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시를 사이에 두고 인천시의 부평구와 시흥시의 소래가 붙어 있다. 이는 과거에는 부평과 소래가 같은 부천군에 속해 있었음을 말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나란히 놓고 읽으면 이들 지명이 서로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평은 인천에 붙어 있고, 소래는 시흥에 붙어 있다. 부평과 소래가 인천과 시흥에 가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으니 더부살이가 잘 된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부천시 전경(일부) 교회 앞으로 와우고개 길이 나있다. 이 길이 격암 남사고 선생이 예언한 성산심로聖山尋路이다. 이 길을 넘어가면 시흥의 대야동大也洞이다. 대야동이란 여신의 거대한 여음女陰이라는 뜻이다. 여신의 대야에서 태어나는 신인류新人類가 시흥始興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여신은 마고삼신이다.
지방자치를 시작한지 20년이 경과했지만 풀어야 할 일들이 난마처럼 엉켜있다. 좁은 땅 덩어리에서 수장들이 전시성 행정을 펴느라고 전국이 빚더미에 올라 앉아 있는 것은 물론이고, 화장장 사용문제, 쓰레기 처리장 문제, 청사문제, 복지문제, 교육문제, 자주 치러지는 선거문제 등 굵직굵직한 문제들이 얽혀 있다. 단체장이 바뀌면 정책이 바뀌어 예산 낭비가 조장되고 있다.
만약 부천과 시흥과 부평이 갈라지지 않고 부천군 시대의 해정구역을 그대로 유지해 왔다면 인천과 시흥에 붙어서 다른 행정단위처럼 도토리키재기 행정을 하지 않았어도 되었을 것이고 위에서 본 문제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부천군에서 부천시가 생기고 인천시 부평구와 시흥시로 떨어져 통합되는 바람에 이러한 사단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하나의 생활권이 2개의 행정단위와 생활권으로 나뉘면서 일어난 현상인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부천시의 상동지구가 개발되면서 부천시가 부평구와 가까워지는 현상이 일어났다. 그래서 2010년 5월 30일 부천시장과 부평구청장이 공동발전협약을 체결하였다. 그 성과로 나타난 것이 인천가족공원(부천화장장)을 부천시민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부천과 부평이 문화통합을 이룬다면 부천은 부평의 농악을 부천의 문화로 가져다 쓸 수 있을 것이다. 위 사진은 부평역사의 벽에 타일로 만들어 붙인 부평농악놀이 장면 부분이다.
지방신문에 보도된 것을 보면, 4월에 문화공동사업협약도 체결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내용은 크게 기대할 만한 수준은 아닌 것 같다. 부평에 사는 어린이들 중에서 어린이집, 지역아동센터를 이용하는 아이들이 부천지역에 있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박물관을 이용할 때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고작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부천시와 부평구가 업무협조를 한다는 발전모델만 부천과 부평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데엔 한계가 있다. 지방행정이라는 범위를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기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격암 남사고 선생이 예언한 세계단일국가의 국도라는 명제이다. 만약에 부천유토피아를 실현해 보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격암 선생의 미래 국가 발전을 위한 부천발전모델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격암 남사고 선생은 세계단일국가의 국도가 부천에 들어선다고 하였다. 세계단일국가의 국도가 들어선다면 현재의 부천시 면적만 가지고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부천과 부평과 시흥을 따로 띠어놓고서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 3개의 도시가 통합되어 확대 개편된 도시가 되어야 이로울 것이기 때문이다.
인천광역시는 조선시대처럼 인천부仁川府로 독립시키고 그 범위를 축소하여 홍콩과 같은 도시로 만드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다. 반면에 부천을 부펑구와 시흥시를 통합하여 격암 유토피아 건설에 활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부평에서는 평平을 취하고 부천에서는 천川을 취하여 들과 강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또한 시흥에서는 시흥을 취하도록 한다. 시흥에는 소래로 흘러드는 천이 있다. 이 천을 부천시로 끌어들여 한강과 연결시키는 것이 좋을 것이다. 시흥이라는 문자를 해석해 보면 새로운 인간으로 흥하게 되는 도시라는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문자에 시흥과 부천의 미래가 예언되어 있으므로 그 예언의 취지를 살려보자는 것이다.
앞으로 역사와 문화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들 3개의 지역은 하나의 행정단위로 묶여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서로 소통하고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상생이란 역사문화 공동체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