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행방불명된 종조부의 행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시작된 잊혀진 독립운동가 발굴이 어느 덧 문우당 고서점 주인이었던 이세열 선생까지 이르렀다.
그동안 여러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관련 자료가 별로 없는 관계로 추적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으나, 특히 이번의 이세열 선생 같은 경우는 확실히 알려진 행적이 일제시대 문우당 주인이었다는 것이 유일한 기록이다.
구체적으로 1940년 12월에 결성된 경성고서적상조합 명단에 실려있는 것이 유일한 자료이니, 그동안 발굴하였던 독립운동가 중에서 가장 어려운 사례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렇게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기에 그만큼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며,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현재 최선을 다하여 조사에 임하고 있다.
당시 협동당의 당수인 김종백 선생이 1944년 일본에서 귀국하여 과연 언제부터 문우당에 출입하게 되었는지 관련 자료가 없기에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점이 있으나,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당시 협동당 관련 기록에는 자주 출입한 것으로 보아서 이는 필시 김종백 선생이 이세열 선생과 매우 밀접한 관계이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사실 이세열 선생도 협동당 당원이었는지 여부는 현재로서는 단언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으나, 분명한 사실은 독립운동가들의 회합장소로서 문우당을 제공하였다는 것은 틀림없었다고 생각하며, 이것만 놓고 보더라도 이세열 선생도 독립운동가로서 활동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문우당에 협동당의 거점을 마련한 김종백 선생이 어떤 계기에 의하여 경기도 포천으로 거점을 옮기게 되는지 정확히 모르겠으나, 1944년 12월 포천에서 체포가 되는데, 여기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과연 이 무렵에 이세열 선생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여부에 관한 부분인데, 안타깝게도 관련자료가 발견이 안되는 연고로 확인이 어렵다는 점이다.
사실 이 부분이 도출되기 위해서는 김종백 선생의 심문조서가 발견되면 실마리가 풀릴 것으로 기대하는데, 아직까지 발견이 안되어서 이렇게 추정에 근거하여 언급하는 것이 착잡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이세열 선생의 존재를 세상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싶은 사명감으로 하는 것이다.
이세열 선생은 잊혀진 독립운동가라는 의미도 있지만, 일제시대 출판인 출신의 독립운동가가 그리 많지 않은 상황에서 볼 때도 매우 중요한 사례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문우당 주인 이세열 선생의 발굴이 하나의 계기가 되어 출판인 독립운동가에 대한 연구가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 박관우 북핵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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