 이후 1969년 7월 21일 미국의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 1930~2012)이 인류 최초로 달을 밟았다. 이와 같은 우주에는 오늘날 우주정거장(space station)이 설치되어 다양한 연구 활동을 펴고 있다. 연구 중에는 인간과 함께 식물과 동물이 우주에 적응하는 여러 실험을 통한 신약개발도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 살펴지는 내용이 있다. 우주에서는 태양이 하루에 두 번 뜨고 지는 까닭으로 밤낮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 빛을 차단하는 수면 마스크를 사용한다. 이렇듯 우주에서 사용하는 수면 마스크이거나 지구에서 사용하는 방역 마스크의 본질적인 기능은 차단(block)이다. 그렇지만, 마스크의 역사에 담긴 의식을 깊숙하게 헤아려보면 소통이었다.    

 

이와 같은 마스크(Mask)의 기원은 인류의 생활과 동행한 가면(mask-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와 같은 가면(mask-탈)의 역사를 살펴보면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인류가 집단생활을 이루었던 원시사회에서부터 존재하였다. 이는 무생물의 존재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었던 애니미즘(animism)이거나 자연계의 동물과 식물이 인간과의 비밀스러운 관계가 있음을 숭배한 토테미즘(totemism)과 자연을 초월한 신비적 존재와의 소통을 추구하였던 샤머니즘(shamanism)에 이르기까지 가면(Mask-탈)은 인간의 존재를 가린 신과 소통하는 신성한 얼굴이었다. 

 

이와 같은 우리가 탈(面)로 부르는 가면(假面-mask)의 역사가 남긴 대표적인 유물들이 있다. 기원전 1만 년경 유적인 시칠리아 아다우라 동굴의 선각(線刻) 벽화에는 10여 명의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그려져 있다. 또한, 현존하는 가장 오랜 실체적 유물을 살펴보면 프랑스 파리 6구에 위치한 종교 박물관인 성서와 성지 박물관(Musée "Bible et Terre Sainte)에 소장되어있는 가면이다. 기원전 7세기경의 신석기 시대에 제작된 9천 년의 역사를 품은 돌을 깎아 만든 정교한 가면(假面-mask)이다.   

 

더욱 실감이 나는 유물은 신화 속에서 역사를 발굴한 독일 태생의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이 신화 속의 고대 도시 트로이(Troy)와 고대 미케네(Mycenae) 유적 발굴에서 트로이 전쟁 당시 그리스군 총지휘관이었던 아가멤논 황금 마스크(Mask of A gamemnon)를 발굴하여 현재 그리스 아테네 국립고고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는 기원전 2000년 무렵인 고대 미케네문명과 크레타 문명 시대의 주술적인 제사 의식을 헤아리게 하는 유물이다.

 

이와 같은 주술적인 마스크(Mask-가면)가 인간과 동행한 역사를 이어온 유물은 기원전 1300년 무렵인 고대 이집트 왕국의 파라오(Pharaoh)로 기록되는 최고 통치자 투탕카멘(Tutankhamen. 1342-1325)의 무덤에서 발굴된 황금가면이다. 이는 인류사에서 가면의 신성한 존재를 더욱 구체적으로 알린 유물이었다. 이와 같은 고대 문명에서 존재하였던 가면(Mask)은 영원한 생명을 추구한 소망에서부터 숭배하는 신들의 형상을 가면에 담아 신의 존재를 대행하려 하였던 분신과 같은 아바타의 역할을 품고 있었다.

