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부천시엔 바다가 없다. 그러나 부천시가 부천군이었을 때는 소래면蘇萊面에 속한 바다가 있었다. 이 바다를 출입하는 어항이 소래포구이다. 서해에서 잡은 물고기를 팔고 사는 어시장이 소래포구이다.

이중섭 화백의 <물고기와 아이들> 이 그림에서 물고기는 조선을, 아이들은 미래에 조선을 이끌어 갈 백성을 뜻한다. 이중섭 화백이 부천에 살았을 때는 아마 소래면이 부천시에에서 시흥으로 떨어져 나가기 전이었을 것이다. 그는 부천에 살면서 <물고기와 아이들>이라는 제목의 그림을 남겼다. 필자가 보기에 그가 그린 물고기는 대구인 곤鯤이다. 대구가 그림의 제제가 된 것이다.
조선朝鮮이라는 문자를 보면, 선鮮자에 물고기가 있다. 이 물고기가 곤이다. 조선이 산동반도에 있는 청주靑州를 서울로 삼고 개국했을 때 발해만의 바닷가에 사는 백성들을 예濊라 하였다. 예濊란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아마 이들이 곤을 잡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내륙에 사는 백성을 예穢라 하였다. 예穢란 농사를 짓는 백성이라는 뜻이다. 벼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이 문자가 생겼을 것으로 생각된다.
만주 쪽에 사는 백성을 예獩라 하였다. 예獩란 사냥을 하는 백성이라는 말이다. 예獩를 다른 말로 맥貊이라 하였다. 맥이 남미로 이동하여 맥이코(멕시코)라는 땅 이름은 물론이고 나라 이름까지 남겼다.

己자가 들어 있는 청동기 명문. 조선의 선鮮자를 구성하는 인종 중에서 어魚자를 인종 아이콘으로 가진 인종이 소성족蘇姓族이다. 소蘇자가 생긴 때가 조선의 전신인 단국檀國의 홍제洪帝 때였다. 이때 기풍己豊 곤오昆吾가 홍제 8년에 단국과 고신국高辛國의 국경인 수분하綏芬河를 넘어 쳐들어온 제곡고신帝嚳高辛의 군대를 물리치는 공을 세워 홍제로부터 소성蘇姓을 사성賜姓하였다. 기풍은 소풍으로 불리면서 하백河伯이 되었다. 하백은 물을 다스리는 왕이라는 뜻이다.
소래라는 땅 이름은 소성을 가진 사람들이 그곳으로 들어와 생긴 지명이다. 이 사람들이 래이족萊夷族이다. 소성을 가진 래이족이 들어왔기 때문에 소래蘇萊라 하였다. 이들을 상징하는 물고기가 곤鯤이다. 곤이 소성족蘇姓族의 인종 아이콘이 되었다.
곤을 인종 아이콘으로 가지면서 곤오는 곤昆에 부수로 어魚를 붙였다. 그래서 곤鯤이 되었다. 그가 물을 다스리는 하백이라 물고기의 왕인 곤을 인종 아이콘으로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장자莊子는 그가 쓴 <소요유逍遙遊>에서 곤에 대하여,
“북명에 물고기가 있다. 이름은 곤이다. 곤은 크기가 몇 천리나 되는지 알 수 없다. 이 물고기가 변하여 새가 되었는데, 새의 이름은 붕鵬이다. 붕의 등 넓이도 몇 천리나 되는지 알 수 없다. 붕이 힘차게 날아오르면 그 날개는 하늘을 가득 덮은 구름을 연상시킨다. 붕은 바다 기운을 타고 남명으로 옮아가려 한다. 남명은 바다이다.”라고 하였다.
이 글에서 말한 곤은 곤오를 말한다. 또한 붕은 그가 세운 조선을 말한다. 이 글이 조선의 건국신화를 비유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글을 제대로 해석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 이유는 곤오에 대하여 알지 못했기 때문에 제대로 해석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곤오는 청동기시대에 황제, 치우천왕과 함께 청동기문명을 이끌어간 사람이다. 그래서 그가 만든 청동기에는 그의 성인 기己자가 새겨져 있다. 그가 청동 솥 정鼎을 발명했다고 전해 온다.
곤오에 대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이 알지 못했던 일제강점기에 이중섭 화백이 <물고기와 아이들>을 그렸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는 이 그림에서 곤, 즉 조선의 미래가 아이들의 미래에 달렸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우리의 한반도 역사가 중원 대륙의 역사에 맞물리게 해 주는 역사의 고리가 소래이다. 우리에게 소래라는 지명이 없다면 우리의 역사는 대륙의 역사와 단절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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