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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백야행', 퇴행적 사랑이 부른 살인 전주곡

거세당한 생명, 어둠 속에서 수 많은 죽음을 낳다

정선기 기자 | 기사입력 2009/11/16 [00:09]
차이코프스키의 발레곡 '백조의 호수' 中 제2막 제10곡 '정경'이 재벌총수와 무표정한 베드신을 연출하는 손예진과 목을 졸라 잔인하게 살해하는 고수가 마치 칸막이벽을 두고 옆방에서 일어나는 듯 교차되면서 영화 <백야행-하얀 어둠 속을 걷다>(감독 박신우, 제작 시네마서비스-폴룩스픽쳐스, 이하 백야행)는 시작된다.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 소설이자 지난 2006년 초 일본 tbs tv에서 톱스타 야마다 타카유키-아야세 하루카가 주인공으
로 드라마화 되기도 한 범죄 스릴러물이다.
 
영화 <백야행>에서는 현재와 14년전 사건이 교차되어 추리와 추적을 거듭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며 관객들은 극중 여주인공 미호(손예진 분)의 비밀을 캐내는 재벌총수 승조(박성웅 분)의 비서 시영(이민정 분)과 사건담당 형사 한동수(한석규 분)의 시선을 따라 끔찍한 살인 사건의 비밀을 쫓게 된다.


▲ 영화 '백야행'을 배경으로 유희열과 '넬'의 김종완이 부른 '내가 바라는 나' 뮤직비디오 엔딩씬 캡쳐화면     © 정선기 기자
 
드라마와 달리 이번 영화에서는 서로를 등지고 태어났지만 늘 함께 있어야만 하는 샴 쌍둥이의 운명처럼 빛이 되기 위해 태어난 아
이와 그 한줄기 빛을 따라 15년간 외사랑을 해온 아이가 퇴행적 사랑으로 얽혀 속수무책인 공권력의 뒤에 숨어 세상을 조롱하고 수 많은 죽음을 야기하는 것에 이야기의 초점을 맞췄다. 즉 범인을 먼저 밝히고 이들의 범행을 거슬러 올라가 배경과 사연을 조명하는 방식이다.
 
영화 초반부부터 생명과 죽음을 상징화 한 베드신과 살인 장면이 호기심을 자아내며, 침대 위 여주인공의 표정은 차갑기만 하고 한 사람의 목숨을 끊는 킬러의 모습은 살인 후에도 까닭모를 분노와 땀으로 가득차 마치 남녀가 교환하는 정사가 생명과 죽음의 경계에서 킬러에게 전달되는 듯해 섬뜩한 기분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지난해부터 영화 <추격자>와 <박쥐> 등 영화 속에서 피와 살인이 소재가 된 범죄 스릴러가 충무로를 뒤흔들어 놓은 터라 탄탄한
원작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개봉 초기부터 주연배우 손예진의 노출 연기와 존속살해나 나영이 사건과 같은 '유아 성폭행' 등 자극적인 사회적 이슈를 소재로 화제를 낳은 바 있다. 하지만 시간의 간극과 주인공들의 운명이 다소 작위적으로 연출돼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게 흠이다.

존속 살해, 그들의 죄는 유죄인가 무죄인가
 
"도대체 너희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거니?"  극중 14년전 살인사건 담당형사로 분한 한석규의 말처럼 현재에 일어난 사건이 과거의 사건과 깊은 연관을 띠면서 원작 소설이나 드라마와 달리 두 시간 내외의 러닝타임에 담기 위해 감독은 또 다른 화자로 승조의 비서실장인 시영이란 캐릭터를 통해 내러티브에 부족한 개연성을 살리려했다. 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이들의 성장사에 공감하기란 쉽지 않다.
 
14년전 한 가정을 배경으로 연이어 벌어진 살인사건을 쫓던 동수는 유력한 용의자인 미호의 집을 방문하고 내연남의 욕망의 대상
으로 딸을 바치며 돈을 챙기는 미호의 주변에 용의점을 찾고 탐문한다.

이어 피해자의 집에서 요한을 만나 태양의 형상을 띤 공작종이를 끼운
소설책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미호의 손을 떠나 요한의 손에 쥐어있음을 발견하고 사건의 전말을 추적한다. 이 태양의 형상을 띤 공작종이는 미호에 대한 요한의 사랑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며 극 종반에 그를 쫓는 추격자들에게 수 차례 단서를 제공한다.
 
사건에 너무 골몰한 나머지 동수는 자전거를 사달라는 아들에게 조건부로 살인사건이 일어난 폐선박의 어두운 비상통로로 내몰고 결국 실족사로 아들을 잃은 죄책감에 의욕을 잃자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든다. 이 부분은 여느 관람객들의 평가처럼 동수가 아들을 어두운 폐선박 비상통로로 내몬 것은 어떠한 상징이 숨겨져 있는지 몰라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이러한 14년전의 사건 속 주인공들을 찾아나선 강력반 형사가 실종되고 미호의 뒤를 쫓던 시영과 조우한 동수는 사건의 공소시효를 1년 여 앞둔 시점에서 과거를 추적해나간다.
 
