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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적자 대한민국이 계승해야 할 대한제국

노중평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2/05/27 [07:02]
요즈음 신문을 보면 이 나라가 주사파의 나라가 된 것처럼 떠들어대고, 아직 오지도 않은 선거 때문에 시끌벅적하다. 주사파는 애국가를 부정하고 북한을 비판하는 것을 금기시한다고 한다. 각 정당들은 자기 집 문패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 모르고 횡설수설하기가 일수이다. 이런 분들을 위하여 다음 글을 쓰기로 하였다. 

 지금 쓰고 있는 사적 제124호 덕수궁의 명칭을 일부 역사학자들이 경운궁으로 고치자는 주장이 있어서, 2011년 12월 2일 문화재청에서 공청회를 열었다. 문화재청은 공청회 결과를 심의하여 이름을 바꿀지 말지를 결정할 것이라 하였다. 

 덕수궁의 역사를 보면 원래 월산대군의 사저였는데, 임진왜란 때 왕의 법궁인 경복궁이 소실되어, 선조가 행궁으로 썼다가, 광해군이 1608년에 즉위한지 3년 후인 1611년에 경운궁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1620년 인조가 반정에 성공하여 경운궁의 침전(즉조당으로 추정)에서 즉위하였다. 

 1623년에 선조의 침전을 빼고 나머지 건물은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어 경운궁이란 명칭 사용이 유명무실해졌다.
원구단과 황궁우.jpg

 대한제국의 상징 환구단과 황궁우. 덕수궁의 맞은편에 있었으나 일제가 허물어버렸다. 


 1893년 10월에, 선조가 의주 파천에서 돌아와 경운궁에 입궁한지 5주갑(300년)이 되는 해에, 고종이 세자(후에 순종이 됨)를 데리고 경운궁의 즉조당에서 배례를 하였고, 4년 후인 1896년에 환구단을 지어 천제를 지내고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대한제국의 법궁으로 하면서 명칭을 덕수궁으로 바꾸었다. 

 덕수궁이라는 명칭은 원래 태상왕이나 상왕이 거처하는 이궁의 명칭이다. 조선왕조 제2대 정종 때로부터 덕수궁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는데, 이때 덕수궁이라는 명칭은 태조의 궁이라는 뜻으로 쓴 것이었다. 제3대 태종 때는 태상황인 태조가 덕수궁에서 사신을 맞기도 하였다. 송나라 때에도 덕수궁이라는 명칭을 쓴 것을 보면 태상왕이나 상왕의 거처를 일반적으로 덕수궁이라 호칭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한제국의 고종황제는 1906년(무오년) 12월 20일 덕수궁의 함녕전咸寧殿에서 승하하였다. 

  원래의 덕수궁은 지금 연세대학이 있는 연희방에 있었고, 연희궁衍禧宮으로 불렸다. 연희궁은 정종이 왕위를 태종에게 선양하고 난 뒤에 살았던 곳이다. 현재 궁궐터는 연희대학교 자리로 추정하는데 연희동延禧洞이란 동명이 여기에서 생겨났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연희방이 경기도 고양군 연희면에 속하게 되면서 6.25사변 때는 연세대학교 뒷산을 연희고지로 불렀다. 

 여기에서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은 궁의 이름으로 고치는 데 일제 잔재 유무만을 따질 것이 아니라 조선왕조의 국도 한성의 범위와 대한제국의 법통 안에서 역사를 광범위하게 따져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서울을 백제시대에 한성漢城(백제의 도성이라는 뜻)이라 하였고, 신라시대에 한양漢陽이라 하였다. 백제에서 한강이 있기 때문에 한성이라 했던 것이다. 이 이름이 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500년이나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서울의 역사를 한양 600년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이라 볼 수 있다. 

 한강과 한성은 천문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漢에는 은하수라는 뜻이 있고, 城에는 국도國都의 도성都城과 부도符都라는 뜻이 있고, 陽에는 태양太陽이라는 뜻이 있다. 이렇게 보면, 한강이라는 명칭이 단군조선시대에 한반도에 있었던 막조선 때부터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덕수궁의 정문을 대한문大漢門이라 하는데, 이 명칭은 대은하수大銀河水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뜻이다. 원래는 경운궁의 동문東門인 대안문大安門이었으나 대안문 앞이 도심이 되면서 대한문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고종 47권, 43년(1906 병오 / 대한 광무(光武) 10년) 4월 25일(양력) 2번째 기사에, “경운궁의 대안문을 대한문으로 고치다”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건도감(重建都監) 의궤 당상(儀軌堂上) 이재극(李載克)이 아뢰기를, “경운궁(慶運宮) 대안문(大安門)의 수리를 음력 4월 12일로 길일(吉日)을 택하여 공사를 시작할 것을 상주(上奏)합니다.” 하니, 제칙(制勅)을 내리기를, “대한문(大漢門)으로 고치되 아뢴 대로 거행하라.” 하였다.

 이 글은 대한제국의 고종황제가 경운궁의 대안문을 대한문으로 고쳤다는 기록이다.

 <대한문상량문(大漢門上樑文)>이 "황하가 맑아지는 천재일우의 시운을 맞았으므로 국운이 길이 창대할 것이고 한성이 억만 년 이어갈 터전에 자리하였으니 문 이름으로 특별히 건다."하였는데, 조선왕조의 대안문 상량문이 아니고 대한제국의 대한문의 상량문임을 알 수 있다. 

