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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세 일본 원로 여가수 스가와라 츠즈코(1927~)

이일영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22/12/19 [09:04]

▲ 스가와라 츠즈코(菅原ツヅ子)와 목포의 눈물(木浦の涙) 음반     ©이일영 칼럼니스트

 

이웃 나라 일본에 올해 95세 나이의 스가와라 츠즈코(菅原都都子. 1927~) 원로 여가수가 있다. 가수에 대한 가장 쉬운 이해는 여성 가수들을 홍팀(紅組)으로 남성 가수들을 백팀(白組)로 나누어 경쟁하는 일본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프로그램 NHK 홍백가합전에서 살펴진다. 

 

1945년 라디오 프로그램 홍백음악시합을 바탕으로 1951년 국영 NHK 라디오 방송에서 첫 회가 시작된 NHK 홍백가합전은 1953년 NHK TV가 개국 되면서 3회부터 TV프로로 정착하여 1월에 열렸으나 4회부터 매년 12월 31일 방영되는 프로로 단 한 번의 중단 없이 올해 73회째 열리게 된다. 

 

스가와라 츠즈코 원로 여가수는 NHK 홍백가합전 1.2.4.7회 출전자로 특히 1회 첫 출연자였으며 1회 출전자 중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분으로 그 상징성은 크다.  

 

필자가 일본의 원로 여가수에 대하여 설명하는 이유는 우리 스스로 깊게 일깨워야 할 내용이 많은 까닭이다. 바로 이 가수가 우리의 정신이라 할 수 있는 민족의 민요 아리랑과 도라지를 1950년에 불러 음반으로 발매한 일본 최초의 가수라는 사실이다.

 

스가와라 츠즈코 그는 누구인가? 가수는 왜 한국의 민요 아리랑과 도라지를 불렀을까? 이에 대하여 한 번쯤 헤아릴 일이지만, 가수가 노래를 부른지 72년이 지난 오늘에도 우리 언론에서 단 한 번도 심층적인 접근은 물론 언급이 없었던 사실은 아쉽다. 

 

특히 오랫동안 수많은 우리나라 가수가 일본에서 큰 사랑을 받았으며 한류의 바람으로 일본 열도를 강타할 때 으쓱한 자랑은 연일 도배되었지만, 어려운 시대 상황에서 우리의 민요를 부르고 알린 가수의 소중한 의식은 비켜 간 것은 우리 스스로 작은 그릇임을 알린 것과 같다. 

 

스가와라 쓰즈코 여가수를 헤아리면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쏟아진다. 1927년 아오모리현 오늘날의 도와다 시에서 태어난 가수의 본명은 나가마츠 츠즈코(永松 都々子)이다. 

 

가수의 아버지는 본명이 스가와라 무츠아키라(菅原陸奥人. 1895~1971)였으며 동경음악대학의 바탕인 동양음악학교를 졸업하고 아사쿠사 오페라단에 입단하여 예명 가와이 마루메로우(河合丸目郎)인 오페라 가수로 활동하다 훗날 작곡가 무츠 아키라(陸奥明)가 되었다. 

 

아사쿠사 오페라단이란 일본 최초의 현대 여성 무용가 다카기 도쿠코(高木徳子. 1891~1919)가 주축이 되어 1916년 창단된 오페라단으로 미래의 주역인 젊은이들을 겨냥한 무대를 추구하였다. 그러나 1923년 9월 1일 일본을 강타한 관동 대지진으로 근거지 극장을 잃어 해산되고 말았다. 이후 오페라 가수 가와이 마루메로우는 1938년 작곡가의 길로 들어서 무츠 아키라(陸奥明)라는 예명으로 많은 노래를 작곡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이와 같은 작곡가 무츠 아키라의 장녀 스가와라 쓰즈코는 어려서부터 천부적인 가창력을 인정받았다. 1936년 9살 때에 혼자 도쿄에 오디션을 보러 가 엔카 창시자인 작곡가 고가 마사오(古賀政男. 1904~1978)를 만났다. 뛰어난 재능에 감탄한 고가 마사오는 그녀를 고가 히사코(古賀久子)라는 이름으로 입양하였다.