 

또한, 이란 중부의 유적지 로레스탄에서 고대 엘람 왕국(Elamite Empire)의 유물로 추정되는 기원전 1000년 무렵의 황금 가면이 발굴되어 이란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어 불가리아 중부의 스타라자고라주의 도시 카잔루크에서 발굴된 극히 정교한 황금 가면이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국립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이 황금가면은 기원전 5세기경 트라키아 족을 통합하여 세운오드뤼사이 왕국(Odrysian kingdom)의 통치자였던 세우테스 3세 왕(Seuthes III. BC. 331-BC. 300)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와 함께 세계 최고의 산맥 히말라야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안데스산맥이 품은 고원지대에서 발원한 안데스 문명의 가면도 빠트릴 수 없는 내용이다. 기원전 1000년경 열대의 땅에 꽃피운 찬연한 마야 문명의 유적지인 멕시코 정글 지대 팔렝케(Palenque)에서 발굴된 많은 마야 가면(Maya mask) 중에서 빨간 공작석으로 제작된 여왕의 가면은 영원한 생명을 추구한 의식을 품은 부장품이었다. 이와 같은 역사를 바탕으로 1300년경 새롭게 탄생한 안데스 고원의 태양의 나라 잉카 제국(Inca Empire)의 유적지인  오늘날 에콰도르 북쪽 라 톨리타(La Tolita)에서 태양의 신을 품은 황금 가면이 발굴되어 에콰도르 키토 국립 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이어 이와 같은 안데스 문명의 역사를 바탕으로 1250년경 멕시코 고원에 세워진 신의 나라 아스테카 제국의 유물인 아스텍 두개골 가면(Aztec skull mask)은 인간의 실제 두개골로 만든 유일한 가면으로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이와 같은 희귀 가면에 대한 의식에 대하여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사람의 심장을 꺼내어 제단에 바쳤던 인신 공양 의식을 가졌던 제국의 야만적인 관습에서 탄생한 가면으로 생각된다.

 

여기서 짚고 가게 되는 사실이 있다. 이와 같은 태양의 나라 잉카제국과 이웃하였던 신의 나라 아스테카 제국의 멸망 원인에 대한 내용이다. 보편적으로 스페인(에스파냐)의 침략으로 정복된 것으로 정리되지만, 사실은 침략자 스페인(에스파냐)에 의하여 전파된 신종 전염병에 면역력이 없었던 두 제국의 대다수 인구가 사망한 탓이었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511년 발병하였던 바이러스 감염증 원숭이 마마(monkeypox)와 1545년 발명한 엡스타인-바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성 단핵증에 이어 1576년 모기가 옮기는 아르보 바이러스로 인한 황열병이 덮치면서 잉카제국과 아스테카 제국의 대다수 인구가 사라진 것이었다.
 
이러한 가면(Mask-탈)에 대한 한층 구체적인 내용을 정리해보면 고대 그리스어로 얼굴과 사람을 의미한 언어 프로소폰(πρόσωπον-prosōpon)이 살펴진다. 이는 마스크(탈-가면)를 뜻한 것으로 그리스 고대 연극에서 사용된 도구였다. 이어 기원전 800년 무렵 오늘날의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에 건설하였던 고대 국가 에트루리아(Etruria)에서 가면을 페르수(Phersu)로 표기한 사실을 살피게 한다. 이는 그리스 신화의 마녀 메두사(Medusa)의 목을 벤 다나에와 제우스 사이에 태어난 아들 페르세우스(Perseus)가 얻었던 얼굴을 보면 돌로 변해버리는 무시무시한 괴물 메두사 가면을 말한다.

 

당시 에트루리아인들이 페르수(Phersu)가 얻었던 메두사 가면을 사용하여 전투에서 승리한 역사에서 페르수(Phersu)가 가면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와 같은 역사를 바탕으로 고대 로마제국 시대에 가면을 쓴 인격이라는 뜻의 라틴어 페르소나(persona)가 탄생한 것이다. 이와 같은 가면을 쓴 인격이라는 뜻의 라틴어 페르소나(persona)에는 자연의 대다수의 생물은 본래의 모습에서 변화하는 변태 과정 즉 탈바꿈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처럼 많은 이야기를 품은 마스크(Mask-가면)는 동양문화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중국의 고대문명 황허문명에서부터 존재한 가면은 중국의 역사서 후한서(後漢書)에 전해지며 당나라의 정사 구당서(舊唐書)의 예의지(禮儀志)에 주(周), 한(漢)시대에 의식인 나례(儺禮)에서 잡귀를 막았던 신이었던 방상시(方相氏) 가면의 유래가 기록되어있다.

