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예술혼을 위하여(200)-역사의 교훈을 비켜선 일본의 코로나19 (2)

그 어떠한 이유에서이던 인류의 재난은 공동의 적

이일영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20/04/29 [07:26]

 

▲ 일본 야마나카 신야(山中 伸弥. 1962-)교수와 록 밴드 엑스 재팬 리더 요시키(林佳樹)의 인터넷 화상 대담 장면과 1922년 일본 내무부 위생국이 펴낸 유행성 감기-대유행 기록(평범사, 2008년 출판)과 당시 예방 수칙     ©브레이크뉴스

 

일본의 경제학자이며 사학자인 ‘하야미 아키라’(速水融, 1929-2019)는 2006년에 출판한 저서 ‘일본을 강타한 스페인 독감-인류와 바이러스의 제1차 세계대전’(日本を襲ったスペイン・インフルエンザ 人類とウイルスの第一次世界大戦)는 102년 전 일본을 덮친 세계적 재난 스페인 독감에 대하여 1922년 일본 내무성이 펴낸 자료를 바탕으로 역사를 관통한 재난의 실체를 낱낱이 일깨웠다.

 

이와 같은 내용을 살펴보면 ‘하야미 아키라’는 1918년부터 1920년까지 약 2년간 두차례에 걸쳐 강타한 스페인 독감에 의한 사망자 수치를 당시 일본 내무성 자료를 바탕으로 제시하고 있다. 자료에 의하면 당시 일본은 5600만 명의 인구 중 약 45만 명이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하였다.(일본 인구 대비 사망률은 0.8%였다.) 당시 조선과 대만을 식민지로 강제 점령하였던 때에 조선은 1730만 인구 중 23만 명이 사망하여(인구대비 사망률 1.4%)를 대만은 365만 인구 중 5만 명이 사망하여 (인구대비 0.9% 사망률)을 기록하였다. (이와 같은 사실에서 오늘(28일) 기준 신종 바이러스 코로나19로 인한 한국의 사망자 244명과 일본의 사망자 407명 그리고 대만의 사망자 6명에 의미는 현대 의학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한다.)

 

‘하야미 아키라’는 저서에서 인구학자의 관점으로 당시 내무성이 발행한 자료 (유행성 감기)에 담긴 다양한 통계를 바탕으로 당시 일본과 조선과 대만을 덮친 스페인 독감에 대하여 세세한 분석을 제시하였다. 이와 같은 내용을 살펴보면 당시 일본에서 스페인 독감이 최초로 발생한 1918년 초에서부터 5월 일본 가나가와 현의 항구 요코스카 군항에 정박 중인 함대에서 환자가 발생한 이후 8월 말부터 9월 초에 대 유행을 시작하여 10월 초 일본 열도에 급속하게 퍼져나가면서 11월 환자 수와 사망자가 정점에 이르렀음을 분석하였다.

 

이어 1년 후인 다음 해 1919년 10월 말부터 스페인 독감이 다시 유행하기 시작하여 1920년 1월 말 정점에 이르렀으며 이와 같은 1차와 2차 유행의 정점기를 전후하여 약 4주 동안 가장 많은 환자와 사망자가 생겨났음을 분석하였다. 이어 이와 같은 1차 유행과 2차 유행에서 2차의 치사율이 훨씬 높았던 사실에서 이는 동일한 바이러스라면 면역력을 가졌을 가능성을 전제하면서 1차 이후 바이러스 변이에 의한 더욱 강한 2차 유행이 덮쳐왔음을 추정하였다.

 

당시 전 세계를 강타한 스페인 독감에 대하여 병원체인 바이러스를 동 시대의 광학 현미경으로는 규명할 수 없었기에 특정한 세균에 의한 감염을 염두에 두었다. 이와 같은 정황은 당시 1919년 2월 3일 자 도쿄아사히신문의 기사에서 확인된다. 당시 도쿄아사히신문은 스페인 독감이 덮쳐온 도쿄 상황을 (감기 맹렬하게 유행 최근 2주간 도쿄부에서 1300여 명 사망)이라는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은 요지의 기사를 게재하였다. (도쿄부 경시청 담당자는 이번 감기가 매우 질이 나빠 발병 후 폐렴을 병발하므로 사망자가 현저하게 증가하였다. 지난달 1월 11일부터 20일까지 이와 같은 유행성 감기로 사망한 환자와 폐렴으로 사망한 환자로 만실인 병원들은 새로운 입원을 모두 거절하는 상황이다.) 바로 스페인 독감으로 인한 100년 전 도쿄의 의료체계 붕괴 상황을 말하고 있다.

 

참고로 이와 같은 도쿄아사히신문(東京朝日新聞)은 오늘날 아사히신문이 1879년 오사카에서 창간된 이후 1884년 창간되었던 일본 자유당 기관지 자유등(自由燈)이 1886년 등신문(燈新聞)으로 바뀌고 다시 1887년 메사마시신문(めさまし新聞)으로 명칭을 바꾼 이후 1888년 이를 인수하여 도쿄아사히신문으로 발행하였던 외지판 신문이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1925년 4월 조선아사히신문(朝鮮朝日新聞) 외지판이 생겨나 1928년 남한지역 남선판(南鮮版)과 북한 지역 서북판(西北版)으로 분할하였다. 이후 아사히 외지판 신문은 1933년 만주 판(満洲版)과 대만판(台湾版)이 생겨나면서 외지판이 연이어 생겨났다.