 

다음 해 1937년 10살 나이 고가 히사코는 양아버지 고가 마사오가 작곡한 아빠의 노래 시계(お父さんの歌時計)로 데뷔하였다. 이는 국민가수 미소라 히바리가 태어난 해로 당시 일본 대중가요의 최연소 취입이었다. 이 무렵 가수의 아버지 스가와라 무츠아키라가 도쿄로 이주하여 고가 마사오에게 사사하여 1938년 작곡가 무츠 아키라로 데뷔하였다.   

 

당시 많은 노래를 불렀던 고가 히사코는 13살이던 1940년 엔카 창시자 고가 마사오의 양녀에서 아버지에게 다시 돌아가 스가와라 츠즈코(菅原都都子. 1927~)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 노래와 함께 학업에 열중하였던 그녀는 아버지가 다녔던 동양음악학교가 동양음악전문학교로 바뀐 후 입학하여 18세이던 1945년 3월 졸업하고 8월 15일 종전을 맞았다.  

 

이후 오랜 전쟁의 처연한 상흔이 자욱한 시대에 스가와라 츠즈코는 독특한 비브라토 창법을 구사하며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다. 이후 24살 나이인 1951년 1월 국영 NHK 라디오 방송에서 첫 회가 시작된 제1회 NHK 홍백가합전에 첫 출연 가수로 노래하면서 일본 대중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그해 6월 고이시 에이치 감독의 영화 에노시마 엘리제(江の島悲歌)가 개봉되면서 주제가를 불렀던 노래가 10월 발매되어 큰 사랑을 받았다. 특히 이 노래는 슬픔과 비탄의 감정을 표현한 서정시를 이르는 프랑스어 엘레지(élégie)에 대한 유행이 시작된 최초의 노래였다. 

 

나아가 노래의 음성이거나 악기의 연주에서 소리에 떨림을 주는 기교인 비브라토 (바이브레이션) 창법을 최초로 구사한 가수는 큰 인기를 얻으며 엘레지의 여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참고로 영화와 노래에 등장하는 에노시마(江の島)는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시에 오늘날 다리로 연결된 섬이다.

 

스가와라 츠즈코(菅原ツヅ子) 가수의 한국민요 아리랑(アリラン)과 도라지(トラジ)와 에노시마 엘리제(江の島悲歌)와 연락선의 노래(連絡船の唄) 음반   © 이일영 칼럼니스트


스가와라 츠즈코 가수가 우리의 민요 아리랑(アリラン)과 도라지(トラジ)를 부른 배경은 무엇일까? 먼저 많은 기록을 종합하면 가수가 음반을 발매한 연도가 1950년과 1951년으로 나뉘어 있다. 가장 신뢰할 일본 국립의회도서관 음원 자료에는 근간에 새롭게 디지털 작업한 음원의 연도만 표시되었다. 

 

필자는 동족상잔의 비극적인 6.25 전쟁이 발발하였던 1950년 23살의 여가수 스가와라 츠즈코가 우리의 민요 아리랑과 도라지를 부른 배경을 깊게 헤아렸다. 

 

1995년이었다. 일본의 저널리스트 우에다 타케히코는 (한국인의 저력: 한국계 일본인의 숨겨진 실상)이라는 저서를 출판하였다. 책에는 엘레지의 여왕 스가와라 츠즈코와 국민 가수 미소라 히바리에게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기록하였다. 

