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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삼별초-58]고조선과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

이동연 작가 | 기사입력 2023/09/19 [11:16]

▲필자/ 이동연 작가.     ©브레이크뉴스

 삼별초의 배 천여 척이 울돌목을 지나 진도 벽파진에 닻을 내린 날은 8월 19일, 강화를 떠난 지 74일 만이었다.

  평소 한적했던 포구에 섬 주민들이 나와 웅성거리고 있었다.

  진도의 토착민 출신인 배중손과 친숙한 사람들도 많이 나와 있었다. 물론 선발대로 진도현을 접수한 김통정과 특공대도 앞줄에 서 있다가, 김통정이 황제를 영접하고 용장사로 안내했다.

 “폐하, 불편하시더라도 이 절에서 잠시만 참고 지내십시오.”

  “그런 말씀 마오. 백성과 침식을 같이하는 것이 가장 편한 법이오.”

  그날부터 용장사를 궁궐과 관가로 개조하기 시작했다. 보름쯤 후 낙성식에서 황제가 선포했다.

   “오늘 짐은 단군 조선과 고구려를 합쳐 조고려(朝高麗)란 국호로 나라가 개창되었음 을 선포하노라. 진도가 조고려의 황도니라.  단군 조선을 고구려가 잇고 고구려를 고려가 이었거늘, 개경의 옛 왕 무리는 몽골 놈들에게 빌붙어 있도다. 그들은 더 이상 조선의 후예가 아니다. 조고려 만세!”

   모인 사람들의 환호하는 소리가 용장산을 넘는 가운데 배중손이 나섰다.

    “폐하. 이제 적극적으로 내지의 백성들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여야 합니다. 앞으로 서남해안을 적극 공략해야 할 줄로 아옵니다.”

    “암, 그래야 단군 조선의 영화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오.” 

  이어서 김통정이 아뢰었다.

     “지난번 강화도에서 노비 문서를 불태웠습니다. 조고려의 세상에 신분과 차별이 없다는 것도 알려주소서.”

     “그렇소. 사람마다 역할이 다를 뿐 주인과 종은 더 이상 없소이다.”

 

    황제가 물러간 후 삼별초 지도부만 따로 모였다. 배중손이 진도 안착의 감회를 털어놓았다.

    “삼별초가 최이의 사병으로 출발한 후 과오도 많았소. 하지만 전왕의 개경 환도 이후 모든 것을 던져 조고려를 세웠습니다. 앞으로 우리 삼별초는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를 위 

해 싸워 나가야 할 것입니다. 서해로 내려올 때 환대해준 백성들의 염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단군 조선의 재세이화(在世理化)를 실현하는 길입니다.” 

그 자리에서 그들은 세 가지 원칙을 정했다.

   첫째, 남해안과 서해안의 도서 지방을 적극 경략한다. 

  둘째,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올라가 는 세곡선稅糓船은 조고려의 몫이다.

   셋째, 조고려의 신분제 폐지를 널리 알린다.

조고려의 영토를 확보하면서 개경 정부의 재정에 타격을 주고, 동시에 민심을 사자는 것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원종이 발끈했다.

   “뭐라? 감히 조선의 명맥을 잇는다고? 이런 무엄한 놈들 같으니. 그놈들의 소굴을 오랑국( 五狼國)이라 하라.”

   승화후, 배중손, 김통정, 노영희, 유존혁 다섯 이리가 반란을 일으켰다고 비하한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삼별초는 개경 정부를 왕랑국(王狼國)이라 하며 비웃었다.

   “좋아. 한번 해보자. 너희 말대로 우리 오랑국이 네놈들 왕랑국에게 본 때를 보여주지.”

그날부터 남해와 서해의 세곡선을 보는 대로 나포하고 인근고을을 습격하기 시작했다. 개경의 원종에게 삼별초의 출몰을 알리는 고을 수령들의 공문이 쇄도했다. dyl1010@hanmail.net

 

[소설 삼별초-58]고조선과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

-이동연 작가

  삼별초의 배 천여 척이 울돌목을 지나 진도 벽파진에 닻을 내린 날은 8월 19일, 강화를 떠난 지 74일 만이었다.

  평소 한적했던 포구에 섬 주민들이 나와 웅성거리고 있었다.

  진도의 토착민 출신인 배중손과 친숙한 사람들도 많이 나와 있었다. 물론 선발대로 진도현을 접수한 김통정과 특공대도 앞줄에 서 있다가, 김통정이 황제를 영접하고 용장사로 안내했다.

 “폐하, 불편하시더라도 이 절에서 잠시만 참고 지내십시오.”

  “그런 말씀 마오. 백성과 침식을 같이하는 것이 가장 편한 법이오.”

  그날부터 용장사를 궁궐과 관가로 개조하기 시작했다. 보름쯤 후 낙성식에서 황제가 선포했다.

   “오늘 짐은 단군 조선과 고구려를 합쳐 조고려(朝高麗)란 국호로 나라가 개창되었음 을 선포하노라. 진도가 조고려의 황도니라.  단군 조선을 고구려가 잇고 고구려를 고려가 이었거늘, 개경의 옛 왕 무리는 몽골 놈들에게 빌붙어 있도다. 그들은 더 이상 조선의 후예가 아니다. 조고려 만세!”

   모인 사람들의 환호하는 소리가 용장산을 넘는 가운데 배중손이 나섰다.

    “폐하. 이제 적극적으로 내지의 백성들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여야 합니다. 앞으로 서남해안을 적극 공략해야 할 줄로 아옵니다.”

    “암, 그래야 단군 조선의 영화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오.” 

  이어서 김통정이 아뢰었다.

     “지난번 강화도에서 노비 문서를 불태웠습니다. 조고려의 세상에 신분과 차별이 없다는 것도 알려주소서.”

     “그렇소. 사람마다 역할이 다를 뿐 주인과 종은 더 이상 없소이다.”

    황제가 물러간 후 삼별초 지도부만 따로 모였다. 배중손이 진도 안착의 감회를 털어놓았다.

    “삼별초가 최이의 사병으로 출발한 후 과오도 많았소. 하지만 전왕의 개경 환도 이후 모든 것을 던져 조고려를 세웠습니다. 앞으로 우리 삼별초는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를 위 

해 싸워 나가야 할 것입니다. 서해로 내려올 때 환대해준 백성들의 염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단군 조선의 재세이화(在世理化)를 실현하는 길입니다.” 

그 자리에서 그들은 세 가지 원칙을 정했다.

   첫째, 남해안과 서해안의 도서 지방을 적극 경략한다. 

  둘째,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올라가 는 세곡선稅糓船은 조고려의 몫이다.

   셋째, 조고려의 신분제 폐지를 널리 알린다.

조고려의 영토를 확보하면서 개경 정부의 재정에 타격을 주고, 동시에 민심을 사자는 것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원종이 발끈했다.

   “뭐라? 감히 조선의 명맥을 잇는다고? 이런 무엄한 놈들 같으니. 그놈들의 소굴을 오랑국( 五狼國)이라 하라.”

   승화후, 배중손, 김통정, 노영희, 유존혁 다섯 이리가 반란을 일으켰다고 비하한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삼별초는 개경 정부를 왕랑국(王狼國)이라 하며 비웃었다.

   “좋아. 한번 해보자. 너희 말대로 우리 오랑국이 네놈들 왕랑국에게 본 때를 보여주지.”

그날부터 남해와 서해의 세곡선을 보는 대로 나포하고 인근고을을 습격하기 시작했다. 개경의 원종에게 삼별초의 출몰을 알리는 고을 수령들의 공문이 쇄도했다. dyl10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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