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임진각 자유의 다리와 위성에서 본 한반도 ©브레이크뉴스 |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 오랜 역사를 품은 라틴어 격언이다. 이는 4세기 후반 로마 행정가 플라비우스 베게티우스 레나투스(Flavius Vegetius Renatus)가 저술한 군사학론(Epitomarei militaris) 3권에 담긴 군사학 격언으로 원문은 (그러므로 평화를 원하는 사람들은 전쟁을 준비한다-Igitur qui desiderat pacem, praeparet bellum)이다. 훗날 이에 대한 해석에서 강한 군사력이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보장한다는 해석과 한쪽의 평화가 적의 전쟁을 부르는 원천이 될 수도 있다는 시대를 관통한 해석이 동행하였다.
이와 같은 베게티우스의 군사학론은 군대의 훈련법에서부터 다양한 전술을 망라한 오랜 역사를 품은 종합 병법서였다. 이는 게르만 대이동이 시작되면서 스칸디나비아반도를 거점으로 세력을 확장한 고트족이 남하하면서 동고트와 서고트로 분열되었던 ‘서고트족’과 동로마제국을 통치하던 발렌스 황제(328-378)와 격돌한 378년 아드리아노플 전투(Battle of Adrianople)에서 방어적 편제를 가진 로마 군단이 빠른 기동력을 가진 고트족 기병의 전술에 처참하게 패한 전투의 충격으로 집필되었다.
막강한 로마군단의 영광을 드높였던 전술과 편제가 전투 상대가 없었던 평화 시대로 말미암아 오랫동안 묻혀버린 사실을 바탕으로 신속한 기동력을 가진 기병 전술을 중시하여 시대에 맞게 새로운 전술로 보완하였던 것이다. 바로 로마의 영광을 일깨우려는 뜻에서 황제에게 헌정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베게티우스의 군사학론은 로마 시대에는 정작 외면당하였다. 훗날 중세 유럽과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면서 유럽 각 나라의 군사 교육과 전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으로 오늘날 유럽사의 뿌리인 프랑크 왕국의 전성기를 열었던 카롤링거 왕조 시대의 전설적인 "샤를마뉴"(742~814) 황제가 문맹에서 이와 같은 군사학론을 공부하면서 글을 깨우쳤다. 이러한 과정에서 대소문자의 구분이 없었던 로마 문자(라틴)가 1,600여 년 만에 소문자인 카롤링거 서체(Carolingian minuscule)가 생겨난 사실도 분명하게 짚고 가야할 역사이다.
당시 로마자(라틴)는 대소문자 구분이 없어 대부분의 서적이 로마자 필기체 라는 흘림 서체로 빠르게 필사되었다. 이에 필사하는 사람에 따라 서체가 모두 달라 글을 모르는 샤를마뉴 황제와 같은 문맹자 처지에서 보면 같은 말이 모두 다르게 쓰여 있었다. 이와 같은 점을 지적하여 오늘날 상용되고 있는 로마자 대소문자의 구분이 이루어진 것이다
평화(Peace-平和)란 인류의 가장 궁극적인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평화의 사전적 의미는 평온하고 화목한 개인적인 삶의 상태에서부터 전쟁이거나 분쟁과 같은 갈등이 없는 평온한 상태를 말한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평화(Peace-平和)의 어원을 헤아려보면 다음과 같은 많은 이야기가 살펴진다.
평화(Peace-平和)의 최초 언어는 히브리어로 평화와 평안의 뜻을 품은 “안녕하세요”와 “잘 가세요”의 인사말인 “샬롬”(שָׁלוֹם-Shalom-쉘럼)에서부터 출발하였다. 이처럼 평화를 뜻하는 “샬롬”이 늘 사용하는 인사말이었던 사실은 인간의 삶과 사회에 평화(평안)가 가장 소중한 것임을 의미한 것이다. 이와 같은 평화와 평안을 뜻하는 “샬롬”(שָׁלוֹם-Shalom-쉘럼)은 유대교 율법의 바탕이었다.