 

이와 같은 역사 속에서 유구한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탈을 만나게 된다. 바로 부산 영도구 동삼동에서 출토된 선사시대 신석기 유물인 조개껍질로 만든 조가비 탈(貝面)이다. 또한, 강원도 양구에서 출토된 흙으로 빚어낸 가면 토면(土面) 또한, 선사시대의 신석기 유물이다. 이어 1946년 경주 호우총(壺杅塚)에서 출토된 6세기경 유물로 추정되는 가면 목심칠면(木心漆面)은 옻칠한 나무 탈에 유리 눈을 넣은 후 황금으로 두른 정교한 가면으로 바로 귀신을 물리치는 벽사가면(辟邪假面)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랜 유물이다.

 

이와 같은 우리나라 탈의 역사를 문헌상으로 살펴보면 통일신라 시대 명문장가 최치원(崔致遠. 857-?)이 신라 시대의 대표적인 다섯 가지 놀이였던 오기(五伎)에 대한 내용을 노래한 다섯 편의 시를 담아 885년 펴낸 향악잡영오수(鄕樂雜詠五首)에 기록되었다. 이는 금빛 방울을 주고받으며 굴리던 공놀이 금환(金丸)을 제외한 달과 같은 둥근 형태의 탈춤 월전(月顚)과 황금 탈춤 대면(大面), 그리고 남색 빛깔의 탈춤 속독(束毒)과 사자 탈춤 산예(狻猊)’와 같은 네 가지 탈춤에 대한 기록이다.

 

이와 같은 향악잡영오수는 886년 최치원이 저술한 계원필경에 수록되었으며 삼국사기 악지(樂志)에 전해진 우리나라 최초의 탈춤에 관한 문헌이다. 이와 함께 조선 중기의 문신 민주면(閔周冕. 1629-1670)이 저술한 동경잡기(東京雜記)에 신라 시대 탈춤 검무(劒舞)에 대한 기록을 전하고 있다. 또한, 신라 시대에서부터 처용의 가면을 쓰고 추었던 탈춤 처용무(處容舞)는 고려와 조선 시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전해온 춤이다. 그러나 문헌에서는 고려사에  최초로 기록되어 1236년 고종 23년 조에 당시 추밀원 부사로 임명되었던 송경인(宋景仁)이 처용무를 추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와 같은 우리나라 탈(Mask-가면)의 역사는 서양과 마찬가지로 악귀를 쫓는 벽사 탈과 유희의 예능탈로 오랜 역사를 이어왔다. 조선 시대의 산대가면극과 해서가면극 그리고 오광대가면극과 서낭신제가면극 등에서 녹아내린  산대놀이탈춤, 봉산탈춤, 사자탈춤, 은율탈춤, 강릉관노가면극, 동래야류 탈춤과 각 지방의 오광대탈춤으로 계승되고 있다. 이와 같은 다양한 탈춤에 사용되었던 수많은 탈(Mask-가면) 중에서도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마을에 전해져오는 나무로 제작된 하회탈(hahoe mask)은 고려 시대 중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국보 제121호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탈(Mask-가면)이다.
 
이와 같은 탈(Mask-가면)은 세계 모든 민족과 나라에서 전통적인 축제와 동행하며 민중의 애환을 품은 다양한 형태의 가면을 탄생시켰다. 인도의 오랜 역사를 가진 가면 무용극 차아우(chhau)에서부터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가면 무용극 토펭(Topeng)의 가면이 있다. 또한, 중국에서 도입된 ‘산가쿠’(散楽)에서 발전한 일본의 전통 가면극인 ‘노가쿠 가면극’(能楽假面劇)과 전통적인 연극을 바탕으로 양쯔강 연안에서 생겨나 북경에서 완성된 중국의 대표적인 경극(京劇)의 가면이 가지는 의미 또한 같은 맥락이다. (이어서 이와 같은 가면(Mask-탈)에 담긴 더욱 세세한 이야기들을 다음 편에 살펴가기로 한다.) 필자: 이일영(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 시인. artww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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