 만약에 현재의 명칭 덕수궁을 경운궁으로 고친다면 대한문 역시 대안문으로 고쳐야 하는데, <조선왕조실록>에, "고종황제가 대안문을 대한문으로 고쳤다"고 했으니, 후대에 이를 고친다는 것은 역사를 훼손하는 일이 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궁 이름을 경운궁으로 환원한다면 궁궐도 환원해야 할 것이고, 경운궁의 정문이었던 남문인 인화문仁化門도 복원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덕수궁 전체를 다시 짓지 않으면 아니 된다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사태가 그렇게 발전하게 된다면 아예 이참에 환구단을 제대로 복원하여 대한제국의 역사유물을 한 점이라도 살려내는 것이 도리라고 본다. 그렇게 할 의사가 없다면 지금 그대로 놓아 두어야 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대한문과 덕수궁이라는 명칭은 대한제국의 역사유물로 남겨 두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어쨌거나 나는 고종황제가 국호를 대한이라고 한 데 대하여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왜 대한제국을 선포할 때, 대한제국의 국호를 한韓으로 하였느냐는 불만이었다. 우리의 국호가 韓으로 한정되면 우리의 역사가 단군왕검, 한웅천왕, 한인천제, 황궁, 마고로 거슬러 올라가며 모두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생각하면서 생각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고종황제가 문득 내게 나타나셔서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韓이란 왕이라는 뜻이야. 원래 순舜 임금을 뜻하는 문자였다고 하더군. 단군왕검이 세우신 조선나라 시대엔 왕이라는 의미로 썼지. 왕검 다음 서열의 왕을 말하는 호칭이었어. 조선이 멸망하고 삼한시대로 들어섰는데, 이때의 한은 임금의 의미로 썼어, 그러니 대한은 큰 삼한의 왕이라는 뜻이야.

 마한馬韓은 기준이 세운 기자조선奇子朝鮮의 마지막 왕의 이름일세. 기준이 금마에 도읍하지 않았나. 그리고 백제를 멸망에 이르게 한 의자왕의 아버지 무왕武王은 익산에 도읍하였네. 익산이 금마가 아닌가? 그러니 대한이 삼한과 관련이 있네. 삼한에 마한이 있었고, 마한이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의 이름이니 단군왕검께서 세운 조선과 관련이 있는 것일세. 그러니 자네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 어찌 단군왕검이 세운 조선과 관련이 없다고 할 것인가? 또한 조선이 배달나라와 관련이 있고, 배달나라가 한국과 관련이 있고, 한국이 마고지나와 관련이 있으니 어찌하여 韓에서 역사가 단절된다고 보는가? 韓의 위대함이란 바로 이런 데에 있네.

 삼한시대는 진秦에게 멸망한 조선이 74국으로 나뉘어 일부는 중원 대륙에 남고 일부는 한반도로 이주하여 살기 시작한 시대였네.

 내가 국호를 대한이라 했다고 탓하지 말게. 지금 자네가 살고 있는 나라의 꼴을 좀 보게. 삼한시대 초기와 무엇이 다른가? 이제 미국이 나라 찾아 준지 60년을 겨우 넘겼을 뿐인데 사분오열하여 물고 뜯으니 무엇을 위하여 물고 뜯는가? 역사를 위해서인가? 아니면 철학을 위해서인가? 이래가지고 어떻게 나라가 지탱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아닐 수 없네. 이 나라는 멸망한 조선과 대한제국의 전철을 밟아서는 아니 되네. 조선이 멸망할 때는 조선에 대국이 9국, 소국이 12국이 속해 있었어. 이들 나라에서 74국이 분리되어 나왔네. 자네가 삼한사를 연구한다니 내가 참고로 말해주는 것일세.”

우리 선조들은 조선이 진에게 멸망하고 나서 중원이 춘추전국시대로 들어섰을 때 그들이 살던 곳에서 탈출하여 한반도로 모여들어 삼한시대를 열었다. 그래서 그들이 먼저 살았던 곳에서 떠나왔다는 의미로 먼저 살던 나라 이름에 떠날 이離자를 붙여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밝혔다. 그러므로 2개의 나라가 중원과 한반도에 동시에 존재하였다. 

 비리국卑離國은 선비국鮮卑國에서 떠나와 정착한 사람들의 나라라는 뜻이고, 초리국楚離國은 초국에서 떠나와 정착한 사람들의 나라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선비국과 초국은 원래의 잔존세력이 중원에 있었고, 떠나온 세력이 한반도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국명이 동시에 2개가 있었다. 

 이렇게 본토에서 떠나온 나라들이 한반도에 모두 소국 형태로 72개국이 있었고, 이 중에서 국토의 서부와 서남쪽에 자리 잡은 53국이 마한이 되었다.


 이들 72국 중에서 맹주를 자처했던 소국은 월지국月支國이었다.(목지국目支國이라고도 한다) 조선이 멸망하면서 삼한이 생겼고, 삼한의 맹주국이 월지국이었으므로, 월지국은 조선朝鮮의 한 분파로 볼 수 있다. 조선의 조朝자는 한족桓族+월지족月支族의 문자로 볼 수 있는데, 고구려벽화 중에 일신족日神族의 시조와 월신족月神族의 시조인 한인과 항영이 비상하는 그림을 보면 추리가 가능하다. 이들 2인종 중에서 월신족을 계승한 인종이 월지국을 세웠다고 볼 수 있다.


 마한은 이들이 통합하여 만든 연합체 소국가 모임이었다. 이들 국가 중에서 마한馬韓이 왕이 된 것은 마가馬加 출신의 왕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어에서 왕을 한이라 하였다. 마한에서 백제가 두각을 나타내 마한 53국을 모두 백제에 넘겨주어 백제가 삼한의 장자가 되었다. 이 말은 백제가 조선을 계승하였다는 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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