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쓴 시는 대체로 몇 가지 특성이 있다. 우선 우리의 글인 한글로 썼다. 그리고 주지주의적인 시어를 동원하지 않아 시를 읽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거기에다가 자연이 가진 녹색의 위대함과 인간이 가진 지고한 심성 세계인 사랑을 노래했다. 산과 강은 영원하다. 산과 강 사이에서 자리고 있는 식물은 제 철에 나고 제 철에 시든다. 이 역시 영고불변의 진리이다. 녹색은 신선하다. 녹색은 빨주노초파남보, 보남파초노주빨, 아름다운 색을 만들어 낸다. 녹색이 피워낸 꽃들은 빨주노초파남보, 아름답다.
꽃을 소재로 한 몇 편의 시
꽃을 소재로 한 몇 편의 시를 썼다. 4월 어느 날,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려내는 화가 분과 한강 가를 걷다가 별꽃을 보게 됐다. 별꽃은 이름 그대로 아주 작게, 눈에 뜨이는 꽃이다. 필자는 “허름하지만, 빛나는 별꽃, 그대의 영토로/있는 힘을 다하여 달려 나갈거야”라고 실토했다.
“별꽃, 4월 처절한 봄날의/햇볕을 머리에 이고/네가 날 좋아만해준다면/나는 나의 큰 몸을 송두리째 던져서라도/너를 사모하고 말거야.//작은 입술 팔랑대며/소곤소곤 나에게로 다가온//무소유 얼굴로/욕심, 하나도 없이/슬며시슬며시/끝내는 내 영혼의 모든 공간을 잠식해버린/네 고결한 순결//녹색 잡초 사이사이에/고운 얼굴로 의연하게 자리 잡은/허름하지만, 빛나는 별꽃, 그대의 영토로/있는 힘을 다하여 달려 나갈거야.//밤하늘의 별들은/어둠 속 멀고 먼 곳에서/몇 억 광년 반짝이지만//땅위 작디작은 별꽃들은/태양을 오래오래 입맞춤하며/내 가슴 속에서 두근두근, 설레임으로/영원한 몸짓으로 크게크게 반짝이게 할거야.//그대, 내가 진정으로 사모하는, 작은 꽃, 별꽃이여. (자작시 '별꽃'의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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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상상력 속으로 들어가/함께만 할 수 있다면//긴긴 날/꽃필 날 기다리며//연노랑 생각을 존중하며//오래 오래 친구로 남고 싶어//세상을 살면서/뼈아픈 날이 있을지라도//너의 아름다운 들판에/그냥그냥/속해만 있고 싶어. (자작시 '유채꽃'의 전문)”
구리 한강 시민공원의 둔치에는 찔레꽃 울타리가 만들어져 있다. 시골 고향마을 뒷산에 피었던 찔레꽃이 내뿜던 향기를 잊을 수가 없다. 어린 시절에 취했던 찔레꽃 향과 오늘의 찔레꽃 향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찔레꽃, 지나가던 발길을 멈추고/서 있을 만큼/진하게 다가온 네 꽃 향이 없었다면/난 하루도/너를 기억하지 않았을 거야//찔레꽃, 넌/한 송이 두 송이/그저그저 피어난 외로운 꽃이 아닌//가시 줄기 사이사이에/수백 수천 송이 무더기로 피어/세상을 향해 똑 같은 향을 내뿜고 있지//향기를 가진/꽃이 된다는 것은//누군가에게 오래오래/기억된다는 것은//한번이라도, 모든 것을 다 바쳐, 열정적으로/진한 향을, 발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야//먼발치에서라도/네 하얀 꽃잎이 보이면/나도 몰래, 마음 설레어 옴을 어찌하면 좋으랴.(자작시 '찔레꽃 향'의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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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빨-꼴통이니라는 이념적 색깔로 치부되는 사람들
근-현대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념과 성장주의라는 질곡의 톱니바퀴 속에서 으깨어지듯 살아왔다. 지금도 좌빨이니 꼴통이니라는 이념적 색깔로 치부되는 사람들이 이 나라에 가득하다. 일제 식민지 치하, 수 백만명이 희생된 민족 간의 전쟁, 경제 강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경제전선 속에서 몸 바쳐 일 해왔다.
지난 3월 서울시청 뒷편의 청계천 입구 도로에서는 6.25 60주년 노천 사진 전시회가 열렸다. 그 사진들은 한 마디로 “아주 더럽고-추하고-미쳐버렸던 전쟁 '6.25'”라고 외치고 있었다. 앙상한 광대뼈를 드러낸 전쟁고아의 얼굴에서 우리의 아픈 과거를 얽어냈다. 우리민족이 미래로 나아갈 때는, 좋은 일만 있기를 빌고도 또 빌었다.