 

여기서 다시 ‘하야미 아키라’의 저서에서 바탕을 삼았던 일본 내무성 자료를 살펴보면 놀라운 사실이 살펴진다. 이는 1919년 1월 스페인 독감이 일본열도를 강타하면서 일본 내무성 위생국이 일본 국민에게 제시하였던 ‘유행성감기예방이해’(流行性感冒予防心得)라는 예방수칙이다. 이는 당시 주 감염체가 바이러스라는 사실을 규명하지 못한 상태에서 내어놓은 100년 전 예방 수칙이 오늘날 세계를 덮친 신종 바이러스 감염증 코로나19 예방 수칙과 다름 없는 사실이다.

 

당시 일본 내무성 위생국이 펴낸 유행성 감기-스페인 독감 대유행 기록(流行性感冒 ”スペイン風邪”大流行の記録)을 보면 유행성 감기는 왜 전염되는가(はやりかぜはどうして伝染するか)라는 설명에서 유행성 감기는 사람으로부터 사람에게 전염되는 병이다. 감기에 걸린 사람이 기침이나 재채기를 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포말이 3-4척(약 1m) 주위에 날아가 이를 들이마시면 이 병에 걸린다.(はやりかぜは主に人から人に伝染する病気である。 かぜ引いた人が咳やくしゃみをすると眼にも見えないほど細かな泡沫が 3-4尺 (約1メートル) 周囲に吹き飛ばれ、それを吸い込んだものはこの病にかかる)라며 당시 바이러스라는 사실을 규명하지 못한 상태에서 너무나 명확한 인식을 하고 있었다.

 

이어 유행성 감기에 걸리지 않으려면(はやりかぜに-かからぬには)이라는 다음과 같은 세세한 예방수칙은 더욱 놀라움을 느끼게 한다. 1. 환자 또는 환자와 같은 사람, 기침하는 사람에게 접근하지 말아야한다.(1.病人または病人らしい者、咳する者に近寄ってはならぬ) 2. 사람이 많은 곳에 출입하지 않아야 한다.(2.たくさん人の集まっているところに立ち入るな) 3. 사람이 모여 있는 곳, 전차와 기차 안에서는 반드시 호흡보호기(마스크)를 쓰고 아니면 코와 입을 손수건과 수건 등으로 가볍게 가려야한다.(3.人の集まっている場所、電車、汽車などの内では必ず呼吸保護器(マスクの事)をかけ、それでなくば鼻、口をハンカチ手ぬぐいなどで軽く覆いなさい). 4. 소금물이나 따뜻한 물로 양치하십시오, 세척액 양치는 더욱 좋습니다. 식후 양치는 반드시 잊지 마십시오(4.塩水か微温湯にて度々含嗽せよ、含嗽薬なれば尚ほ良し.食後、寝る前には必ず含嗽を忘れるな)

 

이와 같은 100년 전 예방수칙으로는 상상키 어려운 내용과 함께 다음과 같은 유행성 감기에 걸렸다면(はやりかぜに-かかったなら)​이라는 환자의 수칙도 함께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환자의 수칙을 살펴보면 1. 독감에 걸렸다고 생각되면 침상에 누워 의사를 불러야한다,(1.かぜをひいたなと思ったらすぐに寝床に潜り込み医師を呼べ) 2. 환자의 방은 격리하고 간호사 이외에는 접촉하면 안된다.(2.病人の部屋はなるべく別にし、看護人の他はその部屋に入れてはならぬ) 3. 병이 나았다는 생각이 들어도 의사의 허락을 받기까지는 외출해서는 안 된다. (3.治ったと思っても医師の許しがあるまで外に出るな)


이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일본열도를 덮친 스페인 독감에 대하여 일본 내무성 위생국이 발표한 당시의 예방 수칙과 환자 수칙이다. 전 세계에 바이러스 자체의 인식이 없었던 시대에 실로 놀라움을 금할 수 없는 내용이다.

 

이와 같은 역사를 관통한 교훈과 함께 100년 전 당시 일본 정부의 스페인 독감에 대한 대응을 더욱 상세하게 살펴보면 많은 내용이 있다. 먼저 대중 위생 설법회를 통하여 이와 같은 예방 수칙을 전국적으로 알렸다. 이와 함께 마스크를 착용한 포스터를 일본 열도에 배포하여 기침을 통한 타액과 포말의 감염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웠다. 당시 이와 같은 마스크의 무료 배포도 일부 시행되었지만, 공급량이 적어 극히 일부에 그쳤던 내용도 파악되고 있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인구 밀집도가 높았던 도쿄와 함께 교토와 오사카 고베와 같은 긴키 지역의 대도시 피해가 컸다. 당시 고베시는 유치원에서부터 모든 학교의 휴교령이 내려졌으며 시코쿠의 에히메현(愛媛県)은 내무성의 예방수칙을 바탕으로 더욱 강력한 예방수칙을 독자적으로 시행하였다.