 

필자가 글의 서두에 밝혔듯이 스가와라 츠즈코 가수의 본명이 나가마츠 츠즈코(永松 都々子)라는 사실에서 그의 아버지 스가와라 무츠아키라(菅原陸奥人. 1895~1971)가 오페라 가수 가와이 마루메로우(河合丸目郎)와 작곡가 무츠 아키라(陸奥明)로 예명이 바뀐 사실과 무관하게 본명의 성이 다르다. 또한, 가수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기록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덧붙여 후쿠오카 출신인 일본인 고가 마사오(古賀政男. 1904~1978)는 일제 강점기이던 1912년 가족이 맏형이 있는 인천에 이주하여 1914년까지 거주한 후 서울로 옮겨 1922년 선린상고를 졸업하고 1923년 일본으로 돌아가 일본 엔카의 창시자가 되었던 사실은 잘 알려진 내용이다. 

 

우연일까? 1947년 봄 일본의 국민 가수 미소라 히바리(1937~1989)가 10살 소녀였을 때 요코하마 사쿠라기초 에서 열린 노래자랑에서 히바리가 부른 슬픈 대나무 피리(悲しき竹笛)를 들은 심사위원 고가 마사오가 말하였다. (너는 이제는 이런 곳에서 노래할 아이가 아니다. 너는 지금 바로 가수다)라는 평가를 안고 일본의 전설적인 국민 가수가 되었다. 

 

나아가 스가와라 츠즈코가 1950년에 불렀던 도라지를 13년 후인 1963년 미소라 히바리도 불렀다. 또한, 스가와라 츠즈코 가수는 1955년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木浦の涙)을 번안하여 불렀으며 미소라 히바리는 1984년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釜山港へ帰れ)를 커버하였다. 

 

가수가 노래를 부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이 한국의 노래이던 아프리카 노래이든... 그러나 동족상잔의 비극 6.25 전쟁 중에 아리랑과 도라지를 부르고 민중의 정한으로 넘실대는 목포의 눈물을 부른 일본의 현존하는 최고의 원로 가수 스가와라 츠즈코는 짚고 가야 할 대목이 많은 역사의 행간이다. artwww@naver.com

 

스가와라 츠즈코(菅原都都子) 한국민요 아리랑(アリラン) 음원 유튜브 링크 

https://youtube.com/watch?v=zorEGRZohRM&si=EnSIkaIECMiOmarE

 

스가와라 츠즈코(菅原都都子) 한국민요 도라지(トラジ) 음원 유튜브 링크 

https://youtube.com/watch?v=F2KnYoIplUI&si=EnSIkaIECMiOmarE

 

필자: 이일영

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 시인

 

 

이웃 나라 일본에 올해 95세 나이의 스가와라 츠즈코(菅原都都子. 1927~) 원로 여가수가 있다. 가수에 대한 가장 쉬운 이해는 여성 가수들을 홍팀(紅組)으로 남성 가수들을 백팀(白組)로 나누어 경쟁하는 일본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프로그램 NHK 홍백가합전에서 살펴진다.  

 

1945년 라디오 프로그램 홍백음악시합을 바탕으로 1951년 국영 NHK 라디오 방송에서 첫 회가 시작된 NHK 홍백가합전은 1953년 NHK TV가 개국 되면서 3회부터 TV프로로 정착하여 1월에 열렸으나 4회부터 매년 12월 31일 방영되는 프로로 단 한 번의 중단 없이 올해 73회째 열리게 된다.  

 

스가와라 츠즈코 원로 여가수는 NHK 홍백가합전 1.2.4.7회 출전자로 특히 1회 첫 출연자였으며 1회 출전자 중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분으로 그 상징성은 크다.   

 

필자가 일본의 원로 여가수에 대하여 설명하는 이유는 우리 스스로 깊게 일깨워야 할 내용이 많은 까닭이다. 바로 이 가수가 우리의 정신이라 할 수 있는 민족의 민요 아리랑과 도라지를 1950년에 불러 음반으로 발매한 일본 최초의 가수라는 사실이다. 