여기서 주지할 사실은 완전, 건전, 완성, 회복, 보답의 뜻을 가진 솨람(םלש -shawlam)의 어근에서 빚어진 “샬롬”에는 가치가 있다는 의미의 “히스탈렘”(hishtalem)과 지급의 뜻을 가진 “슐람”(shulam) 그리고 미리 지급하다(사전지불)의 뜻을 담은 “메슐람”(meshulam)에 이어 완벽함을 뜻하는 무쉘람(mushlam)과 같은 동일 어근 속에 연관된 말들이 함께 존재한다.
이와 같은 평화와 평안을 뜻하는 “샬롬”에 대한 맥락을 성경에서 찾아보면 성경의 창세기 23장 27절(요셉이 그들의 안부를 물으며 이르되 너희 아버지 너희가 말하던 그 노인이 안녕하시냐 아직도 생존해 계시느냐)에서 평안의 뜻을 담은 안부의 인사와 열왕기상 5장 12절(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신고로 히람과 솔로몬이 친목하여 두 사람이 함께 약조를 맺었더라)에서 평화를 품은 조약이 살펴진다. 이어 시편 122장 6절(예루살렘을 위하여 평화(평안)를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에는 평화(평안)가 더욱 구체화 되어있다.
이후 고대 그리스 시대에 헬라어의 평화를 뜻하는 언어는 에이레네(εἰρήνη)이다. 이는 결합하다를 뜻하는 동사 에이로(εἴρω)에서 파생된 본디 평안의 뜻을 가진 언어로 “만들다”의 뜻을 가진 동사 포이에오(ποιέω)에서 파생된 창조 또는 생산의 명사 포이에마(ποιημα)와 합성된 말이다. 즉 평화(평안)란 어떤 관계를 통하여 안정된 상태가 이루어진다는 의미이다. 참고로 이와 같은 창조와 생산의 명사 포이에마(ποιημα)를 바탕으로 시(詩)를 뜻하는 포이에세(ποίηση) 또는 포이에시스(ποίησις) 가 생겨났다.
훗날 라틴어에서는 이와 같은 고대 그리스어 창조와 생산의 명사 포이에마(ποιημα)를 바탕으로 시(詩)를 이르는 포에마(poēma)가 생겨나 오늘날의 포엠(poem)으로 변화하였음도 참고할 부분이다. 이와 같은 고대 언어의 연관성에서 짚고 가는 내용은 시란 인류사에서 가장 오랜 문학적 장르로 고대에서부터 가장 안정적인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작업으로 인식하였다.
이러한 에이레네(εἰρήνη)는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평화의 여신으로 주신 제우스와 양손에 저울과 칼을 든 상징으로 묘사되는 율법과 질서의 여신 테미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와 같은 그리스 신화 평화의 여신 에이레네는 로마신화의 평화의 여신 팍스(Pax)와 같다)
여기서 잠시 살펴 가야 할 내용은 이와 같은 언어의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바탕인 성경의 기록이다. 구약성서는 유대인의 히브리어와 일부 아람어로 기록되었으며 신약성서는 고대 그리스어(헬라어)로 기록되었다. 주지할 점은 알렉산더 대왕이 세계를 정복한 헬라 시기에 모든 정복인 들은 헬라어(코이네)를 국어로 사용하였다. 이에 자신의 언어를 버려야 했던 유대인들이 사용할 구약성서의 헬라어 역이 필요하였다.
이에 72명의 유대인 학자들이 번역하여 편의상 70인 역(ⅬⅩⅩ)으로 부르는 헬라어 구약성서가 탄생하였다. 이와 같은 헬라어 구약성서 70인 역을 바탕으로 교리의 정립과 교회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라틴 교부 제롬(347-420)이 번역한 대표적인 라틴어 성서 불가타 역(Vulgata)이 탄생하였다. 이는 영어로 벌게잇 역(Vulgate)이며 신약성서는 4세기 무렵 로마 가톨릭교회가 이를 집대성하면서 라틴어로 다시 쓰였다.