현실의 미호와 요한의 비극적인 운명은 영화 초반부 흘러나오던 '백조의 호수'와 왈츠풍의 클래식 배경음악 가운데 순백의 공간 속에 놓인 미호와 어둠의 공간에서 집행자 역할을 묵묵히 해나가는 요한(고수 분)을 시각적으로 대비시켜 놓고 있다.


▲ 영화 속 청부 킬러 요한과 살인청부의 주체 미호가 스치는 장면     © 시네마서비스


영화는 미궁 속의 사건에서 녹음 테이프와 가스레인지 위에 놓인 냄비에서 단서를 찾으면서 최근 한반도 전역을 경악케 한 '유아폭행 사건'을 떠올리듯 유아에 변태성욕을 가진 내연남을 살해하고 딸을 학대하는 계모보다 못한 미호의 엄마가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지만 눈 하나 까딱않고 '엄마가 죽었어요'라는 가해자의 딸과 피해자의 아들에게 용의점을 발견한 동수의 시선을 따라간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친구를 이용해 장애되는 모든 것들을 제거하며 지하철 물품보관함에 살인청부 지령을 주는 미호와 그녀가 가지려는 부와 명예 등을 지켜주려 그녀 주변의 장애물들을 기계적으로 제거하면서 '사랑을 표현하려 하는' 킬러 요한은 동수의 대사처럼 서로를 등지고 태어나 바라볼 수 없지만 늘 함께 있지 않으면 안되는 운명을 간직한 비극적인 '샴 쌍둥이'와 같아 보인다.    

"걔네들 등이 붙어 있는 샴 쌍동이로 살아온거야.
같이 있으면 괴롭지만 떨어져서는 살 수 없는..." - 동수의 대사 중에서

 

▲ 영화 '백야행'에서 끔찍한 살인을 계획하는 샴 쌍둥이, 미호(손예진 분, 사진 왼쪽)와 요한(고수 분, 사진 오른쪽)     © 시네마서비스


  
영화 후반부에 살인을 멈추려는 요한에게 승조의 딸 사진을 건네며 성폭행을 지시하고 집에서 반색을 한 채 승조를 맞이하며 승조
의 딸 앞에서 옷을 벗고 전라 상태로 그녀를 감싸안으며 자신의 상처로 얼룩진 과거를 전이시킬 때는 섬찟하기까지 하다.
 
특히, 공소시효 만료일에 화려한 패션쇼와 함께 브랜드 론칭쇼에서 나타난 요한은 마치 영화 <다크 나이트>의 조커처럼 웃고 있는 삐에로 가면을 쓰고 그녀가 가지려하는 것을 지키며 그를 쫓는 동수 일행 등 세상을 다시 한번 조롱한다.


엄마의 내연남으로부터 유아 시절 수차례의 성폭행을 당한 지아(미호)는 영화 초반부에 무표정한 정사와 맞닿아 생명을 거세당한 채 거짓과 욕망으로으로 가득한 정사를 벌이는 한편, 마치 예수를 부인한 제자 베드로처럼 요한을 외면하면서 역설적으로 자신의 성공에 장애가 되는 수 많은 주변인물들을 계획적인 청부살인을 통해 제거하며 죽음을 양산한다.

또한 동수가 14년전 폐선박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전모를 비로소 알게 되지만 사건의 전말을 쫓는 사람들을 피해 숨어든 어느 모텔에서 요한이 미호와 방 출입문을 사이에 두고 기대어 괴로와하는 것을 멈추게 하지도, 엔딩신에서 미호와 요한이 따스한 햇살 아래 야외 벤치에서 서로 등지고 바라보도록 해주지 못한 채 낮이지만 언제나 칠흑같은 죄책감 속에 살게한 이유에 대해 관객들에게 반문한다.
 
우리는 연쇄 살인범 요한과 이를 청부한 여자 미호의 세상을 향한 복수에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영화관을 나서면서 하얀 어둠 속으로 내몰린 이들에 대한 동정심보다도 최를 짓고도 눈부신 햇살에 가려 구분할 수 없게 되어버린 이들의 모습이 영화 <올드보이>의 괴물이 되어버린 오대수와 오버랩 돼 깊은 여운을 남긴다.  



▲ 영화 '백야행' 중에서 손예진과 고수가 따스한 햇살 아래 등을 지고 앉은 장면 © 시네마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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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기 기자 블로그 - '디지털 키드 푸치의 이미지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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