 

스가와라 츠즈코 그는 누구인가? 가수는 왜 한국의 민요 아리랑과 도라지를 불렀을까? 이에 대하여 한 번쯤 헤아릴 일이지만, 가수가 노래를 부른지 72년이 지난 오늘에도 우리 언론에서 단 한 번도 심층적인 접근은 물론 언급이 없었던 사실은 아쉽다.  

 

특히 오랫동안 수많은 우리나라 가수가 일본에서 큰 사랑을 받았으며 한류의 바람으로 일본 열도를 강타할 때 으쓱한 자랑은 연일 도배되었지만, 어려운 시대 상황에서 우리의 민요를 부르고 알린 가수의 소중한 의식은 비켜 간 것은 우리 스스로 작은 그릇임을 알린 것과 같다.  

 

스가와라 쓰즈코 여가수를 헤아리면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쏟아진다. 1927년 아오모리현 오늘날의 도와다 시에서 태어난 가수의 본명은 나가마츠 츠즈코(永松 都々子)이다. 

 

가수의 아버지는 본명이 스가와라 무츠아키라(菅原陸奥人. 1895~1971)였으며 동경음악대학의 바탕인 동양음악학교를 졸업하고 아사쿠사 오페라단에 입단하여 예명 가와이 마루메로우(河合丸目郎)인 오페라 가수로 활동하다 훗날 작곡가 무츠 아키라(陸奥明)가 되었다.  

 

아사쿠사 오페라단이란 일본 최초의 현대 여성 무용가 다카기 도쿠코(高木徳子. 1891~1919)가 주축이 되어 1916년 창단된 오페라단으로 미래의 주역인 젊은이들을 겨냥한 무대를 추구하였다. 그러나 1923년 9월 1일 일본을 강타한 관동 대지진으로 근거지 극장을 잃어 해산되고 말았다. 이후 오페라 가수 가와이 마루메로우는 1938년 작곡가의 길로 들어서 무츠 아키라(陸奥明)라는 예명으로 많은 노래를 작곡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이와 같은 작곡가 무츠 아키라의 장녀 스가와라 쓰즈코는 어려서부터 천부적인 가창력을 인정받았다. 1936년 9살 때에 혼자 도쿄에 오디션을 보러 가 엔카 창시자인 작곡가 고가 마사오(古賀政男. 1904~1978)를 만났다. 뛰어난 재능에 감탄한 고가 마사오는 그녀를 고가 히사코(古賀久子)라는 이름으로 입양하였다. 

 

다음 해 1937년 10살 나이 고가 히사코는 양아버지 고가 마사오가 작곡한 아빠의 노래 시계(お父さんの歌時計)로 데뷔하였다. 이는 국민가수 미소라 히바리가 태어난 해로 당시 일본 대중가요의 최연소 취입이었다. 이 무렵 가수의 아버지 스가와라 무츠아키라가 도쿄로 이주하여 고가 마사오에게 사사하여 1938년 작곡가 무츠 아키라로 데뷔하였다.    

 

당시 많은 노래를 불렀던 고가 히사코는 13살이던 1940년 엔카 창시자 고가 마사오의 양녀에서 아버지에게 다시 돌아가 스가와라 츠즈코(菅原都都子. 1927~)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 노래와 함께 학업에 열중하였던 그녀는 아버지가 다녔던 동양음악학교가 동양음악전문학교로 바뀐 후 입학하여 18세이던 1945년 3월 졸업하고 8월 15일 종전을 맞았다.   

 

이후 오랜 전쟁의 처연한 상흔이 자욱한 시대에 스가와라 츠즈코는 독특한 비브라토 창법을 구사하며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다. 이후 24살 나이인 1951년 1월 국영 NHK 라디오 방송에서 첫 회가 시작된 제1회 NHK 홍백가합전에 첫 출연 가수로 노래하면서 일본 대중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그해 6월 고이시 에이치 감독의 영화 에노시마 엘리제(江の島悲歌)가 개봉되면서 주제가를 불렀던 노래가 10월 발매되어 큰 사랑을 받았다. 특히 이 노래는 슬픔과 비탄의 감정을 표현한 서정시를 이르는 프랑스어 엘레지(élégie)에 대한 유행이 시작된 최초의 노래였다.  

