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원하는 세상이 어려운 이유
아침부터 비가 쏟아지면서 다소 답답한 국민들의 가슴을 청소해주는 봄소식을 다시 전하고 있다.
너무나 많은 뉴스들이 홍수처럼 불어나서 국민들은 어떤 뉴스를 어떻게 소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측정치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오늘 아침 비가 내리는 서울의 상공을 뒤로하고 신문을 보다가 필자는 두 가지의 중요한 판단의 척도를 발견하였다.
왜 우리 사회가 이리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 못한가에 대한 국민들의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좋은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소개해 보기로 한다.
하나의 기사는 노무현 정부시절 국방부장관을 지낸 김장수 의원이 현 정치권에 대한 자신의 소견을 밝힌 것에서 우리가 큰 교훈을 얻을 수가 있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도발에 대한 원리원칙적인 대응을 주문하고 있지만 오히려 필자의 관심을 끄는 대목은 “정치적 교양도 없고 정치적 공학을 배운 적도 없어 걱정했는데 오히려 정치판에서 ‘전쟁’, ‘돌파’, ‘사수’ 등의 군사용어가 난무하더라. 시간이나 약속을 깨는 것은 다반사고 국방예산을 잘라내어 지역 선심예산으로 돌리는 국회를 보니 탐욕과 이기의 극치란 생각이 들었다.”는 그의 정치권에 대한 소견이다.
우리 국민들이 왜 우리가 원하는 나라, 원하는 정치가 표류하고 실종되고 있는지를 바로 김 의원이 지적한 탐욕과 이기의 극치를 보이는 정치권에 대한 정화작업이 없이 어렵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필자가 항상 강조하는 논리가 보인다.
경제적 부를 축적하는 작업과 훈련되고 절제된 선진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선진국이 되는 길의 어려움에 대한 걱정과 대책마련이 왜 시급한 것인지 그 단서를 찾을 수가 있다.
비단 국내정치영역에서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영역에서도 이러한 논리는 같이 적용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말로는 좋은 평화와 악에 대한 응징을 외교적으로 앵무새처럼 외치면서도 정작 자기들의 국익을 먼저 앞세우는 일부 강대국들의 소인배적인 논리가 국제사회의 신뢰와 국가 간의 우정을 해치는 근원인 것이다.
한 일간지의 전문기자 컬럼에서 중국이 국제사회에서는 북한의 미사일발사에 대한 원칙적인 반대를 입에 담으면서도 정작 북한과의 물밑대화에서는 정확하게 국제사회의 입장을 전달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 형국에서 말로 하는 정의의 얼굴과 뒤에서 소익을 위해서 행동하는 적은 나라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기자의 지적대로 이젠 중국도 국제사회에서 미국과 함께 경찰국가의 역할을 분담하는 대국이 되려면 un이 강조하는 북한의 잘못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를 평양에 줌으로써 북한이 국제사회의 관행을 깨는 실수를 하지 말도록 충고해야 맞는 것이다.
‘조중관계’의 조그마한 국익 앞에서 이중플레이를 하고 있는 중국의 모습에서도 왜 아직도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국가 간의 신뢰성이 많이 서고 있지 않은지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가 있는 것이다.
국내정치나 국제정치나 우리가 이상향으로 그리는 정의와 평화라는 개념과 이에 걸 맞는 정치인들의 처신과 행동, 그리고 국가들의 정직한 언행이 제대로 지켜질 때에 비로소 삶의 질에서 중요한 사람 사는 모습이 우리 마음속에 그려질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그렇지 않기에 우리가 사는 세계는 항상 갈등과 분쟁 그리고 전쟁으로 소중한 사람들의 생명을 사장시키고 우리의 양심을 팔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인 것이다.
2009.3.18일 박태우 박사의 푸른정치연구소(hanbatforu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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