 

이와 함께 살펴지는 인물이 있다. 1894년 페스트균의 발견과 1889년 세계 최초로 파상풍균 순수배양법을 성공시켜 파상풍 치료법을 개발한 일본 세균학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세균학자 기타사토 시바사부로(北里柴三郎. 1853-1931)이다. 그는 오늘날 도쿄대학 의과학연구소의 전신인 사립 전염병 연구소를 설립하여 연구소가 문부성에 이관되면서 1914년 사비로 기타사토연구소(北里研究所)를 설립하였다. 당시 그는 균을 동물에게 주사하여 혈청에서 항체를 새로 만들어내는 혈청요법을 개발한 학자로 스페인 독감이 일본을 덮치면서 예방약 개발에 주력하였다. 당시 스페인 독감에 대한 바이러스를 규명하지 못한 상황에서 개발된 예방약은 많은 사람들에게 주사되어 이에 대한 부작용으로 많은 사망자가 생겨났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역사를 관통한 기타사토연구소를 바탕으로 2015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한 오무라 사토시(大村 智, 1935-)가 탄생한 사실도 짚고 가는 대목이다.

 

나아가 지난 2004년 일본의 수도 도쿄도가 이와 같은 역사를 헤아려 도쿄도 보건국에 신종 감염증 예방에 대한 전문부서를 신설였던 내용이다. 이와 같은 바탕에는 많은 공로자들이 있었지만, 1999년부터 4선의 도쿄 도지사를 역임한 우익 경향의 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 慎太郎. 1932-)의 추진력이 크게 작용하였다. 이시하라 신타로 지사는 물질문 명에 젖은 신세대에 대한 사회상을 그려낸 단편소설 태양의 계절(太陽の季節)로 34회 아쿠타가와상(芥川賞)을 수상한 작가로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이후 도쿄도는 2005년 10월 도쿄도 신종 감염증 대책 회의를 통하여 수도 도쿄의 신형 인플루엔자 대책을 발표하면서 12월에 (도쿄 신형 인플루엔자 대책 행동 계획)을 공표하였다. 당시 도쿄도는 100년 전 일본을 강타한 스페인 독감의 면밀한 자료를 정리한 내무성 자료를 바탕으로 이와 같은 신종 감염증에 대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였다. 이와 같은 바탕에서 매우 정밀한 질병발생동향 시스템이 구축되었던 것으로 필자는 알고 있다. 또한, 이와 같은 시스템으로 지난 100년 전 스페인 독감 일본 발병의 과정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이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미래에 닥쳐올 재난에 대한 다양한 대응 시스템 개발에 진력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처럼 면밀한 대책을 사전에 강구하여 정확한 시스템을 자랑하는 일본에서 왜 오늘날 일본 열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에서는 신속한 진단과 대응이 이루어지 못하였는지 의문이다. 이는 바로 올림픽 개최라는 압박에 역사의 교훈을 비켜간 세력에 의하여 전문부처의 목소리가 묻혀버린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는 신종 바이러스 코로나19의 진실을 알리고 환자를 돌보다 감염되어 34살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중국의 진정한 의사 리원량(李文亮)의 의식을 다시 헤아리게 되면서 이와 같은 같은 진실의 목소리마저 숨어버린 침묵하는 일본의 오늘이 더욱 참담하게 느껴진다.

 

이에 인체 피부세포에 유전자 변형으로 배아줄기세포와 같은 분화 특성을 갖는 줄기세포를 얻는 방식인 유도만능줄기세포 연구로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일본의 교토대 야마나카 신야(山中 伸弥. 1962-) 교수의 소신 발언이 크게 다가온다. 그는 지난 3월 10일 일본의 인기 록 밴드 엑스 재팬 리더 요시키(林佳樹. 1965-)와의 인터넷 화상 대담에서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경각심을 전문 학자의 입장에서 명확하게 피력하였다. 이어 한국의 신속한 진단을 통한 조기 대응과 드라이브스루와 같은 지혜로운 시스템을 언급하면서 코로나19의 면밀한 데이터를 가진 한국에 머리를 숙여서라도 방역 정보를 받을 수 있도록 부탁해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으로 큰 화제를 가져왔다.

 

요즈음 한국 진단키트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바람직하지 않은 발언들이 들려오고 있다. 그 어떠한 이유에서이던 인류의 재난은 공동의 적이다. 일본 아베 정부는 야마나카 신야 교수와 같은 전문 학자의 조언을 직시하여야 한다. 이에 배타적이고 편협적인 의식을 버리고 온 세계가 인정하는 우리나라 모범 방역 시스템과 세계 최강의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의 생사를 가르는 위중한 상황에서 너무나 소중하게 사용되는 우리 진단키트의 뛰어난 정확성에 대하여 부적합한 발언을 삼가하고 겸허하게 역사의 교훈을 일깨워야 할 것이다. 필자: 이일영(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 시인. artwww@naver.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119@breaknews.com
ⓒ 한국언론의 세대교체 브레이크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