 

나아가 노래의 음성이거나 악기의 연주에서 소리에 떨림을 주는 기교인 비브라토 (바이브레이션) 창법을 최초로 구사한 가수는 큰 인기를 얻으며 엘레지의 여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참고로 영화와 노래에 등장하는 에노시마(江の島)는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시에 오늘날 다리로 연결된 섬이다. 

 

스가와라 츠즈코 가수가 우리의 민요 아리랑(アリラン)과 도라지(トラジ)를 부른 배경은 무엇일까? 먼저 많은 기록을 종합하면 가수가 음반을 발매한 연도가 1950년과 1951년으로 나뉘어 있다. 가장 신뢰할 일본 국립의회도서관 음원 자료에는 근간에 새롭게 디지털 작업한 음원의 연도만 표시되었다.  

 

필자는 동족상잔의 비극적인 6.25 전쟁이 발발하였던 1950년 23살의 여가수 스가와라 츠즈코가 우리의 민요 아리랑과 도라지를 부른 배경을 깊게 헤아렸다.  

 

1995년이었다. 일본의 저널리스트 우에다 타케히코는 (한국인의 저력: 한국계 일본인의 숨겨진 실상)이라는 저서를 출판하였다. 책에는 엘레지의 여왕 스가와라 츠즈코와 국민 가수 미소라 히바리에게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기록하였다.  

 

필자가 글의 서두에 밝혔듯이 스가와라 츠즈코 가수의 본명이 나가마츠 츠즈코(永松 都々子)라는 사실에서 그의 아버지 스가와라 무츠아키라(菅原陸奥人. 1895~1971)가 오페라 가수 가와이 마루메로우(河合丸目郎)와 작곡가 무츠 아키라(陸奥明)로 예명이 바뀐 사실과 무관하게 본명의 성이 다르다. 또한, 가수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기록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덧붙여 후쿠오카 출신인 일본인 고가 마사오(古賀政男. 1904~1978)는 일제 강점기이던 1912년 가족이 맏형이 있는 인천에 이주하여 1914년까지 거주한 후 서울로 옮겨 1922년 선린상고를 졸업하고 1923년 일본으로 돌아가 일본 엔카의 창시자가 되었던 사실은 잘 알려진 내용이다.  

 

우연일까? 1947년 봄 일본의 국민 가수 미소라 히바리(1937~1989)가 10살 소녀였을 때 요코하마 사쿠라기초 에서 열린 노래자랑에서 히바리가 부른 슬픈 대나무 피리(悲しき竹笛)를 들은 심사위원 고가 마사오가 말하였다. (너는 이제는 이런 곳에서 노래할 아이가 아니다. 너는 지금 바로 가수다)라는 평가를 안고 일본의 전설적인 국민 가수가 되었다.  

 

나아가 스가와라 츠즈코가 1950년에 불렀던 도라지를 13년 후인 1963년 미소라 히바리도 불렀다. 또한, 스가와라 츠즈코 가수는 1955년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木浦の涙)을 번안하여 불렀으며 미소라 히바리는 1984년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釜山港へ帰れ)를 커버하였다.  