이러한 역사를 안고 로마제국 시대가 열리면서 세계의 언어로 자리 잡은 라틴어의 평화를 뜻하는 말은 팍스(Pax)이다. 그리스 신화 평화의 여신 에이레네와 같은 로마신화의 평화의 여신 팍스(Pax)이다. 이와 같은 라틴어 팍스(Pax)에 대한 어원적인 자료는 아직 정리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필자는 개인적 의견으로 앞에서 언급하였던 고대 그리스어에서 “만들다”의 뜻을 가진 동사 포이에오(ποιέω)에서 파생된 창조 또는 생산의 명사 포이에마(ποιημα)의 연관성을 추정해본다. 나아가 라틴어 팍스(Pax)의 어원이 부재한 배경은 고대 로마의 평화와 질서의 바탕으로 삼았던 인간과 신들과의 조화를 추구한 “신들의 평화”(pax deorum) 원칙에서 헤아려 진다. 이는 최상의 신성은 헤아릴 수 없는 의식에서 언어의 어원이 부재할 가능성이다.
이와 같은 바탕에서 로마의 평화를 상징하는 팍스 로마나(Pax Romana)가 탄생한 것이다. 이는 고대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 BC. 63-AD. 14) 시대부터 5현제 시대까지 약 200년간의 태평성대를 누리던 번영기로 전쟁이 없는 평화 시대를 말한다.
이와 같은 라틴어 평화(pax)에서 오늘날 세계가 통용하는 영어 평화(peace)로 전해진 역사에는 헤아릴 수 없는 전쟁에서부터 대립과 갈등으로 얼룩진 역사의 바람이 지구촌을 휘 돌았다. 그중 세계에서 유일하게 휴전과 분단의 역사를 안고 있는 우리나라는 지난 2년 전 대립의 장막을 거두고 남과 북의 두 정상이 겨레의 뜨거운 함성 속에 평화를 향한 걸음을 재촉하였지만, 불과 2년 만에 갈등의 터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와 같은 엄중한 시기에 생각나는 인물이 있다. 노르웨이 국제평화연구소 창설자로 평생을 평화연구에 천착하여 국제 평화학을 창시한 평화연구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요한 갈퉁(Johan Galtung, 1930~) 교수이다. 그는 1964년 세계 평화학회를 세운 이후 1970년대 부터 남한과 북한을 가장 많이 방문하면서 남북한 평화 통일 연구에 주력하였던 학자이다.
갈퉁 교수는 수학자 출신의 독창적인 분석과 연구를 통하여 1980년 구소련의 해체를 예시하여 사실로 드러났고 이후 1989년 중국의 천안문 사태 2001년 미국의 911테러와 같은 상태를 예측하여 세계를 놀라게 하였던 학자이다. 이어 그는 2009년 발표한 저서 미국 제국의 몰락과 그 후?(The fall of American Empire-and then what?)에서 2020년 미국의 붕괴를 명시하여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이와 같은 논지의 배경은 역사 속의 제국사 연구를 통하여 모든 제국의 수명 주기를 분석하여 미국 제국도 예외가 아니라는 주장을 담았다. 공교롭게도 올해(2020)가 그가 예시한 해이다.
여기서 짚고 가는 내용은 세계에서 우리나라 평화 연구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그가 남북문제에 대하여 제언한 내용은 (화해와 협력을 통한 평화)였다. 이어 덧붙인 말이 있었다. 당시 일각에서 제기한 북한 붕괴론에 대하여 그는 만약 붕괴라는 것이 일어난다면 붕괴론을 언급한 붕괴가 먼저 일어난다는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오늘 한반도의 상황은 8천만 겨레의 염원을 저버리고 갈등과 대립의 골을 파 내려가고 있다. 이와 같은 서글픈 상황에서 남한의 일개 갤러리 관장은 남과 북의 위정자들에게 전한다. 남북문제에 깊은 연구를 남긴 세계적인 학자 요한 갈퉁이 제언한 (화해와 협력을 통한 평화)를 깊게 새겨 훗날 민족의 역사에 당당하게 평가받는 길을 가야 할 것이라고.... artwww@naver.com
필자:이일영
(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