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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황족 의친왕의 파란만장한 생애(6)

박관우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3/11/07 [10:36]
이 연속칼럼의 5회에서 의친왕이 천도교에 입교(入敎)하였다는 내용을 소개한 바 있는데 그렇다면 과연 의친왕이 어떠한 연유로 입교(入敎)한 것인지 그 일화를 소개하기로 한다.
 
<<어느 날 손병희는 쌍두마차를 타고 동경시내를 달리다가 의친왕의 행차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타국에서 만난 의친왕에게 조선백성으로서의 예의를 갖추기 위해 급히 마차에서 내려 두손을 읍하며 경의를 표시했다. 그때 시종관이 의친왕에게 영어로 무엇인가 아뢰었다. 이 모습을 본 손병희는 시종관을 노려보며 큰소리로 꾸짖었다. “ 너가 국왕을 모시고 다니는 놈이냐! 내 나라 국왕을 모시고 외국말이 어디 당한 일이냐. 너 같은 놈이 있으니 우리나라가 이 꼴이야...” 이를 지켜보고 있던 의친왕은 차에서 내려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과연 옳은 말이오. 이만 진정하시오.”>>
 
이러한 일화를 통하여 일국의 황족이라는 고귀한 신분으로서 측근의 잘못된 처신을 인정하는 의친왕의 인품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이러한 사건을 계기로 의친왕이 손병희의 인격을 흠모하여 자주 방문하게 되었는데 손병희 또한 때로는 의친왕의 부름을 받고 국가의 대계(大計)와 경륜(經綸)을 설파하였다.
한편 손병희는 5년간의 망명생활을 끝내고 1906년 1월 28일 귀국하고 의친왕은 4월 7일에 귀국하였다.
▲ 의친왕     ©브레이크뉴스

귀국한 이후 , 의친왕은 손병희의 인도에 따라 비밀리에 천도교에서 입교식(入校式)을 거행하였다.
 
그리고 의친왕이 비장의 무기를 빼어든 운명의 1907년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여기서 비장의 무기에 대한 구체적인 실체를 알아 보기로 하자.
 
핵심적인 내용은 1907년 1월 15일에 의친왕이 북한산성에 문관 3명, 군관 105명, 민간인 120명 등 총 228명을 비밀리에 소집하여 의병봉기(義兵蜂起)를 독려하는 연설을 하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거사가 결행된 시기인 1907년은 헤이그 특사사건으로 인하여 고종황제가 일제에 의하여 강제로 퇴위되는 불행한 사건이 일어 났으며,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에 이어서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이 체결된 해이기도 하다.
 
이러한 때 228명이나 되는 많은 인원을 북한산성에 소집할 수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사건으로 보여 지는데, 단순히 모임을 한 것이 아니라 의친왕의 비장에 넘친 연설까지 있었다고 하니 그 당시의 모습을 상상하기만 하여도 벅찬 감격을 억누를 수가 없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으니, 북한산성 거사는 의친왕이 귀향 창의(歸鄕倡義)를 권고하면서 당시 참여자중의 일부가 실제로 고향에 가서 의병을 일으켰다고 하니,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당시 의친왕의 연설이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점은 이러한 거사를 일제의 삼엄한 경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실행할 수 있었으며, 당시에 참석한 인명부(人名簿)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시 총 참여 인원이 228명인데, 그나마 이러한 자료가 발굴된 것도 참여자 중의 1명인 목형신(睦衡信)이 1945년 타계하기 전에 장엄하였던 의친왕의 연설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서 기록을 남겼기에 밝혀진 것인데, 공교롭게도 목형신(睦衡信)의 출생연도가 의친왕과 같은 1877년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이러한 자료 못지않게 중요한 부분이 구체적인 거사장소인데, 자료에는 북한산성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 북한산성은 1711년 숙종시대에 대대적으로 축성된 것이며, 특히 전란이나 변란시에 왕이나 대신들이 머무르는 처소인 행궁은 그 이듬해인 1712년에 완공되었다.
 
필자의 추정으로는 일단 거사 장소가 당시 130칸의 위용을 갖추었던 행궁 주변이라고 판단되나, 성내에 여러 부속건물들도 많았으므로 다른 건물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필자가 의친왕의 생애에 있어서 이 거사를 주목하는 이유는 의친왕이 귀국한 바로 이듬해에 결행된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그 뒤에 전개된 의친왕 항일운동의 신호탄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pgu77@hanmail.net
 
*필자/박관우. 저술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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