 

가수가 노래를 부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이 한국의 노래이던 아프리카 노래이든... 그러나 동족상잔의 비극 6.25 전쟁 중에 아리랑과 도라지를 부르고 민중의 정한으로 넘실대는 목포의 눈물을 부른 일본의 현존하는 최고의 원로 가수 스가와라 츠즈코는 짚고 가야 할 대목이 많은 역사의 행간이다. artwww@naver.com 

 

스가와라 츠즈코(菅原都都子) 한국민요 아리랑(アリラン) 음원 유튜브 링크 

https://youtube.com/watch?v=zorEGRZohRM&si=EnSIkaIECMiOmarE

 

스가와라 츠즈코(菅原都都子) 한국민요 도라지(トラジ) 음원 유튜브 링크 

https://youtube.com/watch?v=F2KnYoIplUI&si=EnSIkaIECMiOmarE

  

필자: 이일영 

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 시인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입니다. '구글번역'은 이해도 높이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영문 번역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The following is [the full text] of the English article translated by 'Google Translate'. 'Google Translate' is working hard to improve understanding. It is assumed that there may be errors in the English translation.>

 

Sugawara Tsuzuko, who is 95 years old this year in neighboring Japan. 1927~) There is a senior female singer. The easiest understanding of singers is seen at NHK's Hongbaek Karaoke, a program representing Japanese pop culture that competes by dividing female singers into red teams and male singers into white teams.  

 

Based on the 1945 radio program "Hongbaek Music Competition," NHK's "Hongbaek Music Show," which began in 1951, settled as a TV program in January when NHK TV opened in 1953, but will be held for the 73rd time this year without a single interruption.  

 

Senior female singer Tsuzuko Sugawara is a participant in the NHK Red and White Singing Contest 1.2.4.7 times, especially the first appearance in the first episode, and is the only one alive among the first participants, and its symbolism is great.   

 

The reason why I explain about the senior Japanese female singer is that we have a lot of content to remind ourselves deeply. It is the fact that this singer is the first Japanese singer to sing the folk songs Arirang and Balloon, which can be called our spirit, and release them as records in 1950. 

 

Who is Sugawara Tsuzuko? Why did the singer sing Korean folk songs Arirang and Balloon Flower? It is something to understand at least once, but it is regrettable that our media has never mentioned an in-depth approach even today, 72 years after the singer sang.  

 

In particular, many Korean singers have been loved in Japan for a long time, and pride has been plastered every day when the Korean Wave hit the Japanese archipelago, but the precious consciousness of the singer who sang and informed our folk songs in difficult times is like a small bowl.  

 

There are too many stories about Sugawara Tsuzuko, a female singer. Born in 1927 in present-day Towada, Aomori Prefecture, the singer's real name is Tsuzuko Nagamatsu. 

 

The singer's father is Sugawara Mutsuaki. He graduated from the Oriental Music School, the foundation of the Tokyo University of Music, and joined the Asakusa Opera Company, where he worked as an opera singer with his stage name Kawai Marumero, and later became composer Akira Mutsu.  

 

The Asakusa Opera Company is Japan's first modern female dancer, Tokuko Takagi. Founded in 1916 by 1891-1919), the opera company pursued a stage aimed at young people, who are the main players of the future. However, it was disbanded after losing its base theater due to the Great Kanto Earthquake that hit Japan on September 1, 1923. Later, opera singer Kawai Marumero entered the path of a composer in 1938 and composed many songs under the stage name Akira Mutsu.     

 

According to the records, Sugawara Tsuzuko, the eldest daughter of such composer Mutsu Akira, was recognized for her natural singing ability from an early age. In 1936, when he was nine years old, he went to Tokyo alone to audition, and the composer, Masao Koga, was the founder of Enka. I met 1904-1978 In admiration of her outstanding talent, Koga Masao adopted her under the name Koga Hisako. 

 

The following year, in 1937, 10-year-old Hisako made her debut with her father's song "The Clock of the Father", composed by her stepfather Masao Koga. This was the year when national singer Hibari Misora was born, and it was the youngest Japanese pop song to be sung at that time. Around this time, the singer's father, Sugawara Mutsu Akira, moved to Tokyo and studied with Masao Koga, making his debut as composer Mutsu Akira in 1938.    