“초야의 언덕 밑에 꼬꾸라져 죽어 있는/이름 없는 여인의 시체와/어느 어린이의 아버지였을/자의 주검을 담은 사진을 바라보면서//제발, 개 한 마리의 죽음보다 못한/싸구려 죽음을/다시는 허용하지 말기를//그 처럼 추악한 전쟁이/이 땅에서 또 일어나지 않기를/빌고도 또 빌었습니다//뼈만 앙상하게 남은/피골이 상접한/전쟁 고아였을/얼굴이 담긴 비참스런 사진을/보고 또 보면서/무심코 나오는 욕설을 어찌할 수 없었네요.//씨팔, 씨팔, 개씨팔.//(자작시 '빌고도 또 빕니다'의 일부)”
전쟁이 할퀴고 간 민족의 가슴 속에는 성처 투성이 일 것이다. 60년이 흘렀어도 두려움이 가시지 않는다. 그 두려움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여린 마음을 “친구, 그대와 더불어”라는 시에 담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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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는 문학의 도구를 이용, 자연주의를 동경
우리 민족의 미래, 오늘 이 이후의 시대는 그런 모순이 뒤범벅된 사회생활의 연속이 아닐 것이다. 이쯤해서 필자는 시라는 문학의 도구를 이용, 자연주의를 동경해보는 것이다. 첨단 물질문명시대, it발달로 인한 대중미디어와 쇼셜 미디어의 발달로 인한 극도의 소통시대에 시란 과연 무엇일까? 시의 존재성을 묻고 따져보면서 자연주의를 흠모하게 됐다. 필자의 시 “새벽의 고백”은 내가 나에게 보내는 고백의 시구이다.
“어둠 속에서 빛으로 떠오르며/동을 트게 하는/태양을 바라보며 고백 합니다.//알지 못하는 곳에/무한한, 끝이 없이 넓은/대지가 있음을 알게 해주시고//늘 바라보고 사는 주변이/항상 더러울 수 있지만/그 어디엔가, 아름답고 향기로운 평원이/준비되어 있다는 것을/한시라도 잊지 않게 해주시고//좁은 식견으로는/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깊이 있는 지식의 세계가/반드시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시고//편협한 마음으로/세상을 서툴게 살아가고 있지만/그 누군가, 마음의 넓이가 한량없이 넓어/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순수한 사람이 꼭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시고//새벽마다 찾아오는 그대 빛살 하나에라도 감응하여/사람의 품위를 잃지 않는 겸손한 사람으로/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기를/내가 나에게 바라고 있습니다. (자작시 '새벽의 고백'의 전문)”
역사의 중심에는 인간이 서 있다. 자연의 중심에도 인간이 서 있는 것일까? 아니다. 자연은 오직 자연이 중심이다. 그래서 시인인 필자는 자연을 바라보며 자연을 노래하고, 둔탁한 시적 감수성으로 자연을 표현해왔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솔직하게 시인하는 시어를 나열했다.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삶은 살만한 가치가 많고도 많다는 사실을 “빨주노초파남보”라는 시로 그려냈다.
“비온 후, 맑은 하늘 강줄기 위에/무지개가 떴습니다.//빨주노초파남보//그 허공에/하나하나 색깔이 뜨기도 어려운데/여러 색깔이/한꺼번에 떠 있습니다.//어느 날 나에게 온, 마음씨 이쁜 그 이는/무지개 같은 존재입니다.//그대가 나의 손을 잡아주는 순간/내 가슴은 늘 두근두근 거렸고/내 삶은 하늘의 무지개 되어/영롱한 색으로 채색되고 말았습니다.//하늘의 무지개는/잠시 떠 있다가 이내 없어져 버려/넋을 놓고 바라볼 뿐이지만//스스로 내가 좋다며/내 가슴 속으로 나비처럼 날아 들어온 그이는/가끔씩 날 속이긴해도/무지개 보다 더 높은 곳으로 나를 훨훨 띄워준//아무 것도 가진 게 없어/벌거벗고 있을 때라도/나와 늘 함께하는, 희망이란 친구입니다.(자작시 '빨주노초파남보'의 일부)”
그러나 자연의 일부인, 인간인, 필자는 “미련한 놈”에 귀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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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큰 은인”이 누군지를 발견했다. 부모다. 결국, 부모-선조를 낳아주고 길러준 은인은 자연이 아닐까? “세상에서/가장 큰 은인은/부모//내 생명의/모든 것을 주었으니까.(자작시 '큰 은인'의 전문)” 아름다운 자연, 영원한 자연에 비하면, 필자의 시들은 유한하고, 냄새나는 똥에 불과할, 무가치한 잡문 같은 존재일 수 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이쯤해서 내가 나를 고발한다. 나의 모든 시는 자연에서 표절해왔다. 자연에게 허락도 얻지 않고 몰래 몰래 훔쳐왔다. 그런 점에서 내 시는 막 싸놓은 똥 같이 풀풀 냄새가 난다. 나는 나뿐 놈이다. 내 시에 마구잡이로 똥칠을 해줄 수 있는, 아니 개똥칠을 해줘도 고마울, 용기 있는 문학평론가의 출현을 기대한다.
언제나 “큰 도둑”이 날 에워싸고 있어
이 글의 끝이다. 내 곁에는 언제나 “큰 도둑”이 날 에워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 아연실색 했다. “세상에서/가장 큰 도둑놈은/죽음//그 도둑놈이/나의 모든 것을/훔치고 말겠지(자작시 '큰 도둑'의 전문)” 슈퍼마켓에서 빵 하나를 훔치는 이가 있다면 그는 분명 도둑놈이다. 길 가던 사람의 주머니를 털면 더 큰 도둑놈이다. 흉기를 들고 집에 들어가 돈을 훔쳤다면 아주 큰 도둑놈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도둑놈은 누구일까라고 생각해봤다. 죽음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죽음은 한 인간의 모든 것을 한 순간에 훔쳐버리니까. 도둑한테 죄주는 검사, 판사도 그 도둑을 피해갈 수 있겠나? 삶은 다, 그런 거지. 하하하. moonilsuk@korea.com
*필자/시인-한국문인협회 회원. 본지 발행인. 문일석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