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좌) 경기도 포천 산정호수/ (중) 산정호수 시비/ (우) 고 채향무 시인 시집 © 브레이크뉴스 |
삼국시대 국경의 애환을 끌어안고 흘러왔던 임진강과 강원도 평창에서 시작된 평안천 물길이 합류하는 나루터 마을 포리진(浦里津)이 오늘날 경기도 포천(浦川)이다. 이곳 포천에 해발 921.98m의 드높은 산세를 품은 전설의 울음산이 오늘날 명성산(鳴聲山)이다. 이는 후삼국 시대 후고구려(태봉)를 건국하였던 궁예(弓裔)가 911년 송악(개성)에서 철원으로 도읍을 옮긴 후 태봉(泰封)으로 국호를 바꾸었다. 이후 918년 신하 왕건(王建)의 반란으로 숨어든 곳이 울음산이었다. 당시 궁예가 망국의 통곡을 터트려 산이 함께 울었다는 이야기는 깊은 산중의 메아리를 참작하면 충분하게 설득력이 있는 전설이다. 이로부터 울음산을 한자로 표기한 명성산(鳴聲山)이 된 것이다.
이와 같은 명성산 아래 산속의 우물과 같은 풍광이 수려한 산정호수가 있다. 이는 1925년 일제 강점기 시대에 축조된 저수지에서 출발하였다. 오늘날 국민 관광지로 사랑받는 산정호수는 일제 치하에 유린당한 기운의 저항으로 이곳 유생과 농민이 합심하여 항일 의병으로 격렬하게 저항하였던 사실 또한, 역사가 품은 이야기다.
이와 같은 산정호수는 분단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에는 그 절반이 북한 땅이었다. 이에 뛰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산정호수 끝머리에 김일성 별장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있다. 이와 같은 산정호수에 서 있는 시비가 있다. 이는 포천에 거주하였던 여류시인 채행무의 시(산정호수)가 담겨있는 시비이다. 이와 같은 채행무 시인이 올해 8월 말 91세의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필자의 지인 윤장병의 이모님으로 오랜만에 지인을 만난 자리에서 이와 같은 소식을 접하고 삶의 섭리인 회자정리의 아픔을 매만지며 코로나19 바이러스 재난이 가져다준 기막힌 이야기가 세차게 가슴을 흔들었다. 이는 지난 7월 미국에 거주하는 고 채행무 시인의 막내아들이 요양병원에 계시는 어머님의 병세가 심하다는 않음을 전해 듣고 어렵게 비행기 표를 구하여 한국에 와서 2주간의 격리를 마치고 어머니에게 달려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재난이라는 유례가 없는 상황은 살아있는 어머님을 미국에서 달려왔다고 마음대로 만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7월 1일부터 완화된 조치로 영상으로 대화하는 비대면 면회이거나, 차단된 공간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비접촉 면회가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아들은 차단된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어머님과 대화해야 하는 기막힌 상황이었다. 어머니의 따뜻한 품을 생전에 안고 다시 한번 안아보고 싶었고, 주름진 손 오래도록 붙들고 싶었던 아들의 꿈은 여지없이 부서졌다. 너무나 기막힌 현실에 울음을 삼키는 아들을 바라보며 유리창 너머 병상의 어머님은 외려 (나는 괜찮아! 요즘 몹쓸 병이 난리인데 그 먼 길을 뭐하러 왔니!) 하며 안타까운 손짓을 허공에 그려대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들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2주간의 의무 격리를 마친지 불과 며칠 후 어머님의 병세가 더는 연명하기 어렵다는 연락을 받고 우여곡절 끝에 항공권 대란을 수습하여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문제는 인천 공항에 도착한 이후 직계존비속 장례식에 참여하는 경우에는 2주간의 면제를 받을 수 있지만, 코로나19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려 음성판정을 받고 달려갔지만, 이미 어머니의 발인 일이 지난 후였다. 이에 삼우제에 어머님의 묘지를 찾아 절규하는 막내아들의 울음이 너무나 아팠다는 것이다.
채행무 시인은 전북 군산에서 출생하여 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한국전쟁 당시 국군 장교였던 부군을 만나 결혼하였다. 채행무 시인은 격동의 민족사에서 친일의 무게를 떨쳐내지 못하고 스스로 (민족의 죄인)이라는 자전적 소설을 발표하였던, 그러나 문학사적으로 지워질 수 없는 (탁류)의 작가 채만식과 방계의 집안이었다.
시인은 뛰어난 문학적 소양을 가지고 있었지만, 굴절된 시대를 관통한 여인의 삶을 살아오면서 정작 자신의 꿈은 사랑하는 자식들을 위하여 미루어야 했다. 이와 같은 삶의 무게가 가벼워질 즈음에는 여인의 나이 칠순이 훌쩍 넘었다. 그러나 여인은 2007년 77세의 나이에 가슴에 품었던 꿈을 펼쳐 월간 문학공간을 통하여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이후 80세인 2010년 첫 시집 (별의 언덕에서)를 발표하여 세상에 깊은 메시지를 전하였다. 뒤늦은 시집이었지만, 그 어떠한 시집보다 아름다운 삶의 가치를 담아낸 고 채향무 시인의 영전에 시인의 시집에 품은 시집 (별의 언덕에서) 영면하시기를 기원한다.
이처럼 세상을 덮친 바이러스 재난이 낳은 이야기들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미국과 한국의 수도 간 거리는 대략 1만2천여 킬로미터로 이는 약 3만 리 거리이다. 이처럼 3만 리 하늘을 날아 찾아왔지만, 어머니의 손길마저 잡아 볼 수 없고, 마지막 떠나는 길마저 지킬 수 없는 세상이 바이러스 재난 시대의 현실이다. artwww@naver.com
필자: 이일영
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