 

Hisako Koga, who sang many songs at the time, returned to her father in 1940 when she was 13 years old and was adopted by Masao Koga, the founder of Enka. It was renamed to 1927~). Afterwards, she was absorbed in her studies with singing, and entered the Oriental Music School, where her father attended, and graduated in March 1945 at the age of 18 and ended the war on August 15.   

 

Since then, in an era full of grievous scars of a long war, Tsuzuko Sugawara has been greatly loved by the public by using a unique vibrato style. Since then, he has become a symbol of Japanese pop culture by singing as the first performer at the first NHK Red and White Singing Contest, which began in January 1951 at the age of 24.     

 

In June of that year, director Hichi Koishi's film Enoshima Elysee was released, and the song that sang the theme song was released in October and received great love. In particular, this song was the first song to begin the trend of French lelégie, which was a lyric poem expressing feelings of sadness and grief.  

 

Furthermore, the first singer to use the vibrato (vibration) singing method, which is a technique that gives a tremor to sound in the voice of a song or in the performance of an instrument, gained great popularity and was evaluated as the queen of Elegy. For reference, Enoshima, which appears in movies and songs, is an island connected by a bridge to Fujisawa, Kanagawa Prefecture. 

 

What is the background behind Sugawara Tsuzuko's singing of our folk songs Arirang and Bellflower? First of all, many records are divided into 1950 and 1951 when the singer released the album. In the most reliable sound source data of the National Library of Congress in Japan, only the year of the newly digitally worked sound source was displayed.  

 

I deeply understood the background of the 23-year-old female singer Tsuzuko Sugawara singing our folk songs Arirang and Balloon in 1950 when the tragic Korean War broke out.  

 

It was 1995. Japanese journalist Takehiko Ueda published a book called (Korean power: hidden reality of Korean-Japanese). The book records that Korean blood is flowing to Tsuzuko Sugawara, Queen of Elegy, and Hibari Misora, a national singer.  

 

As I stated at the beginning of the article, his father, Sugawara Mutsuakira, was named Nagamatsu Tsuzuko. Regardless of the fact that 1895-1971) was renamed to opera singer Kawai Marumero and composer Mutsu Akira, the real name is different. Also, the story of the singer's mother has no record at all.   

 

In addition, Masao Koga, a Japanese from Fukuoka. 1904-1978) is a well-known fact that his family moved to Incheon, where his eldest brother was located, and moved to Seoul until 1914, graduated from Seonrin Commercial High School in 1922 and returned to Japan in 1923 to become the founder of the Japanese Enka.  

 

Is it a coincidence? When Japanese national singer Hibari Misora (1937-1989) was a 10-year-old girl in the spring of 1947, Judge Masao Koga heard Hibari sing a sad bamboo flute at a singing contest in Sakuragi-cho, Yokohama. (You are no longer a child to sing in a place like this. You became a legendary Japanese national singer with the evaluation that you are a singer right now.  

 

Furthermore, Tsuzuko Sugawara sang the bellflower in 1950, and 13 years later, Hibari Misora sang it in 1963. In addition, singer Tsuko Sugawara sang the adaptation of "Tears of Mokpo" sung by Lee Nan-young in 1955, and Misora Hibari covered Cho Yong-pil's "Return to Busan Port" in 1984.  

 

It is natural for a singer to sing. Whether it's a Korean song or an African song... However, Sugawara Tsuzuko, Japan's oldest living singer who sang Arirang and bellflower roots and tears of Mokpo overflowing with the people's passion during the Korean War, is a historical chapter with many points to point out. artwww@naver.com 

 

Sugawara Tsuzuko Korean folk song Arirang music YouTube link 

https://youtube.com/watch?v=zorEGRZohRM&si=EnSIkaIECMiOmarE

 

Sugawara Tsuzuko, a Korean folk song, "Turaji" music link on YouTube 

https://youtube.com/watch?v=F2KnYoIplUI&si=EnSIkaIECMiOmarE 

 

Author: Lee Il-young

the director of the Korean Art Center a column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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