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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황족 의친왕의 파란만장한 생애(1)

<기획 시리즈>의친왕과 이관구 선생의 관계 추적하다 집필계기

박관우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3/10/14 [11:55]
2013년은 대한제국의 상징이었던 원구단이 일제에 의하여 철거된지 어느 덧 100년이 되는 해가 되는데, 필자는 원구단이 현재는 호텔로 변모하였지만  원래 원구단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웅장한 건물이 보존되지 못한 점에 대하여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시점에서 지금으로 부터 58년전인 1955년 8월 16일 한 시대를 풍미하였던 거목(巨木)이라 할 수 있는 대한제국의 황족 의친왕을 독자들에게 소개하려고 한다.
 
거슬러 올라가서 지난 1992년 6월 의친왕의 아들을 알게 된 것이 하나의 계기가 되어 황실과의 그 오랜 인연의 서막이 시작되었다.
 
▲ 의친왕     ©브레이크뉴스

아울러 브레이크뉴스에 지난 2008년 9월에 첫 칼럼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다양한 분야의 칼럼 150편이 게재되었는데 그중에 황실관련 칼럼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의친왕을 제목으로 한 칼럼은 단 한편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황실칼럼들 중에서 의친왕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니고 그를 주제로 한 칼럼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의친왕 칼럼은 주로 필자의 블로그나 활동하는 카페에 올렸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에서 발행하는 “독립정신”을 비롯하여 지난 8월 10일에 출간된 “역사 속에 묻힌 인물들”에 의친왕이 소개되어 있지만 브레이크뉴스에는 공식적으로 기고한 적이 없다.
 
앞으로 2년후가 되는 2015년은 의친왕의 서거 60주년이라는 역사적인 해가 되며, 그 이전에 의친왕과 관련하여 브레이크뉴스에 기고하고 싶었는데 이제 그러한 때가 왔다고 본다.
필자는 인물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데 올해가 독립운동가 화사 이관구의 서거 60주년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으며, 그가 뜻밖에 의친왕과 친분관계가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랫동안 의친왕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그가 다양한 독립운동가들과 친분관계를 맺은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독립운동단체 “광복회(光復會) 황해도 지부장으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6년간 수감생활을 하였던 이관구와도 연결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현재까지 알게 된 정보는 이관구의 저술인 “의용실기(義勇實記)”를 집필한 장소가 다름아닌 성락원(城樂園)이라는 사실인데 바로 이 곳은 의친왕의 별장으로 알려진 곳이며 이러한 곳에서 집필하였다는 자체가 필자로서는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관구가 잠시 머물렀던 정도가 아니라 여기서 “의용실기(義勇實記)”를 저술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것은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강점기 부터 친분관계가 있었다고 추정하는 것인데 과연 그 시작이 언제부터 비롯된 것인지 궁금하게 생각되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런 귀중한 정보를 입수한 이후 이것이 하나의 동기부여가 되어 언젠가 한번은 브레이크뉴스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었던 의친왕의 생애를 시리즈로 연재하기로 결심하였다. pgu77@hanmail.net
 
*필자/박관우. 저술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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