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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아란 어떤 사람일까요?

김덕권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3/11/09 [07:47]
행운아란 어떤 사람일까요? 사전에 찾아보면 ‘좋은 운수(運數)를 만나서 하는 일이 뜻대로 다 잘되고 좋은 일만 생기는 사람.’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좋은 운수만 있을까요? 저는 오히려 나쁜 운수를 지녔더라도 악전고투(惡戰苦鬪) 끝에 자신의 운명을 이겨낸 사람이야 말로 인간승리(人間勝利)의 표상이며 행운아라고 부르고 싶네요.
 
솔개는 장수하는 새라고 합니다. 보통 40년을 살고 혹은 70년까지 생존한다고 하네요. 대개 솔개는 40년을 사는데 그것이 일반 수명입니다. 만일 솔개가 더 살려면 고민을 해야 하고 피나는 고통을 감수해야 가능한 일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이른바 ‘솔개론’이죠.
 
솔개는 보통 40년을 사는데 40년을 살면 발톱이 노화되어 사냥감을 잡을 수 없습니다. 부리가 길게 자라 구부러져 사냥감을 줘도 먹지 못합니다. 깃털이 길게 자라 무거워져 하늘 높이 날 수가 없습니다. 그때 솔개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이대로 죽을 것인가 아니면 새로 태어날 것인가, 새로 태어나려면 6개월 코스의 고통스런 수행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그러면 앞으로 30년 더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수행과정이 피눈물 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먼저 높은 절벽 위에 둥지를 틀고 부리를 바위에 쪼아 빠지게 해야 합니다. 아니면 사냥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빠진 부리는 두 달이 지나면 다시 솟습니다. 이번에는 돋아난 날카로운 부리로 묵은 발톱을 쪼아서 뽑아내야 합니다. 그러면 두 달 후면 또 자랍니다. 그때 다시 돋은 발톱으로 낡은 깃털을 뽑아내야 합니다. 그래야 새 옷을 입고 하늘 높이 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면 6개월 후에 완전히 다시 태어나서 하늘 높이 비상하여 30년을 더 산다고 합니다.
 
솔개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고통스런 재탄생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미래를 만들 수 없다는 메시지를 줍니다. 사람도 노화 현상이 나타나면 몸이 비대해지고 안일에 빠지게 되어 병들게 되죠. 우리가 믿는 신앙도 노화현상에 빠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대로 살다 갈 것이냐 아니면 다시 태어나 새롭게 일을 더 할 것이냐 우리는 고민해야 합니다. 세상에 성공한 위인들은 한 결 같이 부리를 바위에 쪼아 뽑아내는 마음으로 부단한 노력을 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인생의 목표를 이루었죠.
 
감옥(監獄)과 수도원(修道院)의 공통점은 세상과 고립(孤立)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면, 불평(不評)을 하느냐, 감사(感謝)를 하느냐 그 차이뿐이죠. 감옥이라도 감사생활을 하면 수도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인생의 성공을 거둔 사람들은 예외 없이 매사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정열적으로 몸을 불사릅니다. 그리고 어떤 처지에 빠지더라도 매사에 감사할 줄 아는 자세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지요.
 
80이 넘어서도 ‘스스로 청춘’이라 생각하던 일본 전자업계의 비조(鼻祖)이며 대부(代父)였던 마쓰시타 고노쓰케( 松下幸之助 1894~1989)의 긍정적 적극적 정열적인 사고방식이 느껴지는 좋은 글귀가 있습니다.
 
「매사는 맘먹기에 달려 있다./ 생각이 바뀌면 지옥도 천국(天國)으로 된다./ 이 세상은 고통(苦痛)의 바다일 수도 있고 동시에 낙원(樂園)일 수도 있다.」
 
그렇습니다. 천국(天國)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야말로 ‘일체유심쪼(一切唯心造)’이죠. 그는 이와 같이 낙관적(樂觀的)인 마음을 소지했기에 95세까지 장수(長壽)를 누렸는지도 모릅니다. 한 때 그는 회사(會社)를 설립하기 전에 오사카 선착장(船着場)에서 일한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배의 갑판(甲板)에 앉아 잠시 쉬고 있을 때, 선원 한 명이 실족하여 넘어지는 것을 잡으려다 그와 함께 바다 속으로 풍덩 빠져버렸습니다.
 
바닷물 속에서 솟구쳐 나왔지만 그 선박은 이미 멀리 가고 없었죠. 그러나 다행히도 추락(墜落) 사고를 알아차린 배가 되돌아와서 구조(救助)되었습니다. “여름이라서 살았지 겨울철이었다면 아마 죽었을 거야. 나는 참으로 운이 좋은 사람이야.”라고 그는 말했다고 합니다.
 
또 한 번은 마쓰시타 전기제작소를 설립하여 얼마 안 되어서의 일입니다. 자전거에 부품을 가뜩 싣고 가다가 교차로(交叉路)에서 자동차와 충돌하여 5미터 정도 밖에 내팽겨 굴러버린 사고를 당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전차의 선로에 누워있는 것이었죠. 바로 그 순간 마침 달려오는 전차(電車)가 보였습니다. ‘이젠 죽었구나!’하고 두 눈을 딱 감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전차는 코앞에서 급정거를 했습니다. 부품은 여기저기 흩어지고 박살났지만 찰과상(擦過傷)만 정도만 입고 무사했지요.
 
“난 정말 행운아야. 이런 정도라면 뭘 해도 잘 될 거야!” 그런 일련의 일들이 자신에게 큰 자신감(自信感)을 주었다고 회고하면서, 젊은이들을 위한 강연회(講演會)에서 꼭 이 경험담(經驗談)을 말했다고 합니다. 그는 젊은이들로부터 “비 범(非凡)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그때마다 마쓰시다는 “아무리 능력이 있더라도 운이 따르지 않는다면 비범한 인간이 될 수 없다네. 운이 따르는 사람이 비범한 인물이지!”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빌게이츠는 “성공의 70%는 행운(幸運)이고, 30%는 자기의 노력(努力)”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대우의 김우중 회장은 “내가 탄 비행기는 추락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성공의 요건(要件)은 노력(努力)과 능력(能力)은 기본이고, 거기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정열적인 그리고 낙천적(樂天的)인 마음의 자세 아닐까요?
 
인생의 성공은 진리의 도움이 없다면 아무리 발버둥 쳐보아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신앙하고 도(道)를 닦아 진리의 위력(威力)을 얻고 진리의 체성(體性)에 합할 정도로 적공(積功)을 해야 원하면 원하는 대로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럼 사람이 인생의 행운아가 아닐까요? 우리 대 적공(大積功) 대 적공 대적공하며 삽시다. 그럼 모두 행운아라는 자부심(自負心)을 갖고 살 수 있지 않을 까요! duksan4037@daum.net
*필자/김덕권. 시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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